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그리고 어렵게 쓴 책이긴 한데, 내용도 참 좋은데, 참살이의 지침이 될 만한 글인데...뭐랄까. 내겐 울림이 크지 않다. 아줌마의 왕수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직업선택의 십계명'으로 족하다. 고민은 각자 스스로의 몫.

 

 

http://blog.aladin.co.kr/nama/4219968

부모들은 종종 교육자인 나에게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부모님들 자신이 잘 살아가야 합니다."
삶은 어떻게 자식을 잘 키우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자신의 삶은 자기가 살아내야 하는 자신의 몫이다. 자식의 삶은 자식의 몫이다. 내가 내 삶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자식의 삶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오만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을 걱정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가 자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신神 앞에서 신발을 벗고 살아가는 일밖에 없다. (전 거창고교장 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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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계란을 생협에서 구입한다. 15개가 들어있는 유정란을 주로 사 먹는다. 장바구니에 담기도 적당하고 신선하고 맛도 좋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생협에 가야할 타이밍을 놓쳤더니 가뜩이나 텅 빈 냉장고에 계란이 달랑 두 개 남았다. 마침 코스트코에 가게 되어 계란을 사왔는데...

 

30개가 들어있는 한판을 주저주저하다가 사왔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0개 아니면 60개.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날 저녁, 말 그대로 휘휘휙 저어서 스크램블을 만드는데 깨는 족족 노른자가 두 개인 쌍알이다. 다음 날. 계란을 삶았더니 모두 노른자가 두 개 있는 쌍알이다. 다음 날 아침, 계란말이를 하는데 역시 쌍알의 연속이다.

 

딸아이는 징그럽다고 삶은 계란을 거부하더니(위의 사진) 그 좋아하는 계란말이(청양고추 듬뿍 들어간)를 한 점 먹다가 만다. 맛이, 그러니까 계란맛이 없다. 노른자의 고소함도 없고 흰자위의 찰진 맛도 없다. 생협 계란을 먹을 때는 몰랐는데 코스트코 계란을 먹어보니 그 차이를 알게 된다. 한마디로 코스트코 계란은 계란이라는 생물을 먹는 게 아니라 상품을 먹는 것에 불과하다.

 

그나저나 남은 계란을 어떻게 처치하나, 문제다. 그런데 어떻게 계란 한 판 30개 전부를 쌍알로 구성할 수 있을까? 겉포장에 한마디라도 써놓아야 되는 거 아닌가?

 

'이 계란은 모두 쌍알로 구성되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병휴직으로 1년을 쉬시면서 잠시 양계사업을 하신 적이 있었다. 200여 마리의 닭을 길렀는데 닭들이 알을 낳으면 동네가게에다 계란을 조금씩 팔았다. 장바구니에 넣어서 심부름을 다니곤 했는데 어쩌다가 돌부리에 넘어지면 계란이 땅에 떨어져 깨지곤 했다. 땅바닥에 깨진 계란에서 노랗게 도드라진 통통한 노른자가 눈에 들어오면 마음이 아파지면서 눈에는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했었다. 특히 쌍알일 경우에는 가슴이 저려올 정도로 아파왔다. 60년 말에서 70년대 초쯤 되었을 때였다.

 

 

버릴 수도 없는 쌍알 30개. 코스트코, 너무 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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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우리 아버지는 방 3칸 짜리 단층집을 직접 설계한 후 흙벽돌을 구입하고 목수, 전기기술자 등을 일일이 불러  당신의 상식과 생각대로 손수 지으셨다. 50만 원 예산이었으나 결국에는 100만 원이 들어간 아담한 기와집이었다. 집의 특징이라면, 작은 마루에 한이 많으셨는지 마루만은 엄청 길고 나무로 되어 있어서 청소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과 각 방마다 벽장이 붙어 있어서 따로 장농이 필요없었다는 점이다. 이 벽장만큼은 아버지의 지혜가 함축된 나름 예술품이었다. 부엌 위에  있던 낮은 다락방도 어린 시절에 '꿈꾸는 다락방'의 역할을 톡톡히 한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숨을 곳이 많았다. 집 뒤로는 길쭉한 뒤란이 있었고, 앞쪽으로는 창고 겸 욕실로 사용하던 별채도 있었다. 자그마한 창고 옥상에는 장독대도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집이어서 이렇게 설명이 길어지지만 실제는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그저그런 18평의 작은 집에 불과했다. 사실은 건축허가 없이 지은 집으로 공무원 생활을 30여 년이나 하신 아버지가 '알아서' 당신 생각대로 지은 집이었다. 물론 나중에 주택 양성화 기간이 있어서 등기부 등본을 뗄 수 있는 어엿한 집이 되긴 했다. 돌이켜보면 그 일련의 과정이 아버지의 전략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집을 손수 지으셨던 아버지가 떠오르고 과연 우리 세대의 삶이 아버지 세대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곰곰 따져보게 된다. 감히 집을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온갖 먹거리를 슈퍼마켓에서 해결하는 이 삶이 과연 바람직한지를 따져보게 된다.

