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동의에 대하여)
"추정적인 진화의 역사는 실제로 어떤 특정한 성적 행동도 만들어내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섹스에 대해 논할 때 진화의 역사가 각광받는 것은 대개 현대의 성적, 사회적 합의를 (과학적 입장을 살짝 묻혀서)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상당히 이분법적인 이 남성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은 남성의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관점과 밀접하게 붙어 있다. <더 게임>에서 스트라우스는 자신과 동료인 "미스터리(픽업 아티스트의 세계에는 터무니없는 별명이 많다)'가 서툴고 사회적으로 미숙한 남성들에게 가르치는 기술이 사람을 조종하는 기술이라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 문제를 말끔히 합리화한다.
"꾸준히 신문이나 논픽션 범죄 르포를 읽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납치부터 총기 난사까지 폭력 범죄의 상당한 비율이 남성의 좌절된 성적 충동 및 욕망으로 인한 결과다. 따라서 미스터리와 나는 이러한 유형의 남자들을 사회화시켜주면서 이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남성에게는 성적 배출구가 필요하며, 배출하지 못하면 그들은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76)
인간 진화의 역사는 추정적인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의 역사는 섹스에 대해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는 의견에 동의한다. 섹스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논하는 글들을 읽을 때 일견 수긍하면서도 의아함을 떨쳐버리지 못한 이유를 말해주는 문장들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몇몇 책이 떠올랐다. 특히 위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을, 까딱 잘못하면 완전히 지지하는 것처럼 읽을 수도 있는 그 빨간 책.
"그러나 우리는 해결책을 발견해야 한다. 만일 여자가 더 이상 강제적으로 한 남자에게 묶여 있을 필요가 없으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남자는 그걸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은 남자의 공격성으로 인해 몰락할 위협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다음에 소개할 제안을 여자를 노예화시키라는 요구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또한 섹스를 못 하는 남자도 야만적이라고 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모두를 위해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 선택>)
저자가 이렇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있음에도 뒤에 이어지는 제시안들은 눈을 부릅뜨기에 충분한 내용들이다. 인간의 진화과정과 생물학적 특성, 사회와 가부장제의 억압, 등에 대한 흥미 있고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하며 읽던 독자는 말미에 이르러 그만 이 책을 아무에게도 추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통감하게 된다. 오호 통재라. 저자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두 조각 나면서 천지개벽하는 때가 오지 않고서는 제시안들이 제대로(?) 행해지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독자의 궁금증 유발을 위해 그 제시안들은 옮기지 않는다. 다만, 책 말미만 읽지 말고 처음부터 읽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렇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구절을 인용하며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쩝. 일단 소개.)
...
" "왜 여자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그 죄로 내가 너희들을 전부 처벌할 거야... 너희들을 싹 다 죽여 버리면 기분이 정말 좋겠지... 너희들이 나의 행복한 삶을 빼앗아갔으니 이제는 내가 너희들의 목숨을 전부 가져갈게. 그래야 공평하니까... 여자들이 내게서 섹스를 박탈한 죄를 지었으니 나는 여자들을 전부 처벌할 거야." "(77, 여성혐오범죄로 유명해져버린 엘리엇 로저의 말 같지도 않은 말)
"여성이 섹스를 해주지 않으면 폭력이 닥쳐올 수도 있기에, 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여성은 남성에게 섹스를 빚지고 있다."(77) "만일 남성이 오직 좌절한 성욕으로 인해, 이제껏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성적 충동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여성은 그들과 섹스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남성들은 좌절된 성욕 때문에 강간을 저지른다는 믿음은 여성에게 섹스를 강제하면서 그것을 여성 자신이나 다른 여성의 강간을 예방하기 위한 일로 정당화한다."(78)
'섹스할 권리'. 아무에게도 있지 않은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는 인셀. '섹스할 권리'는 없다.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바로 그 구절을 책의 제목으로 삼고 391쪽(한글판)에 이르는 책을 썼다.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에서 잠깐 언급된 엘리엇 로저 사건은 <섹스할 권리>에서 세세하게 다루어진다.
