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꼭 영국의 겨울 날씨 같다. 오후 3시 반 정도에 찍은 사진인데 벌써부터 어둡다. 20년도 더 된 영국의 겨울여행이 떠오르는 날이다. 오후 3시만 되어도 캄캄해서 일정을 접고 숙소로 향해야 했었다. 일찍 들어간 숙소에서 저녁에 할 일이란...라디에이터에 등을 대고 몸을 녹이고, 빵집에서 사온 빵으로 일찌감치 저녁을 때우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전부였다. 잠은 원없이 실컷 잤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영국의 겨울 날씨가 그러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셋이 함께 한 여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열정적인 여행이었지만 무모하고 대책없는 여행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지만 말이다.
다시 영국을 여행한다면 아주 아주 많은 정보를 갖고 떠나게 되겠지만 여행에서 정보가 지나치면 재미가 반감된다. 수집한 정보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 정보를 확인하는 여행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적당히 길도 잃어야 되고 적당히 바가지도 쓰고 적당히 열도 받아야 되는 게 여행이다. 지나친 여행정보는 여행을 매끄럽게는 하겠지만 새로움을 만나는 기쁨을 저해하기도 한다.
다시 영국을 여행한다면, 이 책만큼은 다시 읽고 가리라.
이곳에 소개된 명소는 대부분 짧은 여행으로는 언감생심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지만 그래서 더 읽을 만하다. 영국이라는 나라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준다. 특히 영국의 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얘기가 꽤 읽을 만하다. 가벼운 여행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여서 만약 영국을 여행하게 된다면 여행의 품격을 높여줄 수 있다. 그러나 재미있게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아니 요즘 나의 가독능력이 부질해져서일 수도 있다. 류마티스 염증을 겨우 다스려놓았더니 다음엔 위장이 안 좋아지면서 더불어 불면증으로 이어지고, 불면증을 겨우 달랬더니 이번엔 잘 걸리지도 않는 감기에 걸렸다. 그러니 책 한 권 읽는데 하세월이다.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지나간 일을 말할 때 사용하는 수치가 점점 커진다. 커지는 수치에 비례하는 몸의 신호. 몸이 보내는 신호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직 적응이 안 돼서인지 자꾸 하소연만 하게 된다. 이렇게 늙어선 안 된다는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늙는 게 도대체 만만치가 않다. 사춘기도 당황스럽고 대략 난감이지만 갱년기는 더 황당하고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다. 그것도 자신을 향한.
오늘은 17년 전에 인도를 함께 여행했던 분과 만나기로 했었다. 오전에는 출장도 있었다. 이래저래 약속을 취소했더니 하루종일 마음에 걸린다. 이런 영국의 겨울 같은 변덕스런 날씨에 휘둘려보는 것도 괜찮았을 텐데...하는 뒤늦은 후회. 아직 덜 아프다는 얘긴가?
*** 창 밖으로 보이는 저 풍경도 머지않아 사라져버린다. 저 앞은 지금 신축 아파트 공사중이다. 책 속의 풍경보다 저 풍경을 더 즐겨야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