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 문정희 산문집
문정희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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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의 산문집이다.

 

이 책을 알게된 것은 지난 추석 연휴 때 강원도로 가는 승용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어쩌다 듣게 된 라디오 방송이 신선했고 직접 출연한 문정희 시인의 육성이 인상적이어서, 연휴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서 이 책을 주문했다. 그 책을 이제야 읽었다.

 

이 책에는 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페이지 마다 가득 담겨있지만, 나는 그의 시 보다 세계 이곳저곳을 다닌 여행자로서의 면면에 더 호기심이 일었고 몹시 부러웠다. 각종 세계시인대회나 작가대회에 참석하고 다른 나라의 문학촌에서 글을 쓰고...선택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자랑이 좀 지나치다 싶지만.

 

그러나 이 산문집을 그렇게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어리석은 일. 한 원숙한 시인의 인생 이야기는 때로 감동으로, 때로 놀라움으로, 때로 부러움으로...다양한 변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 겨울 밤에 딱 어룰리는 책이다. 이런 고즈넉함을 단순하게 즐기기에 그동안의 내 일상은 너무나 피곤하고 사람에게 지쳐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들은, 솔직히 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박하다면 소박한 문장들이다. 이를테면,

 

p.35...분명한 것 한 가지는 생애를 통하여 오늘보다 더 젊은 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슬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나이의 수치만큼 정신이 함께 성숙하지 못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p.201...사춘기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세상을 사는 노하우를 좀 터득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세상을 사는 노하우는 없는 것이었다. 어린 그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매순간 두려움 앞에 서는 것은 똑같았다. 어떤 일 앞에서 서툴고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이유는 나이의 연치만 많아졌을 뿐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인생은 완성을 향해 걸어가는 지난한 과정이 그 전부가 아닐까 싶다.

 

별 특징없는 이런 소박한 문장들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시구들 중 한 편 쯤 베끼고 싶었지만, '세상을 사는 노하우는 없는 것이었다.' 한 문장이 내게는 그 어떤 시 보다 마음으로 다가왔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사람도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고, 날마다 새로운 상황에서 대책없이 흔들리다보니 '세상을 사는 노하우'를 아예 떠올리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인용된 릴케의 시처럼,' 누가 승리를 말할 수 있으랴-극복이 전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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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키 동남아 - 사랑과 행복의 상징 두리안을 찾아 떠나는 힐링 로드
김이재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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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지역을 공부한 사람이 쓴 책으로 '사랑과 행복의 상징 두리안을 찾아 떠나는 힐링 로드'라는 부제처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행복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매우 밝고 따스하고 그리고 행복하다. 동남아지역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진다. 나도 이 중의 몇 나라를 잠깐씩 가보긴했었지만 이런 성찰까지로는 이어지지 못했는데, 역시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다르구나 싶다.

 

더군다나 책이 술술 잘 넘어간다. 내용도 좋고 읽기도 편하다. 학술적인 면으로 치우치지도 않았고, 재미 위주의 가볍기만한 글도 아니어서 책장을 넘기다보면 저절로 미소를 짓고 행복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지역안내서로는 참 적절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나라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 하나가 인상적이었는데, 태국의 '싸눅Sanuk'이나 필리핀의 '바랑가이 Barangay'가 그렇다.

 

먼저 싸눅: P168...태국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싸눅'을 중요시한다. 싸눅의 사전적 의미는 '유쾌하다', '즐겁다', '재미있다', '행복하다' 정도인데 태국 문화 속에서 싸눅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엄청난 자연재해를 당하고 어려움이 닥쳐도 태국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고 현재 상황에서 최대한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다.

 

필리핀의 '바랑가이'문화: p218....바랑가이란 친족관계를 기반으로 한 끈끈한 운명 공동체로, 필리핀 문화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다.... 끈끈한 연대의식에 기초한 바랑가이 문화ㅏ는 필리핀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필리핀에서는 바랑가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내가 속한 조직에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하지만, 그보다 규모가 더 큰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소속감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편협한 바랑가이 연고주의는 외부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통일된 힘을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되었고, 스페인과 미국이 쉽게 필리핀을 정복하고 통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p.242...내 가족, 내 바랑가이만 챙기는 식의 협소한 공동체 의식은 필리핀 사회의 모순을 심화시킨다. 미국식 자유 시장 경제 체제 아래서, 공약의 실천보다는 개인의 인기가 중요한 선거제도가 필리핀 특유의 바랑가이 문화와 결합하면서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더욱 공고해졌다.

 

이 외에도 필리핀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개된 '피에스타(축제)', 발룻(음식)이나 국민 영웅 호세 리잘 , 국민 작가 시오닐 호세 등 술술 읽히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보면 한 나라가 쉽게 파악된다.

