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오디세이 - 뉴욕의 사계절과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나선 이방인의 여정
이철재 지음 / 이랑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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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최신 뉴스를 옮긴다.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10일 코로나보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15분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5만5615명이고, 사망자는 1만6074명이다. 이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2위 스페인, 3위 이탈리아, 4위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특히 뉴욕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 뉴욕에서 799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로써 뉴욕의 누적 사망자는 7067명이 됐다. 뉴욕의 확진자는 15만9937명이 됐다. '

 

https://moneys.mt.co.kr/news/mwView.php?no=2020041007198021920&outlink=1

 

 

코로나 참상의 절정을 이끌고 있는 곳 미국. 미국의 중심인 뉴욕. 뉴욕이라면 나도 한마디쯤 하고 싶어졌다. 내가 지금껏 여행한 지역 중 가장 열악한 곳이 뉴욕이었으므로.

 

'열악'하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작년 6월에 보름 동안 뉴욕에 머물렀었다. 숙소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허름한 호텔이었다. 창문이 없는 작은 방에 더블침대가 3/5를 차지하고 작은 탁자와 기둥을 빼면 캐리어 두 개를 펼쳐놓을 공간도 남지 않는 방이었다. 세면실은 공동이용이었지만 다행히 문만 열면 세 개가 나란히 있어서 그닥 불편하지는 않았다. 비용은 하룻밤에 13~14만 원 정도. 그간 여러 나라를 30년 가까이 다녀봤지만 비용 대비 시설은 거의 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물가가 비싼 나라를 여행하는 게 얼마나 재미없는 지를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호텔이 위치한 차이나타운은 말 그대로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이다. 뉴욕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마치 중국의 어느 번잡한 동네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팍팍해보였다. 빨래방이 곳곳에 있어 3~4일에 한번씩 빨래를 하러 가곤했는데 가는 곳마다 현지 중국인들로 만원이었다. 겨우 세탁기 하나 차지하고 건조기까지 사용하면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빨래를 하지 않는 것,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빨래를 하거나 빨래를 널 공간이 없어서 이런 빨래방을 이용하는 것이지 싶었다. 집이라고 해야 작디 작은 공간일 뿐이리라. 내가 묵었던 호텔처럼.

 

뉴욕시의 중심지 맨해튼에서 여행자들에게 제일 불편한 것은 화장실 부족이 아닐까 싶다. 그 수많은 지하철역사에도 화장실 하나 없고, 하늘을 찌를듯한 화려한 고층 빌딩에도 이방인에게 허용된 무료화장실이 매우 드물다. 아주 인색하다. 정 급하면 스타벅스 같은 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이용하던가 아니면 맥도날드에 가서 먹고 싶지 않아도 햄버거 하나 사서 입에 물던가 해야 한다. 어떤 맥도날드 매장에선 화장실이 있는 2층으로 가려면 계단 초입에 서서 통행을 체크하는 직원에게 영수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나마 센트럴 파크에는 무료화장실이 있어서 신기할 정도였으니. 여행 첫날 어떤 공원 옆에 있는 유료공중화장실에 동전을 넣고 들어갔다가 오물로 넘쳐흐르던 변기를 보고 일도 못보고 그냥 나온 적도 있었다. 하필이면 여행 첫날에.

 

화장실 다음으로 힘들었던 건 햄버거로 시작해서 햄버거로 끝나는 일용할 양식에 적응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는 것.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한식당을 여러번 이용했지만 그리 탐탁하지 못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겨우 입에 맞는 망고로 끼니를 때웠다. 다행히 가격은 저렴했다. 애플망고 한 개가 채 1달러도 안 되었다. 여행 중 이렇게 음식으로 고생한 적은 없는데 이 풍요로운 미쿡에 와서 이 무슨 고생이람, 한탄이 절로 나왔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는 병원에 가서 영양제주사를 맞고나서야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보름 남짓 경험한 뉴욕이 이러했다.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을 둘러보고 유명하다는 명소도 두루두루 갔었지만 내 몸이 겪은 뉴욕은 열악하고 힘겨웠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매우 팍팍하고 버티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의 위력이 지배하는 곳은 결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언제라도 홈리스로 추락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건 얼마나 살 떨리는 일일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내게 뉴욕은 그런 무서움을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저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장실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위 사진은 광주광역시 시내의 화장실 안내판 사진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이런 친절을 왜 뉴욕에선 기대할 수 없을까. 그 잘 사는 나라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가 미국에서 절정을 이루는 건 이런 친절함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책 얘기.

