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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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 요리용 양파를 썰 때면 떠오르는 건축물이 있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이다. 사진으로 본 게 전부이지만 강렬한 아름다움이 각인되어 비슷한 사물을 볼 때면 종종 생각난다.

실물로 본 건축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다. 실용을 넘어 거대한 규모의 미술 작품을 보는 듯 주변 공간은 순식간에 미술관이 되어버렸다. 스케일과 디자인에 압도당했다. 한참을 바라보니 궁금해졌다. 저런 곡면으로 꿀렁거리면 무너지지 않을까.

A4용지를 이용한 다리 만들기를 주제로 융합과학탐구대회를 진행했던 기억도 난다. 견뎌야하는 무게와 미적인 요소까지 고려해야 하는 과제였다.

여러 건축물을 떠올리다보니 하나의 건축물이 완공되기까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아주 많다. 건축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임을 새삼 깨닫는다. 지반의 구조와 성질도 알아야하며 측량에서는 수학이, 주변 환경의 영향을 고려한 건축 재료를 선택하려면 물질의 특성을, 건축물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역학을, 채광을 위한 빛의 투과율을, 태양의 이동 방향에 따른 일조량을, 게다가 외관의 미적인 요소까지 고려해야 하니 종합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과학적인 내용을 시작으로 문명의 발생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의아했다. 건축에 관한 책인데 벽돌 한 장 언급되지 않고 뜬금없이 빅뱅과 문명의 기원이라니! 건축물에 적용되는 과학적인 원리가 아니라면 무슨 관련성이 있단 말인가.

베일은 서서히 벗겨졌다. 저자는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근원을 파헤치고 싶었던 거다. 빛이나 빅뱅은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기원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문명의 발생은 집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이었다.

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아래의 뿌리를 보아야 한다.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 문명의 발생뿐 아니라 그 이전에 나타난 기후의 변화부터 성찰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일터이다. 기초 공사부터 건축물이 완공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결국 문화의 차이로 발현된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과학적인 요소도 놀라웠지만 그 사실을 발견하고 적용한 사람들의 노력도 대단했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따라갔다. 이유 없다 여겼던 현상들이 긴밀한 인과 관계로 맞물렸다. 내가 몰랐을 뿐인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건축의 기원은 빙하기 이후 발생한 지구온난화에서 출발한다. 빙하가 녹아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육지의 물이 부족해진다. 사람들이 물을 찾아 모여들다보니 식량문제가 생긴다. 이를 농사로 해결하면서 정착생활이 시작된다. 문명의 출발이다.

농사에 있어 강수량은 곡물의 종류를 결정하게 만드는 요소이다재배방식은 건축물의 형태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강수량의 차이에 따른 건축물의 차이를 설명한다.

강수량이 많아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농사가 집단으로 이루어진다. 상대적인 관계가 중요해진다. 건축물 역시 주변의 자연환경과 관계를 맺는 형태로 지어진다. 개방적이며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야까지 고려하게 된다. 반면 강수량이 적어 밀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농사방식이 개인주의적이다. 절대적인 가치관이 형성되며 기하학적인 건물의 형태를 낳는다.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시야를 고려하다보니 건물 자체가 웅장하다. 벽으로 가려진 사적인 공간이 만들어지며 무거운 벽을 지탱해야 하므로 창문은 작을 수밖에 없다.

강수량이 적은 서양의 땅은 단단하므로 돌과 벽돌을 사용한 벽 중심의 건축물이 지어진다. 반면 동양의 땅은 강수량이 많아 무르므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나무를 이용하여 기둥 중심의 건축물이 지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의 체스와 동양의 바둑, 한자와 알파벳 등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면서 건축과의 연관성을 찾는다. 기본적인 골조부터, 지붕의 형태, 담장의 높이, 창문에 이르기까지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며 차이를 서술한다. 책을 읽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던 건물들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공간과 시간이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도 흥미롭다. 공간이 넘쳐나는 지역은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이루어지며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방향으로 건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적절한 예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 버스, 철길을 두 그룹으로 구분해보라 하고 이를 해석하는 부분은 감탄스럽다. 당연히 기차와 철길이지! 이 두 가지를 하나의 범주로 묶은 나의 사고방식이 동양적인 관점에서 나왔다는 해석을 보며 놀랐다. 원숭이, 사자, 바나나가 언급된 문제에서도 나는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었다.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유전자가 이어지듯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건축의 한가운데서 다방면으로 손을 뻗어 건축을 외치는 저자답게 다양한 요소들이 건축과 연결되어 있었다. 여행지에서 가이드를 따라가듯 저자가 언급하는 건축물들의 디테일한 매력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듯했다.

