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리커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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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을 천천히 만져본 적이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접사를 찍을 무렵이었다. 촘촘히 그어진 연두 빛 결을 반대 방향으로 훑어 내렸을 때 손끝으로 까슬까슬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냥 부드러우리라는 예상과 달랐다. 묘하고도 생경한 감촉은 뜬금없는 순간에 종종 생각이 났다. 마음이 따끔따끔해지면서 심장에 눈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힐 때면 세상을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짓던 나는 강아지풀을 떠올렸다. 부드러움과 까슬까슬함을 품은 채 흔들리는 가뿐함. 그 푸르스름한 먹먹함에 나를 겹쳤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아치디이다. 대조되는 상황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마주쳐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조각들을 덤덤히 꺼내어놓는다. 이야기에 몰입할수록 책에서 튀어나온 감정들이 가까이 다가와 나를 건드렸다. 따끔거렸다. 미세한 칼날에 베어 아린 듯 중간 중간 걸음을 멈추었다. 소설 속 상황 때문인지 그 속에서 발견한 내 모습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주인공 하민에게서 학창 시절의 나를 본다.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았고 가지 말라는 길은 가지 않았던 나는 대학 다니면서 주말과 휴일이 가장 싫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이틀 동안 과외를 두세 탕씩 뛰면서 학비를 충당하고 집에 돈을 보탰다.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은 삐거덕거리는 나사를 돌리는 행위 같다. 아무리 힘을 주고 돌려봐도 헛돌면서 손끝만 아릿하다.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번 지쳤다. 제대로 이해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그들의 나른함이 지겨웠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부유함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면서 치열한 4년을 보냈다.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hard’는 보통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p265)’ 남주인공 랄도가 하민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 부분이 눈에 밟혀 마음에 고인 채 맴돌았다.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일하는 건 아니니까. 하루하루를 일하듯 살아오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매캐한 공기가 가슴으로 훅 끼얹어졌다.

 

하민과 대조되는 인물인 랄도에게 주변인들은 질문을 던진다. 너 왜 여기 있어?(p240, 259, 260, 261, 289, 290)’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이다. 불교에서의 화두처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기라는 낱말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 내지는 삶의 과정에서 이 장소에 네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라는 의미가 짙다.

대마초를 하면서 피폐한 삶을 살았던 랄도는 집밖의 삶을 간절히 원했지만 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가지 않기도 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는 뻔뻔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는 편이 쉬웠다.(p261)’는 사람. 너 왜 여기 있어?’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고 싶었는데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그랬으니까(p261)’ 이였다.

