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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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요하고 소복하게 쌓이는 첫눈 같은 문장들. 기분좋게 젖어드는 이슬비 같은 분위기. 겸손하고 조곤조곤한 어투 속에 숨겨진 단단한 목소리. 황정은 작가를 몰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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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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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베토벤 같은 아고타 크리스토프. 직설적인 펀치 같은 문장, 빠르고 거친 호흡. 찡한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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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을 읽다가...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에게 지우는 학습노동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앞에 공자님 말씀을 들어 “얻는 게 없다”고 했는데, 지배세력에겐 이로운 부수적 효과가 적어도 두가지 있다.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으로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비판의식과 계급의식은 형성하지 않은 채 등급과 석차로 서열을 규정함에 따라 머리 좋거나 경제력 있는 부모를 둔 학벌 엘리트집단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그 둘이다. 총총한 눈빛의 아이들 앞에서, 참된 교육자라면 이와 같은 교육 현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5242.html#csidxc41abc06ed4831b88e71a0feeef12af

 

 

무자비한 학습노동은 성찰없는 성실성을 몸에 배게 한다.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으로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익숙'하게 되는 성실성이 어려서부터 착실하게 몸에 밴다. 성실성에서 벗어나면 세상에서 도태된 것 같은 위기의식이 생길 정도로 성실성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의 교육현장에선 성찰없는 성실성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트기 어렵다. 무자비한 학습노동에 매몰되어 매 학년 매 과목마다 등급과 석차로 서열을 규정 당하기 때문에 계급의식이나 비판의식이 싹틀 여지가 없다. 자신에게 매겨지는 등급과 석차에 심신이 피폐해지지 않을 수 없다. 등급과 석차에서 밀리면 자연스럽게 패배감과 더불어 복종이 자리잡는다. '머리 좋거나 경제력 있는 부모를 둔 학벌 엘리트집단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복종심을 키워주는 게 등급과 석차이다. 세상은 이런 등급과 석차를 이용해 서로를 경쟁시키고 이런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통제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길들여진다. 점수가 매겨지는 것에 쉽게 순응하게 된다.

 

 

 

이곳 알라딘에서도 해마다 등급이 매겨진다. 한 해에 읽은 책의 권수로,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단 횟수 등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는 리뷰를 올릴 때마다 읽은 책에 대한 등급을 매긴다. 책이 훌륭하건 그렇지 않건 모든 책은 지은이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분신과도 같은 것인데 거기에 감히 점수를 매긴다. 그것도 아주 손쉽게 클릭 한두 번으로. 매우 불쾌한 일이다. 저자들은 분명 별의 갯수에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등급과 석차에 묵묵히 견디는 이런 인내심에 한번쯤 딴지를 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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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이번엔 강화도 전등사. 멤버는 지난번 선암사와 똑같다. old friends.

템플스테이의 꽃은 무엇일까? 내 생각엔 108배가 아닐까 싶다. 녹음된 멘트를 따라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다보면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 기분도 느끼게 된다. 그 멘트 원고를 올리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참회와 모든 감사와 모든 기쁨을 표현한 듯 한 구절 한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 템플스테이도 기다려진다.

친구들아, 부탁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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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4: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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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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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후지와라 신야의 이런 책은 출간되자마자 무조건 구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다렸다. 도서관에 왔다갔다 해보면 언젠가는 만나리라. 나보다 발 빠른 누군가가 분명 신간구입을 신청했을테니 나는 그저 몇개월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남보다 먼저 구입하고 서평 대강 올리면 Thanks to 같은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겠으나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흠, 내가 어쩌다 이런 살림꾼이 되었나 모르겠다.

 

 

 

각각 1993년, 1994년에 출간된 초판본이다. 영혼으로 읽었다면 과장이려나. 이 책 이후로 인도에 관한 책을 백여 권 넘게 읽었으나 '언제나 마음은 고향' 같은 책은 바로 이 두 책이다. 누구에게도 빌려줄 수 없는, 고이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지금도 저 <인도방랑>을 펼치면 마음이 저릿저릿해진다. 그러니 저 책을 쓴 후지와라 신야는 내게는 여행의 스승과 같은 사람이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나도 변했다. 절대적인 스승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다니...기껏 빌려서는 꼼꼼하게 읽지도 않다니. 그러나 단 몇쪽만 읽어도 기분이 충만해지는 책도 있는 법. 이 책 또한 그러하다.

 

노승의 입에서 두 번째 도주승의 이름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산사에서 도망치는 승려가 많으리라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달아난 사람이 더 있었군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이 절에서 40년 가까이 사셨는데, 그동안 달아난 스님들의 얼굴을 기억하세요?"

노승은 눈을 감았다. 조금 있다가 왼손에 쥔 염주를 돌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을 외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사람의 이름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도주승의 이름을 기억해낼 때마다 염주 알을 하나씩 돌렸다.

노승은 무서울 만큼 기억력이 좋았다.

과거 40년 동안 이 절에서 도망친 승려의 이름을 모조리 외우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이름을 빌린 훈계의 독경처럼 들렸다.

도주승의 이름은 물론이고 나이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노승은 내 눈앞에서 염주 알을 다시 헤아려보였다. 염주 알은 전부 서른여섯 개였다. (287쪽)

 

인도의 북부, 히말라야에 있는 라다크 지방. 그곳에서도 외지인이 쉽게 갈 수 없는 깊은 산사에서의 일화 부분이다. 여행사를 통해 라다크를 다녀와도 제법 우쭐해지는데 이 양반은 홀로 여행의 끝까지 파고들어간다. 그의 여행 방식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여행. 그리고 떡하니 풀어놓는 위와 같은 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책이 손에 안 잡힐 때, 마중물로 읽기에 좋은 글이다. 조금만 맛을 봐도 정신이 맑아진다. 나에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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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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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 2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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