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벽화고분으로 이 무덤의 주인공인 왕이 장방의 좌상우에 올방자를 들고 앉아서 시종 무관과 문관에게 보고를 받거나 분부를 받는 정사도이다. 백라관을 쓰고 앉아있는 왕의 이곳저곳에는 주인공의 특징을 표현하려는 화가의 고심어린 정성이 깃들어 있다. 장방의 오른쪽엔 반원형의 털을 3중으로 늘어뜨린 의장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이조시대에 왕이 행차 때에 쓴 '정절'이라는 의장기와 매우 비슷하다.
벽화를 보면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경기 성적을 기록하는 사람,심판을 보는 사람,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경기를 진행하는 사람등이 보인다.고구려의 기마궁술 경기대회에서 5개의 과녁을 사용하여 시험을 보는 것은 조선조(경국대전)의 병전에 보이는 무과의 기사에서 채용된 과녁의 숫자와 일치하고 있어 고구려 이후의 국가들은 모방했을 가능성이 크다.
연군태수,범양태수,어양태수,상곡태수등이 출행하는 모습이다. 이 벽화를 통해 고구려가 중국 화북지방까지 점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전의 영광을 기리고, 죽은 자가 누리고 싶어하던 삶을 형상화한 그림들을 무덤의 벽과 천장에
그려 넣었다. 귀족부부 벽화를 통해 우리는 고구려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벽화의 색채는 부드럽고 차분한 갈색을 많이 사용했다.
왼쪽에 청룡, 오른쪽에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로 사방위를 지키는 사신도는 강서
큰 무덤의 벽화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