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세계사
가와기타 미노루 지음, 장미화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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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무심코 먹는 설탕...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설탕이 들어간 먹을거리(아이스크림, 과자, 케  잌, 커피, 사탕...)를  싫어하는 사람은 몇 %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달콤한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달콤함과 더불어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설탕이란 단어의 느낌은 더없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평화의 매개체로서 다가온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되면 설탕의 겉으로 드러난  달콤함 속에 숨겨진 피비린내와 땀 냄새를 맡게 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설탕의 시작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를 낱낱이 알려 주고 있는데,  그 속에는 십자군 전쟁과 노예의 역사 등에 이르는 세계 역사와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의 역사까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설탕이 등장하기 전에 인류는 벌꿀이나 당단풍나무 수액(메이플 시럽)으로 단맛을 즐겼었다. 그러니 거기서 나오는 당분은 한정적이었고 충분치 못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대가 인도 북부지방에 이르렀을 때 사탕수수 나무에서 추출하는 설탕의 존재를 발견하면서부터(그 북부 인도인들은 언제부터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해서 이용했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설탕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본격적으로 설탕의 재배, 제조법과 서민들에게까지 설탕이 전달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11세기의 십자군 전쟁때부터이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열대나 아열대 기후에서만 재배가 되므로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인들은  플랜테이션이라 부르는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기 위해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등지로 식민지를 확대해나가기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 건설, 노예의 거래 등 여러 가지 비문명권 인류들의 많은 희생이 따르게 되었다.  

  이렇듯 많은 대가를 치르고 각광받아온 설탕이지만, 오늘날에는 다시 그 인기가 주춤해지고 있다. 설탕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 보고가 발표되면서부터 당분은 빼고 단맛만 나게 하는 아스파탐이나 올리고당 등의 인공 감미료가 더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러나, 그 와중에도 동양권에서 전달된 차에 설탕을 넣어 먹는 영국 홍차에 대해서도 부유층의 행태를 유행이라고 무조건 따라하는데서 기인한 우스꽝스러운 식습관임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세계사를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는 이라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책이기에 청소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리 큰 깊이가 있는 책이 아니기에 가볍게 읽으며 설탕에 대한 배경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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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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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비야 씨가 쓴 책을  읽을 때마다  '그녀에게는  어쩌면 그리도 에너지가 충만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조금은 전해져, 얼마간이라도 의욕을 가지게 되고 지금의 나태함을 벗어던져야겠다는 강한 자극을 전달받게 된다.  

  지금까지의 책들을 읽으면서는 마지막에는 '한 비야는 강한 여자니까... 보통 사람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여자니까...' 하며 자책 반, 자위 반으로 책장을 덮었다. 그러나 이번 책은 조금 달랐다. 예전처럼 열정에 찬 내용보다는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용이 많았다. 자기 자신의 젊은날의 첫사랑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신에 대해 원망하는 신앙적 앙탈도 들어 있다. 여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글쓰기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책들보다 이 책에서는 보다 더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한 비야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첫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같은 여자로서  안타까움과 연민마저 느껴졌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부분에서는 '철 공을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것 같다'고까지 표현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쉽게 읽히니, 쓰기도 쉽게 썼으리라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 그녀가 얼마나 힘겹게 글을 쓰는지 보고 나의 나태한 글쓰기 자세가 너무 부끄러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은 아무래도 인생 상담 부분이다. 사람의 인생을 90세까지로 생각하고 축구 경기에 비교해 전반 45분, 후반 45분을 뛰는 선수로 책정한 부분이다. 29세인데 이 나이에도 방황하고 있다고 고민하는 젊은이에게 이제 전반 29분 뛰고 있는데 뭐가 늦었다고 그러냐고 일침을 가하는가하면, 사람도 꽃과 같아서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도 있고, 여름에 피는 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국화처럼 사오십대에 피는 꽃, 매화처럼 한겨울에 해당하는 육십대 이후에 피는 꽃도 있다는 얘기를 할 때는 무릎을 쳤다.  

  내가 이 얘기를 남편에게 들려줬더니 남편은 "축구에는 전반, 후반 외에 연장전도 있는데......." 라고 한다. 그렇다! 때론 연장전이 펼쳐질 때도 있다.  아마  한 비야 씨도  연장전까지 펼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학을 하고 돌아와 외국계회사에 입사해 잘 나가다가 그만두고 세계 오지 여행을 떠났던 그녀. 그리고 돌아와서는 세계적 구호단체에서 10년간 현장에서 일했고,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마흔이 넘어 중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녀, 50이 넘은 지금은 다시 구호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는 그녀의 여정을 볼 때 그녀는 이제 막 후반전을 시작한 힘있는 선수이다.  

  또 얼마를 기다려야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을까... 그 때가 자뭇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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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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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아이들을 멀리 떠나보내 놓고 여유롭게 책방에 들렀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그 서점 한 켠에서는  김 훈 소설가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와 눈이 마주쳐 눈인사를 나누고 지나오기도 했는데,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보니 아마도  그 날은 좋은 만남이 내게 예정되어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에 대한 안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끔 서평집들을 읽으며 내가 읽지 못한 좋은 책의 리스트를 구하고, 때론 내가 읽은 느낌과 그들의 느낌을 저울질해 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는 나에게 정말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 속에는 모두 열 네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중 내가 읽은 것은 "죄와 벌", "광장" 단 두 권뿐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디고 여기 소개된 책들을 모두 다 읽고 싶은 것은 아니다. 유시민 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듯이, 다분히 여기 소개된 책들은 대부분 사회, 경제에 관련된 책들이다. 나의 독서가 그다지 깊이 파들어가지는 못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아마도 여기 소개된 책들을 앞으로도 몇 권이나 읽어낼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저자의 독후감을 통해 나도 상식의 깊이는 조금 파내려간 셈이다.  그 덕에  작년부터 "21세기 키워드"를 열독하고 있는 두 아들과 함께 "종의 기원"의 출판 배경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소득이라 할까?

