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위대한 소리들 작고 위대한 소리 시리즈
데릭 젠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실천문학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정희진의 글을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글이 맛깔스러우니 다음 글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 밑에 있는 내 글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34534.html

 

 

정희진이 인용한 말들이 가슴에 꼭꼭 박혀서 이 책을 찾아보다가 마침내 시립도서관에서 찾았다. 빌린 지 일 주일이 되었으나 책은 거의 읽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데도 도대체 화장실 갈 틈도 없다. 이 바쁜 와중에 출장비 투쟁까지 하느라고 심신이 말이 아니다. 퇴근해선 일찌감치 저녁밥 먹고 신경안정제가 들어간 위장약을 먹고 잠을 청한다.

 

이 책은 아무데나 펼쳐도 주옥같은 말들이 폐부를 찌른다. 이미 정희진이 위의 칼럼에서 소개한 것 말고도 정말 무~지 많다.

 

무언가 행동을 하려면 성공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어요. 아마도 대개는 아직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한마디로 미친 짓 같은 프로젝트를 떠맡으려고 하지요. 재밌는 건 그런 미친 프로젝트가 종종 성공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정해진 길로만 가도록 훈련시키기 때문에 어느 연령이 지나면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게 도무지 어려워지지요.

 

교육(education)이란 말의 뿌리는 '애-두케레(e-ducere)' 즉 밖으로 글어낸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아이의 탄생을 돕는다"는 뜻이었고요. 학교제도는 그보다 주입(inculation)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입은 '인-쿨카레(in-culcare)'. 즉 "발뒤축으로 밟아 넣다"는 뜻에서 온 말이더군요.

 

우리는 그런 우주적 감각을 되찾아야 합니다. 국민국가는 우리의 진짜 집이 아닙니다. 진짜 우리 집은 우주입니다. 그리고 우주는 공간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시간이기도 하지요.

 

 

글을 베끼면서 든 생각. 이 책을 어떻게 손에 넣지? 책은 절판되었고, 중고로도 나와있지 않고, 그러면 이 빌린 책을 반납하지 않고, 도서관에는 '분실'했다고 해명하고 책값을 물어준다? 이럴 시간에 책이나 마저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년 전,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월드비전에서 한 아이를 소개받아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후원 5주년 감사선물'이라며 큼지막한 카드가 한 장 도착했다. 카드 내용은 이렇다.

 

우리 아이들의 다섯번째 생일을 지켜주세요.

 

후원자님께서 보내주신 지난 5년간의 사랑으로 우리가 돕는 아이들 수는 53.946명이나 늘어났고, 전 세계 5세미만 어린이 사망자 수도 760만 명에서 590만 명으로 감소하는데 기여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아이들은 다섯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있고, 이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후원자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절실합니다.

 

 

매달 3만 원씩 5년이면...이 돈으로 책을 산다면?  낡은 책장을 없애고 멋진 서가를 꾸민다면?

적은 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빵이 되고 생명이 된다. 그간 사놓고 읽지 않은 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면 작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책이 뭐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일 년에 잘해야 4~5번 시행되는 동아리활동(예전에는 계발활동이라고 불렸다.). 신문반, 독서반, 영어회화반 등은 옛날식 명칭이고 요즘은 바리스타반, 토탈공예반, 요가반 등의 시대를 반영한 동아리반들을 많이 운영한다. 지난 15년간 나는 '하이킹반'이라는 이름을 달고 줄곧 아이들과 함께 학교 근처의 공원이나 걷기 좋은 마을길들을 걸어다녔다. 나 혼자서 걷는다면 한 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아이들과 다니면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모처럼 산책나온 강아지마냥 아이들은 얌전하게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조잘대며 까불며, 때로 풀이나 나무이름 맞추기 퀴즈에 열중하면서 길을 걷는 것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동아리활동이다.

 

이렇게 학교밖으로 나가서 활동을 하게 되면 출장비 1만원이 지급되는데 15년 전이나 현재나 금액은 변하지 않았다. 이 출장비는 현실적인 가치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쨋든 학교를 벗어난 활동이니 출장비가 지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학교라는 조직체가 돈을 따지는 이익집단이 아닌만큼 명목상의 출장비를 그저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런데 새 학교로 전근되어 와보니 이 1만 원의 출장비를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교내에서 동아리활동하는 교사와 형평성이 맞지 않아서, 출장비를 지급하면 다수의 교사들이 출장비를 타기 위해 학교밖으로 나가는 활동을 하게 되리라는 우려에서라고 한다. 출장비 1만 원이 주는 형평성도 논리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교사들이 단 1만 원의 출장비를 타내기 위해 야외활동이나 외부기관을 이용한 동아리활동을 하려고 기를 쓰는 집단이란 말인가. 이게 평교사에서 관리자가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발언인가.