첫 번째 과외 집에서 두 번째 과외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종종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 있지? 있고 싶지 않은 공간에 있을 수밖에 없던 어쩔 수 없음이 생각났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선명한 스냅 사진들이 부레처럼 떠올랐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졌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직장에 들어갔다. 타고난 완벽주의로 인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었다. 못 다한 일은 집으로 싸들고 와서 했다. 1순위는 직장 일이었다. 로봇처럼 일하는 간호사였던 하민의 모습에서 또 나를 보았다. 아치디에 와서 그녀가 기르던 여덟 마리의 말들 중 게으른 녀석과 나이가 제일 많은 녀석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종의 부러움이리라. 게으른 사람이고자해도 천성적으로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 부류다. 부지런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계속 채찍질 당하는 말처럼 마음 불편하게 달리는 것이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마냥 달리기만 하는, 그래서 너 왜 여기 있어?’라는 물음조차 해보지 못하는.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다. 멈춰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에 매달려 13여년을 관성으로 달려왔다. 조금씩 속도가 느려진 건 10년 정도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4년 전 즈음이다. 퇴근 후 나는 커피숍을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시를 지었다. 직장일과 집안일을 숙제처럼 마치고 커피숍으로 향하는 길은 고단한 기쁨이었다. 퇴근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 글을 쓰고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비로소 나는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배려하는 아이, 양보하는 아이, 욕심 없는 아이였다. 월급을 집안에 보태면서 언니의 결혼자금에도 큰 힘이 되었다. 내가 결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신 이후로 수입에 비해 다소 많은 돈을 부쳐드렸다. 너도 살아야지 친정에 이렇게 갖다 주면 어떻게 하니. 친정어머니께서는 매번 미안해하셨다. 번듯한 호강은 못시켜드리더라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소소한 일상을 누리시는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에 대해서 이다음에 잘해드릴 기회는 없을 테니까.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나는 착한 아이였다. 별명처럼 따라다니던 이 말에 착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선이 점점 글 쓰는 삶을 향한다. 글을 쓰는 동안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자유롭다. 앞으로의 삶은 글을 쓰며 글로 채우고 싶다. 연금이 나올 때까지만 직장을 다닐까. 올해로 28년째면 많이 한 거지. 4년 더 일하다 과연 그만둘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과속방지턱처럼 매번 걸리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께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이라도 벌어야 용돈을 마음 편하게 드릴 수 있을 테니까.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p282)’  이 문장이 나를 흔들었다.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사실은 나의 직업이 본성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아이가 지닌 막무가내의 잔인함에 거부감을 자주 느꼈던 내가,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을 그토록 지겨워했던 내가 중학교 과학교사다. 예전부터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현상과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썩 기발한 방법으로 비유를 하곤 했다. 그래서 잘 가르치는 것이라 착각을 해왔던 거다. 돌이켜보면 단지 표현력이 좋았을 뿐인데. 문과와 이과 성향이 반반이라면 좋아하는 분야와 나의 성향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교사의 첫 번째 조건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말 잘 듣고 수업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성실한 아이가 예뻐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일터이다. 결핍된 아픈 손가락을 보듬는 마음은 가르치는 기술보다 우선이어야 한다. 나에게 과연 그런 마음이 있을까. 요즘은 자신이 없다. 한때 교실에서 제일 행복했던 내가 며칠 전에는 아이들을 만나러가는 복도를 지나면서 가뭄에 말라비틀어지는 나뭇가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코 던져진 몇 마디 말로 쉽게 상처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과 마주보는 시간들이 무거워지는 만큼 즐거움으로 채워지는 가뿐한 순간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밀려드는 의기소침은 현재진행형이다. 28년 동안 켜켜이 쌓인 더께로 인해 낡아버린 걸까. 처음부터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 걸까.

 

너 왜 여기 있어? 며칠 동안 마음을 붙들었던 문장이 지금까지 맴돈다. 나는 후각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걸까. 자극이 계속되면 순응하여 더 이상 그 냄새를 못 맡는 것처럼 그저 습관처럼 만들어진 결에 맞추어 살아왔던 건 아닐까. <아치디에서>는 나에게 다가온 다른 종류의 냄새였다. 자극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움찔했다. 작가의 문장들이 거울인 듯 관성의 결을 거슬러 나를 향해 걸어 들어왔다. 넌 네 삶을 살 거야.(p298)’ 스스로에게 이 말을 던져본다.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을까. 강아지풀처럼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문장들이 마음의 작은 솜털들을 건드린다. 나는 내 삶의 결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까슬까슬한 감각에 심장이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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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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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바람, 웃음, 농담. 아름답고 무용한 그런 것들을 좋아하던 희성도 죽고, 화초 같은 계집의 치마 끝을 그토록 섹시하게 잡고 그윽한 눈총 뿜뿜 쏘아대던 동매도 죽고, 그거면 됐다는 유진도 죽고, 애기 씨만 불꽃으로 살아났던 작품. 주인공들 대부분이 시간차 몰살을 당했어도 여운이 길게 남았더랬다. 오다가다 스냅 사진 같은 장면만 보았으면서도 충분히 임팩트 있는 뭉클함을 주던 드라마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니 뜬금없이 떠오르는 드라마. 교집합이 전혀 없는데 대체 어느 부분이? 한참 생각하다 이유를 깨닫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허무였다. 드라마에서 인상 깊게 등장한 무용한 것이란 말이 겹쳐진 것이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초반에는 파티 작렬하며 남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진실게임이 느릿하게 진행되다 등장인물들이 우루루 한군데로 모이더니 그때부터는 폭풍 전개가 이어진다. A가 여주인공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죽고, A의 남편은 남주인공이 그런 줄 알고 권총으로 쏴죽이고 자살한다. 이틀 만에 책을 읽고 나흘을 고민했다. 도대체 책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단 말인가. 좋아, 이토록 허망하고 재미없었음을 써봐야겠어.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다. 소설의 관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깔 수 있으니.

