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주 강의 <이미지시대의 삶과 예술> 정리]
주제 : 영상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요즘시대 : 정보화시대=영상시대=동영상, 사진, 미디어의 시대
영상시대의 단점 : 구체적 사실 파악 어려움, 현장애해능력 떨어짐, 사람대면 힘들어짐, 이미지경험증가, 사실현장경험감소. 
  예) 주거공간변화(마당→아파트) 
                      └박정희의 주입 -단독주택, 마당 : 고통, 다툼 
                                               -아파트 : 화목, 행복 
  예) 충동구매 
  예) 책 ───────────→ 영화 
         ↓         이미지충격               ↓
 상상의 얼굴 ───────→ 배우의 얼굴 
                    결정되어버림

#이미지→상상력↓                       #영상시대→함정 : 설득, 길들여짐, 조건반사, 수동적 
              생각을 섬세하게 만듬↓                     ↕  
              판단을 심오하게 만듬↓                  →저항 : 글쓰기 주저 망설여보기 
              글쓰기 다양화↓ 
              판단이 다양↓ 
              고민↓ 
              획일화↑

 

<Q&A>

Q. 기업마케팅은 이미지로 이루어져있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시대에 대한 반역이

    아닐까?
A. 정확성, 투명성, 시간절약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망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미함, 아슬함, 하나하나를 기억해 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이미지와 동떨어져 살기 힘들다. 해결 방안으로는?

A. 다른 길로 걸어봐라, 낯선 곳에 혼자 가봐라.
Q. UCC같은 경우는 다수와 다수의 쌍방향이미지전달이다. 아까 교수님께서 예로 들으셨던

    박정희 시대의 광고는 그룹과 다수로 인한 일방향이다. 지금 사회는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시대인데, 이런 쌍방향은 수동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쌍방향이미지는 받아

    들일 수 있지 않나?
A. UCC같은 것 없이도 지내봐야 한다. 나는 무조건 이미지를 멀리 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씩은 UCC 없이 지내보는 법을 배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Q. 좋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A. 절망해봐라. 절망하고 고뇌하면 더 좋은 글이 나오게 되어있다.

 

                                                                                                              -끝-

 

<강의를 듣고 나서>

분주하고 획일화 되어있는 도시인의 현대 삶에 쉼표를 찍으라는 말씀같았다.

이미지에 굳히지 않고 나만의 상상력을 가지는게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을때는 가슴에

정말 와닿았다. 영상을 보고 난 후에 그 책을 보게 되면 그 이미지 굳혀 버린다는 예를

들어 주실때는 내 경험과 너무 맞닿아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오늘 강의는 그냥 강의를 들은 것으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이왕주 교수님의 말을 깊이깊이

잘 세겨 놓았다가 나중에 하나하나 실천해가면서 다시 되새겨 보는게 중유한 것 같다.

정말 유익하고 가슴에 아니 심장에 와닿는 강의였다.

이왕주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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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우행시를 세번째 보고 적어논 글이 있길래 올려봅니다.

  작년 겨울.. 영화관에서 아주 슬픈 영화 한 편을 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몇 시간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었다. 그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되고 나서 가족끼리 한 번 더 봤었고, 또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한 번 더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세 번이나 본 영화. 그러면서도 감동은 그대로인 영화.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다. 이 영화를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보면서 나는 세 번 모두 각기 다른 쪽으로 영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에는, 내 삶의 태도를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살고 싶어 하는 윤서를 보면서 지난 날 죽고 싶어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작년에 내 삶에 모든 것이 싫었고 지루했고 짜증났었다. 뭐가 왜 싫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싫었고 그냥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시간 때우기 식으로 보냈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윤서가 하루하루를 참 소중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내가 보낸 시간이 얼마나 쓰레기 같았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후회됐다. 다행이 지금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영화가 나를 바뀌게 해주었다. 
  두 번째 영화를 봤을 때는 약간 객관적인 입장으로 보게 되었다. 평소 사형제도에 찬성했던 나인데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사형 제도를 계속 놔두어도 괜찮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도 행복을 느끼는 윤서에게 사형제도라는 너무 잔혹한 형벌을 내리는 게 과연 정부가 할 수 있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형 제도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내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세 번째 영화를 봤을 때는 드디어 둘의 아름다운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영화의 사랑하는 사이처럼 스퀸십 이라던가 키스신은 없었다. 그냥 서로의 아픈 과거들을 털어놓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보듬어 주면서 서로의 사랑이 커진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들로 포장된 화려한 사랑이 아니라 서로 눈빛으로 깊어지는 정말 순수한 사랑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같은 영화를 세 번씩이나 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 인거 같다. 영화를 계속 보고 있자면 새록새록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생각이 났고 뒷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다 알고 있어서 그런지 긴장감 이라던지 큰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세 번 보면서 두 번 울었고 세 번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또 세 번 모두 다른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한 개밖에 찾아내지 못하는 영화 속 의미와 감독의 의도를 나는 세 번에 걸쳐 모두 찾아내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 모른다.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이 남아 있을지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영화의 모든 것을 알아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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