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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의 바라나시, 너의 바라나시

   몇 번의 여행에도 도대체 면역체가 생기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라나시의 릭샤왈라들이다. 바라나시 정션역에서 부터 따라붙은 두 명의 릭샤왈라들에게 끌려 다니다시피 몇 개의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를 자의 반 타의 반 둘러보는 일은 악마의 유혹에 끌려 다니는 것이 이럴까 싶게 끔찍하고 치가 떨리는 일이다.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해보고 싶거든, 사는 게 너무 따분하고 시시하게 여겨지거든 한 번 바라나시의 릭샤왈라들과 대결해 보시기를 권한다. 그악하기 그지없는 세계를,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니까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아귀다툼으로 살아들 가겠지만, 그래서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이성적인 납득이야 가지만, 한 번 부딪혀보시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0여 년을 이어온 고대 도시의 모습을 이번 여행에서야 어느 정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지난 두 번의 방문은 여행사의 단체배낭프로그램에 합류해서 왔었기 때문에 우선 숙소부터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떨어졌었다. 이곳에서 종종 발생하는 불미스런 일 때문에 지금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곳이긴 하지만 예전과는 분명 다른 점을 내 경험해보리, 다짐을 하며 갠지스강변에 있는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끈질긴 릭샤왈라들에게 몇 군데 끌려 다닌 후 윽박질러서 겨우 내 뜻으로 찾아간 곳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구미코하우스’라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곳에는 인도 악기를 배우는 여행자들이 거의 상주하고 있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는 내가 새삼 무슨 악기를 배우겠는가? 주로 도미토리로 운영되는 이곳에서 하루 이틀 묵으며 음악에 몰입한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저 인도 음악에 젖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개별 배낭 여행자들(특히 일본인)에게 인기 있는 이곳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달랑 침대 두 개와 바닥에 깔고 자는 매트리스 몇 개가 남았을 뿐이었다. 침구 상태도 엉망이었다. 비좁은 것은 시커멓게 때에 쩐 것에 비하면 흠도 아니었다. 아그라행 야간 침대 버스의 매트리스가 더 좋았다고나할까. 아, 그래도 좋다. 젊은 애들이 넘보기 전에 얼른 ok를 하고는 남편과 딸아이의 허락을 구하기 위해 방을 보여주었더니, 아, 이 원망의 눈초리!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로비로 쓰이는 방 한가운데서는 old lady 어쩌구 하는 그네들의 소리도 들려온다. 나를 두고 한 얘긴가? 포기다.

   강변에 위치한 호텔 중 제일 깨끗해 보이는 호텔(‘시타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가 제일 전망 좋은 방을 얻는다. 양 면에 창문이 달려있어 창을 열면 그대로 갠지스강이고 쪽문을 열고 나가면 그대로 발코니여서 가트(강변을 따라 형성된 계단)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갠지스 일출을 방안에서 볼 수 있다니 이 웬 호사이랴, 후훗. 호텔에 딸린 식당에서의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지나고 보면 귀여운 일이고...첫날 밤 9시 무렵, 술이나 한 잔 할까하고 어렵게 구한 술을 들고 가서 안주삼아 계란 프라이를 시켰더니 늦은 밤인데도 귀찮아하지 않고 one side or two side..하며 열심히 주문을 받기에 좀 미안한 감이 들기도 하여 마음 좋은 남편은 그 중 나이 먹은 직원에게 인심 좋게 술도 권했다. 얼마 후 내 온 계란 프라이. 삶은 달걀을 종으로 반을 잘라 살짝 기름을 두른 희한한 모양새인데 언제 삶아놓은 달걀인지조차 의심스럽고, 헛헛헛, 헛웃음이 나오는 데 이 녀석들 낄낄거리면서 이게 인디안 스타일이라는 거다. 다음 날 주인장한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얘기했더니 미안해하면서 그래도 자기네 식당을 이용해 달라기에, 난 당신네 직원들 싫어서 이용하지 않을 거다, 라고 했더니 남편은 뭐 그런 얘기까지 하느냐고 한다. 마지막 날 체크 아웃할 때, 술을 한 잔 얻어 마셨던 그 직원이 사과를 해온다. 농담이었노라고. ‘너희는 손님한테 농담을 그런 식으로 하냐?’고 싶었지만 “한국에 가면 우리 호텔 홍보 좀 많이 해 주세요” 하며 미안해하고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정말 진지하게.




