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빛나래, 안동에 가다!

 지난여름, 우리 두빛나래는 안동으로 1박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모임의 주제였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에 나오는 부석사는 물론, 고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와 선비의 마을로 유명한 하회마을, 그리고 옛 유생들이 공부하던 서원들을 둘러보고 왔다.

-모두 모였다면 안동으로 출발!

 8월 12일 아침, 아직 붙어있는 잠을 설렘으로 깨워가면서 약속장소인 중앙여고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 더 걷는다고 5분정도 늦긴 했지만 평소 교육청강연을 들으러 갈 때도 나를 포함해 그리 일찍 나타나지 않는 녀석들이기 때문에 내심 내가 제일 일찍 왔을 것이란 기대까지 하면서 말이다.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두리번두리번 선생님이 타셨을 만한 봉고차들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한 차의 문이 확 열리면서 낯익은 심투의 얼굴이 보였다. 너희들...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좀 실망이군. 그래도 빙 돌아 걸어와서 다리가 좀 아프려고 했기 때문에 재빠르게 안락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석에는 두빛나래의 일원이자 이번여행에서 우리의 보호자, 안내인, 운전기사, 사진사 등을 맡으실 산마루님이 앉아계셨고, 그 옆에는 역시나 보호자, 안내인이 되실 강낭콩님이 직접 전날 만들어 오신 참고자료를 건네주시며 앉아계셨다. 그 뒤로는 은지, 향옥이, 희정이 셋이 나란히 다리를 쭉 펴고 아주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그 뒤에는 체육복차림의 심투가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피곤한 표정으로... 별 생각 없이 ‘너 어제 뭐했냐?’ 했는데, 진짜 놀러갔다 왔단다. 새벽에 잤다면서... 좀 걱정이 돼서 ‘얼른 자라’며 모자를 푹 눌러 씌워주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여인은 은진이. 역시 차를 못 찾고 헤매고 있길래 살짝 놀려줄 생각으로 ‘숨어, 숨어’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동작이 좀 늦었는지 우리를 다 봤다는 표정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내 뒤쪽 창가에 자리를 잡은 은진이. 우리가 안동의 밤을 함께 보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챙겨왔단다. 사회자인 나도 무게의 압박에 차마 들고 오지 못하였는데...  (그래, 실은 난 너희들 중 누군가가 들고 올 거라 믿었단다!) 늘 함께 다니는 것이 특징인 선아, 선주가 역시 함께 등장했다. 그럼 거의 다 온 건가? 약속시간이 꽤 지났는데... 쑤구랑 강지는 못 온다고 했으니 당연히 없고, 명애랑 이슬이가 남았군. 근데 왜 안 나타나는 거냐! 어랏? 차가 출발하잖아? 그냥 쌤이 두고 가려나?

‘쌤, 애들 다 안 왔는데요!’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데’

좀 가다보니 이슬이가 보였고, 내 옆에 앉으면서 명애가 못 온다는 사실을 알렸다.

 어쨌든 이젠 정말 다 모인거군. 꽤 신나는 걸.


-강아지똥, 몽실언니, 그리고 조탑리.

 쭉 뻗은 고속도로를 지나 어느새 차는 안동을 달리고 있었다. 차가 멈춘 곳은 조용한 시골마을. 풀이 무성한 길가에 한자로 ‘조탑리’라고 적힌 작은 돌이 세워져 있었다. 몇 발자국 못가서 작은 교회당이 있었는데 권정생 선생님이 그 교회의 종지기를 하셨다고 한다. 권정생선생님의 집을 찾으려고 교회 주변을 맴돌며 헤매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신 아저씨 덕분에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자전거로 길을 알려주시며, 우리에게 ‘어째 왔니더?’ (안동사투리가 왠지 친근하다.) 라고 친절하게 말을 거셨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차를 타고 왔다고 해야 하나, 권정생 선생님 집을 보러왔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말았다.

