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칸 - My Name Is Kh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친구 중에 영화를 보고나면 줄거리를 무척 재미있게 얘기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기가 죽곤 했었다. 나는 절대로 그 기나긴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고도 유창하게 말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똑같다. 나이를 먹었다고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영화, 줄거리를 쓰기 싫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꺼낸 얘기다. 그리고 인도 영화다. 처음 몇 장면만 보아도 대충 줄거리가 짐작이 되고, 해피엔딩에 괜히 심금을 울려보는 신파조 영화라는 거, 그래서 보고나면 싱거워지는 그런 영화다. 

이런 인도 영화는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봐야한다. 좋아하진 않더라도 인도를 아는 사람하고 봐야한다. 그렇지않으면 자칫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 사람을 시시껄렁하고 싱거운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랬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육촌 동갑내기와 이 영화를 보자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두세 번 휴대폰을 켜는 것을 보고 있자니 좀 멋적어지기도했다.  

나는 이 뻔한 스토리에도 눈물이 맺히고 주인공 샤룩 칸(인도의 국민배우라고나 할까)의 과장된 연기가 미스터 빈을 흉내낸 것 같아 흐물흐물 웃음을 머금고 즐거웠는데 말이다. 그 넓은 극장안에 관객이라고는 7~8명. 그 중에는 그래도 인도 영화를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 제법 있었으니...영화 장면마다 온몸으로 반응하는 인도인처럼 큰 소리로 웃거나 반응을 하는 관객도 있었다. 분명 저 사람은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일거야, 라는 생각에 동지애를 느꼈다고나 할까. 

주인공 칸은 자폐증 증세가 있는사람이다. 끝까지 자신의 이슬람 신앙을 지키고 그 신앙에 따라 순수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전개된 그런 상황에서라면. 

작년에 그런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중3짜리 남학생이 우리 반에 있었는데, 이 아이는 누구에게나 천사처럼 보였다. 남을 비방할 줄도 거짓말할 줄도 꾀를 부릴 줄도 몰랐다. 그저 엄마에게서 교육 받은대로 선생님한테는 꼬박꼬박 존대말 쓰고, 청소할 때는 절대로 꾀 부리지 않고, 점심을 먹을 때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받고 행복하게 먹었다. 아무도 이 아이를 바보라고 놀리지 않았다. 누구나 도와주려고 애썼다. 

이 아이의 장래희망은 이랬다. 중1때: 문방구 주인, 중2때: 문방구 운영, 중3때: 문구점 주인. 이 아이는 항상, 언제나, 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꼭 만들다가 만 영화 같지만 그래도 잠시 이런 생각거리를 주었다. 세상이란 게 똑똑한 사람만이 이끌어가거나, 삶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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