 

첫째, 인물을 살펴보았다.

주요 등장인물의 관계를 보면, 개츠비의 첫사랑은 여주인공 데이지, 머틀의 첫사랑은 톰이다. 데이지와 톰, 머틀과 윌슨은 각각 부부이다. 톰과 머틀은 몰래 만나는 사이이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재회한 후 대놓고 만난다. 조던은 소설 내내 등장하지만 존재감 제로에 허세 쩌는 인물이다. 그녀와 살짝 썸을 타다 마는 닉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이며 개츠비의 위대함을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

잠시 등장하는 머틀의 여동생은 언니의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서로 안 맞는 사람끼리 왜 같이 사냐는 거예요. 내가 저들이라면, 이혼하고 당장 재혼할 거예요.(p48)’ 처음에는 공감했지만 조금 더 생각하니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안 맞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같이 살지 않을 경우보다 다만 1%라도 유리한 점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사람만큼 이기적인 존재는 없으니까. 데이지가 톰의 외도를 알면서도 같이 사는 이유는 톰이 자신의 허영을 만족시켜주는 인물이기 때문일 터이다. 머틀 역시 윌슨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이런 시각으로 판단하면 오로지 맹목적인 인물은 개츠비이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사랑하는 데이지를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쓰려고 했고 자신의 성장 배경에 대한 거짓말 역시 탐욕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향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까.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에서 대부분 여주인공만은 꽤나 그럴 듯하다. 악녀 캐릭터는 서브 여주의 몫이다. 주인공이라면 무릇 비련의 캐릭터이거나 유쾌함을 장착했거나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아름답거나 공감을 끌어내는 인물이다. 한데 이 작품은 핀트가 어긋난다. 이토록 돈 냄새를 좋아하는 존재가 있을까. 개츠비가 보유한 수많은 셔츠들을 보며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라며 흐느끼지를 않나, 개츠비조차 그녀를 가리켜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p151)’라 표현했으리만큼 세속적인 밉상이다. 여타 로맨스 소설과의 차별점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것처럼, 데이지의 허영은 개츠비의 순수함을 드높이는 장치를 한다. 부를 끌어 모은 개츠비와 지향점이 다르다.

데이지의 남편 톰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그가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전부 다 제 입장에서 정당화해버렸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p222)’ 개츠비의 죽음을 도발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머틀의 남편 윌슨이 총을 들고 개츠비를 향해 뛰쳐나가게 만들었으니까.

또한 톰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불끈한 윌슨은 바보다.

관찰자 닉을 작가의 아바타라고 가정한다면 유일하게 밉상이 아닌 인간은 위대한 개츠비이다. 이토록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지질할 수 있을까. 각각의 속성이 지질하다 못해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섯 행성들의 등장인물이 연상된다. 권위적인 왕, 자기 칭찬 외에는 듣지 않는 허영쟁이,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술꾼,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기 것이라는 상인, 1분마다 불을 켜고 끄는 점등인, 자기별도 탐사 못한 지리학자. 독자 입장에서는 한심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각종 캐릭터들은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심오한 메시지들을 건네준다. 우리가 한심해하는 요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은 복잡다단한 인간의 속성을 분별 증류한 극단적인 캐릭터이기는 하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따로 따로 심도 있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작가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둘째, 사건이다.

