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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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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화의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적어보기.

동화의 작가는 이 세상에는 보잘것없는 것이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과 더불어 동·식물, 물건의 모든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특히 사람들은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인식할 수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강아지똥'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우려고 한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세상이 꽃을 피울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민들레 싹과 강아지똥이 서로에게 있어 아름다운 하나의 민들레꽃으로 자란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은 모두 함께하며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라는 걸 전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닌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보잘 없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세상에는 하찮고 쓸모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 필요하니깐 존재하고, 또 존재하기에 모두 가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2.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유는?

강아지똥이 기뻐하며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을 때 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슬픔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고 있던 강아지똥이 민들레 싹의 한마디에 기뻐하며 안길 때, 그 기쁨이 나에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3. 동화 속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왜?

골목길 담에 피어난 한 송이의 아름다운 민들레꽃이 그려진 부분이다.       
강아지똥과 민들레 싹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이루어진 민들레꽃이 그 허전한 골목길에 활짝 피어
그곳을 환하고 향기롭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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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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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인가? 서동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에 자주 들락날락 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이 강아지똥의 표지를 보았는데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이 강아지의 똥싸는 폼이 참 보기

민망하다였고 다음엔 강아지가 싼 똥은 더러워였고 다음은 강아지똥이 어떤 내용일까?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 동화는 어린아이들만 보는 거야 라는 고정관념이 있어 결국 강아지똥을 보지 못

했고 그러한 고정관념으로 중학생이 무슨 동화야 소설책을 읽어야지 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이

제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동화는 반드시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래 전부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고 생각했지만 어린이가 보는 것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모든 세상의 살아가는

방법을 다 아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린왕자도 동화지만 물질만능주의적인 어른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 것처럼 동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책이 동화임을 깨달았다.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흙덩이와 만나 다시 흙덩이가 주인에 의해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흙덩이의 반성과, 근심스런 말과 행동을 통해 나도 살아가면서 지켜주지 못하고 피

해를 준 일은 없는가?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과 내가 반성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던 부분이라서 가장 인상이 깊었다.

작가는 강아지똥이 민들레 싹을 만나 민들레 싹의 거름이 되어 민들레에게 꽃을 피울 수 있게 도

와주는 부분을 통해 이 세상에는 어느 하찮은 것이 하나도 없다. 뭐든 자신이 맡아 하는 일이 있

고 자신이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은 어떤 한 

가지라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강아지똥을 읽고 세상에는 어느것도 하찮은

것은 없으며 자신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자부심,긍정심을 가지

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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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클래식 보물창고 43
생 텍쥐페리 지음, 이효숙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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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라는 책을 말할 때 “매번 읽을 때 마다 느낌이 다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처음 읽었을 때와 느낌이 달랐던 때를 기억한다.

어린왕자를 제일 처음에 중학교 2학년 때 접했는데 그 때는 비행사가 어린왕자를 만나고,

어린왕자가 양을 그려 달라하고, 어린왕자가 7개의 별을 돌아다니며 겪게 된 일들, 그리고

어린왕자의 죽음 이렇게 작가의 의도는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동화로써만 인식했던 것 같

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읽었을 때엔 어린왕자 속의 어른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

수함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는 것 그리고 현실도 그렇다는 것 이것을 깨우치게 해준 역할이

어린왕자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엄마에게 “창턱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

둘기가 앉아있는 분홍색의 벽돌집을 보았어요.” 라고 말을 하면 대부분 쉽게 이해하지 못하

고 “십만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라고 말하면 그 집의 가치를 이해하는 엄마를 통해 계산

적이고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을 모습과 아이가 어른들에게 새 친구

 

 관하여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목소리는 어떻니,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

 

 하는 등의 말은 묻지 않고 "나이는 몇이니? 형제는 몇이니? 몸무게는 얼마니? 그 애 아

 

는 얼마나 버니?"하고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주변의

 

를 알아내려고 하는 재물주의의 어른들의 모습은 어른들에게 아이 같은 순수함은 없어

 

리고 물질만능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

지만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지금의 현실을 생각했을땐 마음이 착찹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어린왕자와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어린왕자가 오천 송이의 장보다  자신이 정성

스레 키운 한 송이의 장미가 더 소중하다고 느낀 부분을 통해 어른들이 을 읽고 물질

만능주의는 잊고 자신에게 어린왕자의 장미 한 송이 같은 소중한 것이 지를 생각하

며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 보라고, 되찾아 보라

고 하는 게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TV를 볼 때 가끔씩 계산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인 사람들을 보면 우리 어른들이, 우리 사

가 이렇게 계산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였었나 하고 생각을 하지만 모두가 어린왕자를 읽

고 어린 왕자라는 책을 통해 내가 느꼈던 것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해주고 서로 양보하

며 서로를 먼저 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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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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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인 전태일.

사실 전태일도 시다들 보다 위인 재단사이지만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전태일도 재단사가 되기 전 역시 시다를 했었는데 자신도 밤잠 못자고 많은 양의 옷을 만들

어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재단사가 되어서도 시다들은 여전히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삶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리고 보았던 불합

리한 조건에 저항하며  끝내 분신자살을 택했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에 대해서 사람들의 견해는 두 가지로 나눠진다.

