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빛나래, 안동에 가다!
지난여름, 우리 두빛나래는 안동으로 1박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모임의 주제였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에 나오는 부석사는 물론, 고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와 선비의 마을로 유명한 하회마을, 그리고 옛 유생들이 공부하던 서원들을 둘러보고 왔다.
-모두 모였다면 안동으로 출발!
8월 12일 아침, 아직 붙어있는 잠을 설렘으로 깨워가면서 약속장소인 중앙여고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 더 걷는다고 5분정도 늦긴 했지만 평소 교육청강연을 들으러 갈 때도 나를 포함해 그리 일찍 나타나지 않는 녀석들이기 때문에 내심 내가 제일 일찍 왔을 것이란 기대까지 하면서 말이다.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두리번두리번 선생님이 타셨을 만한 봉고차들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한 차의 문이 확 열리면서 낯익은 심투의 얼굴이 보였다. 너희들...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좀 실망이군. 그래도 빙 돌아 걸어와서 다리가 좀 아프려고 했기 때문에 재빠르게 안락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석에는 두빛나래의 일원이자 이번여행에서 우리의 보호자, 안내인, 운전기사, 사진사 등을 맡으실 산마루님이 앉아계셨고, 그 옆에는 역시나 보호자, 안내인이 되실 강낭콩님이 직접 전날 만들어 오신 참고자료를 건네주시며 앉아계셨다. 그 뒤로는 은지, 향옥이, 희정이 셋이 나란히 다리를 쭉 펴고 아주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그 뒤에는 체육복차림의 심투가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피곤한 표정으로... 별 생각 없이 ‘너 어제 뭐했냐?’ 했는데, 진짜 놀러갔다 왔단다. 새벽에 잤다면서... 좀 걱정이 돼서 ‘얼른 자라’며 모자를 푹 눌러 씌워주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여인은 은진이. 역시 차를 못 찾고 헤매고 있길래 살짝 놀려줄 생각으로 ‘숨어, 숨어’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동작이 좀 늦었는지 우리를 다 봤다는 표정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내 뒤쪽 창가에 자리를 잡은 은진이. 우리가 안동의 밤을 함께 보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챙겨왔단다. 사회자인 나도 무게의 압박에 차마 들고 오지 못하였는데... (그래, 실은 난 너희들 중 누군가가 들고 올 거라 믿었단다!) 늘 함께 다니는 것이 특징인 선아, 선주가 역시 함께 등장했다. 그럼 거의 다 온 건가? 약속시간이 꽤 지났는데... 쑤구랑 강지는 못 온다고 했으니 당연히 없고, 명애랑 이슬이가 남았군. 근데 왜 안 나타나는 거냐! 어랏? 차가 출발하잖아? 그냥 쌤이 두고 가려나?
‘쌤, 애들 다 안 왔는데요!’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데’
좀 가다보니 이슬이가 보였고, 내 옆에 앉으면서 명애가 못 온다는 사실을 알렸다.
어쨌든 이젠 정말 다 모인거군. 꽤 신나는 걸.
-강아지똥, 몽실언니, 그리고 조탑리.
쭉 뻗은 고속도로를 지나 어느새 차는 안동을 달리고 있었다. 차가 멈춘 곳은 조용한 시골마을. 풀이 무성한 길가에 한자로 ‘조탑리’라고 적힌 작은 돌이 세워져 있었다. 몇 발자국 못가서 작은 교회당이 있었는데 권정생 선생님이 그 교회의 종지기를 하셨다고 한다. 권정생선생님의 집을 찾으려고 교회 주변을 맴돌며 헤매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신 아저씨 덕분에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자전거로 길을 알려주시며, 우리에게 ‘어째 왔니더?’ (안동사투리가 왠지 친근하다.) 라고 친절하게 말을 거셨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차를 타고 왔다고 해야 하나, 권정생 선생님 집을 보러왔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말았다.
아까 아저씨가 알려 주신대로 시골길을 조금 걷다보니 집이 하나 나왔다. 그냥 작고 낡은 시골집. 마당은 풀이 좀 자라 있었지만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퐁퐁, 대야 같은 것도 그대로 있어서 아직 사람이 사는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돌아가기 전에 강낭콩님의 제안으로 잠깐 묵념을 했다. 차로 돌아오는 길, 왠지 숙연해지는 것 같다.