윌슨과 다툼 끝에 갑툭튀한 머틀이 데이지가 운전하는 차에 치여 죽고, 톰의 발고로 개츠비를 오해해 불끈한 윌슨이 개츠비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어쨌든 주요 인물 셋이 죽고 화자를 제외하면 데이지와 톰, 밉상 부부 둘만 남는다. 허무도 이런 허무가 없다. 허망하기 그지없으나 인생 다 그렇지 뭐라는 흔한 말처럼 삶의 속성을 가장 흡사하게 스케치한 모습이다. 공식에 대입하여 완벽한 X값을 얻어낼 수 있는 수학이 아니라 무한소수로 애매하게 흐드러지는, 갑자기 등장한 Z로 인해 일차방정식에서 순식간에 삼차방정식으로 변모하는, 분모에 0이 등장하여 불능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토록 허무해 보이는 사건들을 대하는 자세와 해석하는 관점, 그 안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심미안일지도 모르겠다.

개츠비의 죽음 이후에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들도 숙고할 여지가 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닉은 개츠비의 죽음 이후에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하며 인간의 비정함을 그려낸다. 개츠비의 파티에 그렇게나 모여들던 이들이건만 개츠비의 죽음을 알리자 각자 핑계를 대며 장례식을 외면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정한 단면은 개츠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셋째, 배경이다.

작가는 대조되는 배경을 마주 보게 함으로써 서로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기득권 세력, 올드머니, 톰과 데이지 부부를 이스트 에그에 배치하고 신흥 부자, 뉴머니, 개츠비를 웨스트 에그에 배치한 다. 서로 다른 세력의 모습은 당시 독자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금주법의 시대인 1925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술이 금지되던 시기에 주인공 개츠비는 밀주업으로 돈을 번다. 그가 일주일마다 열었던 파티에서는 술이 질펀하게 등장한다. 나는 소설 앞부분에 나오는 파티 장면에서 지루함과 이질감을 많이 느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이슈였을 터이다. 소설 출간 당시 29세였던 작가로서는 현재를 생생한 배경으로 시대상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검은 마스크 쓰고 두 손 공손히 모으며 TV에 등장하는 각종 인물들과 관련된 배경 정도 되었을까. 그렇다면 영향력의 강도가 상당했으리라.

 

소름이 돋았다. 허술한 것이 아니라 삶의 속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완벽한 구현이었다. 이토록 지질하고 적나라한 욕망과 허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구나. 주제가 선명하다. ! 소설의 3요소가 주제, 구성, 문체인데 주제와 인물, 사건, 배경이 뚜렷하다면 문체는? 문체의 입장에서 소설을 훑어본다. ‘은빛 후춧가루가 뿌려진 별밭(p34)’이라는 비유도 뛰어나고 닉이 말하는 다음의 문장에서는 유머 감각도 보인다. ‘모든 사람은 여러 주요한 미덕 중에서 최소한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내 경우에는 이것이다 :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정직한 사람들 중 하나다.(p78)’ 섣불리 판단할 게 아니었구나, .

내 취향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다.(p170)’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가 비판의 대상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p11)’ 무엇이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되는 이 문장 앞에서 슬그머니 반성을 한다.

작가는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아름답고 무용하지만 맑은 사랑을 위대한이라는 단어로 코팅하고 싶었던 걸까. 개츠비가 동경하며 바라보던 저 멀리 데이지의 집에서 반짝이던 불빛을 그린라이트로 설정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으리라. 레드의 열정도 아니고 옐로우의 질투도 아니고 블루의 우울함도 아닌 나무의 자연 빛을 닮은 그린의 순수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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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7-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밀린게 있어서 차후에 토론 댓글을 달겠습니다ㅎㅎ

나비종 2019-07-15 23:53   좋아요 1 | URL
네~ 저는 다른 거 읽을 것이 있어서 조금 빨리 읽고 독후감 마무리를 했어요. 어떤 리뷰를 쓰실지 기대하겠습니다.ㅎㅎ

물감 2019-07-30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드디어 다읽었습니다. 휴가랑 겹쳐서 독서가 게을러지네요^^; 안그래도 읽는속도 느린데...ㅎㅎ

개츠비는 보는 사람에 따라 확 갈릴 인물이겠더라구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람이 되거나, 반대로 남의 가정 파탄내는 쓰레기가 되거나.
개츠비 인생이 작가인생과도 닮았던데 그러면 피츠제럴드도 자기가 쫓았던게 뭐였는지 알고 있었다는 거겠죠? 어느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웠지만 그것역시 한 때이고 시들면 다 똑같아지는 허무함을 보았습니다.

