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빛나래의 열아홉 번째 모임은 전라남도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토지*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는 1박2일 모꼬지였다. 안타깝게도 친구들 모두 참석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은 1박2일이었다. 1월29일 8시에 중앙여고 앞에서 만나고, 바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 참판 댁으로 출발을 했다. 이 날 부산에 눈이 와서 우리가 가는 곳도 눈이 올까하고 기대했었지만 정말 화창한 날씨였다. 전라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섬진강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점심은 재첩 국이었는데 국에 있는 재첩이 먹어도 먹어도 줄어드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많았다. 정말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최 참판 댁으로 출발했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는 소설 속 동네와는 많이 다름에 의아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토지를 쓴 박경리 씨는 정작 평사리에 가보지 않았던 것이다.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토지의 문학사적 의의를 높이기 위해 이곳에 소설 속 공간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최 참판 댁에 도착하기 전에 ‘토지’촬영지로 쓰인 초가집들을 구경하며 올라갔는데 주위에 붙어있는 토지 촬영 사진이 사실감을 더해 주었다. 드디어 도착한 최 참판 댁은 정말 으리으리했다. 역시 부자임을 집 크기를 통해 드러내주고 있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 평사리의 들판, 무딤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들을 보고 있으니 저 넓은 들 가운데 자신의 땅을 가진 농부가 몇이나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다가왔다. 최 참판 댁에 살고 있는 훈장님도 계셨는데 은지, 나, 심투. 세 명이 모르고 방 안에 들어갔다가 운 좋게도 훈장님의 좋은 말씀도 듣고 나올 수 있었다. 으리으리한 최 참판 댁을 뒤로 하고 다음 코스인 선암사로 출발! 하기 전에 화개장터에 잠시 들렀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았지만, 예쁜 것도, 맛있는 것도 많이 파는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다시 머리를 돌려서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름다운 절 5위로 뽑은 선암사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연의 공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절까지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며 제일 먼저 본 것은 승선교.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기 위해 놓인 아치형 다리. 밑에서 올려다 본 승선교는 정말 견고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선암사는 많은 화재를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 水, 海 두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또 대웅전 기단을 보면 돌이 심하게 떨어져나간 흔적이 보이는데 돌이 강한 화기에 노출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대웅전의 내부를 보면 웅장함이 느껴진다. 부처님의 계시고 천장을 보면 부처님을 호위하는 생물인 용 네 마리가 버티고 있다. 내가 보기엔 용이 무서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졌다. 천장에는 정말 화려한 무늬들과 조각을 한 장식, 향 내음과 오래된 흔적들이 대웅전을 더욱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두 곳 중의 하나인 선암사 ㅅ간뒤. 아름답기도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고 오래된 화장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외관상 화장실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주위 절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ㅅ간뒤 안에 들어가면 남녀 화장실은 구분 되어있지만, 화장실 각 칸에는 문이 없어 무척 개방적이라는 사실. 화장실 외벽이 살창으로 되어있어 볼일을 보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다행히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인다. 볼일 본 것은 아직까지 거름으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에 볍씨를 뿌려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해준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 선조들의 물아일체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원통각에는 정조가 후사가 없어 치성을 드렸는데, 관세음보살의 법력으로 순조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순조가 직접 썼다는 현판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옛날에 썼다는 현판을 우리까지 보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선암사 주변을 거닐다보니 많은 매화나무를 볼 수 있었다. 예쁜 매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매화가 활짝 피었을 때 오면 더욱 경치도 좋고, 멋있다는데……. 매화가 필 때 다시 오고 싶다는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가 묵을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낙안읍성 안에 있는 민박이었다. 지붕이 짚으로 되어있어 초가집 느낌을 주는 민박. 친절한 할머니 덕분에 부엌도 쓸 수 있었다. 우리가 저녁을 차렸는데, 저녁밥 조가 해 준 김치찌개와 밥이 정말 맛있어서 아침밥 조인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저녁을 먹은 뒤 바로 골든 벨을 시작했다. 강낭콩 쌤이 나눠주신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 맞출 수 있는 문제! 하지만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산마루 쌤과 똑같은 걸 내야만 답할 기회가 주어졌다. 답을 알고 있어도 가위 바위 보를 못해서 상품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서로 답을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 덕분에 배꼽 빠질 만큼 웃을 수 있었다. 또 동아리 활동을 되돌아보며 친구들이 써온 두빛나래 활동 후 느낀 점들을 들었다. 왠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이제 이런 모임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 당시 모임 때 최선 다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맺어진 인연, 계속해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교류가 끊이지 않길 바란다.

