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두빛나래활돌을 하면서 참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조금 더 성숙해 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두빛나래활동 초기에는 부담감도 컸고, 내가 얼마만큼 이 활동에
적응하고 선생님과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또, 이 활동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나는 내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고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기억에서 사라졌고 어느새 내 마음속에 그러한 고민의 답이 스며들어 왔다.
 우리 동아리 친구들은 모두 착하고 밝은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동아리 활동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1년 동안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분도 아닌 두 분의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함께 했다는 게 더욱 좋았다. 이렇게 동아리 식구들이 좋았기 때문에 1년이란 시간이 더 아쉽게 다가오고 헤어짐이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절대 고등학교 땐 좋은 친구도, 선생님도, 그리고 추억거리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두빛나래가 그 생각을 깨뜨려버렸다.
 두빛나래가 나를 바뀌게 한 것은 많다. 그 중 하나가 자신감이 없는 나,
많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 말도 못하던 소극적인 나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특히, 사회를 맡았던 때는 정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러한 느낌을 받았었다.
좋은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떨리고 부끄러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 더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지나고 보니 그 새로운 경험이
나를 발전시킨 것 같다. 사회를 맡은 것 말고도 많은 책을 읽을 읽고 그 책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서 폭넓은 생각을 가질 수 있어으며 독후감 쓰기를 통해서도 내가 한 걸음 나가갈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두빛나래 첫 모임에서 받았던 1년간의 일정표를 보았는데 우리가 읽은
책이 20권 가까이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만약 두빛나래를 들지 않았다면
1년 동안 이만큼의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글을 이렇게 썼을까, 내 꿈을 잊지는 않았을까 하고.
나에게 좋은 책을 읽게 해 준, 내가 글 쓰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게 해 준 두빛나래에게
늘 고맙다. 내 꿈 때문에 두빛나래에 들었고 두빛나래 때문에 내 꿈을 잊지 않았다.
 너무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많아서인지 나빴던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없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임 날인 금요일에는 정말 학교에 가면 1교시부터 들뜨고 기대 대고 즐거웠다.
이런 나에게 두빛나래의 나쁜 점이란 찾아볼 수 없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늘 모임에 동아리 식구 모두가 모이지 못했던 것이다.
한 달에 딱 두 번인 모임인 만큼 얼굴 보기도 사실상 어려운데 늘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리고 두빛나래에서 참 좋은 곳도 많이 갔는데 그때마다 함께 할 수 없었던 것도 아쉽다.
그래도 항상 자리를 지켜준 고정 친구들과 선생님이 계셔 모임도, 여행도 모두 재미있었고
나에게 든든한 힘이 되었다.
 끝으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우리 두빛나래활동이 2기, 3기, 4기,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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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평소엔 잘 몰랐는데 여행기를 쓰려고 하니깐 굉장히 어색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집에만 있거나 나가봤자 가까운 시내만 누비던 나에게 여행은 생각하기 힘든 단어였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떠오른 것이 바로 거제도를 갔던 때이다. 2년 전 일이지만 그래서 나의 머리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추억이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거제도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빠에게 갔다. 아빠가 그곳에서 일하고 계셔서 나는 거제도를 갈 기회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할머니와 오빠와 내가 가는 날이었는데 거제도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심한 고비를 겪었다. 기쁨과 설렘으로 배를 타고 가는데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어지러움과 멀미증상이 와서 힘들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려고 눈을 감았지만 배는 통통배처럼 심하게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깨서보니 도착하기 10분전이었다. 처음의 설레는 마음은 어디로 가고 온 몸의 힘이 몽땅 빠져서 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도착해서 내렸을 때 언제나 멀리 있어도 한 눈에 찾을 수 있는 아빠가 서 계셨다. 단번에 아빠를 알아보고 '아빠다'하고 외쳤다. 그렇게 아빠를 만나서 아빠 숙소로 갔다. 