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약 시스템이 싫다. 예전에는 여행할 때 항공권과 첫 도착지의 호텔 정도만 예약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그때 그때 해결했다. 비록 저렴한 호텔일지언정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흥정하는 것을 즐겼다. 교통편도 마찬가지. 직접 버스나 기차표를 구입하거나 여의치않으면 현지 여행사에 의뢰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신문명의 발전으로 거의 모든 걸 조그만 휴대폰으로 예약하고 처리하려니 때로 머리에서 쥐가난다. 예약에 묶이면 어긋난 일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상황 돌변으로 발생하는 우연의 묘가 확연히 줄어든다. 그게 어디 여행인가. 출장이지, 수학여행이지.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족자'라고도 부른다)로 갈 때도 기차표를 직접 구매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여행 전 앱을 깔고 시도해보긴 했으나 '뭐, 어떻게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현지에서 기차표를 사기로 했다. 족자행 기차가 출발하는 감비르역을 어찌어찌 알아내고 자카르타에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표를 예매하러 갔다. 창구는 또 왜 여기저기 있는지, 어느 창구에서 판매하는지 알 수 없어서 눈에 보이는 창구에 가서 표를 사러왔다고 했더니 낯선 인니어로 안내를 해주었다. 남편이 야심차게 준비한 번역기 앱을 열어 겨우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서로 버벅대며 알아낸 사실은 족자행표를 사려면 건물 반대쪽에 있는 서비스센터로 가라는 것이었다. 눈치껏 찾아간 것까지는 좋은데 그곳에서는 표를 판매하지 않는다면서 직원이 몸소 우리를 데리고 다른 창구로 데려갔다. 우리 내외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외국인 노인들이어선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종이에 행선지와 날짜와 시간대를 적어 내밀었더니 당장은 표를 살 수 없고 출발 날짜 하루 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이건 또 뭐지. 왜 그렇지? 의문이 들었지만 물어본들 시원하게 말이 통할까.
출발 하루 전에 표를 끊고 무사히 족자에 도착했다. 족자에서는 일주일을 머무는지라 초반에는 그 유명한 보로부두로도 둘러보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며칠 후 자카르타행 기차표를 구매하러 갔다. 창구 직원은 앱 주소가 쓰인 손바닥만한 인쇄물을 주면서 표를 스마트폰으로 구매하라고 한다. 앱으로 구입할 작정이면 진작했지 왜 여기까지 왔는고... '이건 사용하기 어려우니 그냥 표를 달라.'고 우는 소리를 했더니 출발 3시간에나 표를 살 수 있단다. 뭐, 이렇게 동네마다 다른가, 툴툴거릴 찰나 표가 없단다. 일요일에 이동하는 표를 사려는 자체가 문제였음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그래 월요일도 좋다고 했더니 그것도 없단다. 어라, 상황이 재밌어지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이곳에 발이 묶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하면서 숙소 옆에 있는 여행사로 향했다. 다행히 미니버스가 있어서 일인당 450,000루피아(우리 돈으로 4만 5천 원이 약간 안된다)를 지불하고 예약을 했다. 5시 출발이라고 해서 오전인줄 알았더니 오후 5시란다. 12시간 걸린단다.
출발 당일 오후 5시. 설레는 가슴으로 호텔에서 픽업을 기다렸지만 미니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50분. 먼 동네에서 승객들을 데려오느라 시간이 걸렸다는데 뭐 어쩔 수 있나. 버스에는 세 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렇게해서 타게 된 12인승 미니버스는 요렇게 생겼다.

겉모습은 앙증맞고 예쁘장하지만 내부는 협소한 좌석에 안전벨트도 없는 열악한 상태였다. 우리 좌석은 이미 탑승한 인니 여성 옆이었는데 이 인니 여성은 처음부터 우리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먹을 것을 꺼내 아예 내 앞에 벌려놓으며 마음껏 먹으라고 한다. 말을 무척이나 나누고 싶어하더니 번역 앱을 열여 말을 걸어왔다. 이 여성의 나이는 32세. 언뜻 보기보다 나이가 어리다. 40대로 보였었다. 내 나이를 묻기에 알아맞혀보라니까 55세쯤으로 보인단다. 동안과는 거리가 먼 얼굴인데...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내 나이의 절반쯤 되는 여성은 내 삶을 앞지르고 있었다. 자녀가 세 명에 손자도 있단다. 엉, 손자가? 영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전처의 자녀가 결혼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헌데 정장차림의 남여 커플 사진을 보여준다. 딸과 사위 같다. 그렇다면 진짜 친손자가 맞나? 그건 그렇고, 지금은 타이완에서 3년 계약으로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한다고 한다. 3일 후에는 타이뻬이로 돌아가야 한단다. 요양원에서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유치원생쯤 된 막내 사진도 보여준다. 간단한 영어 단어도, 간단한 인니어도 서로 통하지 않으니 대화라고도 할 수 없는 대화였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이 인니 여성에게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거친 파도를 밀어내는 힘 같은 게 느껴졌다. 그녀 앞에서 나는 나이만 곱게(?) 먹은 것 같은 나약한 사람처럼 보였다. 뭔지 모를 부끄러움도 더해졌다. 여성들의 삶은 어느 곳에서나 만만치 않겠으나 열악한 곳일수록 더 가혹하다.
다음은 자카르타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이다.
1.

2.

3.

4.

제목을 달아보시라.
실제 그림제목이다.
1. mother
2. strong woman
3. woman - mother
4. solidarity(연대)
특히 3번 그림이 재밌다. 멀리서 보면 화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인데 가까이 보면 여인이 쓴 가면에서 독기가 느껴진다. 꺾인 꽃에서는 벌이 달아나고 있고. 한때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되면 얼굴엔 사납고 독한 표정의 가면을 쓰게 된다. 그 가면은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가면의 얼굴과 같은 표정이 되어버리는 건가. 벗을 수 있는 가면인가 벗을 수 없는 진짜 얼굴인가.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도 이야기가 되는 그림이다. 그러나 저것은 한낱 그림일뿐. 미니버스의 내 옆자리 여성에게서는 저 그림이 그저 예술이라는 탈을 뒤집어 쓴 유희처럼 보이리라. 한가로운 사람들의 짓거리일뿐. 4번 그림을 설명하는 건 부질없다. 척 봐도 아니까. 여자끼리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많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
당신도 고생이 많군요.
밤새 미니버스를 타고 자카르타 구광장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1시. 우리가 내리기 한참 전에 내 옆자리 여성이 먼저 내렸었다. 애틋한 마음에 서로 포옹을 나누고 그 여성과 헤어졌다. 부디 무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