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여행 방법은 이렇다. 

비행기 탑승을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전반은 내가 맡고 후반은 주로 남편이 맡는다. 여행지 선정 및 일정 짜기, 항공권 확보, 여권 관리 및 비자 신청, 가이드북 및 달러 확보, 숙소 탐색 및 예약, 배낭 꾸리기는 내가 전적으로 담당하는 데 물론 남편의 옷이나 소지품은 남편이 챙기긴 한다. 그것마저 내가 해주길 바라는 눈빛이 간절하지만 요것만은 아니 되옵니다. 중간 중간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수시로 말해주지만 남편은 건성으로 들어줄 뿐, 나도 그저 혼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고나 할까. 여행은 준비 과정 자체가 이미 여행에 들어간 건데 이 즐거움을 남편은 나누려하지 않는다.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 

내가 완벽하게 꾸려놓은 배낭(이번 여행에서는 세 식구 모두의 배낭 무게를 합쳐도 10kg을 넘기지 않았다.)을 남편이 손에 들고 현관문을 나서면 그때부터 내 임무는 일단락된다. 그리고 일단 비행기에 탑승하면 무수리였던 나는 이제부터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남편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지 탐색에 나서기 시작한다. 준비 과정에서 온갖 잡다한 정보를 미리 확보한 나를 데이터베이스삼아 지도부터 머리에 각인시킨다. 훌륭한 참모 덕택인지 아니면 타고난 공간지각력 덕분인지, 남편은 내가 그간 노력해온 과정을 단숨에 소화해내는 건 물론 지도력과 통솔력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현지에 도착하면 고개를 몇 번 두리번거리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잡는다. 내가 남편을 보고 이 부분에서 매번 놀라는 것은 마치 사전 답사를 갔다온 사람처럼 현지 지리를 금방 파악한다는 점이다. "우리 몰래 먼저 와 봤었어?" 한마디 해주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남편, 귀엽다. 

주로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지만 어쩌다 서점에 가게 되면 꼭 들러보는 곳이 여행관련서적 분야인데, 이곳은 갈 때마다 조금씩 놀라곤한다. 진화라고 해야할까, 진보라고 해야할까. 자고 일어나면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는 것처럼 자고 일어나면 가이드북이 나와있고 여행 에세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런 변화는 여행 과정에서도 일어나는데... 

분홍색과 하늘색(파랑색)으로 알록달록한 쿠폰북 모양의 항공권을 만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게 이제는 e-ticket이 일반적이다. 이 e-ticket에 겨우 적응해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뜬다. 발권을 무인 발권기에서 하라는 거다. 이 무인 발권기를 kiosk라고 부른 다는 것도 대한항공의 집요한 홍보 때문에 알게 되었다. 이메일로 무인 발권 방법을 알려주기- 이 이메일을 읽어봤는지 확인 이메일 다시 보내기- 출발 전날 휴대폰 문자메세지로 kiosk 사용하라고 압력가하기...완벽한 확인 사살이다.   

항공권 구입 과정에서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여행사(<여행박사>)에 대마도행을 일단 예약부터 하고보니 부산대리점으로 자동 연결이 되어서 부산 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게 되었다. 개별 여행은 힘들 거라는 직원의 상담에 의기 소침해져 며칠 대마도행을 고민하다 취소하고 결국 홍콩행 항공권 구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이 인천이라고 말을 했었건만 부산 출발의 비행편을 예약하는가 하면 인천 출발은 서울 본사에서 알아봐야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자판 몇 번 두드려보면 다 나와있을텐데..귀찮아하는 게 역력하여 모두 취소시켜 환불 조치해버렸다. 

환불 조치 전에 그 여행사 사이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항공권 구입을,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내 마음대로 항공사를 선택하고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환불을 요구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예약금을 환불하지 않고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여행사이니까. 그러나 귀찮아하던 그 직원과 다시 통화하기가 싫었다. 사람이 오히려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여행사 직원이 친절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가. 항공권 구입부터 공항에서의 발권이 모두 컴퓨터를 상대로 이루어지니, 80년대 초반 일찍 결혼한 친구들의 제주도 신혼 여행 때의 왁자지껄한 공항 배웅같은 것은 구전되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여행은 배웅도 환영도 없는 일상일 뿐이다. 

이렇게 컴퓨터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구입 행위를 통해 그나마 저렴해보이는 대한항공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숙소는? 어느 여행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홍콩 시내 중심가(침샤츄이지역)에 한인 민박이 여러 개 있었다. 그 주소이다  

http://www.hansungmotel.com/ 

http://www.monicamotel.com/ 

http://www.parkmotel.co.kr/

http://www.motelgreenhouse.com/ 

이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우리는 이 중에서 모니카모텔에 묵었다. 이 숙소에서 좀 놀라웠던 점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여행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부모 따라온 10대부터(우리 딸) 머리 희끗희끗한 60대까지를 이 짧은 기간에 모두 보았으니 말이다. 정해진 밥 시간에 식탁에 앉아서 밥을 넘기고 있으면 이들을 향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말을 걸고 싶고, 누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해보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아무런 얘기도 오가지 않는다. 묵묵히 밥만 먹는다, 모두들. 낡은 작은 건물의 2층과 3층에 있는 이 모텔의 숙박객은 모두 한국인이다.