뉴욕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글이라서 궁금했다. 뉴욕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으나 뉴욕보다 뉴욕주에 관한 이야기여서 내가 기대한 바와 촛점이 달랐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 '맨해튼은 뉴욕시의 일부분이고 뉴욕시는 뉴욕주의 일부분이라는 것'. 그러니까 뉴욕주 안에 뉴욕시가 들어가고, 뉴욕시 안에 맨해튼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뉴욕에 가서야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다시 책 얘기.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가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 책 날개에 소개된 글을 인용하면,

 

'뉴욕이 제국의 수도가 된 이유를 찾고, 맨해튼의 빌딩숲 속에 숨겨진 유서 깊은 호텔 앨곤퀸의 문화와 낭만을 소개하며, <라스트 모히칸>의 배경이 된 아메리칸 인디언의 발자취를 쫓고, 낙농과 와인의 산지를 찾아 하룻밤 머물고, 뉴욕 시골 마을의 오페라 축제를 즐기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한다......(이 책은) 일정을 길게 잡아 뉴욕주에 체류하며 돌아보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 이들에게도 좋은 관광 안내서가 될 수 있다.'

 

맨해튼에서 보름 동안 있어도 일정이 짧은데 글쎄 어느 정도 길게 잡아야 뉴욕이 아닌 뉴욕주에 체류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미국에 체류하면서, 시간상 금전상 여유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이 책은 내게는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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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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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기존 방식을 따르지 않기, 혹은 제대로 따져보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제호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원제보다 훨씬 잘 어울린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따져보고, 생각해보고.... 그림을 볼 때 명심해야 할 것.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그중 두어 개를 인용해본다.

 

 

한스 멜링 <허영> (출처: 네이버)

 

 

-60쪽

화가가 벌거벗은 여성을 그린 이유는 벌거벗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손에 거울을 쥐어 주고 그림 제목을 허영이라고 붙임으로써, 사실상 자신의 즐거움 때문에 벌거벗은 여자를 그려놓고는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위선과 적반하장의 뻔뻔함을 본다. 점잖은 해석은 이제 그만.

 

 

-76

오늘날 이 누드가 포함하고 있는 태도나 가치들은 광고, 저널리즘, 텔레비전과 같은 좀 더 다양한 미디어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든다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면 된다. 이 책에서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그려 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

 

'머릿 속에서 생각'만 해도 신선하고 유쾌하다. 여성 화가들이 남성 누드화를 그릴 수 없었던 건 시대적인 한계 상황으로 여성들에게 누드화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만약 허용했다면 어떠했을까. 적어도 위의 그림과 같은 위선적인 그림은 덜 허용되지 않았을까? 성불평등을 말할 때, 남자를 여자로 바꾸어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인다. 남자들은 끊임없이 저항하겠지만. 마치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노라고 항변하겠지.

 

 

 

프란스 할스 <웃고 있는 어부 소년> (출처: 네이버)

 

-122

이 그림 속의 가난뱅이는 자신이 팔 물건들을 보여 주며 웃는다. (가난뱅이들은 이를 드러내고 웃지만, 부자들은 절대 이렇게 웃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 앞에서 웃어보인다.

