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수치 솔레길 트레킹(2009년 8월 5일)  


 *법수치의 소재지는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이다.   

 

 등산로가 아닌 임도를 따라 트래킹을 다녀왔다. 법수치 계곡에 작은 오두막을 지은 지 4년 만에 실행에 옮긴 일이었다.

   임도. 내가 이 단어를 접한 지는 몇 년 되지 않는다. 임도란 산불방지 등 산림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산에 만든 폭 3m~7m의 인공 도로이며 당연 비포장이다. 아무리 보아도 2m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3m 너비 도로의 실제가 궁금해서 언젠가 직접 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30cm 자를 두 번 연속해서 60cm를 재는 것처럼 내 몸이 자가 되어 도로에 누워보니 내 키로 딱 두 번 길이다. 정확하다.

   임도는 주로 7~9부 능선 높이쯤 되는 것 같은데 물론 아무나 들어가게 하는 것은 아니리라. 남편과 딸아이는 초입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돌아서 길에 들어섰고 나는 바리케이드 밑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양양군인지라 산불 관리는 엄격한 편으로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기간에는 산의 초입에 산불 감시인이 상주하다시피하며 산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남편과 내게는 입산금지 지역에도 들어갈 수 있는 ‘증’이 하나씩 있다. <명예산림보호지도원증>이 그것이다. 2007년 1월, 닷새에 걸친 산림청 연수를 받은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증’이다.

  그런데 이 ‘증’이 먹히지 않는 녀석이 있으니 바로 뱀이다. 그렇잖아도 뱀과 공생하는 동네인데 아무래도 이 뱀의 존재에 자꾸 온신경이 집중되는 거다. 이곳은 청정 지역이라 모기마저 얼마나 에너지가 충만한지 한 번 물리면 몹시 가렵고 그 자국도 한참이나 남아있어 주위 사람들이 피부병으로 오해할 정도가 된다. 이런 곳에 뱀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한 번 물리면 고생깨나 할 것이다.

  하루 전, 양양 시내에 나가보니 마침 장이 서는 날이다. 좌판에서 생산지 불명의 작은 금속 방울 두 개를 5,000원을 주고 샀다. 이것들을 남편과 딸아이 등산화에 매달아보니 나름 낭만적이고 음악적이면서 무슨 부적마냥 마음 한 구석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뱀이 청각이 발달했나? 하여튼 방울을 달고 출발은 했는데 그래도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트래킹용 샌들을 겁도 없이 맨발에 신고 있는 나는 방울도 없어 더욱 불안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걸을 때마다 스틱을 땅바닥에 치면서 땅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스틱이지 마당가에 굴러  다니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남편이 내 키에 맞게 잘라준 것일 뿐, 남편 말마따나 뱀이 나타나면 뱀을 때려잡아야 할 텐데 제발 땅울림에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 뿐이다, 뱀아, 제발.....

 

  계속 임도를 따라 걷는다. 길은 셋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폭이지만 빗물에 쓸려 내려가서 생긴 바닥의 홈 때문에 딸을 앞세우고 종대를 이루며 걷는다. 장대한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서 산이 깊고 그늘도 더불어 깊다. 차량이 다니는 도로라서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아 불평 많은 딸아이도 소리 없이 잘 걷는다. 지리산의 오밀조밀한 오솔길이 살짝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인적 없는 산길을 호젓하게 걷는 맛도 일품이다. 숨바꼭질하듯 꼬불꼬불한 산길을 걷다보면 어느 새 저 멀리 계곡과 집들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 저건 누구네 집이네! 반가움도 잠시 어느새 잡풀들로 좁아진 길을 헤쳐가면서 걸어야한다. 이때는 긴장감으로 스릴 만점이다. 꼭 풀 숲 어디선가 뱀이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것 같다. 막대기를 더 세게 땅바닥에 두드리며 걷다보니 팔목이 시큰거린다. 그러다가도 야생 산딸기라도 만나게 되면 금세 호들갑을 떨게 된다. “시식용이다.” 라는 남편의 너스레에 즐거워하면서 너 하나 나 하나 먹는다.

 

  2시간 30분이 걸리는 임도를 벗어나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산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그 품이 얼마나 넉넉한지를. 산에서 내려와 이어지는 도로는 진부 방향 강릉 국도인데 아직은 비포장도로라서 옛 길을 따라 걷는 정취는 있다. 허나 너무 덥고 햇볕이 따갑다. 이때부터는 딸아이의 불만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다. “내가 (청소년이지) 성인이냐고...(궁시렁 궁시렁)”하면서도 잘만 걷는다. 다시 어성전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 더욱 고역스러워진다.

  어성전의 <주안식당>에서 메밀국수 한 그릇씩을 단숨에 비우고 다시 법수치 계곡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펜션 단지가 이어지는 길이다. 처음 이 법수치에 왔을 때부터 제일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여기 어성전부터 걸어서 올라가보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랜 염원이 이뤄지는 날이었는데....

  트래킹 전, 우리의 산행을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던 펜션 <산골여행>의 주인아저씨가 멀리서 우리를 보자 반가워하신다. 여기서 다시 8km 정도는 가야 우리 오두막이 나오는데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이다 싶었다. 맨발에 신은 트래킹 샌들도 별 수는 없었다. 물집이 잡히고 살갗이 벗겨져 쓰라렸다. 신제품 트래킹화만 믿었더니 역시 이 고전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나보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트래킹 신발을 개발한다면 대박 중의 대박일 텐데....

 

  결국엔 우리의 오랜 친구이자 이웃인 법수치 주민인 무엽이 엄마가 차를 끌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못이기는 척 차에 오른다.


  미완의 트래킹이었다.  

 

  이 길을 우리는 “솔레”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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