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수능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는데 오늘도 1등 도착이다. 9시 50분까지 출근하면 되는데, 만날 어떻게 하면 학교를 그만둘까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일찍 출근하니 이건 내 의지라기 보다는 그냥 습관이다, 습관.

 

수능 이전에 학력고사라는 시험제도가 있었고, 학력고사 이전에는 예비고사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 예비고사 세대이다. 소위 지역별 커트라인이라는 것이 있어서 보통 서울은 200점이상, 충남 같은 지방의 경우 180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36년 전 예비고사 보던 날. 그 당시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높지 않아서, 곳곳에 고사장이 마련된 지금과는 달리 도청소재지인 수원에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지금처럼 자가용 승용차가 없던 시절이라 부모들은 서로서로 모여서 아이들을 택시로 고사장까지 실어나르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우리 부모님 얘기다.

 

그렇게 모의 끝에 동네 삼형제쌀집 딸과 내가 함께 묶였는데 다음 날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쌀집 딸내미가 말도 없이 약속을 저버리고 혼자 가버린 상태였다. 그것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알게 되었다.(사실 그게 한참인지는 모를 일이다. 마음이 조급하니 그렇게 느꼈을 게다.) 하는 수 없이 그냥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가는 수 밖에.

 

당시 나는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사실 버스 타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고사장은 비교적 수원역에서 가까운 나의 모교보다도 훨씬 거리가 먼 수원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학교여서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들이 택시까지 대령한 것이다.

 

그래도 버스로 어떻게든 시간내에 고사장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하고 시험을 치렀다. 1교시 과목은 국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치렀다.

 

시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내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쌀집딸의 약속파기로 혹시나 고사장에 못갔을까 노심초사하시던 아버지가 택시로 내 뒤를 쫓아 수원까지 갔다오셨다고 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버스로 가고, 아버지는 걱정과 불안으로 택시 타고 따라가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수원까지는 기차로 30분 걸리는 거리였다.

 

그로부터 36년이 흐른 오늘, 딸아이를 고사장에 데려다주는 내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와 아버지의 나이 차와 나와 딸아이의 나이 차가 같다. 나는 사남매의 막내고 딸아이는 외동이다. 청심환 한쪽을 베어물고 집을 나선 딸아이가 애처롭다. 집에서 20여 분 걸어가면 되는 곳을 승용차로 모셔다주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과잉보호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딸아이도 부모가 되어 오늘의 내 심정을 겪을 날이 올 터이다. 다만 36년 후가 아니길 바랄 뿐이며, 청심환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자녀를 두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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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1-1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은 최선을 다해 잘 볼 거예요 ^^

nama 2014-11-13 16:05   좋아요 0 | URL
고3 과정이 참 장난이 아니네요.
(부모가)젊을 때 겪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nama 2014-11-1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은 딸아이가 발끈했다. 저는 걸어간다고 했는데 억지로 태워주고 이런 말 한다고. 평소에도 30여 분씩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인데...미안,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