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아이 키우려면 철학책 좀 봐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질문이 하루가 다르게 성숙하고 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초지식조차 배우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받은 교육은 구구단을 암기하는 차원에서 하나도 발전한 것이 없었다. 그저 암기하고 또 암기했을 뿐, 그것을 왜 암기해야 하는지 어느 때에 그것을 어떻게 응용하는지 전혀 배운 게 없다. 사회에 나와 보니 전부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내가 배운 교육이 너무 보잘 것 없어 속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아이들도 그런 교육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해빈이 국어책을 보면 왜 공부하기 싫어하는지 짐작이 간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이 국어책이라고 한다. 그러니 다른 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지.

== 아이와 함께 행복해지기, 64~65쪽, 채인선, 보리, 1996


내가 다닌 학교, 내가 받은 교육도 다를 것 없다.
나는 아직껏 그 두꺼운 수학 정석 책의 3분의 1 지점에서부터 끝까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화학이나 지구과학 시간에 나오는 공식들은 딴나라 이야기였고,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물조차도 어려웠다. 성문종합영어는 한자가 너무 많아 들춰보기조차 싫었고, 남들은 쉼다고 두세 번은 기본으로 보는 맨투맨 기본이나 종합도 끝까지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좀 민망하군...)

그래도 공부를 하겠다고, 일요일이면 교실을 개방하는 학교에 가서 아침부터 창가에 자리잡고 앉아 책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 턱을 괴고 푸르기만 한 하늘을 쳐다보며 멍하니 있기 일쑤였다.

이 글을 보고 그 때가 떠올랐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푸르러지는 하늘, 창가의 나무책상, 뭔지 모르지만 아련한 느낌의 그 때. 그리고 내 아이. 내 아이와 함께 학교를 다닐 다른 아이들.
가슴이 답답하다.

아이가 길을 가다 저게 무어냐고 묻는다. 쳐다보면 늘 보던 건데도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 막막해진다.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도대체 모르겠는 경우, 내가 한심해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묻는데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부끄럽다.
정말 "사회에 나와 보니 전부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았다. "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난티나무 2005-06-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테고리 새로 만들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 딴지 걸고 싶은 부분을 적어보려고.

플레져 2005-06-0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 정석의 저자는 누구인지 아시죠? ^^;;;
소나기를 다시 읽고, 등신불을 다시 읽었어요.
그땐 정말 그게 감동적인 소설인 줄은 몰랐거든요.
좋은 소설이려니 교과서에 실렸겠거니 하는 생각도 못했죠.
언젠가 프랑스 극단팀이 왔었는데, 배우들이 한복의 유래를 묻더군요. 그때의 막막함이란...
카테고리, 난티나무님만의 고유색이 입혀질 것 같아요. 기대하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5-06-0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회에 나오면 별 쓸모없다는걸 일찌감치 알아채고 하라는 공부는 안했습니다.
대신 줄창 세계문학전집(삼중당 판) 같은거나 열심히 읽고 영화나 보러 다녔습니다.

파란여우 2005-06-02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학교 다닐때는 무조건 잡식성으로 책을 읽어야해요.
교과서도 책? 헐--;;

난티나무 2005-06-0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똑똑(!)하신 하날리님~!!!
전 좀 애가 멍했나 봐요...ㅠㅠ
플레져님, 저자 이름은 아는데, 자세히는 몰라요...ㅡㅡ;;
아니, 제가 글 쓰면서 황순원 소나기 이야기 했다가 지운 거 어케 아시고??? 찌리리...
기대, 많이는 하지 마세요.^^;; 뭐든지 벌여놓고 보는 제 성격이 좀 걱정됩니다...ㅠㅠ

난티나무 2005-06-0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마자요, 마자요~~~^^
교과서는 책, 하지 말아요, 우리. 책으로 변장한 문제풀이괴물 같다니까요...

미설 2005-06-0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국어책이 재밌었는데.. 지리책도...영어책도.. 돌 날아오나요??=3=3=3

난티나무 2005-06-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설님, ㅎㅎㅎ
저도 국어책은 좋아했어요. 그런데 요즘 초등학교 국어책 슬쩍 본 적이 있는데, 장난 아니더라구요. 문학작품 넣어놓고 황당한 문제 풀이... 그리고 거 왜 있잖아요, 주입식 교육, 초등학생 때부터 성역할이나 사회역할 기타등등을 머리에 집어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ㅠㅠ

해적오리 2005-06-0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날리 님의 예지 능력에 예를 표합니다.
저도 사회 나와서 느끼는 것은 학교공부 한다고 보낸 아까운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지요. 정말 이젠 기억도 안나고 도움도 되지 않는 것들인데...

저도 항상 공부해야겠다고 느껴요.
그런 면에선 제가 학교 선생님이 아니고 일반 회사에 다닌다는 점이 다행스러워요.
여기 저기서 자극을 받을 수 있어서요. ^^

인터라겐 2005-06-0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정말 더 이상한건...그런것들을 피부로 느끼는 엄마들이 자식공부에 있어선 더욱더 교과서에 매달린다는거죠... 경험을 통해 아무 쓸모없는(?)것들임을 알았는데도 또다시 아이들에게 반복적인것을 하게 하는것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세상같아요...ㅎㅎ 제친구가 하는말이 학교 다닐때 공부잘하던애가 사회에서도 잘하는게 아니더란말을 하더군요...입사동기가 전교1등하던애였는데 교과서는 달달외웠을지 모르지만 다른분야는 빵점이더래요..나중엔 스스로 퇴사했데요...사회속에 어울리지 못해서요...융통성이 전혀 없었단 얘기죠...

아 저요? ㅎㅎ 난티나무님하고 비슷한 과였네요...

난티나무 2005-06-0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님, 인생은 공부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인터라겐님, 누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절대 다른 엄마들처럼 안 갖다바치고 아이 목 조르지 않고 제대로(!) 키워 보리라 굳게 다짐했는데 1학년 들어가고 한 달도 안 되어 다짐이 무너지더라고, 현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 말이예요...ㅠㅠ
저도 그렇게 될까 두렵습니다...
저랑 비슷하셨다니, 동지를 만난 듯...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