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도 답답해서 집을 나설 요량으로 여러 친구들에게 '나랑 놀아주라.'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모두가 바빠서 아무도 함께 놀 친구가 없었다. 이럴 수가!
일단 터미널에 가서 행선지를 살펴보았다. 사방팔방으로 가는 버스가 많았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분명 안 가본 곳도 있으련만 모두 가본 곳처럼 여겨졌다. 놀 친구가 없는데 가볼 장소도 없다니...한탄하다가 천안행 버스표를 끊었다. 예전 백수 때 버릇이 또 나왔다. 아무데나 가서 무작정 걸어보기.
천안터미널 밖으로 나오니 길 건너편에 나를 반기는 게 있었다. '알라딘 중고서점'. 다행이다. 너가 있어서. 너라도 있어줘서. 일단 동네 한바퀴 돌고 들어가주마.
멍청하게 보이기 싫어서 어딘가 바삐 가는 척하며 열심히 걷고 있는데 어떤 낯선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얼마 전 좋은 일이 있으셨죠? 얼굴에 복이 있어요. 잠시 이야기 좀 나누면 안될까요?"
헉, 이건 또 뭐지? 얼떨결에 오른손을 들어 우아하게 거절 표시를 한다. 말 없이 느린 동작으로.
흠, 딸내미 대학합격으로 요즘 신이 났는데 그게 얼굴에 쓰여 있었나? 아니면 하도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왔다는 게 얼굴에 쓰여 있기라도 했나? 잠시 따라가볼 걸 그랬나? 별 일일세.
마침내 좀 전에 봐두었던 알라딘중고서점에 들어섰다. 지난번엔 딸내미 수시논술시험장에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신촌에 있는 알라딘중고매장에 갔는데, 이렇게 내가 갈 곳을 정하지 못할 때마다 나를 기다려주다니...호호호. 알라딘중고서점 찾아 전국 순례라도 해볼까.
이 책 한 권 건졌다. 답답할 때 읽으면 뻥 뚫리는 시원한 책이다. 지은이는 김점선. (나중에 추가기록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