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인간의 생명을 위해 부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약자, 가난한 자의 세상도 반드시 존재하고 그들도 하나의 고귀하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라고 전태일은 말했다.
1970년 그 당시 젊은 노동자들이 병이 들고 힘든 나날을 보내며 죽은 듯 살아갈 때 아무도 그들의 비명을 들어주지도 관심 두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 당시도 어떤 연예인들의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가 마치 나라의 중요한 일처럼 알려지고 관심 둘 뿐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세상의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의 일에 무관심한 채 연예인들의 사소한 일들을 넋 놓고 보는 한심한 행동을 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이런 나의 가슴과 그때의 노동자와 시민들, 한국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던 전태일이 있었기에 변화된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왔고 안 해 본 일 없는 그였다. 나는 전태일의 삶 중에서 특히 이 평화시장에서의 전태일과 어린 여공들의 삶이 나의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어린 여공들이 허리도 제대로 펴고 다닐 수 없는 공장의 조건, 14시간을 노동하고 일요일도 쉬지 못하는 지옥 아닌 지옥 속에서 일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나와 또래, 또는 그보다 더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배움의 시기에 빛 한 줄기 없는 참혹한 공간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지금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어린 여공의 모습을 보며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냉정한 사회인지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기업주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고 정부는 오직 경제성장에 눈이 멀어 자신들 앞에서 죽어가는 밝고 순수한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다만, 이런 어린 여공들을 눈여겨 본 건 단 한 사람, 바로 전태일 뿐이다.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그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줬으며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인간다운 권리를 찾아 줄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하고 투쟁했다. 전태일은 얼마든지 이러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전태일은 그렇지 않았다. 잘못된 문제를 그는 정확하게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만 오직 신경 쓰다 보니 다른 사람이 처한 부정당한 일에는 관심 가지질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같이 해결하려하거나 힘이 되어주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남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귀찮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늘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만 더 수월한 길을 가고자 안간힘을 쓸 뿐이다. 그런 이기주의적 삶 속에서 전태일의 모습은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한다. 이처럼 전태일은 짧은 생애의 전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보다는 인간다운 권리를 상실한 채 부정당한 권리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편에 서서 투쟁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 커다란 덧에 갇혀 노동자들은 정부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며 살아갔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탐욕적 인간 때문에 노동자들은 얼마나 굶어갔는가. 권력층끼리 배가 터지도록 먹어대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굶어 죽어가기 바빴다. 우리는 왜 늘 그들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최소한 인간다운 권리조차 받지 못하며 자신하나 편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늘 국가를 위해 살아가야했고 그것을 국가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그들의 뜻을 밀고 나갔다. 그 길에 서서 제일 먼저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 전태일인 것이다. 나는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조금은 노동자다운 권리를 가지고 살아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먼저 사회의 잘못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그 문제는 절대 해결 될 수 없다. 그리고 불평등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먼저 나서 말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그 불평등함 속에서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며 바보 같이 살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바보같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 것은 그 당시 전태일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동자들에 대한 평등한 대우, 인간다운 권리를 위해 끝까지 달려 나갔던 전태일은 끝내 죽음까지 달려가고 말았다. 아직도 나에겐 자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 달라는 그의 한 마디가 기억 속에 오래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전태일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그의 죽음을 계속해서 헛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그 당시와 비슷한 자리를 맴돌고 있으며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아직도 미완성이다. 언제쯤 완성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모른다고 넘어가선 안 될 문제다. 특히 나를 비롯해 앞으로 노동자가 될 많은 젊은이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기억되어야 할 것은 바로 전태일의 삶, 그리고 죽음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 되었을 때 정당한 권리를 받으며 살아가려면 전태일이 사회에 남긴 의미와 그의 삶을 이해해야 하며 또 불합리한 사회에 맞서 진정한 노동의 의미와 모습을 찾게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으로 참된 노동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야 비로서 그가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