-옛 조선양반들의 삶을 훔쳐보다: 하회마을.
점심으로 안동 헛제사밥을 먹고, 하회마을로 향했다. 하회(河回)라는 이름은 물이 마을을 빙 돌아나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 유명한 마을이지만 아직 한 번도 실제로 와 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곳일까라는 궁금증은 더 커지고 있었다.
마을 깊숙이 들어가니 사방이 한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담 옆을 조선여인이 된 설렘으로 걸어가다 한 집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 세력 있던 양반이 살던 곳이라 그런지 건물도 사랑채, 안채, 행랑채, 마구간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 문득 대청마루에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앉아 보았다. 마루 색이 무척 따뜻했다. 계속 앉아있고 싶었지만 다른 곳도 보아야하기 때문에 마루에서 일어나 대문을 나섰다. 또 다른 집에서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루에 걸터앉아 나물을 다듬고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여유로워 보여 좋았다. 많은 집들이 있었는데 어떤 집들은 출입을 막아놓아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멋진 집처럼 보이는데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탈춤 공연할 때가 되었다고 해서 서둘러 60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를 보러갔다. 새끼줄에 빼곡하게 묶여있는 종이들이 다 소원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나도 하나 적어서 정성들여 묶어 놓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조금 늦었는지 이미 공연은 시작되어있었고 사람들도 꽉 차있었다. 한창 각시가 양반과 포졸을 홀리고 있었는데 각시몸짓에 넋을 빼고 있는 모습이 무척 웃겼다. 하지만 웃음을 가장 많이 자아냈던 이는 이매였다. 포졸이 ‘이매야~!’ 하고 부르면 이매는 ‘와아? 이누마야-’ 하면서 느릿느릿 나오는데 넘어질듯, 안 넘어질 듯 어찌나 웃음이 나오는지... 외국인을 무대로 불러서 같이 춤을 추지 않나 어떤 아주머니보고 ‘니 귀먹었나?’ 고 하지를 않나, 나만 그런가 했는데 다들 웃겨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1년 웃을 웃음을 다 웃고 나서야 공연이 끝나고, 부용대에 오르기 위해 나룻배를 타러갔다. 노를 저어 나아가는 나룻배였는데 출렁 출렁 물살을 가르는 느낌이 좋았다. 사공아저씨는 집에 못 가게 두고 가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반대편을 향해 떠나고, 우리는 부용대에 올랐다. 이거 완전 산이다. 산. 비까지 찔끔찔끔 내려서 엄청 힘들었다. 정상에 오르니 하회마을이 한눈에 다 보였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생겼다. 사진도 한 방 찍고, 경치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편안한 길로 내려왔다. 강물을 바라보며 배를 기다리다 다시 나룻배를 타고 돌아왔다. 하회마을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늘 밤을 보낼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늦게까지 대할만 하다: 만대루.
서원에서 직접 저녁을 해서 먹었다. 원래는 거기서 잠도 잘 계획이었지만, 이중예약이 되버리는 바람에 서원근처 민박에서 자게 되었다. 자기 전에 서원지기님의 배려로 밤에 만대루에 올라가 볼 수 있었다. 만대루는 병산서원 안에 있는 정자 비슷한 건데. 보통 정자보다 넓어서 여름에는 서원의 학생들이 그 곳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만대루라는 이름은 늦은 저녁까지 이곳에 앉아 경치를 대할만 하다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는 게 서원지기님의 설명이다. 서원지기님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모임을 시작했다. 오늘 모임에서 다룰 책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란 책이고, 더불어 1학기 모임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다. 오늘 사회자는 나. 문화재에 대한 책을 직접 문화재를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매력에 이번모임의 사회자를 맡았다. 오늘은 책 내용에 관한 퀴즈를 진행하기로 했다. 만들어온 문제를 하나하나 내는데 상품이 걸려있어 그런지 엄청난 의욕을 보인다. 퀴즈가 끝나고 한 학기 동안 두빛나래와 함께한 소감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다.
만대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참 많이 보였다. 저렇게 많은 별들이 있어준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서 곧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고 싶은데... 내일을 기약하며 아쉽게도 내려가야 했다.