 아까 아저씨가 알려 주신대로 시골길을 조금 걷다보니 집이 하나 나왔다. 그냥 작고 낡은 시골집. 마당은 풀이 좀 자라 있었지만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퐁퐁, 대야 같은 것도 그대로 있어서 아직 사람이 사는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돌아가기 전에 강낭콩님의 제안으로 잠깐 묵념을 했다. 차로 돌아오는 길, 왠지 숙연해지는 것 같다.


-옛 조선양반들의 삶을 훔쳐보다: 하회마을.

점심으로 안동 헛제사밥을 먹고, 하회마을로 향했다. 하회(河回)라는 이름은 물이 마을을 빙 돌아나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 유명한 마을이지만 아직 한 번도 실제로 와 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곳일까라는 궁금증은 더 커지고 있었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니 사방이 한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담 옆을 조선여인이 된 설렘으로 걸어가다 한 집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 세력 있던 양반이 살던 곳이라 그런지 건물도 사랑채, 안채, 행랑채, 마구간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 문득 대청마루에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앉아 보았다. 마루 색이 무척 따뜻했다. 계속 앉아있고 싶었지만 다른 곳도 보아야하기 때문에 마루에서 일어나 대문을 나섰다. 또 다른 집에서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루에 걸터앉아 나물을 다듬고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여유로워 보여 좋았다. 많은 집들이 있었는데 어떤 집들은 출입을 막아놓아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멋진 집처럼 보이는데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탈춤 공연할 때가 되었다고 해서 서둘러 60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를 보러갔다. 새끼줄에 빼곡하게 묶여있는 종이들이 다 소원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나도 하나 적어서 정성들여 묶어 놓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조금 늦었는지 이미 공연은 시작되어있었고 사람들도 꽉 차있었다. 한창 각시가 양반과 포졸을 홀리고 있었는데 각시몸짓에 넋을 빼고 있는 모습이 무척 웃겼다. 하지만 웃음을 가장 많이 자아냈던 이는 이매였다. 포졸이 ‘이매야~!’ 하고 부르면 이매는 ‘와아? 이누마야-’ 하면서 느릿느릿 나오는데 넘어질듯, 안 넘어질 듯 어찌나 웃음이 나오는지... 외국인을 무대로 불러서 같이 춤을 추지 않나 어떤 아주머니보고 ‘니 귀먹었나?’ 고 하지를 않나, 나만 그런가 했는데 다들 웃겨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1년 웃을 웃음을 다 웃고 나서야 공연이 끝나고, 부용대에 오르기 위해 나룻배를 타러갔다. 노를 저어 나아가는 나룻배였는데 출렁 출렁 물살을 가르는 느낌이 좋았다. 사공아저씨는 집에 못 가게 두고 가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반대편을 향해 떠나고, 우리는 부용대에 올랐다. 이거 완전 산이다. 산. 비까지 찔끔찔끔 내려서 엄청 힘들었다. 정상에 오르니 하회마을이 한눈에 다 보였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생겼다. 사진도 한 방 찍고, 경치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편안한 길로 내려왔다. 강물을 바라보며 배를 기다리다 다시 나룻배를 타고 돌아왔다. 하회마을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늘 밤을 보낼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늦게까지 대할만 하다: 만대루.

 서원에서 직접 저녁을 해서 먹었다. 원래는 거기서 잠도 잘 계획이었지만, 이중예약이 되버리는 바람에 서원근처 민박에서 자게 되었다. 자기 전에 서원지기님의 배려로 밤에 만대루에 올라가 볼 수 있었다. 만대루는 병산서원 안에 있는 정자 비슷한 건데. 보통 정자보다 넓어서 여름에는 서원의 학생들이 그 곳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만대루라는 이름은 늦은 저녁까지 이곳에 앉아 경치를 대할만 하다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는 게 서원지기님의 설명이다. 서원지기님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모임을 시작했다. 오늘 모임에서 다룰 책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란 책이고, 더불어 1학기 모임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다. 오늘 사회자는 나. 문화재에 대한 책을 직접 문화재를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매력에 이번모임의 사회자를 맡았다. 오늘은 책 내용에 관한 퀴즈를 진행하기로 했다. 만들어온 문제를 하나하나 내는데 상품이 걸려있어 그런지 엄청난 의욕을 보인다. 퀴즈가 끝나고 한 학기 동안 두빛나래와 함께한 소감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다.

