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은 싫어도 뉴욕만큼은 가보고 싶었다. 미국이 싫다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미군부대가 있는 동네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나는 일찍부터 미국 문화에 접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군인들의 비상식량 깡통 속에 들어있던 고기 통조림, 이따금 동네에 손수레를 끌고 오는 행상에게서 한 대접씩 사서 뜨겁게 데워먹던 꿀꿀이죽, 달리는 미군 차량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비루하게 헬로를 남발하며 얻어 온 초콜릿, 유년의 시간대였던 1960년대 풍경이다. 겨우 먹고 살던 시절이어서 유독 먹거리에 대한 기억이 많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여러 친구들과 다양하게 어울리게 되었는데 특히 미군부대를 이웃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 때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사이여도 서로들 집에 초대해서 함께 놀곤 하던 시절이어서 이 친구네 집 저 친구네 집, 두루두루 가볼 기회가 많았다. 공무원이었던 우리 아버지만 보고 자랐던 나는 친구의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일한다는 걸 듣고 신기하게 여기기도 했다. 미군부대 주변을 맴돌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지만 함께 진학한 친구들이 많아서 우리들의 놀이터는 여전했다. 대학 역시 새벽 통근열차를 타고 서울로 우루루 몰려갔지만 우리들이 모여서 쏘다니는 길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마음 놓고 술집이나 미군 전용 클럽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대학생이 되니 선후배가 생기고 사회의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때 그간 학교에서 공부했던 그 아름다운 많은 시들을 단번에 물리친 시가 나타났다. 시인 박석수의 시였다.

 

   연 꽃

  -쑥고개 1

 

헐벗은 우리의 가슴에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기 위하여

 

임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양키들의 털북숭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누이야,

 

네 몸과 바꾼 15불의

화대로도 애비들의 눈은

뜨여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연꽃은.

그 신화같은 연꽃

끝끝내 피어나지 않는다.

 

내의 껴입을수록 더

추워지는 이 겨울을

맨 정신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눈 부릅뜰수록 더

어두워지는 이 세상을

좀 더 바로 보기 위하여,

 

임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수렁 속에 던져진

우리들의 마지막 누이여.

 

   

 

 

 

 

 

 

 

 

 

 

 

 

 

 

 

 

양키들의 털북숭이 가슴에이 강렬한 구절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자꾸 의식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이른바 반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미군부대에 기대어 살고 있는 입장에서 나오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국제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과도 닿아 있는 씁쓸함 같은 것. 미국은 이미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꽈리를 틀고 있었다. 미국 문화는 외국 문화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영어교사가 되어 영어로 밥을 먹고 살게 되었지만 영어교사를 마감할 때까지 미국 땅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도무지 미국이 궁금하지 않았다. 미국식/영국식 영어를 따져가며 발음에 버터를 바르려고 노력이야 했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더 이상 남의 나라 말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게 죄짓는 것 같아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가보지 않은 나라, 미국이지만 나는 미국 문화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벗어날 수도 없었다.

 

영어를 접으니 미국에나 한번 가 볼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곳,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간은 보름 정도로 잡았다.

   

 

 

2.

미국을 대표하는 곳이 뉴욕이라면 이번 뉴욕 여행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일까.

여행 전 책으로 예습했던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구겐하임미술관을 두루 다녔다. 솔직히 그림을 본다고 해서 눈에 익은 명화를 살아있는 육안으로 확인하는 기쁨 이상은 아니다. 낯선 그림 앞에서 감동하고 그 감동을 다음 단계로 이끌어가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깨달을 뿐이다. 미술 전시회에 가면 늘 느끼는 부족함과 미진함의 원인이다.

 

구겐하임미술관은 명성대로 건물이 아름답다. 나선형으로 설계된 전시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꼭대기 층, 마지막 전시실에 이른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명화들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며 올라왔는데 이 마지막 전시실은 좀 많이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흑백사진까지는 좋은데, 이게 뭐지? 육체미가 가감 없이 드러나는 흑인의 상반신 혹은 하반신과 거대한 성기 사진. 10초 이상 눈에 힘을 주기도 힘든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찍는 이 남자는 또 뭐지

 

 약간의 충격을 충격이 아닌 양 하며 밖으로 나오니 예쁜 화장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기둥 모양의 화장실도 인상적인데 손잡이가 달린 변기 커버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센스 만점의 변기 커버에 감탄하며 급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으흠,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줘야지.

 

    

 

 

 

집에 돌아와서 한대수의 책을 읽고 나서야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메이플소프(Mapplethorpe)는 사진계의 폭군, 이단아, 동성 섹스 포르노 작가로 알려졌다. 또 호의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은, 그를 동성 에로티카의 위대한 아티스트, 혹은 섹스 혁명의 개척자로 인정한다. 여하간, 메이프소프는 화젯거리이고, 논란의 대상이다.

   이러한 사진계의 '체 게바라', 메이플소프의 사진 전시회가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열렸다.(중략) 모두 흑백. 절반은 유명인의 초상화이고 다른 절반은 꽃과 남자 누드이다. 페니스가 노출된 흑인 남자들이다. 너무나도 생소하고 파격적이다. 대부분의 남녀 관람객들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놀라워서 못 본 척하며 그냥 지나간다.    (108쪽) 

 

 

소심하게 변기 커버 사진이 뭐냐. 대담한 사진이라면 대담하게 찍어와야지. (참고로, 인터넷 검색하면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메이플소프의 평생 연인이었던 패티 스미스의 책. 메이플소프와의 뉴욕 생활을 그린 자서전으로 내셔널 북 어워드를 탔다고 한다. 언젠가 읽게 되겠지, 아마.

 

 

3.

때는 1970년대 초. 초등학생 때. 누군가를 따라서 미군부대 근처에 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 어떤 예쁜 여자가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흰색 짧은 웃옷을 입고 내 옆을 지나갔다. 그당시 동네에서 유일한 티비가 우리집에 있었기에 웬만한 장면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는데 실제 눈 앞에 본 그 옷차림은 상상초월의 생소한 놀라움을 선사했다. 아, 양공주구나.

 

충격으로 크기로 따지자면, 어린 초등생 눈에 보인 그 옷차림이나 메이플소프의 대담한 사진이 주는 충격이나 거기서 거기다. 미국은 이렇게 또 한번의 충격을 가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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