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우리 아버지는 방 3칸 짜리 단층집을 직접 설계한 후 흙벽돌을 구입하고 목수, 전기기술자 등을 일일이 불러  당신의 상식과 생각대로 손수 지으셨다. 50만 원 예산이었으나 결국에는 100만 원이 들어간 아담한 기와집이었다. 집의 특징이라면, 작은 마루에 한이 많으셨는지 마루만은 엄청 길고 나무로 되어 있어서 청소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과 각 방마다 벽장이 붙어 있어서 따로 장농이 필요없었다는 점이다. 이 벽장만큼은 아버지의 지혜가 함축된 나름 예술품이었다. 부엌 위에  있던 낮은 다락방도 어린 시절에 '꿈꾸는 다락방'의 역할을 톡톡히 한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숨을 곳이 많았다. 집 뒤로는 길쭉한 뒤란이 있었고, 앞쪽으로는 창고 겸 욕실로 사용하던 별채도 있었다. 자그마한 창고 옥상에는 장독대도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집이어서 이렇게 설명이 길어지지만 실제는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그저그런 18평의 작은 집에 불과했다. 사실은 건축허가 없이 지은 집으로 공무원 생활을 30여 년이나 하신 아버지가 '알아서' 당신 생각대로 지은 집이었다. 물론 나중에 주택 양성화 기간이 있어서 등기부 등본을 뗄 수 있는 어엿한 집이 되긴 했다. 돌이켜보면 그 일련의 과정이 아버지의 전략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집을 손수 지으셨던 아버지가 떠오르고 과연 우리 세대의 삶이 아버지 세대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곰곰 따져보게 된다. 감히 집을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온갖 먹거리를 슈퍼마켓에서 해결하는 이 삶이 과연 바람직한지를 따져보게 된다.

 

이런 기분에 젖어있을 때 이 책을 펼치는 일은 매우 슬프고 고통스럽다. 아무데나 펼쳐 읽어도 폐부를 찌르는 말들이다.

 

인류 역사에서그 시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는 먹는 음식 중 사서 먹는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마치 상품처럼 국민이 '주택'을 가질 권리를 법으로 선포한 날, 그동안 국민의 4분의 3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온 집이 하루아침에 마구간 취급을 받게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가 건축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생겨난 것이다. 자격증 있는 건축가가 그린 설계도를 제출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집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카라카스 시에서는 쓰레기가 최고의 건축재료로 재활용되었지만, 이때부터는 고형페기물이 되어 처리하기 어려운 골칫거리가 되었다. 자기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사람은 유별난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게 되었다....또한 수많은 법 조항이 생겨나 그의 독창성은 오히려 불법으로 규정되고 범죄행위라는 딱지가 붙는다....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로서 '집을 짓는 일'은 이제 사회 이탈자 아니면 한가한 부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실제로 갈수록 더 많은 아이들이 소의 젖을 먹는다. 부자나 가난한 이나 인간의 젖가슴은 말라버린다. 아이가 우유를 달라며 울음을 터뜨릴 때, 아이의 신체기관이 식료품점에 진열된 우유병에 닿기 위해 길들여지고 제 기능을 포기한 인간의 젖가슴에서 등을 돌릴 때, 또 한 명의 중독된 소비자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꽃 피우는 데 필요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은 퇴화한다.

 

오늘날 위기란 말은 의사, 외교관, 은행가, 온갖 사회 공학자가 모든 상황을 접수하고 사람들의 자유를 유보하는 상황을 의미하게 되었다. 국가도 사람처럼 중환자 리스트에 오른다.

 

 

이제 겨우 1/3 읽었는데, 그것도 얇은 소책자를.....퇴근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눈도 침침하고, 숙직영감님이 창문을 단속하고 계신다. 나도 부지런히 걸어가야겠다, 멋대가리 없는 공동주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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