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의 고운식물원에 가기로 한 날. 길이 막힐까봐 일찍 서둘렀다. 아침 8시 개방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아침밥을 행담도 휴게소에서 먹고 다시 부지런히 갔더니 8시 5분 전쯤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 하나는 잘 지키지, 직장인의 자세가 살아있었다. 그랬더니 웬걸 개장시간이 9시라며 먼저 둘러본 후 입장료는 나중에 내라고 한다. 엉? 홈페이지에서 분명 8시를 확인했는데....
초입에 있는 버드나무. 버드나무 세계도 오묘하군.
양귀비. 영국의 현충일엔 저 꽃을 앞가슴에 단다고 하는데...오늘은 마침 우리 현충일.
낙우송과 호흡근. 옆에 툭 튀어나온 게 뿌리(호흡근)인데 뿌리에 필요한 산소를 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볼수록 신기.
이파리와 꽃을 손으로 비비면 물고기 비린내가 난나고 하는 어성초.
찔레꽃과 헷갈리는 고광나무꽃.
서양으아리로 클레마티스라고 한다. 서양화가 폴 클레와 앙리 마티스를 합성해서 겨우 이름을 기억.
으아리. 꽃 이름 외우러 온 듯...
도마뱀.
떡갈잎수국
페튜니아(아, 어려워!)로 장식한 들어가는 길.
8시에 입장했으니 어언 2시간 가량 걸린 셈이다.
이런 큰 식물원은 한 개인이 유지, 관리하기가 참 만만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깔린 돌 하나하나에도 땀방울이 스며들었겠구나 싶으니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시설물 하나 허투루 보아선 안 되었다. 그러나 뭐랄까. 전체적인 느낌은 백화점식 나열이 느껴졌다. 그러니 식물원이겠지만 보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닌데 관람 내내 공부하는 사람처럼 들여다보고 이름 불러보고. 마치 그림전시회에 가서 작가와 작품명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했다. 쉼터가 있긴 했으나 외지거나 한가하게 앉아 있기에는 마뜩잖아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고 있을 공간을 찾기 힘들었다. 넓은 잔디밭은 야외결혼식장으로 어울릴 성 싶었으나 한가하게 도시락을 까먹으며 앉아있을 수 장소는 아니었다. 일대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는 훌륭하나 그저 전망대이지 다리 뻗고 앉을 곳은 아니었다. 촘촘하게 서있는 팻말을 따라 일정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일종의 지시와 다름 없었다. 1,000원 내면 탈 수 있는 롤러 슬라이드는 어린 손님을 끌 수 있는 수익사업이겠으나 식물원을 유원지처럼 보이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이게 아무래도 런던의 큐 가든을 갔다온 후유증이지 싶다. 그곳은 멍 때리기에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는데...사람이 나이들면 채움보다 비움을 생각해야 하듯 식물원도 해가 거듭할수록 적당히 비우는 법을 터득해야하지 않을까. 이 식물원은 2003년에 개원했다고 하니 사람으로치면 이제 겨우 10대일 뿐이다. 비움을 생각할 때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모쪼록 잘 만들어진 곳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주면 좋겠다. 들여다보고 이름을 불러주길 고대하는 꽃과 나무들이 살고 있다. 이런 곳은 우리가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