   핵심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내가 생각한 바라나시의 핵심은 화장터도 아니고 힌두교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강물도 아니다. 바로 수백 년 간 이어져온 골목길이다. 예전에 왔었을 때는 한낮에도 혼을 빼놓을 정도로 비좁고 더럽고 으스스하던 미로 같던 골목들, 한 번 미궁에 빠지면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던 그 골목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고 사람도 눈에 들어온다. 난데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 자신감을 바탕삼아 마지막 날 밤에는 전통 공연장을 찾아갔다. ‘International Music Centre Ashram'. 세계적인 여행 안내서인 <Lonely Planet>에는 소개가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여행자들 대부분이 들고 다니는 <인도100배>에는 소개가 되지 않아서인지 수십 명의 관객 중에 한국인이라고는 우리뿐이다. 골목에 있는 작은 악기점에서도 악기를 배우고 있는 한국인들이 종종 눈에 띄건만 이 동네에서는 너무 흔한 공연이어선 지도 모르겠다.

   100줄이 넘는 현으로 이루어진 산뚜르(Santoor), 몸체가 나무로 된 오른쪽 북 다얀(dayan)과 금속으로 된 왼쪽 드럼 바얀(bayan)으로 구성된 타블라. 생소한 산뚜르가 내는 지루하고 졸린 듯한 연주도 타블라 주자의 빠른 손놀림과 왼쪽 드럼에다 손바닥을 북북 문지르는 야릇한 음색이 더해지면 묘한 음악적인 분위기에 빠져든다. 1부가 끝나고 시작된 2부는 카탁(Kathak) 댄스로 주로 북인도의 궁정에서 공연되었다는 전통 춤이다. 춤을 추는 무희는 10대 중반의 소녀로 딸아이 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인다. 어쩌다 한국에서 보았던 연륜 있는 춤꾼에 비해 춤사위가 날렵하고 경쾌하고 분명하다. 타블라 주자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연이 잠시 펼쳐진다. 예를 들어 타블라 주자가 10박자의 리듬을 연주하면 무희는 그 10박자에 대응하는 춤사위를 발로 두드리는 식이다. 타블라와 겨루는 발 춤사위가 기가 막히게 흥겹고 얼마나 멋진지 딸아이는 넋 놓고 지켜보다가는 몇 번이나 혀를 내두른다. 놀랍다는 표정이다. 2시간 남짓 공연을 보고 나니 밤 10시, 미로 같은 골목을 빠져 나오며 딸아이가 던지는 한마디가 나를 고무시킨다. “나도 타블라 한 번 배우고 싶어.” 7살에 시작한 피아노를 단 2개월 만에 “피아노 계속하면 나,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하면서 손을 놓고 말았었다. 왼손잡이인 딸아이에게는 참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음악의 아름다움에 젖어 보기도 전에 기능부터 익히도록 하여 음악을 멀리하게 만든 결과가 되어 버렸었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바라나시 시장에서 인도 옷 한 벌을 사는 데 한마디의 영어도 필요하지 않았다면 믿어지려나. 호객 행위부터 흥정까지 우리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잘 구사하는 인도인 옷가게에서 옷 한 벌을 사들고 나오면 이상한 성취감에 빠져든다. 미처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우리말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어디가요?” “릭샤 필요해요?” 걸음을 떼놓기가 무섭게 들이대는 “어디가요?”에 질렸는지 한 번은 딸아이가 묻는다. “우리가 어디 가는지 알아서 뭐해요?”를 영어로 어떻게 하냐고. 영어 문장을 알려 주었더니 열심히 외운다. 한 번도 써먹지 못해 다행이긴 했지만. 해외 여행가서도 영어 대신 우리말을 사용한다면 영어 배워 뭣하지? 이곳 북인도만 해도 지천에 널려 있는 게 한국 식당인데-드물긴 하지만 어느 거리 식당에서는 한국어 메뉴판도 있다- 머잖아 이곳처럼 한국어가 많이 쓰인다면? 죽도록 영어 배워 몇 마디 써 보는 것보다 국력을 길러 외국인들로 하여금 우리말을 배우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해묵은 해법이 머잖아 가능해지지 않을까? 앵무새식 영어 배우기에 심신이 거덜 난 나는 여기 바라나시에서 잠시 행복한 영어를 꿈꿔본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이따금 딸아이와 남편이 한마디씩 거들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남편은 인도의 현실에 자못 비판적이다. 첫날 델리에서 부터 그랬다. 인간 대접도 못 받는 사람들, 돈 앞에서는 비열할 대로 비열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들, 아귀같이 서로 등쳐먹는 사람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불쌍한 거지들을 보고는 경악했고 인도라는 나라에 오게 된 걸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에게는 ‘인권’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예의’ 라는 표현은 너무나 점잖은 표현이었다. 때로 동정이 지나쳐 화를 낼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있을 수 있냐고, 이런 나라가 그렇게도 좋으냐고도 물어온다. 여기 바라나시에서도 그랬다. 골목 탐험을 완성한 나는 바라나시를 정복한 양 들떠 있는데 남편은 강변에서 본 쓰레기 처리 장면을 끝내 이 이야기에 덧붙여 달란다. 양수기로 강물을 퍼 올려 한군데에 쌓아놓은 온갖 쓰레기를 강물로 밀어 넣던 장면을 꼭 넣어 달라고 한다. 그에게는 거의 다 타서 머리와 다리만 삐죽 남아있는 화장터의 시신이나 강물에서 신성한 목욕을 하는 사람들보다, 이 쓰레기 처리 장면이나 강변을 향해 맨 엉덩이를 내밀며 큰일을 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인도의 현실을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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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꾸는 나라