 만대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참 많이 보였다. 저렇게 많은 별들이 있어준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서 곧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고 싶은데... 내일을 기약하며 아쉽게도 내려가야 했다.


-병산서원 속으로.

 아침에 우여곡절 끝에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었는데 강낭콩쌤 말만 듣고 만들었더니 카레가 너무 묽었다. 다행히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하룻밤을 보냈던 민박을 나와 하회마을을 떠나기 전에 병산서원에 들렀다. 어제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던 서원건물을 구경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의 꽃과 나무가 건물과 잘 어울려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어제 올라갔던 만대루에도 다시 가 보았다. 밤의 만대루는 풍류를 즐기는 선비가, 낮의 만대루는 열심히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자의 자취를 따라가다: 도산서원.

 서원지기님이 새로 생긴 콘텐츠 박물관을 추천해 주셨지만, 나는 원래 일정에 있던 도산서원이 더 가보고 싶었다. 희정이가 이유를 묻길래, ‘내 성을 생각해 보렴’ 이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아, 희정아. ‘니 성이 도산이가?’ 라니. 나는 안창호 선생님과 관계가 없단다. 결국 강낭콩쌤의 ‘너희 할아버지 보러가자.’ 라는 말로 도산서원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도산서원은 조선시대의 유학자였던 퇴계 이 황 선생님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을 퇴계 선생 사후 제자들이 넓혀 만든 것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서원에 들어가기 전에 ‘열정’ 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문화재 해설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마셔도 마르지 않는 물처럼 학문도 끝없이 솟아났으면 하는 바램에서 퇴계선생님이 이 우물을 매우 좋아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마실 수가 없어서 대신 옆에 있는 급수대에서 목을 축였다.

 퇴계선생님이 직접 지으셨다는 도산서당 건물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창문도 많고 탁 트여 있었다. 직접 앉아도 보았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옛 성현의 말씀을 공부한다라. 그것 참 운치 있군. 그래서 옛날 선비들은 평생 책을 벗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뒤에 지었다는 도산서원 건물도 보고 (현판은 글씨로 유명한 한석봉선생이 쓰셨다.) 제를 지낼 때만 연다는 사당의 문도 보았다. 문이 3개인데 가운데 문은 계단이 없다. 사당에 모셔진 조상님들이 드나드는 길이기 때문인데 임금님만이 사다리를 타고 그 문으로 지나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역락서재’ 라 부르는 기숙사를 보았는데 해설사님이 한번 앉아보라 하셨다. 거기 앉은 여러분들도 옛 유생들처럼 학문에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고, 옛 성현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길 바란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면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도산서원을 떠나 한 시간 가량 달려 영주에 도착했다. 부석사를 보기 위해서다. 대체 어떤 절일까. 어떤 아름다움을 품고 있을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었을 때도 느낌이 바로 오지 않았는데.... 직접 보면 알겠지! 처음엔 산길을 올라야 했다. 조금 올라가다보니 다시 또 계단이 있었다. 여기서 강낭콩쌤,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란다. 그런 말을 하니까 더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끝까지 올랐다. 자, 이젠 뒤를 돌아봐도 되겠지? 허억. 이럴수가. 저 멀리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어디까지 산이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쌤, 너무 좋아요!’

‘그치? 빨리 기둥에 기대서 봐라. 더 멋있다!’