숙소에 짐을 다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고기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먼 거제도까지 힘들게 와서 먹는 고기라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잘 먹고 아빠 혼자 있는 숙소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숙소에 모기가 너무 많아서 모기향을 5개를 온 사방에 피웠다. (누가 보면 불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수박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늦은 밤 아빠와 나는 마트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고 나왔다. 섬이라 그런지 마트가 꽤 멀리 있었다. 그래도 마트가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었다. 마트를 가는 동안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애기하고  아빠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웃으며 들어 주었다. 무뚝뚝함과 욱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빠를 닮은 나는 애교라곤 하나도 없는 성격이다. 하지만, 아빠 앞에서는 난 어쩔수 없이 온갖 애교를 다 부리며 달라 붙는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드넓은 바다로 둘러싸인 길을 걸어갔다. 밤인데다가 바람도 세고 깊이는 어마어마해서 아름다운 것보다 무서웠다. 내가 예상한 아름다운 바다풍경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찾아 올 멋진 바다 풍결을 모른체 오늘은 조금의 실망감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모기향 5개의 위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백여마리의 모기에게 침트를 당한 것처럼 많은 흔적과 동시에 간지러움이 나를 괴롭혔다. 거기에 나를 더욱 괴롭힌 것은 물이다. 피부가 민감한 나에게 부산물(?)과 거제도 물(?)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도 못했는데 나의 피부는 하루아침에 엉망이 되어있었다. 짜증의 연속으로 아침을 보낸 나는 그 상태로 바닷가를 갔다. 그리 탐탁치 않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거대하게 펼쳐진 바다에 사람들이 수영을 하며 놀고 있었다. 몸이 간질간질 했다. 모기 때문이 아니라 나도 빨리 저 바다에 '풍덩'하고 빠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달려서 바다에 빠졌다. 물은 아주 깨끗했다. 집 근처 가까운 해운대화 광안리와는 또다른 느낌이 나를 사로 잡았다. 물이 얕아서 안정하게 놀 수 있었다. 가족들은 베치와 오둑막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곳에 앉아 있었고 나는 오빠와 둘이서만 물 안에서 전쟁을 벌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숙소에 가서 밥을 먹고 다른 바다로 갔다.
사면이 바다라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바다였다. 두 번째로 온 곳은 통영에 있는 바다였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배 30척 정도가  일렬로 바다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냥 쳐다보거나 딴 짓을 하는데 나 혼자서 흥분해서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너무 신기하고 놀랐다. 내가 더욱 놀란 건 거북선이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모양은 정말 화려하고 잘 만들어졌다. 나는 아빠에게 아까 왜 그렇게 많은 배가 일렬로 지나갔으며 거북선은 왜 만들어 놓았는지 물어봤다. 아빠는 통영이 임진왜란 때 저항이 가장 센 곳이었고 민란이 처음 일어났던 곳이라 오늘 기념으로 배들이 행진했다고 하셨다. 그제야 이해한 나는 다시 걸음을 바삐 움직여  배들이 세워진 둑 사이로 걸어갔다. 그 이유는 그 사이에  고동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빠는 고동 매니아. 한 봉지 가득 찰 정도로 떼서 집으로 들고 와 가족들과 함께 먹었다. 초장에 찍어 먹는 그 순간 나는 행복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부산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아쉬움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서 나는 아빠와 또 헤어짐을 한다. 나는 방학이 아니면 내려오기 힘들고 또 아빠는 돈을 벌러야 해서 부산에 잘 올라 오시지 않는다. 그래서 만날 기회는 많이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나는 나대로 학교에 얽매이고 아빠는 아빠대로 일에 얽매여 살아간다. 한 가족인데도 서로 돌아 볼 시간이 없어 안타갑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가 힘든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고 2다. 이 일이 있은 후 2년이 지났고 2년동안 딱 두 번 내려갔다.
중학교 땐 많이 내려 갔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바빠진 내 생활 때문에 내려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항상 늦게 마치고 시험시간에 맞쳐 아빠도 시간이 나거나 또 방학 땐 보충하고 시간이 나도 쉰다고 잘 가지 않았다. 이젠 그저 추억으로만 남은 여행이 다시 한 번 더 찾아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 3을 앞둔 나는 오늘도 내 일에 급급해 맞쳐진 시계처럼 돌아간다. 그래서 아직도 여행은 낮선 단어로 내 곁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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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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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화의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적어보기.