   아그라. 타지마할. 인도인 입장권 10Rs. 외국인 입장권 750Rs. (1Rs는 약 25원). 샤자한. 뭄타즈 마할. 건축 기간 22년.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한 유폐와 아그라성에서 보낸 권력자의 쓸쓸한 말년. 타지마할 주변의 ‘타즈 간즈’라는 여행자 거리를 접수한 부지기수의 인도판 한국 식당들. 투숙객 대부분이 한국인 천지인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새벽 서 너 시에 듣게 되는 정겨운 콩글리쉬 발음.

   이것이 그 유명한, 인도를 상징하고 있는 타지마할에 대한 설명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들이라고 우긴다면 절세의 미인 타지마할은 무척이나 섭섭하겠지?  더욱 섭섭한 얘기지만, 나는 타지마할을 보러 가지 않았다. 그것도 타지마할을 제외하면 별달리 볼 것 없는 아그라에서.

   14년 전(1994년)의 첫 인도행은 가슴 떨리는 미지의 이상형과의 불꽃 튀는 만남이었다. 인도는 내가 한국인임을 모른다. 한국이 어느 곳에 있는 지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인도의 모든 것을 숨 막히게 빨아들였다. 맨발의 사원 입장, 흐드러진 부겐빌리아, 깊은 우물 같은 인도인의 커다란 눈. 현란한 색채의 시크교 터번, 셀 수 없는 무수한 힌두교 신들, 석가모니의 발자취, 끝도 없는 지평선, 길지 않은 형광등 두 개로 이루어진 시골길의 쓸쓸하고도 외로운 가로등...허름한 식당의 조악한 냅킨 한 장, 반 쯤 찢어낸 각종 입장권이나 휘갈겨 쓴 영수증 한 장. 모두가 소중한 기념품이 되어 앨범 속에 곱게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었다.