 

수십 개의 동아리부서 중 외부로 나가는 부서는 단 5개 부서. 일만 원씩 5회 지급한다해도 연간 25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관리자(주로 교장)들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닌 경우에도 다반사로 출장을 다닌다. 심하게는 국내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학생들을 응원하러 간다는 명분하에 출장비를 이용하여 다녀오기도 한다. 그게 어디 1~2만 원만 들겠는가. 교장 한 사람이 쓰는 출장비가 수십 명의 전교사가 쓰는 출장비와 맞먹는다는 말들을 한다. 정확한 내역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관리자만 알 뿐이다.

 

귀찮아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깟 만 원' 안 주면 안 주는가보다 하고 쉽게 잊어버리는데, 나는 그게 안 되었다. 지난 15년간 단 한번도 의심없이 받아온 건데 이걸 못 받다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차차 분노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교무부장한테 부당함을 얘기했더니 교무부장이 교감에게 전달했고 그에 나온 대답이 '형평성에 어긋남'이라는 무성의한 단 한 줄의 초라한 답변이었다. 영혼없는 답변 한 줄을 들으려고 밤새 고민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의 권익을 다루는 사이트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찾아내서 프린트했다. 학교 상황에 따라 출장비를 줄이거나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학기초부터 출장비를 예산에 넣지 않는 것은 학교장의 재량권 남용이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장에게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라고 하는데 그게 용이치 않을 경우 시교육청의 고충처리위원회에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인쇄물을 점심을 먹고 있는 교감(나보다 두어 살 위)에게 불손하게 들이밀고, 며칠 후 급기야 교장실에 들어가 출장비 미지급의 부당함을 하소연했는데...내 행동이 오만불손했던가.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절차를 밟고 오십시오.' 절차라 함은, 교무부장→교감→교장이라는 위계 질서대로 문제를 제기하라는 것이다. 교장인 자신한테 오기 전에 교감을 먼저 만나야지 직접 교장한테 오면 중간관리자인 교감의 위치가 난처해진다는 설명이다. 어? 내가 실수했나? 이미 교무부장, 교감한테 할 말은 다 했는데...권위가 밴 교장 앞에서 나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나이로 치면 기껏 5~6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저 표정에 담긴 단호한 표정은 뭐지? 내가 당신의 심기를 건드렸소? 출장비를 마음대로 남용할 수 있는 당신의 권력에 감히 태클을 거는 내가 무례하게 보였소? 교장실을 쫓겨 나오면서 속으로 분노의 눈물을 흘렀다. 교장이란 존재에게 감히 말을 걸면 안되는구나.

 

그러고 이틀 후. 금요일마다 열리는 기획회의에 이 안건이 올랐다고 한다. 이미 관리자들은 해답을 내놓았을 텐데 그래도 명분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해서 드디어 출장비 1만 원을 받게 되었다.

 

전교조선배교사들이 그런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웃긴다'고. '그렇게 혼자 덤비지 말고 여럿이 함께 해결하자'고. 이런 선배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그렇게 혼자 씩씩대지는 않았을 텐데. 싸움에도 전략이 필요한데 나는 생초보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좀 겸연쩍어하는 나를 보고 선배교사들은 '큰 일을 해냈다' 며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내 나이에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교사들 여럿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게 기쁘다. 나도 후배교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싸우는 게 싫다. 싸우는 건 내 체질이 아닌데,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나는 가족과, 하나는 학교관리자들과.

 

시시껄렁한 책이나 읽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손으로, 발리 BOOK + 내 손으로 NOTE 세트 - 전2권 (도서 + 노트) -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 내 손으로 시리즈
이다 지음 / NEWRUN(뉴런)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온갖 첨단과 스마트가 난무하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듯하지만, 어느 한 구석에선 지극히 소박하고 느린 것들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나마 숨통이 되어주기도 한다.

 

레디메이드한 세상에 진저리를 치며 스스로 집을 짓고, 재봉틀이나 뜨개질로 손수 옷을 해입고, 자급자족을 위해 작물을 직접 재배하는 느린 삶들이 세상의 한 축을 이루며 오히려 각광받는 그런 시절이 오지 않을까.(지금보다도 더.)

 

세상의 한쪽이 극으로 치달을수록 나머지 한쪽도 스스로의 균형을 위해 극으로 향하게 되지 않을까.

 

이 작은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손때가 묻어있는 듯한, 내 친구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아주 원시적이고 소박한 책인데 의외로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손글씨가 주는 사람냄새가 참 좋다. 늘 익숙한 폰트에서 해방되고, 때로 실제보다 뛰어난 착시를 안겨주는 카메라 사진에서도 해방되니 사람의 숨소리를 옆에서 듣고 서로 눈을 맞추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발리. 옛 전통적인 삶의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는 발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는 이런 수공업적인 형식이 참으로 적절하지 싶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온갖 정보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세상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시콜콜한 정보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고 숨 쉬고 있다는 현실감각이 아닐까. 지금과 같은 스마트한 세상이 심화될수록 이런 책이 더 극단으로 흘러서 지은이가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린 책들(인쇄본이 아닌)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날이 오지 않을까도 싶다.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그림을 그려볼까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