 

이런 기분에 젖어있을 때 이 책을 펼치는 일은 매우 슬프고 고통스럽다. 아무데나 펼쳐 읽어도 폐부를 찌르는 말들이다.

 

인류 역사에서그 시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는 먹는 음식 중 사서 먹는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마치 상품처럼 국민이 '주택'을 가질 권리를 법으로 선포한 날, 그동안 국민의 4분의 3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온 집이 하루아침에 마구간 취급을 받게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가 건축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생겨난 것이다. 자격증 있는 건축가가 그린 설계도를 제출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집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카라카스 시에서는 쓰레기가 최고의 건축재료로 재활용되었지만, 이때부터는 고형페기물이 되어 처리하기 어려운 골칫거리가 되었다. 자기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사람은 유별난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게 되었다....또한 수많은 법 조항이 생겨나 그의 독창성은 오히려 불법으로 규정되고 범죄행위라는 딱지가 붙는다....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로서 '집을 짓는 일'은 이제 사회 이탈자 아니면 한가한 부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실제로 갈수록 더 많은 아이들이 소의 젖을 먹는다. 부자나 가난한 이나 인간의 젖가슴은 말라버린다. 아이가 우유를 달라며 울음을 터뜨릴 때, 아이의 신체기관이 식료품점에 진열된 우유병에 닿기 위해 길들여지고 제 기능을 포기한 인간의 젖가슴에서 등을 돌릴 때, 또 한 명의 중독된 소비자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꽃 피우는 데 필요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은 퇴화한다.

 

오늘날 위기란 말은 의사, 외교관, 은행가, 온갖 사회 공학자가 모든 상황을 접수하고 사람들의 자유를 유보하는 상황을 의미하게 되었다. 국가도 사람처럼 중환자 리스트에 오른다.

 

 

이제 겨우 1/3 읽었는데, 그것도 얇은 소책자를.....퇴근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눈도 침침하고, 숙직영감님이 창문을 단속하고 계신다. 나도 부지런히 걸어가야겠다, 멋대가리 없는 공동주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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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벗게 된 검사: (변호사 개업을 알리는 명함을 주며) ..우리는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하거나, '봉사'를 하는데, 자네는 (국가를 위해) 하는 게 뭔가?

윤진원(윤계상):.....(명함을 던진다...쓰레기처럼)

 

 

***조조상영을 2명이 10,500원에 봄. 매우 볼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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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권을 읽으며, 청소년 소설도 읽을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판타지류의 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그리 자랑거리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늘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아이들 세계를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자각도.

 

사실, 소설 앞에 '청소년'이 붙는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껏 영문판 'The Giver' 나 'Holes' 정도, 아니면 영어동화로 분류되는 아동물 정도.

 

어렸을 때는 읽을 책이 썩 드물었다. 책이라고 해야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온갖 정부간행물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독서용이 아닌 불쏘시개용으로 조만간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동화책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학급문고로 개인당 한 권 씩 사서 서로 돌려본 것 외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전에는 언젠가 당시 서울의 작은 집에서 학교에 다니던 언니가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왔을 때 몰래 가방에서 훔쳐보았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이 내 유년의 유일한 동화책이었다. 아무도 없는 아랫방에서 언니 가방을 몰래 열어보는 일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책 내용마저 심장을 떨리게 했다.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는데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다 읽고 읽고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계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를 놀라게 한 부류의 책이 또 있었다. 우리집에 세들어 살았던 군인가족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육사출신의 장교였고 아주머니는 이대영문과 출신으로 미군방송을 즐겨보았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었다. 이분들이 이사를 가면서 몇 푸대자루의 책을 잠시 맡겨두고 간 적이 있는데 뒤란 한 구석에 방치되었던 이 책꾸러미가 우리 삼남매에게는 장난감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꾸러미 속에 한글로 된 책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통 영어로 된 책뿐이었고 게중에는 색채도 선명한 총천연색 포르노그라피류의 잡지도 적잖이 있었는데...포르노라는 말조차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 접한 이런 책들은 그저 놀라움 자체였다. 게다가 미끈미끈한 몸매의 백인과 흑인의 적나라한 성기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에 정신적인 성장이 조금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더하기 대학 시절.

 

동화책에서 곧바로 세계명작소설로 넘어갔던 우리 세대에 비해서 요즘은 읽을거리도 참 다양하다. 다양함이 오히려 피곤함이 되는 걸 우려해야 할 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읽을거리가 다양하다는 게 부럽긴 하다.

 

위의 책. 약간은 모호하고 설득력이 약한 <기억을 파는 가게>보다 <괴물 사냥꾼>이 훨씩 가독성이 좋다. 반전이랄까, 복선도 재미있다. 아이들 특히 중학교 남학생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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