   7년 전(2001년)의 두 번 째 인도행은 첫사랑의 달콤함을 끝내 못 잊어 찾아 나선 여행이었다. 이제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준다. 잘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팁이라도 두둑이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시신이 안치된 진짜 석관과 가짜 석관을 두루 보여 주었던 첫사랑은 간 데 없고 비싼 입장권을 통해서 내가 한낱 이방인임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3년 전(2005년)의 남인도.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그래도 첫사랑이잖아. 네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찾아내서 내 첫사랑을 다시 확인할거야. 역시 네 품은 다양해. 미안해. 역시 너는 품이 넓어. 다시 시작하자. 그런데 내가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그리 관심 없어하면서 우리나라와 인도의 환율을 궁금해 하던 너. 환율 덕분에 인도에 올 수 있는 우리들을 부러워하던 너.

   2008년. 네 번 째 인도. 내 사랑하는 가족이야. 내가 너를 지켜보았듯 이제는 나의 가족을 지켜봐 줘. 오고 가는 정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너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아,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 몇 번씩이나 와서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국인을 만나면 나눠주리라 하던 소주는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고 길을 잃고 헤맬 때는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길을 물어보면 되는 지금의 네 모습을 보며 옛날을 그리워하면 그건 내 욕심이겠지. 

   우다이푸르가 나를 역사적인 진지함과 숙연함으로 힘들게 하더니 아그라는 나를 철학적으로 고문한다. 노른자 빠진 달걀 프라이 같은 아그라. 남편과 딸아이에게 타지마할을 꼭 보여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16시간 동안 추위와 사투를 벌이면서 밤새 버스로 달려온 내게 이 고갱이 빠진 사색은 너무 한 것 아닌가? 아, 이 침대버스란 놈! 낡은 대로 낡고 먼지 풀풀 나고 모래 버석거리는 매트리스가 압권인 이 녀석! 1층은 좌석이고 다락같은 2층이 침대칸인데 처음 딸아이와 나는 2인실에, 남편은 통로를 사이에 둔 맞은 편 1인실에 각각 배정 받았는데 너무 추워서 우리의 2인실에 남편이 합류하여 셋이 꼭 껴안고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창가에 자리 잡은 남편은 하마터면 동사할 뻔했다. 속옷에 부치는 1회용 1,000원짜리 온찜질팩 덕분에 겨우 눈을 부칠 수 있었다는 남편. 남편은 그날 밤 유물론적인 꿈에 시달렸을까 실존론적인 꿈에 시달렸을까? 여행 내내 어지러운 꿈자리를 호소하던 남편은 인도를 ‘꿈꾸는 나라’라고 불렀다.

   그래도 남편과 딸아이는 이 아그라가 좋단다. 타지마할 때문에? No! 바로 ‘Planet Hollywood'라는 거창한 이름의 아주 작은 식당이 있어서다. 가이드북에는 눈 비비고 찾아도 나와 있지 않은 곳으로 우리가 묵은 ’Hotel Raj'라는 게스트 하우스 바로 앞에 있었다. (아마도) 시크교도인 인상 좋고 과묵한 50대 후반의 주인아저씨의 말없는 환대와 가정식 백반 같은 깔끔한 음식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편안하여 아그라에 머무는 동안 단골 식당으로 드나들다 보니 정이 들었나보다. 이곳에서 먹은 버섯 스프로 입맛을 찾은 딸아이는 이제 완전히 몸이 회복되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하루 정도 묵을 뿐인 아그라에서 우리는 이틀을 묵으면서도 떠나기가 아쉬웠다. 하루 이틀 더 묵으면 식당 안쪽으로 보이는 주인아저씨의 살림집도 구경하고 대화도 좀 나눠보련만,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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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기행문

                                                                    




◉여행기간: 2008년 1월 14일~2월 8일

◉일정:델리(2박)-기차1박(12시간)-우다이푸르(3박)-버스1박(16시간)-아그라(2박)-기차1박(13시간)-바라나시(3박)-보드가야(2박)-기차1박(기차2회,지프)-다즐링(3박)-버스1박(14시간)-콜카타(4박)-기내1박