웃음과 대화와 함께 밤은 깊어갔다.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아침조라 다른 얘들보다 일찍 일어나야하는 슬픈 상황……. 추위를 잊기 위해 뜀뛰기를 하면서 계란 국과 밥을 했다. 다행히 어제 저녁처럼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출발 시간은 아침 8시였으나, 이런저런 준비로 1시간 이상 늦게 출발 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눈이 날리고 있어 정말 추웠다. 벌교로 출발하기 전 공짜로 들어오게 된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낙안읍성은 오늘날에도 229명이 살고 있는 살아 숨 쉬는 우리 옛 고을이다. 오늘날의 감옥과 같은 곳도 있었고, 직접 거기에 들어가서 감옥살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성곽을 따라 걷다가 어제 골든 벨 문제로 나왔던 치성과 옹성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옛날 성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나마 지위가 있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성 밖에 살던 사람들은 전쟁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살았을까, 보호라는 것은 받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아침 이른 시각이라 아직 문을 연 가게가 없어 조용했다. 옛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던 낙안읍성을 뒤로 한 채 태백산맥의 모티브가 된 벌교를 향해 출발했다. 벌교에 도착한 우리를 반겨준 것은 홍교. 홍교는 3칸의 무지개다리로 만들어졌다. 어제 보았던 승선교와 닮아서 친근하게 보였다. 홍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소화다리가 보인다. 소화다리의 원래 이름은 ‘부용교‘이다. 책에서 새끼무당의 이름이 ‘소화‘인데 혹시나 그 다리와 관련이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런 관련은 없고, 일왕 히로히또 때인 1931년에 만들어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데 여순사건 때와 반대로 반란군이 진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곳이다. 마을로 걸어 들어가면 김범우네 집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께서 지주였던 만큼 집이 정말 컸다. 집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낡은 모습에 약간 실망도 했다. 하지만 소설 속에만 있을 것 같던 김범우네 집을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고,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김범우네 집에서 내려와 조정래 씨의 옛집도 보았다.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을 배경으로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지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현부자집은 최근에 번듯하게 복구를 했다고 한다. 대문 위를 보면 다락 식으로 된 공간이 있는데 유리로 되어있어 훤히 다 보인다. 그 곳에서 기생을 불러 놀며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유리 구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전부 일본에서 수입해 온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현부자가 얼마나 사치가 심했었나를 알 수 있었다. 현부자집을 둘러보다 소화가 몰래 찾아오는 정하섭을 반겨주던 쪽문이 보였고, 그런 정하섭을 위해 목욕물을 받아주었던 목욕탕도 실제로 있었다. 여기서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니…….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때의 왠지 모를 감격이 떠오른다. 정말 태백산맥 읽기를 잘했다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현부자집 옆에 조정래 문학관이 있었는데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고 했다. 4~5월경에 오면 작가 조정래 씨와 등산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했다. 아~! 정말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여기를 관리하시는 아저씨께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당시의 지주가 얼마나 부자였냐면 전용 헬기가 있어 그 헬기를 타고 다니며 자신의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얼마나 황당했는지……. 뼈 빠지게 일하고도 지주에게 반 이상이나 농작물을 바치고,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농부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불만들이 모이고 모여 농부들의 반란이 일어난 게 아닐까……. 그 때 그 반란이 성공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벚꽃이 만발할 때 다시 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벌교에 오면 꼭 먹어봐야할 꼬막! 꼬막이 제철이고, 여기서 직접 생산하는 것이니까 싸지 않을까 했었는데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나……. 꼬막정식은 정말 비쌌다. 하지만 그 만큼 맛있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침이 흐를 정도로 또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아주머니의 푸짐한 인심 덕분에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우리의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순천만 갈대밭으로 GO! 순천만 갈대밭은 총 면적이 약 30만평이라고 한다. 많은 철새들이 여기서 쉬고 있으며 많이 사람들이 자연을 느끼고 가는 아름다운 이 곳. 정말 멋있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자전거나 배를 꼭 타고 싶다. 맑은 날씨에 갈대밭을 거니는 것도 분위기가 있지만 안개가 자욱할 때 오면 더욱 분위기 있는 곳이 될 것 같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멋지게 나올 것 같은 순천만 갈대밭. 높은 곳에서 보면 넓은 갈대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이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과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 한 물아일체의 경지를 여기서 느껴본다.

 아쉽게도 우리의 여행은 여기서 막을 내렸지만 이틀 동안 쌓은 추억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운전하시느라 이틀 내내 피곤해 보이셨던 산마루 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차 안에서 분위기를 띄우느라 고생(?)한 우리 은지와 희정이~! 너희는 정말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였어^^  내년에는 우리가 계획한 모임에 강낭콩, 산마루 선생님을 초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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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빛나래★ 2008-02-0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색하거나 부족한 곳이 발견되면 콕~!집어서 말해주세요^^;

해콩 2008-02-0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았다. 류~
어색거나 부족한 곳을 제일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글을 쓴 자신이란다. 두어 번 읽어보면 느껴질거야. 문단 나누기에 신경을 좀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드는구나. 글의 내용이 바뀌면 두 칸 들여쓰거나 한 줄 내려쓰면 읽는 사람이 '아~ 문단이 바꼈군..' 생각할 수 있겠지? - 강낭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