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상희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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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를 축복치 않는다면 내 그대를 놓아 주지 않으리로다."

 

내 또래에 데미안을 읽어본 사람치고 처음 읽게 된 시점이 30대 초반인 경우는 드물거라 생각한다. 이르면 초등학생시절, 좀 늦더라도 대입 이전에 한번쯤 읽고 싶은 충동이 일거나 '강요'에 의해 읽게 되는 작품중에 하나가 바로 데미안이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와 마지막장까지도 여운이 남는 구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번째 데미안을 읽고 드디어 리뷰를 남겨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데미안하면 떠오르는 구절은 대게 맨 위에 적은 구절보다 바로 위의 문장일 것이다. 아직 준비가 안된 싱클레어에게 해주는 말, 그리고 불안전한 청소년기에 뜻모를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구절. 세번째라 지루할 법도 한데 자처해서 읽어 시작부터 맘이 울려 가장 더디게 읽혔던 것 같다. 데미안을 만나기 전 시기에 선의 세계 혹은 알에서 깨어 나올 필요가 없던 공간에 머물렀던 싱클레어의 모습에서 보통의 '나'를 보게 된다.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서 진정으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데미안이 등장하기 직전 싱클레어가 악의 존재를 체감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데미안을 동경하고 그리워했던 싱클레어보다 시간이 흐른뒤에도 크로머를 떠올리며 흠칫 거리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의 유년 시절에서 스스로 놔주지 못하는 좋지 않은 기억에 여전히 얽매여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 작품이 지루하다는 고른 평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을 괴롭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을 깨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틀을 깨는 것은 둘째치고 갇힌 상태가 현재 진행형이 사람도 존재 하기 때문이다.

 

그대 나를 축복치 않는 다면 내 그대를 놓아 주지 않을리로다.

 

악도 선도 결국 최초의 반항으로 몸이 떨린 싱클레어처럼 모든 결심과 깨달음 끝에는 떨림과 그로인해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여전히 제 모습이 같아 진 줄도 모르는 싱클레어처럼 그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무시하고 견뎌낼 수 있다면 우리는 알속에 있어도 알을 깨고 나온 것과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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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노예의 역사 - 5천 년 노예제도를 말하다 주제로 읽는 역사 시리즈 1
마조리 간.재닛 윌렌 지음, 전광철 옮김 / 스마트주니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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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철망에 갇힌 검은 피부의 남자. 암울한 표정임과 동시에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처량한 눈빛에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다. 노예제를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목적과 바람이 한 장의 사진에 함축적으로 들어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노예제를 비판하고 금지하는 반대운동을 하기전에 앞서 제대로 노예제를 아는 것이 먼저며,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노예제도 폐지를 전면적으로 이끌었던 링컨과 관련 봉기등만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하나의 픽션 소재로만 노예제도를 알아왔지 정확하게 언제부터 노예제가 시작되었고 역사적으로 그들이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흔적은 제대로 배운적도 알려고 한적도 없었다. 이 책은 저자의 목적처럼 제대로 아는 것 그것에 가장 충실한 책이다.

글로써 설명하는 데는 분명한계가 있는데 책에서는 본문을 중심으로 양 사이드에 학자들의 저술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자가 사회운동가들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과 이를 증명하는 회화가 적절하게 섞인 구성이다. 때문에 어떤 사건을 설명하고자 하면 그 사건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함께 보여준다. 더군다나 이 책의 주요 연령대는 청소년이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잔혹한 묘사를 피했다는 점이 교육적인 도서로서의 충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노예제도는 고대 그리스부터 역사적 유물에 새겨진 그림과 글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 한것은 성경에서는 노예를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했다고는 하나 노예 자체를 인정한거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인간의 이중성과 잔인성은 노예 이거나 노예주 둘 중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노예들을 빗댄 표현은 역사서에서 잘 드러난다. 인간의 발을 가진 동물이기도 하고 험악하고 추악한 얼굴과 몸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이따금 노예를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고 자유를 주거나 문학성을 인정해주는 경우도 있고 법적으로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지 못하게 정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재산'의 일부로 여겼기에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 오히려 더 분노를 낳았다.

앞서 말했던 종교적 관점에서의 아이러니함을 이해시키듯 구체적인 노예해방운동은 유럽에서 진행되었다. 그 까닭을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많은 노예 소유자가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기도 했지만 폐지론자들은 성경 내용중에서도 억압자에 반대해 노예의 편에 섰던 하나님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p.120

책을 읽으면서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노예제도에 대한 아이러니함과 함께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호의적인 '역사적 인물'들이 노예주였던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노예제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 일에 앞장서기도 했던 이력들이었다. 역사는 노예가 아닌 노예주들에 의해 적힐 수 밖에 없었기에 가능했지만 올바른 역사를 찾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때때로 우리는 일본에서 자국의 역사책에 왜곡된 역사를 소개하는 것에 분개하고 개탄한다. 마찬가지로 노예의 역사도 노예주에 의해 잘못되어진 것 역시 그보다 적진않을 것이다. 잘몰라서 그런거라면 제대로 알리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에 이 책은 그런점에서 목적을 충실히 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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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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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기 전부터 석지영교수의 이야기는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대학별 순위와 무관하게 늘 우리 머릿속에 최고의 대학 하버드의 교수인것도 그랬고, 임용시기가 30대인데다 '공부'만 공부벌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대는 한계를 모르고 커졌고 드디어 이 책을 받아들고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 괜한 억울함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한국계 미국인."