1.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소주병 7병을 가지고 갔었다. 오랜만에 우리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워할 우리 동포를 만나게 되면 함께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그들의 향수병을 달래주리라 생각하면서 가지고 간 술이었다. 우다이푸르의 ‘랄 가트 게스트 하우스’에 함께 묵게 된 젊은 20대 한국인 커플에게 1병을 주는 것 외에는 우리의 소주는 그다지 소용에 닿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무게였다. 여행 중의 배낭 무게는 무겁건 가볍건 그대로 인생의 짐이기에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일 량으로 하루는 남편은 남은 소주를 모두 털어 넣자고 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과 야외 발코니는 그 자체가 분위기 좋은 카페였고, 인도가 만만한 땅이 아니라는 걸 톡톡히 보여주었던 델리의 온갖 사기꾼들을 떠올리면서 안주를 대신했는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인도 여행은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 돌아가고 싶어.” 소주를 모두 비우고 잠자리에 누운 남편은 이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곧바로 잠에 떨어졌는데 나는 이후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청천병력 같은 선언은 “그래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혼자이고 싶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번 일정을 잡으면서 제인 먼저 염두에 둔 곳은 치토르가르였는데 그 동기는 한겨레신문에 실린(2007.12.27일자) 인도사학자 이옥순 교수의 글 때문이었다. 신문에서 오려내어 여권 사본 등과 함께 갖고 다니며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는, 이번 여행의 일정 선정에서 제 1순위를 제공한 그의 글을 그대로 적는다. 너무나 아름답기에.




때로 한 토막의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수백 년을 떠도는 로하르 부족의 이야기가 그랬다. 인도 서부를 여행하다가 마주치는 ‘영원한 방랑자’인 그들은 뿌리가 강해서 뿌리 없는 삶을 자처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약속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로하르 부족의 과거를 담은 치토르가르를 찾은 건 변화가 화두인 세상에 진저리가 나던 무렵이었다.

치토르가르는 평야지대보다 150m 높은 산정에 자리한 톱날 모양의 성벽을 가진 산성도시다. 놀이기구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듯 차를 타고 굽이굽이 돌고 돌아 견고한 일곱 개의 성문을 통과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황량한 치토르가르는 영화로운 과거를 증명하는 많은 유적을 품고 나를 맞았다.

8세기에 세워진 치토르가르는 성이 많은 라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슬픈 역사를 반복한 메와르 왕국의 수도였다. 메와르의 힌두 왕들은 ‘영웅본색’의 용감한 지도자였으나 우세한 이슬람 침입자들에게 패배했고 그 마지막은 1568년에 왔다. 무굴제국에게 승리를 내준 왕은 도주했다. 그리고 남은 군인과 여인들은 적에게 굴욕을 당하기보다 명예로운 자살을 택했다.

로하르 부족도 치토르가르를 탈환한 뒤에야 돌아오겠다고 왕에게 맹세하고 정처 없이 도시를 떠났다. 그때까지 절대로 영구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을 것이며, 동아줄을 써서 우물물을 긷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밤에는 촛불을 밝히지 않고, 침대에서 편히 잠들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왕의 고통과 왕국의 운명을 함께 한다는 의미였다.

왕은 끝내 치토르가르에 귀환하지 못했다. 그는 인근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죽었다.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약속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로하르 부족은 이후 다섯 가지 서약을 지키며 400년 동안 유랑하였다. 로하르 부족의 서약을 가슴 아프게 여긴 네루 총리는 그들을 설득하여 치토르가르에 정착하도록 도왔다. 맹세 때문인지, 유랑생활이 편해서인지 그러나 그들은 곧 유랑생활을 재개하였다.

본업이 대장장이인 로하르들은 농기구를 고치고 막노동을 하며 지금도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를 떠돈다. 여러 도시의 변두리에 천막을 치고 잠시 거주하는 그들은 이동이 어려운 우기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 쉬운 한 장소에서 지낸다.

방금 전의 약속도 깨는 세상에서 4세기 동안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지키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옛날의 그 땅이 아니라고 가지 못하는 그들의 고향을 두 번이나 찾은 이방의 나는 무상한 세상에서 항상 그대로인 것이 그리울 때마다 그들을 떠올린다.