 

곤충의 탈피가 일어나듯 도약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건축물의 발달사를 지켜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무생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여겨졌다. 이 책이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열린 결말이라는 점이다.

철골과 콘크리트라는 단단한 재료는 건축디자인의 폭발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불필요한 구조물이 제거되자 상상 속의 건축물이 재현되었다. 미적이고 창의적인 현대 건축물을 보면서 우주처럼 확장해가는 인간 상상력의 크기를 상상했다. 저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기술과 생각을 건축물에 적용하기위해 계속 도전하기를 권한다. 제약과 융합이라는 원리를 적용하여 제약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방향으로 발전할 미래의 건축을 전망한다.

건축물 자체만 보다가 건축물이 품고 있는 공간으로도 시선이 옮겨졌다유형의 건축물을 통해 무형의 공간을 바라보게 되었다동양화의 여백이 주는 의미를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다.

총, 균, 쇠문명과 식량이 떠올랐다. 총, 균, 쇠가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라면, 문명과 식량은 기본적인 식의주의 버전, 공간이 만든 공간버전이랄까. 패션 쪽에서도 문명부터 파고들어가는 이토록 거대한 스케일의 책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동아리 수업 시간에 발명뉴스탐구반을 진행하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던 집이 생각난다. 슬로바키아에 부부의 주말 별장용으로 지어졌다는 14평의 소형 목조주택이다.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전통 가옥인 유르트를 모티브한 건축으로 도면에서 구조 사진에 이르기까지 JRKVC라는 설계사무소에서 맡아 지은 것이다.

설계 도면에서 집의 구조 사진, 각각의 공간에 대한 설명을 보며 예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건축물을 바라보는 나를 느꼈다. 건축가에 빙의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공간의 효율적인 분배와 채광, 디자인, 문의 형태, 통풍, 전망 등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다. 도면까지 자세히 분석하니 전체적인 구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개안이라도 한 양 눈이 탁 틔어 뿌듯했다.

세상에는 이유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많이 존재한다고 여겨왔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원인과 결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이유 없는 현상은 없다. 다만 이유를 모르는 현상만 있을 뿐이라고 나만의 결론을 내려 본다.

다양한 상상력이 적용된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가슴 뛰는 일이다. 공간이 만든 공간이 어떤 형태일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 것일까.

 

p187, 그림 설명, 험프리 랩턴 ~렙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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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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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제대로 크게 쉴 수 없었다. 피부에 있는 솜털 하나하나를 묘사하는 듯한 뮐러의 표현력에, 그 안에 담겨있는 정서에, 정서가 품고 있는 무게에 압도되었다. 문장에서 묻어나는 질감이 잠잠했던 감각을 건드렸다. 감각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저 무기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온 세상이 작가의 언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새로운 의미로 다시 만들어졌다. 그녀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세상의 모든 것을 활용하는 듯했다. 소제목 하나를 지날 때마다 세상의 의미가 휙휙 변했다.

진자인양 삶과 죽음을 왔다 갔다 하는 숨그네라는 조어와 작가의 문장은 닮아있었다. 진공의 우주까지 올라갔다 응축된 지구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문장의 진폭이 컸다. 왔다 갔다 하는 온몸에 부닥쳐오는 바람의 숨 막힘에서 간절하게 그네 줄을 움켜쥔 두 손의 실핏줄에 이르기까지. 부유하는 먼지 한 점의 미세한 까슬거림까지 더듬은 문장이었다.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5년간 노역하게 된 17세 소년 레오폴트 아우베르크의 시각으로 그 안에서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서술한 책이다. 동료 오스카 파스티오르로부터 실제로 전해들은 수용소의 일상을 묘사한 글이기에 현실감이 생생하다.

자유를 온전히 제지당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소설의 처음 부분에서 나는 속박당하는 자유를 생각했다. 나의 의지가 조금도 개입되지 않은 채 다른 존재의 꼭두각시나 무감각한 기계인 듯 도구로 살아가는 시간들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후 기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녀는 60세가 넘어서는 사치를 부리며 산다고 말했다. 그녀의 사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남았던 말이다. 자유란 스스로의 이유로 사는 것이라 했던가.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에서 언급되었던 자유도 생각났다.