 

이라는 표현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언급한 것은 그사람은 더이상 한국인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석지영교수가 실질적인 교육을 받아온 환경이 '한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아쉬움과 다행스러움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실이다. 문학적 재능과 법학도로서의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랄수 있어 좋은 법조계 교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아쉬움은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재능을 가지고도 억지스레 끼어맞추듯 학교에 가고, 적성에 맞지 않아 좌절하는 동기, 선후배들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석교수의 말처럼 '한국'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이력은 그렇게 크게 주목받을 만한, 심지어 대통령이 먼저 그녀를 알아볼정도의 특별한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소 우울한 맘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노력은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그녀가 자랐다면 무용, 피아노, 법조인 모두를 할 수는 없었더라도 분명 그녀가 택해야만 했을 그 한가지에서 성공한 커리우먼이 되었을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추억이 100% 사실이 아니라고는 했어도 읽으면서 사실인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게 결과물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발레 연습생일 때는 그녀가 좋아하는 스승을 쫓아 원칙에 반하면서도 레슨을 받았고 부모님의 반대로 그렇게 좋아했던 발레를 포기 해야 했을 때역시 반항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녀는 좋아할 수 있도록, 또 그 좋아하게 된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이 비범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한다면 부딪히는게 아니라 좋아하기로 맘먹는 것. 어쩌면 나와 같은 이들에게 그런 점이 부족했던게 아닐까.

 

책의 중간중간 그녀의 스냅사진이 실려있는데 보고 있으면 어릴 때나 성인이 된 지금도 늘 얼굴에 어둠이나 그늘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들떠있는 표정도 없다. 그나마 외갓집에서 찍었다던 사진이 가장 행복해보이는 사진이다. 셔터속에 담긴 그녀의 모습처럼 그녀는 내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이아니었다. 단순하게 산다는 그녀의 원칙이 보여지는 모습같았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친구들과의 화기애애한모습은 빠짐없이 그녀의 에세이속에 담겨져 나왔다.

 

책에서도 강연에서도 그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의 핵심은 결국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생각이든다. 내가 지금 당장 사랑하는 것은 어쩐지 애매하고 모호하다. 사랑하니까 잘할 수 있지만 사랑한다고 반드시 잘할 수 있게 되는게 아니다.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찾는다는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잘해낼 수 있는 일일테고 그로인해 주변인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일 테니까. 나혼자만 사랑하는 일은 짝사랑처럼 힘든 법이다. 그녀가 보고 싶었던 세계를 직접 찾아낸 만큼 지금이라도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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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비밀정원 - 숲 속 오솔길에서 열네 살 소녀를 만나다
신순화.김미조 지음 / 나비장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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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비밀정원.

타이틀과 표지 그리고 내지 레이아웃이 전부 바껴서 재출간되었을 때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었다. 당시에는 책의 내용을 전부 읽지 않았고 일부 보고 싶던 페이지만 골라보던 때라 섣부르게 판단하고 얘기했던것이 아쉽고 미안하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적고 있는 지금에서야 선인쇄를 해놓고 그 비용까지 감당하며 재 출간을 했어야 했는지 알것 같다. 훔쳐보기는 무슨. 그곳은 엄마의 비밀정원이었고 모두에게 열린 블로글이었기에 아는 이들만 아는 비밀정원에 딸이 들어가보는게 딱 맞는 제목인듯 싶다.

 

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한 엄마가 블로그 까지 개설, 글을 올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딸은 조심스럽게 글을 읽기 시작한다. 글속에서 딸은 깨닫는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은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그 모습이었고 그외에 다른 모습은 아에 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의 글과 타인의 이야기만 담아내던 딸이 이제는 엄마의 글을 이야기 한다. 초반은 두번째 읽었던터라 쉬이 페이지가 넘어갈 줄알았는데 또봐도 재미있다. 특히 기대도 않했는데 고득점을 받아온 엄마를 자랑하고 싶었다는 부분은 나역시 크게 공감한다. 부모가 아이의 성적표를 보는거랑은 사뭇 다르다. 점수가 좋아도 행복한데 높으면 행복하면서도 슬프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느라고 그 좋은 공부를, 정작 하고 싶은 엄마는 하기싫은 아이에게 양보하고 있었던게 아닐까싶다.