아참. 경치에 취해서 그걸 잊을 뻔 했다. 흑백사진으로만 보던 무량수전. 나무의 짙은 갈색이 웅장한 건물에 약간의 엄숙함을 주고 있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잠시 머뭇거려졌지만 과감히 나를 기둥에 맡겼다. 안개. 산. 바라만보고 있어도 가슴이 확 트인다. 몸을 돌려 기둥을 바라보니 듬직하다. 배를 쓸어주듯이 기둥을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안양루에 앉아계시던 해설사님께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에 관한 전설을 듣고 조사당으로 올라갔다. 문이 닫혀 있고 선비화는 철창 안에 있어 제대로 감상하기는 힘들었다.

 볼게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리라 다짐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안동을 떠나면서

 다들 지쳐있었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눈치였다. 개인적으론 평소에 보기 힘든 문화재들을 보면서 옛 조상들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과, 동아리 애들과 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아쉽긴 했지만 집에 간다는 반가움 때문에 차안이 떠나가도록 신나게 놀면서 우리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빛나래의 열아홉 번째 모임은 전라남도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토지*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는 1박2일 모꼬지였다. 안타깝게도 친구들 모두 참석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은 1박2일이었다. 1월29일 8시에 중앙여고 앞에서 만나고, 바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 참판 댁으로 출발을 했다. 이 날 부산에 눈이 와서 우리가 가는 곳도 눈이 올까하고 기대했었지만 정말 화창한 날씨였다. 전라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섬진강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점심은 재첩 국이었는데 국에 있는 재첩이 먹어도 먹어도 줄어드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많았다. 정말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최 참판 댁으로 출발했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는 소설 속 동네와는 많이 다름에 의아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토지를 쓴 박경리 씨는 정작 평사리에 가보지 않았던 것이다.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토지의 문학사적 의의를 높이기 위해 이곳에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최 참판 댁에 도착하기 전에 ‘토지’촬영지로 쓰인 초가집들을 구경하며 올라갔는데 주위에 붙어있는 토지 촬영 사진이 사실감을 더해 주었다. 드디어 도착한 최 참판 댁은 정말 으리으리했다. 역시 부자임을 집 크기를 통해 드러내주고 있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 평사리의 들판, 무딤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들을 보고 있으니 저 넓은 들 가운데 자신의 땅을 가진 농부가 몇이나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다가왔다. 최 참판 댁에 살고 있는 훈장님도 계셨는데 은지, 나, 심투. 세 명이 모르고 방 안에 들어갔다가 운 좋게도 훈장님의 좋은 말씀도 듣고 나올 수 있었다. 으리으리한 최 참판 댁을 뒤로 하고 다음 코스인 선암사로 출발! 하기 전에 화개장터에 잠시 들렀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았지만, 예쁜 것도, 맛있는 것도 많이 파는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다시 머리를 돌려서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름다운 절 5위로 뽑은 선암사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연의 공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절까지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며 제일 먼저 본 것은 승선교.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기 위해 놓인 아치형 다리. 밑에서 올려다 본 승선교는 정말 견고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선암사는 많은 화재를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 水, 海 두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또 대웅전 기단을 보면 돌이 심하게 떨어져나간 흔적이 보이는데 돌이 강한 화기에 노출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대웅전의 내부를 보면 웅장함이 느껴진다. 부처님의 계시고 천장을 보면 부처님을 호위하는 생물인 용 네 마리가 버티고 있다. 내가 보기엔 용이 무서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졌다. 천장에는 정말 화려한 무늬들과 조각을 한 장식, 향 내음과 오래된 흔적들이 대웅전을 더욱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두 곳 중의 하나인 선암사 ㅅ간뒤. 아름답기도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고 오래된 화장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외관상 화장실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주위 절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ㅅ간뒤 안에 들어가면 남녀 화장실은 구분 되어있지만, 화장실 각 칸에는 문이 없어 무척 개방적이라는 사실. 화장실 외벽이 살창으로 되어있어 볼일을 보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다행히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인다. 볼일 본 것은 아직까지 거름으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에 볍씨를 뿌려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해준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 선조들의 물아일체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원통각에는 정조가 후사가 없어 치성을 드렸는데, 관세음보살의 법력으로 순조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순조가 직접 썼다는 현판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옛날에 썼다는 현판을 우리까지 보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선암사 주변을 거닐다보니 많은 매화나무를 볼 수 있었다. 예쁜 매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매화가 활짝 피었을 때 오면 더욱 경치도 좋고, 멋있다는데……. 매화가 필 때 다시 오고 싶다는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가 묵을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낙안읍성 안에 있는 민박이었다. 지붕이 짚으로 되어있어 초가집 느낌을 주는 민박. 친절한 할머니 덕분에 부엌도 쓸 수 있었다. 우리가 저녁을 차렸는데, 저녁밥 조가 해 준 김치찌개와 밥이 정말 맛있어서 아침밥 조인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저녁을 먹은 뒤 바로 골든 벨을 시작했다. 강낭콩 쌤이 나눠주신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 맞출 수 있는 문제! 하지만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산마루 쌤과 똑같은 걸 내야만 답할 기회가 주어졌다. 답을 알고 있어도 가위 바위 보를 못해서 상품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서로 답을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 덕분에 배꼽 빠질 만큼 웃을 수 있었다. 또 동아리 활동을 되돌아보며 친구들이 써온 두빛나래 활동 후 느낀 점들을 들었다. 왠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이제 이런 모임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 당시 모임 때 최선 다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맺어진 인연, 계속해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교류가 끊이지 않길 바란다.