"... 페미니스트들은 엘리엇 로저와 더 넓게는 인셀 현상을 분석하며 남성의 성적 권리의식, 대상화 및 폭력을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욕망, 즉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욕망, 그리고 이 둘의 이데올로기적 형성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138, <섹스할 권리>)
" ... 우리는 페미니즘이 여성비하나 내숭 또는 자기부정 없이 (즉 여성 개개인에게 '당신은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고 있다'라거나 '합의에 묶인 채로는 당신 본인이 사실상 원하는 바를 누릴 수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서) 욕망의 토대를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데, 왜냐하면 욕망에 대한 비평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한들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 도덕주의가 따라올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런 페미니스트들이 주디스 슈클라가 권위주의적 대안들에 대한 공포로 생겨난 자유주의, 즉 '공포의 자유주의'liberalism of fear를 주장했듯 일종의 '공포로 인한 섹스 긍정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욕망을 재정치화하는 데에는 성적 권리의식 담론을 부추길 위험도 존재한다. 성적으로 부당하게 주변화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논의는 이들에겐 섹스할 권리가 있으며, 이들과의 섹스를 거부하는 사람은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격이라는 견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야말로 끔찍한 관점이다. 다른 누구와 성관계를 가질 의무는 아무에게도 없다. 이는 자명한 진리요, 엘리엇 로저를 순교자로 추앙하며 분노하는 수많은 인셀과 마찬가지로 로저 본인이 외면하려 한 진실이기도 하다. ..." (153~154, <섹스할 권리>)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2장의 제목도 '욕망에 대하여'다. 우리는 다른 모든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같다. (왜냐하면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오지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욕망이 어떤 것인지조차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고 정의내리기 모호해서, "당신이 다른 여성의 몸이나 얼굴, 매력, 여유로움, 탁월함에 느끼는 질투가 실은 질투가 아니라 욕망이라면?"(171)같은 스리니바산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타등등의 이유로.) 역사적으로 여성의 욕망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그러나 남성의 욕망은? 남성의 정체성은? 어째서 남성은 남성을 연구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남편이 칼같은 정답을 내놓았다. '남자들이 남자를 연구하면 다 뽀록날 테니까.'
위의 인용구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있는데, 가령 '페미니즘이 여성비하나 내숭 또는 자기부정 없이', '권위주의적 도덕주의', '공포로 인한 섹스 긍정주의', '욕망을 재정치화' 같은 구절들이 그렇다. 하. 머리 복잡해. 복잡하기만 하고 그냥 그 상태라서 더 복잡하다.ㅠㅠ
마구잡이로 쓰다 보니 <섹스할 권리>를 자꾸 인용하게 된다. 책을 읽고 무엇이 됐든 글을 써두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법.ㅎㅎ (아무튼 이 책은 인셀을 분석하면서 페미니즘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매우 재밌으니 읽어보시기를 권유함. 이 페이퍼의 주된 목적이기도 한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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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책들 중 <남성 특권>도 한 장에서 인셀을 다룬다. 아래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인셀범죄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다.
" 게다가 좀 더 섬세히 따져보면, 인셀이 더욱 폭넓고 뿌리 깊은 문화적 현상의 징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인셀은 타인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우러러보길 기대하는 남성들이 가진 유해한 특권의식의 결정체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눈길로 자신들을 추앙하지 않았거나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겨냥하고 심지어 파괴한다. 그런 애정과 추앙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믿는 특권의식이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그리고 친밀관계에 있는 파트너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당수 남성들과 공유하는 특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한다." (37~38, <남성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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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책, 우리의 푸코옹께서 했다는 말,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길어질 듯해 여기서 줄여야 겠다. 다음 페이퍼는 '여성의 욕망'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