치토르가르의 성채는 비장미를 가진 남성적인 모습이다.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덜 매혹적이지만 로하르 부족의 일편단심이 향하는 웅장한 치토르가르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엄숙함을 일러주며 오늘도 너른 벌판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사람은 시간을 기다리지만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로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접근해오는 릭샤왈라와 흥정한 끝에 터덜거리는 릭샤를 타고 도착한 치토르가르. 40대 중반의 이슬람 신자인 릭샤왈라는 관광지의 인도인답게 참 끈질지고 적극적이고 계산에 민첩하다. 얼마를 더 주면 자신의 훌륭한 영어로 가이드를 하겠노라고 자처하고 나서지만, 웬만한 설명은 가이북이면 충분하고 델리에서 당할 뻔 했던 사기꾼 때문에 한마디로 거절해버린다.

   이옥순 교수의 설명처럼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곳은 아니지만 ‘승리의 탑’이니 ‘명예의 탑’이니 무슨 궁전이니 그럭저럭 볼만하고 허물어져가는 잔해마저도 카메라에 담는다면 멋진 사진이 나올만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영화를 촬영하거나 광고 사진을 찍어도 멋지겠다’ 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들었다. 지난여름에 갔었던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오녀산성이 잠시 떠올랐다. 해발 약 820m 높이에 있는 곳으로 동명성왕의 호기로운 기세가 느껴지던 곳이었다. 물론 규모가 다르지만 높은 산정에 자리 잡아 한 왕국을 이루고 천하를 호령했던 그 용감무쌍하고 기세등등하던 영웅호걸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얼마 후 분명 처음 흥정할 때 치토르가르 지도를 보여주며 전체를 모두 아우르는 코스를 간다고 해놓고는 몇 군데 유적지만 둘러보고 다른 말을 한다. 다시 얼마를 주면 저 안쪽까지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로 안내하겠다고 하는데, 시시콜콜 따지기도 피곤하고 여기까지 와서 대강 보는 것도 그렇고, 결국 마지못해 그러자고 해놓고 따라가자니 속에서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런데 인적이 거의 없는 외길을 느린 속도로 가며 주변의 들판과 나지막한 언덕과 옛 저수지를 하나씩 천천히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그렇게나 매정하게 물리쳤건만 릭샤왈라 아저씨는 우리의 표정을 보아 가며 틈틈이 간단한 설명도 잊지 않는데 어느 순간, 진짜는 이런 외진 곳일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드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뚝 솟은 이곳 성채 절벽 아래로 펼쳐진 넓은 평야가 저 멀리 산 까지 닿아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게 바로 이거구나. 눈치 빠른 릭샤왈라 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이 들판이 옛날에는 전쟁터였다고 하는데,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오르는 아련함으로 눈물이 핑 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평야를 보고 목이 메이다니, 이옥순 교수의 애절한 위의 글이 아니어도, 치토르가르의 비극적인 역사를 몰랐다 해도 분명 솟아오를 눈물이었으리라.

   돌아오는 길. 치토르가르 버스 정거장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처음에 흥정한 금액 외에 좀 더 많은 돈을 우리의 릭샤왈라에게 주자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한다. 가이드 하겠다고 제시했던 액수 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애쓰던 우리의 릭샤왈라는 나중에 만난 어떤 릭샤왈라 보다도 더 친절하고 정직했다는 것을 여행이 끝날 무렵에야 알 수 있었으니 적어도 후회할 일은 남기지 않은 셈이 되었다.

    쿰발가르는 메와르 왕조에 있어서 치토르가르 다음으로 중요한 곳으로 15세기에 세워진 요새로 해발 1,100m고지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비상시에 왕들이 이곳으로 후퇴하던 곳으로 무굴황제 악바르의 연합군조차도 그 방어벽을 뚫고도 겨우 이틀간 겨우 버티었다는 곳이다. 다음 날, 예약한 대절 택시를 타고 쿰발가르라는 곳으로 향했다. 전 날 다녀온 치토르가르의 여운에서 미처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여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역시나 쿰발가르는 말 그대로 철통 요새였다. 해발 1,100고지 위, 둘레 36km 이르는 성벽. 그러면 뭐하나. 결국 1568년 패망한 메와르왕조는 마침내 치토르가르를 떠나 우다이푸르로 천도한다.