맨처음에 아버지가 닉에게 한말도 다양한 해석이 되네요. 저는 중립이 되어 사람을 볼 줄아는 시각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책속에 많은 이들이 뚜렷한 개성과 성향을 갖다보니 한 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는데 닉은 그렇지않아서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나 합니다.
여하튼 이번 리뷰는 분석력이 엄청나시네요ㅎㅎㅎ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8월은 잠깐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책도 다시 선정해야겠네요^^

나비종 2019-07-30 11:07   좋아요 1 | URL
7월 안에 해내셨군요.^^

저도 개츠비가 썩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보이지는 않더라구요. 쓰레기...까지는 아니고 음, 약간 집착 쩌는 분리수거용 정도쯤 되겠습니다.^^;
소설이든 시이든 작가로부터 나오는 글은 작가의 삶과 완벽하게 별개일 수는 없나봅니다. 하다못해 SF판타지라도 등장인물의 대사 안에 작가의 삶이 어느 부분은 묻어나는 것 같으니까요.
허무...맞아요. 허무하다못해 허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반복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쓰읍~

닉이나 그 아버지나 중립의 위치에 서 있다는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얘기죠. 제가 보기에 완벽한 중립에 서게 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거든요. 조금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게 된다고 봅니다. 중립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볼 때 정도일까요.

쥐어짜내서 리뷰를 썼지만 재미 드럽게 없었어요. 고전의 길이 참, 험난하구나 싶었습니다.ㅎㅎ
동의합니다. 8월은 좀 쉬어요. 다른 책으로 에너지 충전해서 9월에 나물모임 재개장해요. 책은 물감님께서 선정하시면 따라가겠습니다~^^

물감 2019-07-30 11:47   좋아요 0 | URL
중립의 위치를 서는건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때란 말, 명언 탄생입니다ㅎㅎㅎ
8월중에 책 선정하겠습니다.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나비종 2019-07-30 12:20   좋아요 1 | URL
중립에 대한 저의 견해에 공감하신다니 기분 좋은 친구를 얻은 기분입니다.ㅎㅎ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어떤 책이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 편하게 정해주세요~^^
 

뚜껑을 열자 새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연탄불 위에 올려진, 작은 밥상 크기는 족히 됨직한 솥단지 한가득 물이 출렁였다. 겨울이면 당신은 매번 하얀 아침을 자식들에게 건네어주셨다.

새벽 5. 눈뜨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씻을 물을 데우셨다. 방문을 열면 밖이었던 단칸방. 문턱 옆 방바닥에는 꽁꽁 언 걸레가 바삭거렸다. 코끝까지 담요를 덮고 자던 우리 4남매는 서로 먼저 씻으라며 미적거렸다. 수돗가에 놓인 찜통 뚜껑을 열고 찬물 한 바가지를 섞어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사십여 년을 거슬러야 만나지는 기억은 결혼을 하고 물을 데울 필요가 없는 아파트에 살면서 모락모락 연기처럼 희미해졌다. 하얀 아침들이 떠오른 것은 아파트 온수 공사로 며칠 동안 물을 데우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옛날 물을 데우시던 당신만큼 나이가 들어버린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위해 가스레인지로 데운 물을 욕실로 날라야 했다.

새벽 5. 부스스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식탁 옆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3일을 보냈다. 퍼뜩 당신의 아침이 떠올랐다.

 

어릴 적의 나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 집에 살면서도 따뜻하게 세수를 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아침은 당연하지 않았던 당신의 아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철렁했던 아침도 있었다. 세 들어 살던 그 집과 함께 선명하게 그려지는 장면이다. 물을 데우시던 당신은 솥단지의 물을 찜통에 덜어 나르던 중이셨다. 갑자기 솥단지가 기우뚱하며 발등으로 뜨거운 물이 떨어졌다.