  다만, 지금 중학생인 두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 다른 많은 책들과 함께, 여기 소개된 책들을 다 읽어보라 하고 싶다. 대학생이 되면 적어도 이 정도는 읽어 줘야 소위 '인텔리전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위험한 생각들도 많지만 지나온 역사를 통해 이미 많이 걸러진 것들이기에 소화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회와 인류를 위해 무슨 커다란 일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사회와 인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나와 남을 함께 바라보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인텔리전트,  즉 지식인이 아닐까?   

  책을 통해 유시민이라는 인물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경제학을 전공했다지만 지금까지 내게 그는 정치학도 같았는데, 책을 읽고 난 지금은 그가 혹시 문학도가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든다. 인물 좋고, 글 잘 쓰고, 말 잘 하고, 행동하는 지식인... 지금까지의 모나고 투사적인 이미지가 책에서는   많이 둥글어졌다. 이런 것은 다른 사람의 문장 교열로는 감출 수 없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대화하기가 겁날 정도로 까칠한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뭔가 한 마디쯤은 대화가 통할 것 같다.   

  사족을 단다면, 책 제목을 <청춘의 독서>보다 <청년의 독서>라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청춘'은 좀 가벼운 느낌이고 '청년'은 보다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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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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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책들은 특히 이야기 책들은 그만의 색깔과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조금 어두운 굴뚝 색과  화병 속에서 시들어가는 꽃냄새를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나이 이지만 마음껏 그 싱그러움을 유지하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꽃처럼, 이 책 속에는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인 엄마가 수금날 채워넣어야 할 돈을 맞추지 못해 힘들어하자 학급 아이들의 성금 걷은 것을 엄마에게 주어버리고 아이들과 선생님께는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한 뒤 왕따 수준의 질타를 받는 '나'의 이야기와 아르바이트생, 여고생 임신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아이들은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들로서 어렵게 살아가지만 꿋꿋함을 잃지 않고, 죽음(포기)이 아닌 현실(희망)을 선택하는 씩씩한 아이들이다.  

  책을 덮고 나서 '과연, 간접 체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3이 된 큰아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이 책 속의 아이들과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우리 아이가 과연 이네들의 삶을 간접으로라도 체험했을까?  

  머리가 흔들려진다. 책은 세상을 간접 체험케 하는 좋은 도구요 수단이라 했건만, 책을 통해 만나는 것은 그저 머리로만 체험하는 것일 뿐, 현실에서 그런 환경의 아이들을 만나 짐을 나누고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그건 반쪽짜리 체험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래도 난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내 아이가 이 책 속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기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벽돌 한 장이라도 놓아주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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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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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를 들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버트란트 러셀"이다. 그럼에도 나는 러셀의 책을 그닥 읽어보지는 못했다. 왜? 철학책은 대부분 어렵고 딱딱하고 피부에 와 닿는 내요이 아니라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칼 융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 책 같은 것들은 인간 내면을 탐색하는 내용이라 어렵고 딱딱해도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부터 발원한 모든 철학서들은 용어들을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여서 대학시절부터도 헤겔이니 칸트니 이름이야 수없이 듣고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야 알았지만 그 책을 끝까지 읽어낸다는 것은 그저 활자를 읽는다는 데 불과했다.  

  그렇다고 러셀의 책이라고 쉽고 부드러운 글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난해하지 않고 명확하고, 정말 이런 관념들이 세상에 뿌리내리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들이 많아 읽을만했다.   사실, 이 책에 있는 모든 내용들이 다 와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나의 뇌와 가슴 표피만에라도 발라놓고 싶다.  

  이 책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을 포함한 15편의 글들로 묶어진 철학 에세이집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내용은 제목처럼,  너무 열심히 일만 하지 말고 게으름도 마음껏 피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러셀은 다만 놀기를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놀아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은 휴일도 없이 일을 많이 해야 잘 살 수 있다는 부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며, 한 사람의 노동 시간을 두 사람이 나누어 갖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로 인해 실업자 수도 줄이고, 각 사람은 그만큼 여유 시간을 갖게 되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가령, 돈과 관련 없는 과학 탐구, 그림 그리기 등을 하며 게으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고 인생의 행복과 환희가 충만할 것이다.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 재신에 말이다.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한쪽에선 과로에 시달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열렬한 박수를 보내던 나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에 싸이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수입이 지금보다 굉장히 낮아질텐데 그러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상되는가?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 나라에서 생활비를 지원해주는가? 그런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다. 책을 읽다보니 러셀은 사회주의 쪽 성향인 것 같고, 평화주의자인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조금 명쾌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 한 마디만큼은 새벽 별빛처럼 나의 뇌리에 명징하게 와 박혔다. 

  "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P.S.  그 외에 읽어볼 만한 글로 '우리 시대 청년들의 냉소주의'와 '현대 사회의 획일성','인간 대 곤충의 싸움',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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