   그런데 쿰발가르의 성채에 오르는 가파른 길에서 딸아이의 걸음이 자꾸 뒤쳐진다. 힘들어하는 딸아이의 호소를 꾀병으로 생각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잠시 기분이 상한 아이를 다독이며 택시 기사와 약속한 시간을 10여 분 남겨놓고 짜이를 한 잔 마신 후 다시 라낙푸르를 향해 출발한다.

   라낙푸르는 자인교 사원이다. 15세기 메와르 왕조 시대에 지어진 대리석 사원으로 사원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1,444개의 기둥과 기둥에 새겨진 각기 다른 다채로운 문양으로 무척이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사원이지만 겉모양을 보아서는 그 호화로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숲 속에 파묻혀있고 하늘을 뒤덮다시피 한 까마귀까지 더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사원의 이런 모양새는 외적 형태보다는 내면의 풍부한 생명의 중요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남인도의 스라바나벨라골라의 자인교 성지와는 또 다른 자인교의 모습이다. 몇 개의 유명한 자인교 사원이 더 있다는 데 인연이 닿으면 자인교에 대해 집중 탐구를 해보리라.

   그런데 이렇게 멋진 사원을 단 5분 만에 보고 나와야했다. 딸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택시에서 쉬게 하고는 남편과 겨우 번갈아가며 보고 나와야했기 때문이다. 다시 우다이푸르까지 돌아오는 60여km는 좌불안석, 열이 펄펄 오르는 딸아이를 보니 여행은 무슨 여행. 여행 준비에 들떠 지내던 지난 몇 개월의 어리석음에 머리를 박고 싶은 심정이 된다. 다행히 네 자녀를 두었다는 55세의 친절한 택시 기사 아저씨의 배려로 우다이푸르의 한 소아과에서 의사의 진찰과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고 묵묵히 순서를 양보해 준 현지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딸아이는 그 후로 이틀을 꼬박 앓은 후에 회복할 수 있었고 우리 내외는 딸아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우다이푸르에서의 나머지 일정을 대신했다.

   인도 여행은 처음인 남편이 겪은 인도의 각종 부조리와 모순과 더러움과 차별로 마음이 상한 남편은 결국 여행 중도 포기 선언을 하고(취중이었지만), 특별한 원인 없이 사흘을 앓았던 딸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 만 으로도 내가 그간 가꾸고 지켜온 나의 왕국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기 보다는 여행이 잠시 흔들렸었다. 한 왕국의 눈부신 번영과 영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건재하고 있는 견고한 성채도 결국은 역사 속의 전설이나 옛 이야기가 되어버리듯 우리 가족의 여행도 결국엔 우리만의 옛 이야기가 되어 사진으로만 몇 장 남게 되겠지. 그나저나 집에 두고 온 베고니아 화분이 걱정스럽다. 물을 좋아하는 베고니아는 얼마 전 끈이 풀어진 강아지의 습격을 받고 이제 겨우 서너 장의 이파리로 안쓰럽게 재기하는 중이었는데 차라리 누구한테 맡길 걸 그랬나. 커다란 공중 정원 같은 치토르가르와 아무도 근접 못할 견고한 쿰발가르를 버려야만 했던 메와르의 슬픈 이야기에 겹쳐 집에 홀로 남은 베고니아가 자꾸 마음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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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because there is one great turth on this planet: whoever you are, or whatever it is that you do, when you really want something, it's because that desire originated in the soul of the universe. It's your mission on earth."

p.29  ".... I want to tell you a little story........A happiness is to see all the marvels of the world, and never to forget the drops of oil on the spoon.

p.125 ..happiness could be found in a grain of sand from the desert...because a grain of sand is a moment of creation, and the universe has taken millions of years to create it. Everyone on earth has a treasure that awaits him.

p.126  What you still need to know is this: before a dream is realized, the Soul of the World tests everything that was learned along the way. It does this not because it is evil, but so that we can, in addition to realizing our  dreams, master the lessons we're learned as we've moved toward that dream. That's the point at which most people give up. It's the point at which, as we say in the language of the desert, one 'dies of thirst just when the palm trees have appeared on the horizon.'