웃음과 대화와 함께 밤은 깊어갔다.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아침조라 다른 얘들보다 일찍 일어나야하는 슬픈 상황……. 추위를 잊기 위해 뜀뛰기를 하면서 계란 국과 밥을 했다. 다행히 어제 저녁처럼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출발 시간은 아침 8시였으나, 이런저런 준비로 1시간 이상 늦게 출발 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눈이 날리고 있어 정말 추웠다. 벌교로 출발하기 전 공짜로 들어오게 된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낙안읍성은 오늘날에도 229명이 살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우리 옛 고을이다. 오늘날의 감옥과 같은 곳도 있었고, 직접 거기에 들어가서 감옥살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성곽을 따라 걷다가 어제 골든 벨 문제로 나왔던 치성과 옹성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옛날 성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나마 지위가 있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성 밖에 살던 사람들은 전쟁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살았을까, 보호라는 것은 받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아침 이른 시각이라 아직 문을 연 가게가 없어 조용했다. 옛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던 낙안읍성을 뒤로 한 채 태백산맥의 모티브가 된 벌교를 향해 출발했다. 벌교에 도착한 우리를 반겨준 것은 홍교. 홍교는 3칸의 무지개다리로 만들어졌다. 어제 보았던 승선교와 닮아서 친근하게 보였다. 홍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소화다리가 보인다. 소화다리의 원래 이름은 ‘부용교‘이다. 책에서 새끼무당의 이름이 ‘소화‘인데 혹시나 그 다리와 관련이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런 관련은 없고, 일왕 히로히또 때인 1931년에 만들어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데 여순사건 때와 반대로 반란군이 진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다. 마을로 걸어 들어가면 김범우네 집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께서 지주였던 만큼 집이 정말 컸다. 집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낡은 모습에 약간 실망도 했다. 하지만 소설 속에만 있을 것 같던 김범우네 집을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고,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김범우네 집에서 내려와 조정래 씨의 옛집도 보았다.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을 배경으로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지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현부자집은 최근에 번듯하게 복구를 했다고 한다. 대문 위를 보면 다락 식으로 된 공간이 있는데 유리로 되어있어 훤히 다 보인다. 그 곳에서 기생을 불러 놀며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유리 구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전부 일본에서 수입해 온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현부자가 얼마나 사치가 심했었나를 알 수 있었다. 현부자집을 둘러보다 소화가 몰래 찾아오는 정하섭을 반겨주던 쪽문이 보였고, 그런 정하섭을 위해 목욕물을 받아주었던 목욕탕도 실제로 있었다. 여기서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니…….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때의 왠지 모를 감격이 떠오른다. 정말 태백산맥 읽기를 잘했다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현부자집 옆에 조정래 문학관이 있었는데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고 했다. 4~5월경에 오면 작가 조정래 씨와 등산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했다. 아~! 정말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여기를 관리하시는 아저씨께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당시의 지주가 얼마나 부자였냐면 전용 헬기가 있어 그 헬기를 타고 다니며 자신의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얼마나 황당했는지……. 뼈 빠지게 일하고도 지주에게 반 이상이나 농작물을 바치고,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농부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불만들이 모이고 모여 농부들의 반란이 일어난 게 아닐까……. 그 때 그 반란이 성공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벚꽃이 만발할 때 다시 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벌교에 오면 꼭 먹어봐야할 꼬막! 꼬막이 제철이고, 여기서 직접 생산하는 것이니까 싸지 않을까 했었는데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나……. 꼬막정식은 정말 비쌌다. 하지만 그 만큼 맛있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침이 흐를 정도로 또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아주머니의 푸짐한 인심 덕분에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우리의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순천만 갈대밭으로 GO! 순천만 갈대밭은 총 면적이 약 30만평이라고 한다. 많은 철새들이 여기서 쉬고 있으며 많이 사람들이 자연을 느끼고 가는 아름다운 이 곳. 정말 멋있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자전거나 배를 꼭 타고 싶다. 맑은 날씨에 갈대밭을 거니는 것도 분위기가 있지만 안개가 자욱할 때 오면 더욱 분위기 있는 곳이 될 것 같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멋지게 나올 것 같은 순천만 갈대밭. 높은 곳에서 보면 넓은 갈대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이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과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 한 물아일체의 경지를 여기서 느껴본다.