 

벌겋게 부어올랐던 당신의 발등이 기억난다. 열 두 살의 나는 당신의 아픔이 어느 정도였을지 잘 몰랐다. 육체적인 고통만을 어렴풋이 짐작했을 것이다. 사십여 년이 지나 그 때의 어머니보다 더 나이 들어보니 그 날이 점점 또렷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화상의 쓰라림보다 안간힘을 쓰며 시린 아침을 데워야했던 삶의 쓰라림이 당신을 더 힘겹지 하지 않았을까. 한여름에도 얼어붙어있었을 하루. 새벽 5시는 자식을 향하는 절실함이 시작되는 시간이었으리라. 어머니의 눈으로 나의 아이를 바라보게 되어서야 나를 생각하던 당신 마음의 언저리를 더듬게 되는 걸까.

 

<뜨거운 겨울>이란 시를 지어 새벽마다 물을 데우시던 모습을 스케치했던 적이 있다. 블로그를 뒤적여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여전히 뜨겁고 아직도 울컥하다. 녹지 않은 눈인 양 꺼낼 때마다 뜨겁게 흘러내리는 기억으로 눈가가 촉촉해진다.

가 접힌 우산이라면 산문은 펼쳐진 우산이다. 맑은 날이면 우산이 접혀있든 펼쳐져있든 상관없지만, 이 생각 저 생각 비처럼 쏟아지는 마음을 담기에는 산문이 좀 더 적절해 보인다. 시에 담았던 마음을 산문으로 옮겼다.

 

글이 품은 당신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의 아침을 곱씹어본다. 참으로 따뜻한 아침을 보냈던 내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내가 거기 있다. 그 아침의 기억이 남아있어 정말 다행이다.

내게 아침은 하얀 빛깔이다. 새벽 5시는 뜨거운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들은 사전적인 의미 외에 각기 다른 의미로 심장을 뛰게 한다. ‘아침이란 말이 나에게는 어머니와 겹쳐지듯이. 올해 여든을 넘기신 당신과의 기억을 하나하나 붙들어두고 싶다. 더 이상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먹먹한 어느 날, 오래된 앨범인 양 두고두고 펼쳐보기 위해 화석처럼 글로 새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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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방 살던 시절 당신의 생일 선물

들락날락 가뿐 숨결 음표타고 출렁출렁

날마다 도미솔랄라 가볍게 흩날렸지

 

흩어진 기억 모아 먼지 훌훌 털어보니

사십년 후 떠올려도 여전히 행복한데

묵직한 당신의 삶이 뒤늦게 후두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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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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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좋다 읽으면서 느낌이 전해지는 책이 있는가하면 읽고 나서 돌아보면 마음에 파스를 붙인 듯 후끈거리는 책이 있다. 정혜윤의 책은 후자이다. , 자아, 사랑과 우정 등을 주제로 다른 책들을 통해 다양한 작가들이 했던 말들을 정혜윤의 생각과 함께 엮어놓은 책이다. 각각의 짧은 글들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로 귀결된다. 사랑에 대해서 A는 이런 말을 했고, B는 이런 말을, C는 이런 말도 했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식이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했던 말들을 나열해놓은 점이 처음에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책을 덮고 나서도 개운한 느낌은 없었다.