동화의 작가는 이 세상에는 보잘것없는 것이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과 더불어 동·식물, 물건의 모든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특히 사람들은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인식할 수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강아지똥'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우려고 한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세상이 꽃을 피울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민들레 싹과 강아지똥이 서로에게 있어 아름다운 하나의 민들레꽃으로 자란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은 모두 함께하며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라는 걸 전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닌 존재하는 어떤 것이든 보잘 없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세상에는 하찮고 쓸모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 필요하니깐 존재하고, 또 존재하기에 모두 가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2.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유는?

강아지똥이 기뻐하며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을 때 그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슬픔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고 있던 강아지똥이 민들레 싹의 한마디에 기뻐하며 안길 때, 그 기쁨이 나에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3. 동화 속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왜?

골목길 담에 피어난 한 송이의 아름다운 민들레꽃이 그려진 부분이다.       
강아지똥과 민들레 싹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이루어진 민들레꽃이 그 허전한 골목길에 활짝 피어
그곳을 환하고 향기롭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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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육군대위 드레퓌스)
1894년 9월 어느 날, 독일대사관 무관 앞으로 가는 봉투 안에는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의 내용을 자세히 적은 '명세서'가 들어 있었고 보낸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 군대의 참모본부는 범인을 찾기 시작했고 그 범인은 알프레드 드레퓌스로 지목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기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군사법원에서는 그를 유죄로 선고했다. 드레퓌스로 말하자면 그는 아주 평범한 육군 장교였고 남다른 점이 있다면 유대인이면서 프랑스를 조국으로 섬겼다는 사실이다.
 그는 독일 국경 가까운 지방에 살았는데 독일이 1870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그 지방을
빼앗아 버렸다. 그래서 드레퓌스는 군인으로서 조국 프랑스에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차별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조국에 대한 사랑과 군대에 충성심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군인으로서의 착실하게 생활해
나갔다. 그러나 지금 그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뿌리 깊은 악습이 남은 프랑스에서 참모본부 상관들 같은 사람들도 인해 재판정에 서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참모본부 상관들은 만약
드레퓌스가 죄가 없다면 그들의 위신이 떨어질 것 같아 여러 가지 거짓 문서를 꾸며 증거로 제출했다. 결국, 드레퓌스는 군대에서 쫓겨났으며 모욕까지 당하고는 외딴 섬으로 끌려간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는 아내의 편지 때문에 힘든 생활을 참을 수 있었다.
(진짜 스파이 에스테라지 소령)
 참모본부 정보국에서 일하는 조르쥬 피가르 중령은 에스테라지라는 소령이 진범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사실을 참모본부 장군들에게 알렸지만 모두 욕만 했다. 또한 마티외는 에스테라지를
고발까지 했다. 그리고 '피가로'라는 신문은 맨 처음으로 에스테라지가 진짜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의 힘은 너무나 약해서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는 '나느 고발한다'란 글을 통해 드레퓌스의 무죄를 호소했다.
즉, 졸라는 에스테라지가 진범인 이유를 하나하나 밝힌 다음, 드레퓌스를 죄인으로 만들어
참모본부의 잘못을 감추려 한 장군들과 엉터리 증언을 한 글씨 감정전문가와 드레퓌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관을 무섭게 꾸짖었다. 그러자 군사법원은 에밀 졸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하는 수 없이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영국으로 망명한다.
(진실이 거짓을 누르다)
 에밀 졸라가 다시 펜을 들었으며 '진실'이라는 책을 냈으며 드레퓌스는 자기가 겪은
일을 쓴 '악마의 일기'를 펴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때문에 끝끝내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받고 비로소 드레퓌스 사건은 막을 내렸다.
(20세기를 연 드레퓌스 사건)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꽃피우고자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드레퓌스 개인의 생명이나 자기네의 이익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를 위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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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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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동화의 작가는 우리에게 작은것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었던것 같다.
솔직히 거리에서 강아지똥을 보면 피하고 더럽다고 싫어했다.
혹시 밟을까 싶어 피해다니고 짜증을 냈었다.
하지만 이책은 나에게 강아지똥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작가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작은것의 소중함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작은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에게는
가치있고 소중한 물건이 될수있다 라는걸 전하고 싶었던것이 아닐까 싶다..

 -내용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과 그이유

 강아지똥이 비를 맞고 자잘하게 부서져 땅속으로 스며드는 모습
 이유: 민들레 꽃을 만나 자신의 할일을 알게되고, 자신을 희생하여 거름이되는 부분이므로

 -동화속 그림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과 그이유

 농부가 흙덩이를 두손으로 소중하게 줍는 모습의 그림
 이유: 농부가 흙덩이를 아끼고 소중하게 다루는 모습이 참 잘 표현 된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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