단지 근로기준법과 근로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남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느냐 하

는 의견과 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전태일은 정말 정의를 위해 싸웠던 대단한 사람

이라는 의견이 있다.

나는 전태일이 남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던졌

다고도 생각한다.  자신이 시다시절 겪었던 그런 불합리한 대가와 자신이 재단사가 되고 난

후에 시다들을 보며 괴로워하던 자신을 위해 시다들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고 말이다. 하지

만 중요한 건 자신만을 위해서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을 보고 이에 괴로워하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까지 받쳤던 전태일의 희생정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

로 나는 후자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본래 당연히 주어져야 하고 받아야 하는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던 그 시절의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서 사람들이 원하던 근로환경과 근로기준에 한 걸음 다가가게 만들었던 전태

일. 나는 그가 정말로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내가 살아가는 날 동안에 민중을 위해 싸웠던 사람이 누구냐고 누군가가 물어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전태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전태일이 일궈냈던 노동근로조건과 환경의 변화를 시작으로 근로조건이 좋아졌다고 생각

한다. 비록 아직까지는 모두가 다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그런 근로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가 일궈낸 것이 노동의 역사에서 크나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신자살을 통해 몰랐던, 외면했던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

을 끌어당긴 그의 노력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그때 보다는 좋은 근로조건에서 노동을 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날 전태일, 그의 행동의 기억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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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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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인간의 생명을 위해 부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약자, 가난한 자의 세상도 반드시 존재하고 그들도 하나의 고귀하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라고 전태일은 말했다.
1970년 그 당시 젊은 노동자들이 병이 들고 힘든 나날을 보내며 죽은 듯 살아갈 때 아무도 그들의 비명을 들어주지도 관심 두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 당시도 어떤 연예인들의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가 마치 나라의 중요한 일처럼 알려지고 관심 둘 뿐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세상의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의 일에 무관심한 채 연예인들의 사소한 일들을 넋 놓고 보는 한심한 행동을 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이런 나의 가슴과 그때의 노동자와 시민들, 한국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던 전태일이 있었기에 변화된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왔고 안 해 본 일 없는 그였다. 나는 전태일의 삶 중에서 특히 이 평화시장에서의 전태일과 어린 여공들의 삶이 나의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어린 여공들이 허리도 제대로 펴고 다닐 수 없는 공장의 조건, 14시간을 노동하고 일요일도 쉬지 못하는 지옥 아닌 지옥 속에서 일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나와 또래, 또는 그보다 더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배움의 시기에 빛 한 줄기 없는 참혹한 공간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지금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어린 여공의 모습을 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냉정한 사회인지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기업주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고 정부는 오직 경제성장에 눈이 멀어 자신들 앞에서 죽어가는 밝고 순수한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다만, 이런 어린 여공들을 눈여겨 본 건 단 한 사람, 바로 전태일 뿐이다.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그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줬으며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인간다운 권리를 찾아 줄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하고 투쟁했다. 전태일은 얼마든지 이러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전태일은 그렇지 않았다. 잘못된 문제를 그는 정확하게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만 오직 신경 쓰다 보니 다른 사람이 처한 부정당한 일에는 관심 가지질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같이 해결하려하거나 힘이 되어주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남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귀찮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늘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만 더 수월한 길을 가고자 안간힘을 쓸 뿐이다. 그런 이기주의적 삶 속에서 전태일의 모습은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한다. 이처럼 전태일은 짧은 생애의 전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보다는 인간다운 권리를 상실한 채 부정당한 권리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편에 서서 투쟁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 커다란 덧에 갇혀 노동자들은 정부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며 살아갔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탐욕적 인간 때문에 노동자들은 얼마나 굶어갔는가. 권력층끼리 배가 터지도록 먹어대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굶어 죽어가기 바빴다. 우리는 왜 늘 그들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최소한 인간다운 권리조차 받지 못하며 자신하나 편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늘 국가를 위해 살아가야했고 그것을 국가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그들의 뜻을 밀고 나갔다. 그 길에 서서 제일 먼저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 전태일인 것이다. 나는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조금은 노동자다운 권리를 가지고 살아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먼저 사회의 잘못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그 문제는 절대 해결 될 수 없다. 그리고 불평등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먼저 나서 말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그 불평등함 속에서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며 바보 같이 살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바보같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 것은 그 당시 전태일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동자들에 대한 평등한 대우, 인간다운 권리를 위해 끝까지 달려 나갔던 전태일은 끝내 죽음까지 달려가고 말았다. 아직도 나에겐 자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 달라는 그의 한 마디가 기억 속에 오래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전태일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그의 죽음을 계속해서 헛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그 당시와 비슷한 자리를 맴돌고 있으며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아직도 미완성이다. 언제쯤 완성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모른다고 넘어가선 안 될 문제다. 특히 나를 비롯해 앞으로 노동자가 될 많은 젊은이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기억되어야 할 것은 바로 전태일의 삶, 그리고 죽음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 되었을 때 정당한 권리를 받으며 살아가려면 전태일이 사회에 남긴 의미와 그의 삶을 이해해야 하며 또 불합리한 사회에 맞서 진정한 노동의 의미와 모습을 찾게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으로 참된 노동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야 비로서 그가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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