변화는 그 후에 일어났다. 메모해놓은 문장들을 정독해보니 문장들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 마음 언저리를 맴돌아 자꾸 걸리는 말들이 버블 넷이 되었다. 흑고래들이 청어 무리를 사냥할 때 만들어낸다는 원기둥 모양의 거품 벽, ‘버블 넷말이다. 내게 버블 넷이 된 것들과 뜻밖의 좋은 일이 되어준 일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끔 내가 스스로 기특한 게 고독을 글을 승화해낸 점이다. 외롭거나 마음이 아플 때면 나의 머릿속에는 종종 문장들이 떠다녔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버블 넷을 뚫고 나온 청어 새끼라도 된 듯 글을 쓰는 순간 외로움은 물거품처럼 툭 터지곤 했다. 나의 글은 나의 고통을 나누어 들어주었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따뜻함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따뜻함뿐이다.(p116)’ 내가 만들어낸 따뜻함은 나의 글이었다. 글로 인해 마음의 고통이 조금은 녹아내렸으니까. ‘우리는 풍요로움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과 부족함으로 글을 쓴다.(p250)’ 요즘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나를 가장 외롭게 하는 사람이지만 그로 인해 나의 글이 더욱 깊어진 것 같아서이다. , 돌려 까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팩트일 뿐이다. 그는 단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다. 맞지 않음이 좋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이 미묘한 차이점을 구분할 만큼 이제는 성숙해졌다. 책과 글의 힘 덕분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무슨 책이든 읽을 때마다 스스로 던지게 되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미래가 알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지향점이다.(p325)’ 곰곰 생각해보면 내 글의 소재는 어머니가 많다. 당신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릿하다. 생기는 마음을 길어 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안으로 들어가 흠뻑 젖어 쓸 수 있는 소재이다. 함께 살아온 27년을 생각해도, 함께 살아오지 못한 24년을 생각해보아도 매번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당신의 모습을 길어 올린다. ‘나는 단 하루, 딱 한 단어를 정복해본 일이 있다. ‘일몰이다.(p314)’ ‘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이런 의미인 듯하다. 가족, 이팝꽃, 선물, 향기, 아침, 겨울에 대한 글들도 모두 어머니로부터 출발했으니 나의 글에 있어 어머니란 우주와 같은 맥락이다. 어머니, 세 글자 안에 이토록 많은 요소들을 품고 있으니.

 

다들 그렇게 살아. 아마 몇 십 년 전의 당신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 며칠 후의 한 끼도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에 네 명의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당신에게 그냥 실업계 고등학교로 보내라고 종용했을 거다. 그 형편에 무슨 대학이냐고. 얼른 여상 졸업시켜서 돈 벌게 하라고. ‘다들은 누구인가? (중략) 왜 자기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보편성을 끌어오는가?(p126)’ 작가의 문장을 보고 나를 돌아본다. 주변 사람들을 어쭙잖게 위로한답시고 다들이란 말을 남발한 적은 없던가.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말아야 함을 생각한다. 당신은 결국 자식들 모두를 대학에 보내셨다. 경제적인 상황의 버블 넷을 뚫고 나오신 당신. 과감한 결단이었으리라. 그로 인해 지금, 커피숍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있다.

뭔가를 하고 있다면 다른 것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p184)’ 당신이 안간힘을 써서 해주신 일. 새삼 당신이 하지 못한 다른 것을 상상한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40대의 나이에 놓아버렸을 것들을 생각한다. 다시 가슴이 아릿해진다.

 

어제 친정집 주방. 배달시킨 생선가스를 배부르게 먹고 나서 참외 하나를 깎았다. 지난번에 청주 갔을 때 외삼촌께서 사주신 단팥빵을 꺼내셔서 얼마나 속이 알찬 지 열변을 토하시는 아버지. 싸줄 테니까 너도 한 번 먹어봐라. 어머니가 내리신 커피 잔을 쟁반에 놓으신다. 이 빨간 게 네 꺼야. 커피 잔을 살펴보니 두 개는 땡땡이 무늬가 있고, 하나만 민무늬다. ~ 커플이야?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마셔. 환하게 웃는 어머니. 작은 행동으로 우린 서로 사랑해 라는 말을 하신다. 행동만큼 확실한 말은 없다는 듯이. ‘언제나 말에 깊이를 주는 것은 행동이다.(p299)’

쟁반에 놓인 참외 접시, 커피 세 잔. 이게 행복이구나 싶은 느낌이 바닷가 파도처럼 심장 언저리에 찰랑찰랑 밀려왔다. ‘우리에게 한 가지 좋은 일이 생기기 위해서 그전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걸까?(p27)’ 행복의 가치는 그전에 일어났던 많은 고통과 버블 넷을 넘어선 용기만큼 저울 반대편에 놓이면서 매겨지는 것일까. 어려웠던 시절의 무게가 심장을 훑고 지나는 순간 마음이 부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p88, 밑에서 6째줄 : 메피스토텔레스 ~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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