-병산서원 속으로.
아침에 우여곡절 끝에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었는데 강낭콩쌤 말만 듣고 만들었더니 카레가 너무 묽었다. 다행히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하룻밤을 보냈던 민박을 나와 하회마을을 떠나기 전에 병산서원에 들렀다. 어제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던 서원건물을 구경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의 꽃과 나무가 건물과 잘 어울려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어제 올라갔던 만대루에도 다시 가 보았다. 밤의 만대루는 풍류를 즐기는 선비가, 낮의 만대루는 열심히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자의 자취를 따라가다: 도산서원.
서원지기님이 새로 생긴 콘텐츠 박물관을 추천해 주셨지만, 나는 원래 일정에 있던 도산서원이 더 가보고 싶었다. 희정이가 이유를 묻길래, ‘내 성을 생각해 보렴’ 이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아, 희정아. ‘니 성이 도산이가?’ 라니. 나는 안창호 선생님과 관계가 없단다. 결국 강낭콩쌤의 ‘너희 할아버지 보러가자.’ 라는 말로 도산서원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도산서원은 조선시대의 유학자였던 퇴계 이 황 선생님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을 퇴계 선생 사후 제자들이 넓혀 만든 것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서원에 들어가기 전에 ‘열정’ 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문화재 해설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마셔도 마르지 않는 물처럼 학문도 끝없이 솟아났으면 하는 바램에서 퇴계선생님이 이 우물을 매우 좋아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마실 수가 없어서 대신 옆에 있는 급수대에서 목을 축였다.
퇴계선생님이 직접 지으셨다는 도산서당 건물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창문도 많고 탁 트여 있었다. 직접 앉아도 보았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옛 성현의 말씀을 공부한다라. 그것 참 운치 있군. 그래서 옛날 선비들은 평생 책을 벗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뒤에 지었다는 도산서원 건물도 보고 (현판은 글씨로 유명한 한석봉선생이 쓰셨다.) 제를 지낼 때만 연다는 사당의 문도 보았다. 문이 3개인데 가운데 문은 계단이 없다. 사당에 모셔진 조상님들이 드나드는 길이기 때문인데 임금님만이 사다리를 타고 그 문으로 지나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역락서재’ 라 부르는 기숙사를 보았는데 해설사님이 한번 앉아보라 하셨다. 거기 앉은 여러분들도 옛 유생들처럼 학문에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고, 옛 성현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길 바란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면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도산서원을 떠나 한 시간 가량 달려 영주에 도착했다. 부석사를 보기 위해서다. 대체 어떤 절일까. 어떤 아름다움을 품고 있을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었을 때도 느낌이 바로 오지 않았는데.... 직접 보면 알겠지! 처음엔 산길을 올라야 했다. 조금 올라가다보니 다시 또 계단이 있었다. 여기서 강낭콩쌤,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란다. 그런 말을 하니까 더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끝까지 올랐다. 자, 이젠 뒤를 돌아봐도 되겠지? 허억. 이럴수가. 저 멀리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어디까지 산이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쌤, 너무 좋아요!’
‘그치? 빨리 기둥에 기대서 봐라. 더 멋있다!’
아참. 경치에 취해서 그걸 잊을 뻔 했다. 흑백사진으로만 보던 무량수전. 나무의 짙은 갈색이 웅장한 건물에 약간의 엄숙함을 주고 있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잠시 머뭇거려졌지만 과감히 나를 기둥에 맡겼다. 안개. 산. 바라만보고 있어도 가슴이 확 트인다. 몸을 돌려 기둥을 바라보니 듬직하다. 배를 쓸어주듯이 기둥을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안양루에 앉아계시던 해설사님께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에 관한 전설을 듣고 조사당으로 올라갔다. 문이 닫혀 있고 선비화는 철창 안에 있어 제대로 감상하기는 힘들었다.
볼게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리라 다짐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안동을 떠나면서
다들 지쳐있었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눈치였다. 개인적으론 평소에 보기 힘든 문화재들을 보면서 옛 조상들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과, 동아리 애들과 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아쉽긴 했지만 집에 간다는 반가움 때문에 차안이 떠나가도록 신나게 놀면서 우리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