 아쉽게도 우리의 여행은 여기서 막을 내렸지만 이틀 동안 쌓은 추억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운전하시느라 이틀 내내 피곤해 보이셨던 산마루 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차 안에서 분위기를 띄우느라 고생(?)한 우리 은지와 희정이~! 너희는 정말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였어^^  내년에는 우리가 계획한 모임에 강낭콩, 산마루 선생님을 초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두빛나래★ 2008-02-0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색하거나 부족한 곳이 발견되면 콕~!집어서 말해주세요^^;

해콩 2008-02-0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았다. 류~
어색거나 부족한 곳을 제일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글을 쓴 자신이란다. 두어 번 읽어보면 느껴질거야. 문단 나누기에 신경을 좀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드는구나. 글의 내용이 바뀌면 두 칸 들여쓰거나 한 줄 내려쓰면 읽는 사람이 '아~ 문단이 바꼈군..' 생각할 수 있겠지? - 강낭콩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으로 이 모임의 사회를 보는 것이었다. 처음이기도 했지만, 더욱 머리 속에서 기억이 많이 나는 이유는 미션을 우리 동아리 아이들끼리 정했기 때문이다. 처음 미션은 '나에게 여우와 장미 같은 존재는 무엇인가?'이였고, 두 번째 미션이었던 '어린 왕자를 읽고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연극하기'였다. 이 두 가지의 미션을 정하는 데 쪼금 힘이 들었던 것 같다. (나혼자만 힘들었었나?! ;;)
내가 맡은 모임이 있는 날.. 처음 보는 사회라 굉장히 떨렸었다. 1교시 생활 나눔 후 2교시
에 모임이 시작되었고, 각자 해온 미션을 발표했다. 처음 미션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장미와
여우 같은 존재는 무엇인지 발표하는데 나도 그랬었고, 애들의 대부분 장미와 여우같은 존
재는 부모님과 친구였다. 아무리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부모님이나
친구는 서로가 길들여져 있고 비록 남에게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이더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남들과 다른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첫 번째 미션 후 오늘 모임의 하이라이트!! 인상 깊었던 장면 연극하기인 두 번째 미션을
했다. 같은 반인 아이들끼리 조를 만들었다. 선아랑 나는 어린 왕자와 여우가 만나는 장면을
연극하였고, 은진이랑 선영이는 어린 왕자와 장미, 은지와 희정이는 어린 왕자에게 '나'가 양
을 그려주는 장면을 이슬이와 명애는 어린 왕자가 왕을 찾아가는 장면을 연극했다. 다들 연
극하는데 열심히 했고, 선아와 내가 연극이 아닌 어린 왕자와 여우를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
서 구연동화를 했는데, 이건 연극이 아니라고 애들이 장난어린 말을 던지긴 했지만 연극을
하는 거나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이 연극을 통해서 친구들이 어린 왕자를 읽고 가장
인상 깊게 여겼던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연극이라고 해서 애들이 굉장히 싫어 할 줄
알았는데 다들 불평 없이 열심히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두 가지 미션을 발표한 후
모임을 마쳤다.
내가 사회를 맡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은 모임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말해야
지 하고 머리 속에서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는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계속 입 속
에서만 맴돌았다. 비록 어설프기는 했지만 사회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모임을
하면서 어설펐고 진행을 잘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정한 미션이었고, 연극이라는 이
강한 미션 때문에 머리 속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과학 콘서트-정재승>