 

하층계급의 생활장면들을 묘사한 그림을 '장르화'라고 한다는데, 목적은 '이 세상의 덕성은 사회적이고 금전적인 성공으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게 되지만 게으름뱅이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교훈을 나타낸다. 그러나 위의 할스의 그림은 이런 장르화의 성격과는 다른 것으로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나...그런 사실보다 부자들은 절대로 저렇게 이를 드러내며 웃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림을 생각하면서 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좀 더 공들여 읽어야 한다는 것만 짚고 넘어간다. 개념이 잡힐 듯 말듯 한 유화의 본질과 현대 광고와의 관계, 그리고 글래머glamour의 개념, 발터 베냐민의 이론 등. 1972년에 발간된 책인데도 과거시제로 읽히지 않는 책이다. 물론 내가 무지한 탓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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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교만해져서 설치고 다니는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라는 친구 엄마의 말씀을 듣고 찔끔했다.  나 역시 '설치고 다니는 인간'이라서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터였다. 날뛰는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책으로나 달래는 수밖에.

 

 

 

 

 

 

 

 

 

 

 

 

 

 

 

 

말랑말랑한 감상적인 문장이 눈 앞에서 스윽스윽 지나간다. 요즈음은 매끄러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얘전같으면 한숨을 섞어가며 숨 죽이며 읽었을 문장들이다. 세월과 더불어 두텁게 겹을 두른 나의 한숨이 아무래도 방어벽을 쌓는 것 같다. 여행 대신 책이라고, 어쨌거나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책으로 달래며 읽는다.

 

 

-200쪽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라는 것.

 

200쪽까지 읽어서야 마음에 드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마음으로 읽는 좋은 문장들을 수없이 지나쳐왔을 텐데 이제서야 서서히 마음이 열리는 건 뭐람. 책보다는 내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217

그래, 먹어 보자. 그래야 뭐라도 쓸거리가 생기니까. 애벌레 하나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혀 위에 놓인 애벌레가 꿈틀거렸다. 차마 씹지는 못하고 꿀꺽 삼켰다. 근데 목구멍 안쪽에 깊숙이 걸린 애벌레는 한번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여러분 여행작가는 이런 직업입니다. 한 줄 문장을 쓰기 위해 애벌레도 먹어야 한답니다.

 

tv 여행관련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낯선 이상한 음식 앞에서 움찔 망설이는 장면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런 여행 시켜주면 못 먹을 것도 없겠다.' 라고. 애벌레 먹고 여행작가된다면 그것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장담 못하지만.

 

-253

여행은 생을 잊는 그리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솔비투르 암불란도 Solvitur ambulando. 걸으면 해결된다. 이 말을 선언한 디오게네스 역시 여행자의 삶을 살았음에 틀림없고 끊임없이 걸어다녔을 것이다. 여행은 걷고 또 걷고 지치도록 걷는 것, 생을 잊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걷는 것이다.

 

-265

운명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괴롭히는 것, 그게 운명의 운명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두운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갑니다. 무릎을 웅크리고 혼자 있습니다. 어둠을 겪어 보지 않고서는 빛을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마음속에 어둠이 없는 자는 세상을 건널 수 없습니다. 여행은 내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사랑은 내가 가진 어둠을 당신과 나누는 일이구요. 이만큼 살아 보니 알겠습니다. 친구 따윈 필요 없더군요. 책과 음악, 그리고 어둠 한 줌이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나의 어둠을 오롯이 지켜내야겠다. 지금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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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에 가서 머뭇거리면 누군가 달려와서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간이 카페의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카드를 만지작거리면 누군가 냉큼 달려와서 대신 해주려고 하고, 매표소에선 어르신 우대에 해당되지 않냐고 물어보질 않나... 어르신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런 친절을 바라지 않는데 세상은 자꾸 내게 친절을 베푼다. 아무래도 머리 염색을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친절을 바란다면 빨리 늙어서 하얀머리 휘날리면 됩니다.^^

 

 

  

북플을 열면 거의 매일 이런 알림이 뜬다. 이런 알림이 뜨지 않는 날이 있었던가 싶게 거의 매일이다.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진 않았구나 생각하지만 가급적 지난 글을 다시 읽지는 않는다. 읽기가 싫다. 다만 무슨 책을 읽었나 싶어 슬쩍 열어보면 대부분 기억이 나지만 어떤 책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이건 뭐지? 뭐가 되었든 그래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이나 독단일지라도.

