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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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기 전부터 석지영교수의 이야기는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대학별 순위와 무관하게 늘 우리 머릿속에 최고의 대학 하버드의 교수인것도 그랬고, 임용시기가 30대인데다 '공부'만 공부벌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대는 한계를 모르고 커졌고 드디어 이 책을 받아들고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 괜한 억울함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한국계 미국인."

 

이라는 표현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언급한 것은 그사람은 더이상 한국인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석지영교수가 실질적인 교육을 받아온 환경이 '한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아쉬움과 다행스러움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실이다. 문학적 재능과 법학도로서의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랄수 있어 좋은 법조계 교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아쉬움은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재능을 가지고도 억지스레 끼어맞추듯 학교에 가고, 적성에 맞지 않아 좌절하는 동기, 선후배들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석교수의 말처럼 '한국'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이력은 그렇게 크게 주목받을 만한, 심지어 대통령이 먼저 그녀를 알아볼정도의 특별한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소 우울한 맘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노력은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그녀가 자랐다면 무용, 피아노, 법조인 모두를 할 수는 없었더라도 분명 그녀가 택해야만 했을 그 한가지에서 성공한 커리우먼이 되었을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추억이 100% 사실이 아니라고는 했어도 읽으면서 사실인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게 결과물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발레 연습생일 때는 그녀가 좋아하는 스승을 쫓아 원칙에 반하면서도 레슨을 받았고 부모님의 반대로 그렇게 좋아했던 발레를 포기 해야 했을 때역시 반항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녀는 좋아할 수 있도록, 또 그 좋아하게 된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이 비범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한다면 부딪히는게 아니라 좋아하기로 맘먹는 것. 어쩌면 나와 같은 이들에게 그런 점이 부족했던게 아닐까.

 

책의 중간중간 그녀의 스냅사진이 실려있는데 보고 있으면 어릴 때나 성인이 된 지금도 늘 얼굴에 어둠이나 그늘짐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들떠있는 표정도 없다. 그나마 외갓집에서 찍었다던 사진이 가장 행복해보이는 사진이다. 셔터속에 담긴 그녀의 모습처럼 그녀는 내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이아니었다. 단순하게 산다는 그녀의 원칙이 보여지는 모습같았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친구들과의 화기애애한모습은 빠짐없이 그녀의 에세이속에 담겨져 나왔다.

 

책에서도 강연에서도 그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의 핵심은 결국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생각이든다. 내가 지금 당장 사랑하는 것은 어쩐지 애매하고 모호하다. 사랑하니까 잘할 수 있지만 사랑한다고 반드시 잘할 수 있게 되는게 아니다.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찾는다는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잘해낼 수 있는 일일테고 그로인해 주변인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일 테니까. 나혼자만 사랑하는 일은 짝사랑처럼 힘든 법이다. 그녀가 보고 싶었던 세계를 직접 찾아낸 만큼 지금이라도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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