20416 박향옥




과학이라면 그냥 너무 싫다.

하지만 이 서적의 매력은 대단했다.

주위에 많이 알려진 사실들을 토대로 과학적 지식들과 결부시켜 과학에 문외한인 나의 눈높이에 맞춘 고마운 책인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가 ‘잭슨 폴락’의 캔버스 작품 속에서도 카오스 이론이 있다니...

여러 예술작품도 과학의 패턴이라 일컫는 그에겐 아마 모든 것들이 과학이 아닐까.

과학이라면 나와 동떨어진 것 같고 머리 아픈 분야인 것만 같아서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어? 이것도 과학이었구나.’ 하는 의문이라도 가지게 되니 나중에는 흥미가 생겨 생활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중 하나를 꼽으면 다음과 같다.

<“소설 해리포터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투명망토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열렸다.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진이 극초단파(마이크로파)가 물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비밀은 구리와 유리섬유로 만든 메타 물질에 있다.

가시광선을 반사하지 않고 통과하게 하는 물질을 개발하면 투명망토의 꿈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투명인간이 정녕 가능하다는 뜻일까?

다른 모든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빛이 있기 때문이다. 볼 수 있기 위해선 물체와 빛이 반응해야 한다. 간단히 반사하는 빛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태일 평전>

20416 박향옥




이 시대 나의 모습만 보아도 지나치게 부유한 것을 지향하여 너무 중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밍크코트만 보면 호들갑을 떨었고 명품만 보면 큰소리치곤 했으니까..

그리고 항상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꼭 부자가 되리라고... 지금도 그렇다.

화려한 옷만 입는 부자엄마가 되어야 겠다고...

커다란 포부라는 면에서 공부할때도 많은 힘을 주고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들의 모습도 거의 비슷한 거 같다.

오죽하면 된장녀란 말이 나올까. 물론 누구나 못살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잘살기를 원하는데, 모두가 잘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모두가 잘 살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슬픈 일이다.

하지만 전태일은 못살 수밖에 없던 시절의 약한 인물이었고 잘살기 위한 노력과는 반대 방향의 삶을 지향했다.

함께 못사는 사람들과 가난한 상황에서 참된 대우를 받으며 정당한 대가를 얻는 소박한 삶만을 희망했다.

따라서 내가 지향하는 삶은 전태일이 말하는 참된 삶이 아닌 것이다.

전태일이 바라는 삶은 나의 삶속에서 나의 모습을 바르게 바라보고 너무 화려한 것만, 너무 부유한 사람들만을 닮으려 노력하지 않으며 약한 사람들을 오래 돌아보는 공동체적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태일의 삶을 닮아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