외국에 있는 한인 운영 숙소를 단순하게 구분하면 이렇다. 한국인만 찾느냐, 아니면 외국인도 찾느냐. 외국인도 이용하는 숙소라면 일단 기본 서비스는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별 무리가없다. 그러나 한국인만 이용하는 숙소라면 최소 한가지 이상은 눈을 감아줘야한다. 화장실의 수도 꼭지, 샤워기, 변기 등의 시원찮음은 보통이다. 있잖은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70~80년대 관광지의 민박집같은 시설을 떠올리면 된다.  

내가 경험한 최악은 파리의 한인 민박이었다. 때는 90년대 중반. 허름한 창고 같은 임시 건물에 칸을 막고 합판을 깔아 마굿간 비슷하게 만든 조악한 시설물이었다. 게다가 아침, 저녁 밥으로는 김치 한 가지가 반찬의 전부였다. 같은 밥상에서 먹던 장기 투숙생이 남긴 계란 부침 한 조각이 그나마 주인 아주머니가 베푼 관용이라면 관용이었다. 그 계란 부침 한 조각에 남편은 끝내 눈살을 찌푸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당시 임신중이었던 나는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멸감이라니. 그 주인 아주머니는 하루종일 기독교 성가를 크게 틀어놓고 늘 흥얼거리고 있었다. 차라리 뽕짝이라도 틀어놨더라면 덜 미웠을 텐데... 

우리가 3일간 묵었던 홍콩의 모니카모텔은 나의 오래된 구원(오래된 원망)을 한 방에 날아가게 해주었다. 아침, 저녁 식사가 모두 훌륭했다. 반찬을 세어보니 8가지, 국도 얼큰해서 하루의 피로를 풀게 해주었다. 물론 이삼일 있다보니 그 국이라는 것도 먹다 남은 반찬을 한꺼번에 넣어 끓인 것이긴 하지만 아침밥의 국은 그래도 늘 변한다. 해외에서 이 정도의 대접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던가. 밥상만으로 이 모니카 모텔은 훌륭했다. 화장실 변기가 시원찮아 늘 물이 줄줄 새는 정도라든가, 세탁 건조기가 없어 세탁한 침구를 실내에서 선풍기로 말리는 바람에 숙소 전체가 세제 냄새에 잠겨있다던가 하는 열악한 부분이 있지만, 허나 숙박비가 저렴하지 않은가. 그래도 깨끗한 숙소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늙어가나 보다. 그런데 왜 깨끗하고 멋졌던 숙소보다 늘 꾀죄죄하고 더럽고 보잘 것 없는 숙소만 기억에 남을까.

이 글은 믿을 수 없는 내 기억력을 위해, 나를 위해 남기는 정보이다. 다음에 홍콩에 다시 갈 때를 위한 글이다. 그래서 하나 더.  

  • 가이드북:"여행박사"에서 나온 소책자 <여행박사가 먼저 다녀온 홍콩배낭노트>와 얇은 가이드북 한 권이면 족하다. 이 이상이면 책에 치이게 된다. 가이드북이 진정 본연의 빛을 발할 때는 여행을 끝내고 나서이다. 가기 전에 읽으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여행 후에 읽게 되면 내용이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마치 오답노트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나는 때때로 가이드북 없는 여행을 꿈꾸어본다. 잘 만들어진 각종 여행 안내서 덕분에 실제 외국어로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할 일이 거의 없다. 외국어를 잘해야만 외국 여행을 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수정되어야한다. 적어도 홍콩 같은 대도시에서는 말이다.
  • 교통카드:공항의 customers service center에서 옥토퍼스 카드 구입(보증금 50$ 포함 150$). 온갖 탈 것을 택시를 제외하고는 다 타는 것 같음. 심지어 자판기의 음료수나 뽑기도 할 수 있음. 다 쓰고 나면 출국 전에 구입한 곳에서 Refund, please. 하면 7달러를 떼고 정산해준다. 
  • 우리의 남대문 시장이라는 몽콕 시장은 사람에 치이는 곳, 차분히 쇼핑하기에는 shopper's lane 이 좋음. 몽콕 시장에 있는 왠만한 브랜드는 거의 다 이곳에 있음. 가격도 같음. 
  • 한여름은 피할 것. 야외 사우나라고나 할까. 
  • 홍콩을 상징하는 한 곳을 뽑는다면?....홍콩섬의 에버딘이라는 곳. 잠깐 눈길만 주고 왔지만 참 묘한 풍경을 보여준다. 현대식 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포구에 여러 가지 선박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꼭 합성 사진 같다. 
  • (2010.8.12 추가기록) 지하철 Centra Staion 과 연결되어 있는 홍콩역에서 간단하게 출국 수속을 밟을 수 있다. In-town checkin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간단하게 짐을 부칠 수 있어서 나머지 홍콩 여행을 가볍게 할 수 있다. 단, 약간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데 수속시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옥토퍼스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몇십 달러가 드는 것 같은데 멋모르고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바람에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다.(마트에서 물건값 생각지 않고 마구 집어 넣는 습관 때문이리라.)이렇게 몸을 가볍게 한 후 란타우섬으로 가서 케이블카도 한 번 타보고 쇼핑도 하면 되는데, 주말에 케이블카를 타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엄청난 인파 때문이다....실컷 시간을 보낸 다음에 공항 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빙빙 돌아가고 갈아타고 하는 전철은 무시하시라. 란타우섬의 통총역 가까이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S1 버스를 타면 10분이면 공항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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