 

 

 

 

 

 

 

 

 

 

 

 

 

 

 

 

글은 매끄럽지만 울림은 약한 책. 한 권의 책에서 두고두고 되새길 한 문장이라도 남으면 되지 뭐.

 

-58쪽

누군가의 슬픔을 알면, 정말 알면, 무엇도 쉬이 질투하게 되지 않는 법이니까. 어려운 형편은 모르고, '좋아 보이는' 면만 어설프게 알 때 질투가 생긴다.

 

-62

오늘 아침 소파에서 남편의 신간 시집을 읽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세월이 가면 우정은 사소해진다." 별일 없이 마음을 다치게 하네. 시는 이게 문제다.

 

 -280

멀어진 친구를 생각하면 한밤중에 갑자기 가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을 탈탈 털린 기분. 

 

 

 

 

 

 

 

 

 

 

 

 

 

 

 

 

 

 

 

단순 여행자의 단편적인 경험 이상을 누리는 사람의 책. 질투하며 읽은 책.

 

-118

작은 언어가 모어인 사람은 시인이 될 확률이 높다. 시의 독자도 마찬가지다. 독일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가 언젠가 신문에 썼다. 지금 시대에 시집은 크로아티아어로 출판되든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되든 2천 부도 안 팔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미국 인구는 크로아티아 인구의 60배쯤 된다. 그렇다면 비율로 따져 크로아티아에서 시집이 엄청 잘 팔린다는 말이다. 

 

-120

유럽은 프라하나 빈처럼 아름답고 오래된 수도가 많다. 하지만 현대식 생활을 해치지 않고 관광객을 만족시키려는 나머지, 너무 정리된 완성작 같다. 그에 비하면 소피아는 관광객도 거의 없고 생활도 그다지 쾌적하지 않다. 하지만 로마 유적, 비잔틴 교회, 터키 식민지 시대의 이슬람 사원,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교회, 빈에서 공부한 건축가들이 세운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 소련식 건물 등 볼 것이 많다. 역사의 흔적이 거인의 발자국처럼 성큼성큼 남아 있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피곤하긴 하지만 흥분을 느낀다. 조그마한 과거를 만지작거려 기념품처럼 만든 소규모 '관광지'가 아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공사 현장에 던져진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소피아: 불가리아 수도

 

-172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일본은 택시 운전사가 몸도 마음도 프로인데, 독일은 원래 교사였거나 생활고에 시달린 시인 또는 예술가였던 사람이 택시 운전사일 때가 많다. 이 손님들, 자신들은 잘난 듯 문학을 하면서 나는 하찮은 운전사라고 생각하나 보네, 하고 확 액셀을 밟은 것이리라. 도시는 곧 운전사의 언어고 골목길은 운전사만 알고 있는 문법이다.

 

-207~208

일본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독일어로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문법이나 철자에서 틀리는 부분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무시하고 쓰고 싶은 말을 즐겁게 쓰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모어로는 부끄러워서 쓰지 못했던 것을 아무렇지 않게 외국어로 쓸 때가 있다는 점이다. 매일 글쓰기를 하면 글이 이어져서 천을 짠 것처럼 또 다른 자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외국어 공부는 새로운 자기를 만드는 일, 미지의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를 비롯해 일본어가 모어인 사람들은 일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해선 안 되는 일, 입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 금기로 머릿속에 일본어로 설정됐다. 다시 말해 일본어로 글을 쓰면 자동적으로 금기를 건들지 않게 된다. 대신에 외국어로 글을 쓰면 이 금기를 배척하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것을 과감하게 쓰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기도 한다.

 

 

 

 

 

 

 

 

 

 

 

 

 

 

 

 

 

 

'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 시장이 인간과 미술을 움직이다.

 

대하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나오는대로 읽고 있다. 이 시리즈를 반복해서 한번 더 읽으면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흐름으로 읽는 거라서 인상적인 부분을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6편에서는 '제대화'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을 말해둔다.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종교화라고 싸잡아서 도외시했던 그림들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

 

 

 

 

 

 

 

 

 

 

 

 

 

 

 

 

 

 

 

범우문고 시리즈를 아시는가?