"Every search begins with beginner's luck. And every search ends with the victor's being severely tested."

The boy remembered an old proverb from his country. It said that the darkest hour of the night came just before the dawn.

p.130  ..teach me about alchemy..." You already know about alchemy. It is about penetrating to the Soul of the World, and discovering the treasure that has been reserved for you."

p.140  I learned the alchemist's secrets in my travels. I have inside me the winds, the deserts, the oceans, the stars, and everything created in the universe. We were all made by the same hand, and we have the same soul.

p.143 "This is why alchemy exists," the boy said. "So that everyone will search for his treasure, find it, and then want to be better than he was in his former life. Lead will play its role until the world has no further need for lead; and then lead will have to turn itself into gold.

"That's what alchemists do. They show that, when we strive to become better than we are, everything around us becomes better,too."

148 'Everything that happens once can never happen again. But everything that happens twice will surely happen a third time.'(Arabian prov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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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길을 가라> 서평단 알림
너만의 길을 가라 - 인생의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프랜시스 타폰 지음, 홍은택 옮김 / 시공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p. 176  인생의 목적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고, 그것은 감당할 만한 지출 수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나의 열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전체 3,489km의 절반인 1,720km 지점에서 저자인 프랜시스 타폰이 내린 중간 결산쯤 되는 결론이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저자의 이와 같은 생각을 구체적,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항목으로 정리해 놓았다. 처음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역자 홍은택이라는 이름이 주는 반가움으로 무척이나 기대가 갔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한겨레 신문 연재로 읽을 때의 설레임과 놀라움은 자연 그의 <블루아메리카를 찾아서>을 찾아 읽게 되어 미국이라는 그 심오한 (?) 나라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역서 중의 한 권인 <나를 부르는 숲>까지 내처 읽게 되었다. 작년에 읽은 <블루아메리카를 찾아서>를 나름 역작으로 여기고 주위에 계속 권하고 있는 터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서 흥분에 들떠 읽어 나갔다.

  처음의 기대감이란, 6개월간의 애팔라치안 트레일 하이킹이라면 하이킹의 여러 상황이나 경험등이 속속들이 나열되어 간접적으로나마 흥미진진한 모험을 체험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참으로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 저자는 6개월이라는 3,489km라는 시간, 공간을 참으로 적절하고 유익하고 의미있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잘 정리했다. 하이킹 여행기가 자기계발서로 태어났다고나할까. 3박 4일간의 지리산 종주만으로도 생의 어느 비밀 한 부분을 해독한 것 같은데 하물며 6개월간의 하이킹이라면 책 한 권은 나올 만도 하겠다.

p.307  종주에 성공한 수백 명의 하이커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3,200킬로미터 넘게 걸은 사람은 굉장한 유머 감각, 삶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능력, 자아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치지 않는 낙관성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 이 정도는 걸어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거다.

p.331  "종주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경제 가치가 없다." 과장된 말이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번 종주를 하면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는 의미로 들린다.

종주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경제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라고 내게는 읽힌다.

나는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서가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맨 끝에 놓는다. 그런데 이 책은 여행기가 있는 곳이 어울릴 것 같다. 종착지를 50킬로미터 남겨둔 기념으로 저자는 벤 앤드 제리 아이스크림 1파인트를 공짜로 받았는데, " 나에게는 의미 있고, 자랑스럽고,약간은 슬픈 순간이었다. 우리의 여정이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벤 앤드 제릴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다 먹어봤다는 것을 깨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리라곤 희망을 갖는 것뿐이었다. 벤 앤드 제리가 나의 다음 종주를 위해서 새로운 맛을 개발하기를." 그의 글대로 심각하지 않은 유종의 미, 유머 감각으로 버무려진 낙관성이다. 자기계발의 실용성과 문득 문득 번뜩이는 어떤 지혜로움이 잘 녹아있는 이 책을 한 번 더 읽으면 백두대간 종주의 꿈에 불이 지펴질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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