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직원연수 때 마신 '악마의 유혹'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시간엔 보통 죽은 듯이 잠에 취해있는데... 덕분에 딸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2g폰으로 찍은 사진을 남편 휴대폰으로 보내면 다시 남편이 내게 이메일로 보내는 긴 과정을 거쳐야 겨우 한 장 올릴 수 있다. 물론 남편도 앱을 다운받고 이메일을 보내는 과정을 처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이, 딸이 필요하다. ^^ 그 미련한 과정이 싫지만은 않다. 미련하게 이 길을 10년째 걷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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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짜리 연수가서 인상 깊은 말 한마디를 건졌다.

 

 

 

 

아이들은 실수할 권리가 있고, 어른들은 실수를 용서할 의무가 있다.

                                                                                 -인천시 교육감 이 청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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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책을 도서관 신간도서로 구입하고 읽자니 약간 박자가 느린 감이 없지 않다. 이젠 집안에 책탑을 쌓아야 할 판이니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내 소유가 아닌 책을 보는 쪽이 마음도 몸도 편하다. 책이라는 소비재를 덜 구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책.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언급했나 했더니, 그래 알겠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영문학과 교수의 일대기가 잔잔하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딱히 불쌍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 삶인데 마음 저변에 동정심과 연민의 감정을 솟게 한다. 누구에게라도 있을 법한 그저그런 얘기를 그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딱 그 정도로 서술한 소설인데, 고전적인 감동을 준다. 명작소설을 읽는 기쁨이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물론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특히 영문학 관련 부분은 아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학시절 영문학사에 매료되어 겨울방학 내내 원서를 읽으며 그 숱한 작가와 시인들 이름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사족이지만, 이 책은 번역이 훌륭한 것 같다. 마치 국내 창작소설을 읽는 것처럼 문장이 자연스럽고 매끈하다. 소설을 읽고 행복한 감정이 든 건 참 오랜만이다.

 

나이 마흔 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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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그리고 어렵게 쓴 책이긴 한데, 내용도 참 좋은데, 참살이의 지침이 될 만한 글인데...뭐랄까. 내겐 울림이 크지 않다. 아줌마의 왕수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직업선택의 십계명'으로 족하다. 고민은 각자 스스로의 몫.

 

 

http://blog.aladin.co.kr/nama/4219968

부모들은 종종 교육자인 나에게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부모님들 자신이 잘 살아가야 합니다."
삶은 어떻게 자식을 잘 키우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자신의 삶은 자기가 살아내야 하는 자신의 몫이다. 자식의 삶은 자식의 몫이다. 내가 내 삶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자식의 삶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오만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을 걱정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가 자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신神 앞에서 신발을 벗고 살아가는 일밖에 없다. (전 거창고교장 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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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계란을 생협에서 구입한다. 15개가 들어있는 유정란을 주로 사 먹는다. 장바구니에 담기도 적당하고 신선하고 맛도 좋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생협에 가야할 타이밍을 놓쳤더니 가뜩이나 텅 빈 냉장고에 계란이 달랑 두 개 남았다. 마침 코스트코에 가게 되어 계란을 사왔는데...

 

30개가 들어있는 한판을 주저주저하다가 사왔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0개 아니면 60개.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날 저녁, 말 그대로 휘휘휙 저어서 스크램블을 만드는데 깨는 족족 노른자가 두 개인 쌍알이다. 다음 날. 계란을 삶았더니 모두 노른자가 두 개 있는 쌍알이다. 다음 날 아침, 계란말이를 하는데 역시 쌍알의 연속이다.

 

딸아이는 징그럽다고 삶은 계란을 거부하더니(위의 사진) 그 좋아하는 계란말이(청양고추 듬뿍 들어간)를 한 점 먹다가 만다. 맛이, 그러니까 계란맛이 없다. 노른자의 고소함도 없고 흰자위의 찰진 맛도 없다. 생협 계란을 먹을 때는 몰랐는데 코스트코 계란을 먹어보니 그 차이를 알게 된다. 한마디로 코스트코 계란은 계란이라는 생물을 먹는 게 아니라 상품을 먹는 것에 불과하다.

 

그나저나 남은 계란을 어떻게 처치하나, 문제다. 그런데 어떻게 계란 한 판 30개 전부를 쌍알로 구성할 수 있을까? 겉포장에 한마디라도 써놓아야 되는 거 아닌가?

 

'이 계란은 모두 쌍알로 구성되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병휴직으로 1년을 쉬시면서 잠시 양계사업을 하신 적이 있었다. 200여 마리의 닭을 길렀는데 닭들이 알을 낳으면 동네가게에다 계란을 조금씩 팔았다. 장바구니에 넣어서 심부름을 다니곤 했는데 어쩌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계란이 땅에 떨어져 깨지곤 했다. 땅바닥에 깨진 계란에서 노랗게 도드라진 통통한 노른자가 눈에 들어오면 마음이 아파지면서 눈에는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했었다. 특히 쌍알일 경우에는 가슴이 저려올 정도로 아파왔다. 60년 말에서 70년대 초쯤 되었을 때였다.

 

 

버릴 수도 없는 쌍알 30개. 코스트코, 너무 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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