 

p127

내가 잡고 있는 이 기억은 수비게 떠내려갈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기억이겠지. 아무리 세찬 비로도 씻어 내릴 수 없으니.

 

블로그에는 딸이 기억하지 못하거나 한쪽면만 바라보았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져 있었다. 비로도 씻어낼 수 없었던 두 분의 기억을 먼저 물어보지 못했던 딸의 아쉬움이 읽고 있는 내게까지 전해져왔다.

 

p.195

요즈음은 키보드를 안 보고 글쇠를 칠 수도 있다.

우리 막내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우리 부모님이 아실지 모르겠다. 컴퓨터를 제일 먼저 가르쳐드리고 사다드린 것은 맞지만 그 이후에 전화로 무언가 물어오시면 엄청 화를 냈었다. 한번 가르쳐드렸던 걸 물어보시던 때에는 심한 말도 참 많이 했었기에 더 울었다.

 

엄마의 글, 그 글을 보거나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며 부연설명 혹은 느낌을 적는 딸의 글이 뒤따라 온다. 엄마의 글만 읽으면 웃음도 나고 참 예쁘고 고운 아줌마다, 울엄마 생각난다 싶다가도 딸이 쓰는 글을 읽을 때는 공감도 공감이지만 참 나란 딸은 정말 모진 딸이구나 싶어서 괴로웠다. 기구한 운명을 사는 소설속 주인공 때문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착한 인물을 괴롭히는 악인 때문에 화가나는 것이 아니었다. 괴로운것도 화가나는 것도 모두 다 내 자신 때문이었다. 엄마의 블로그에는 딸이 알지못하고 기억할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엄마를 엄마로 보는게 아니라 '여자, 혹은 그냥 사람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2년 전 나도 엄마에게 블로그를 개설해 드렸었다. 안타깝게도 엄마 전용 컴퓨터가 없었던 터라 엄마는 금새 블로그를 놓으시고 다시금 손편지로 해외에 있는 언니에게 그리고 핑계가 많아 내려오지 않는 막내딸인 내게 종종 적어보내신다. 엄마의 편지를 받은 날에는 언니도 나도 엄마의 글솜씨를 자랑하느라 침이 마를정도로 대화를 한다. 책을 읽기 전부터 그리고 읽으면서도 내내 엄마에게 컴퓨터를 선물해드려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p.273

'만약 학교를 제대로 다녔으면 좀 더 지혜로운 어머니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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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 1인가구 시대를 읽어라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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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혼자 사는 사람들. 독신이 아니라 삶 자체를 혼자서 꾸려가는 이들의 대한 통계와 그들을 하나의 문제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축소시키지 말고 제대로 바라보자는 취지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 총 7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연구와 분석 방법론에 과한 설명, 주석, 참고문헌과 찾아보기 까지 첨부되어 하나의 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구성은 교재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술술 잘 읽힌다. 어려운 단어도 없고 무엇보다 여러매체에 컬럼을 기고해서인지 보통의 대중이 읽기에 적당한 호흡으로 저술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롤로그와 1~2장에는 혼자사는 사람들을 명명한 과거의 이론과 철학자들, 미국사회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들의 현실에 대해서 보여준다. 혼자살기 시작한 까닭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산업방식의 변화는 물론 혼자살 수 있는 여건을 가능케한 사회적 제도와 함께 사는 동거인들과인들과의 불협화음이 더 이상 함께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자 살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공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어떻게 혼자 살 것인가'와 '어떻게 함께 잘살 것인가'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p.45

 

3장부터 6장까지는 앞서 보여준 혼자살기가 젊은 사람들, 노년(65세 이상)층의 독립된 자아와 생활이 가능한 희망적인 혼자살기의 모습과 반대로 독서노인들과 혼자 살기를 소망하는 이들과는 달리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문제점을 거론한다. 과연 혼자산다는 것이 멋지고 자유롭기만 한 현상인지를 독자에게 묻는 듯 싶다.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혼자 지낼 수 있는 감정적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p.228

 

마지막 7장에서는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혼자살기가 가능한 것인지, 또 가능하다면 그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앞서 나왔던 이론과 통계를 통해 혼자사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혼자서든, 누구와 함께이든 사는 방식등을 떠나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하다고 말한다.

결국 혼자 사는 현상에 대한 원인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통계를 보여주며 그것이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나 사회현상 혹은 문제라기 보다는 각자 타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함께 잘 살아가고자 하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든 노인들의 쓸쓸한 죽음, 능력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제2의 사춘기를 겪는 청년들은 예나 지금이나 솔로들의 비중이 어느정도냐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완벽한 솔로- 고독을 즐기거나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도 적당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으로도 독립된-는 결국 함께 잘 살기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고독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잘살 수 있을까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에 불을 붙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지금 당장 어떻게 살고 있든 간에 함께 잘사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요구가 아니겠는가?'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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