1. 수필(피천득)

2. 무소유(법정).....288번 까지 출간되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범우문고 출신이다. 유명했다. 삼중당문고, 서문문고, 범우문고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부담없이 구입, 지적 허기를 채워주었던 책들이다. 옛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99

 

슬갑 도둑

 

남의 시문의 글귀를 따다가 제것인 양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슬갑(膝匣)이란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하여 바지 위로 무릎에 껴입는 옷이다. 그런데, 어느 도둑은 남의 슬갑을 훔쳐서는 이것을 어디가 쓰는지를 몰라 이마에다 붙이고 나왔다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표절은 욕먹을 짓이었나보다. 도둑놈이니까.

 

 

 

 

 

 

 

 

 

 

 

 

 

 

 

 

 

스페인어를 독학해보겠다고 이런저런 책을 사보았지만 모두 작심삼일. 기초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 이 책만큼은 끝까지 읽고, 기초 단어 정도는 착실하게 노트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왕초보가 읽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다.

 

 

 

 

 

 

 

 

 

 

 

 

 

 

 

 

 

 

멍멍이 머리맡에서 발견한 책.(우리집 개 소파는 책장 앞에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사준 책이다. 오우, 나도 제법 훌륭한 엄마였음을 입증하는 책.^^

중세에도 앞선 여성들이 많았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 그런 걸 가르치지 않을 뿐.

한 꼭지씩 읽어가며 연신 감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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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aum )

 

 

영화 <모리의 정원>을 보았다. 인천에서는 상영관이 없어서 덕분에 안산에도 가봤다. 극장안의 관객은 단 3명.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폐업 상황이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30년 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일본의 유명화가 쿠마가이 모리카즈 이야기이다. 그가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영화 <타샤의 정원>을 기억하는지라 이 영화에서도 멋진 정원을 감상하리라 기대했으나 이건 정원 얘기가 아니었다. 원제는 '모리의 장소'. 여기서 장소는 영어의 place이니 '공간, 곳, 장소'로 정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니 '모리의 정원'이라기 보다는 모리가 30년 간 머문 공간, '그 만의 공간' 쯤의 뜻이 된다. 영화 제목을 깔끔하게 뽑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줄거리는 검색만 하면 주르르 뜨니 생략. 인상 깊은 장면 두 개를 애기하련다.

 

하나.

어떤 남자가 모리카즈의 평을 기대하면서 어린 아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녀에 대한 희망을 품기 마련. 대강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남자: 보십시오. 우리 아들이 천재가 맞지요? 잘 그렸습니까?

화가: 음..... 못 그렸네.

남자: (실망한다)......네?

화가: 잘 못 그려서 좋은 거야.

남자: (당혹해한다.)......네?

화가: 잘 그린 그림은 끝이 보여.

        잘 못 그린 그림은 작품이야.

 

절망과 희망을 왔다갔다 하는 남자의 표정도 볼 만하지만 늙은 화가의 한마디 한마디가 절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둘.

모리카즈와 그의 아내의 대화.

 

화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 당신은?

아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화가: 왜? 살아있는 게 좋지 않은가?

아내: 피곤해서 싫어.

 

화가는 허구헌날 집 앞 마당에 있는 작은 정원에서 벌레를 관찰하거나 오솔길에 누워있거나 연못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생을 만끽한다. 밤에는 '학교'에 간다며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밥은 누가 해주나? 그의 아내다. 아내는 허구헌날 빨래와 밥을 하며, 수시로 들이닥치는 손님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역할을 맞바꾼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다, 는 대사로 이어지면 영화가 진부해지려나.....

 

 

일본 이름을 발음하려면 혀가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지만 화가역의 야마자키 츠토무, 아내역의 키키 키린을 기억해야겠다. 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 같다는 평이 있을만큼 연기가 탁월하다. 볼 만하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 가택연금...의 시절에 30년 동안이나 집 안에 콕 박혀있던 화가의 생애를 엿보는 맛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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