 

이렇게 소개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한결 친근하게 다가오고 그동안 알게모르게 지녀왔던 어떤 편협한 시각을 반성하게 한다. 뭐든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동남아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을 지닌다면 동남아 여행도 한층 깊이를 더할 터, 동남아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책부터 읽어야할 것 같다.

 

하나 더. 영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들어보시길.

 

p. 240...국민들이 영어만 잘하면 취직도 잘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국가의 존립에 있어 양날의 칼이다. 국민들이 조국을 사랑하면 영어를 잘하는 애국자가 되지만, 반대로 조국을 싫어하면 영어를 무기로 언제든 모국을 떠날 수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국적은 평생 바꿀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똑똑하고 영어 잘하는 국민은 자신이 살고 싶은 국가를 선택하여 얼마든지 국적을 바꿀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어느 날 갑자기 현실로 다가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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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넘은 노모가 요양원에 계신다. 어제는 보름만에 엄마를 뵈러 갔다.

 

날이 날이니 만큼 투표 얘기가 나왔는데, 엄마가 투표를 하셨다는 거다. 엉? 어떻게?

 

부재자 신고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가 요양원에 계신 걸 어떻게 알았는지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큰오빠한테 필요한 서류 등을 요구하더란다.

 

이 빈틈없는 행정이라니.....나라가 노인들을 이렇게 보살피고 있었다니...

 

우리 형제들은 모두 초록은 동색이었다는 것을 들으신 엄마 왈,

 

 "2번은 이름이 뭐냐?"

 

우리 엄마는 당신만 홍일점이라는 사실을 아시고 매우 서운해 하셨다.

 

우리 엄마도 투표하실 거라는 생각을 왜 진작 못했는지...

 

우리 엄마는 당신만 홍일점이라는 사실 보다도 아무도 2번 이름을 말해주지 않은 사실에 더 서운해하셨을 지도 모른다.

 

혹 옆 침대에 계신, 나라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할머니들은 알고 계셨을까?

 

엄마, 무시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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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로드 - 한국의 첫 요하네스버그 특파원 리포트
김민철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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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으로 여행 가고픈 생각은 없다. 남편은, 텔레비전에서 다른 나라 장면만 나오면 내가 (어린아이처럼)가만히 집중해서 시청한다고 놀리듯이 말하지만 그 모든 나라에 다 가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할 뿐이다. 남아공도 그렇다.

 

특히 '한국의 첫 요하네스버그 특파원 리포트'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처음으로 한 나라를 소개하는 일은 참으로 신바람날 터. 그 신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특파원 리포트'이다 보니 책이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넬슨 만델라를 선두로 한 남아공의 파워 엘리트 소개도 그렇고 남아공을 이끄는 파워그룹 소개도 그렇다. 살랑살랑 페이지를 넘길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들 일은 아니지 싶다.

 

그렇다고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다. 인물이 나오면 인물을 따라가면 되고,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나오면 그냥 줄거리 위주로 읽으면 되고, 변화하는 남아공에 대한 설명은 대충 읽어도 이해 못할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첫' 책에서 느끼고 싶은 가슴 뛰는 재미나 흥미가 별로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은 마치 텔레비전의 <세계는 지금>같은 프로그램을 책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부록으로 실린 남아공 여행 관련 꼭지도 여행지 소개치고는 좀 건조한 편이다. 

 

내가 그간 여행기를 너무나 많이 읽어대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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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영어 사전 - The Story Dictionary of English Etymology 교양 영어 사전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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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를 들어 piggy bank에 관한 부분을 읽어보자.

 

p.531  piggy bank(돼지 저금통)도 pig와는 아무련 관련이 없는 단어다. 15세기 도공들은 pygg라 불리던 진흙으로 단지(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들을 만들었다. 가정주부들은 이 단지를 곧잘 푼돈을 넣어두는 저금통으로 이용했는데, 이를 본 도공들은 1800년대부터 pygg에서 pig를 연상해 실제 돼지 모양의 저금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중엔 무엇으로 만들건, 설사 돼지 모양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린이들이 저금을 하는 통을 piggy bank라 부르게 되었다.

 

영어관련 직업을 갖고 있거나, 영어를 무지무지 좋아해서 어떤 단어에 대한 내력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은 좋은 참고서적이 될 터이다.

 

그러나 오래된 낡은 표현들도 많고(교무실 옆 좌석의 영국인 원어민이 슬쩍 보더니 그렇다고 한다), 일상적인 용도보다는 학구적인 면이 강한 이 책은, 시간이 넉넉하고 영어에 흥미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좋은 읽을거리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내용보다 책 값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영어전공자도 아닌 분이 이런 사전을 썼다는 사실은 대단하다. 감히 흉내내기 힘든 작업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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