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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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깜짝 놀라면서 책장을 넘긴 책. 이유는,

- 대학원 과정은 아니지만 학사 편입으로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를 해봤다는 것.

- 주인공들이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좋아한다는 사실. 대학 때 원고지 80장을 작성해야 하는 졸업논문으로 이 소설을 선택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내게 의미가 크다는 것.

- 취업 후, 잠시 적을 두었던 문창과에서 알게 된 동료를 내 아파트로 불러들여 몇 개월간 동거했다는 것.


그러니 마치 내 얘기인양 읽게 되었다. 와우.... 내가 쓸 뻔한 소설을 누가 먼저 써버렸군, 은 물론 아니고 그저 한구절한구절 눈에 불을 켜고 읽게 되었다고나 할까. 소설 속의 합평회에서 한 작품을 두고 이를 잡듯 집요하게 따지고 파고드는 것처럼. 실제로 문창과에서 이루어졌던 창작세미나 수업이 그랬었다. 특히 등단한 학생의 작품을 잘근잘근 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등단은 선망의 대상이었으므로.


"그쪽 소설 보니까 어떤 책 생각나는지 알아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읽어봤어요?"

"네." 그가 말했다. "굉장히 좋아했는데."

"거기서 영향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 생각이 맞나?"

"허." 그가 말했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요. 아마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었나 보네."

                                                                    -49쪽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졸업논문이란 게 그저 리포트를 길게 쓴 정도에 불과했지만 당시는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없는 이 소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혼자만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충족시켜주는 소설이었다. 논문 제목에 '소외'라는 단어를 붙였었는데 나의 대학 생활이 꽤나 외롭고 쓸쓸해서였을 것이다.


벽장문이 삐걱거리며 조금 열렸고, 부드러운 털이 내 팔을 스치며 정전기가 이는 게 느껴졌다. "셔우드"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등뼈의 울퉁불퉁하게 솟은 부분을, 턱 밑을, 두 귀 사이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두 눈을 감고 턱을 만족스럽게 늘어뜨렸고......

                                                 - 300 `~ 301쪽(마지막 페이지)


고양이 이름 "셔우드".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쓴 작가 이름이 셔우드 앤더슨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미소짓게 한다.


"그건 숨길 수가 없었지." 그가 말했다. "MFA가 뭐의 약자냐고 묻길래 순수예술 석사과정 Master of Kine Arts이라고 했더니, 그걸 '자위하는 호모 예술 Masturbating Fag Art'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라."             -59쪽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학생들은 이렇게 바꿔 불렀으니. '중간대학교 요술대학 문제창작학과"라고.


성적으로든 플라토닉하게든, 처음으로 누군가의 집에서 자고 나면 두 사람 모두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을 더 편하게, 동시에 더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함께 친밀감의 울타리를 뛰어넘지만 뒤이어 적나라한 아침 빛 속에서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65쪽


취업 후 얻은 아파트가 썰렁해서 문창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를 불러들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지도 덜 외롭지도 않았지만 누군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이 친구는 잘 생기고 인기 절정의 문학청년을 애인으로 두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댔다. 당시는 90년대 초반으로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매일 걸려오는 전화에 질려서 결국 이 친구를 집에서 내보내게 되었는데.....낭만적이고 전형적인 문학청년인 그와 나는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같은 수업을 들었으니까. 차라리 서로 몰랐다면 어땠을까.


잠시 동거했던 이 친구는 몇 년 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책도 몇 권 세상에 내놓았다. 그 문학청년은 다른 여성을 만나서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그녀와도 헤어졌고 몇 년 후 홀로 살고 있는 집에서 돌연사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가 쓴 책 한 권이 내 책장에 꽂혀있다. 이 무슨 소설같은 이야기인지...


빌리가 내 안에서 다른 누구도 움직이게 한 적 없는 무언가를, 깔끔하게 정의된 범주에는 들어맞지 않는 무언가, 내가 명료하게 표현할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무언가를 건드려 움직이게 했다는 것을. 비록 이런 각각의 경험은, 누구나의 외로움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특정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독특한 것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라고 - 타인의 경계가 그려내는 특별한 윤곽선은 우리 자신의 그것과 충돌하고, 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 지금의 나는 생각하지만 말이다.           -287쪽


서로의 외로움을 정확히 알아본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 '특정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독특한' 경험은 '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우정이자 사랑, 그 이상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감정을 말하고자 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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