 

소설 속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유란 부차적인 화두임을 깨달아갔다. 주인공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은 자유로운 표현이나 자아실현의 억압이 아니었다. 떠난 적이 없는데도 다시 찾아온다는 하루치의 배고픔이 그에게는 가장 절실했다. 식의주로 일컬어지는 기본적인 욕망 중 가장 먼저 오는 욕망 말이다.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받아들여 생명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생명체가 지닌 가장 원초적인 본능일지 모른다. 작가는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본능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읽는 내내 허기졌다. 소설 속 인물을 마주하기라도 한 듯 배불리 먹는다는 행위가 어쩐지 미안했다. 책장이 낱 장 낱 장 느리게 뜯어져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거름종이로 펼쳐졌다. 내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가로막는 듯했다.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은데 손이 제대로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먹는 기분이 들어서 입 안에서도 종이 맛이 났다.

 

주인공이 슬래그 노동자로 내려갔던 지하실의 계단 수는 64개이다. 짤막한 소제목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에피소드와 계단 수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어쩌면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그러데이션 되는 색채를 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주인공을 따라가며 수용소 곳곳에 담겨있는 인물들의 삶을 바라보았다. ‘를 주어로 전개되는 문장에서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분위기가 난다. 성별의 구분이 의미 없어지는 수용소 안의 삶과 닮아있다.

소설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다루어지는 삶은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수용소 안에서의 삶과 수용소를 벗어난 삶이다.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왔으면서도 수용소를 벗어나지 못한다. 수용소는 모순된 아득함을 지닌 용수철이 되어 그를 번번이 수용소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넓어진 수용소에 갇혀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너비는 깊이가 된다는 책속의 문장이 떠올랐다.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더 쓰라릴 때가 있다. 예린 칼날에 베인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간다. 한 방울의 물기만 닿아도 엄살처럼 몸을 움찔한다.

무형의 대상으로 인한 마음의 쓰라림에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이의 메마른 말 한 마디, 주변 사람의 차가운 눈빛은 심장에 날카로운 생채기를 낸다. 유려한 문장이나 단어는 전체적인 의미로 송두리째 다가오지만, 무심코 굴러온 알파벳은 획 하나도 한 줄 곡선을 따라 섬세하게 눈에 띄므로 날카롭다.

사소해 보이는 물건 하나에 삶 전체가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주인공이 삶의 동아줄처럼 마음으로 붙들고 있던 대상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었다. ‘너는 돌아올거야.’라는 할머니의 말 한 마디, 물건으로 모습을 바꾼 손수건 한 장이었다.

결국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의도의 농도이며, 물건의 가치 역시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의 농도로 결정되는 걸까.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이 많았다. 329쪽 분량의 시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작가는 고차원적인 비유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온통 비유와 상징으로 빼곡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떠올랐다. 두 책의 차이를 비교한다면, 숨그네의 문장은 온몸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을 소재와 연관 짓는 작가의 능력은 탁월했다. 사물을 이용하여 분위기와 주변 상황을 묘사하고 심리를 표현하는 문장은 볼 때마다 감탄스러웠다. 하아! 어떻게 이런 시각으로 이런 시적 표현이 가능할까. 소제목 하나 지났을 뿐인데 벌써 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읽었던 책 중에 비유적인 표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단연코 최고이다. 끌리는 표현을 옮겨 적었던 A4용지의 절반만한 종이가 17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옮겨 적고 또 적었다.

엔딩까지 줄기차게 표현의 텐션을 유지하는 작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부러워하는 단계를 넘어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펑펑 쏟아져 내리는 눈처럼 시적인 문장들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차원이 다른 표현력에 그녀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시멘트를 묘사하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시멘트 포대로 훅 빨려 들어가는 듯 숨이 턱턱 막혔다. 둘러보는 온 세상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채색되었다. 팝송 ‘What a Wonderful World’가 떠올랐다. 폐허와 아름다운 선율, 가사와 배경의 상반된 어우러짐, 악기소리와 굵은 암스트롱의 목소리. 대조가 자아내는 괴리만큼의 공허와 아픔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쥐어짜는 통곡이 아니라 무감각한 카메라의 시선인 듯 세상이 투영되었다. 장면이 끌어내는 느낌은 독자의 몫이었다. 흑백 화면처럼 온통 시멘트로 보이는 소설 속 풍경이 책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때의 노래처럼 이 장면들이 극대화된 이미지로 그려졌다.

넓게 펼쳐진 문장들은 나를 둘러싸다 내 안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겹겹이 입은 모든 옷의 감촉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속옷부터 티셔츠, 겉옷에 이르기까지. 장갑, 양말, 모자, 스카프의 감촉까지도. 그녀의 문장들이 머리카락 한 올까지 훑으며 내 안에 내려앉았다. 표현이 깊었다.

 

평범한 서술어로 정의할 수 없었다. ‘슬프다. 불쌍하다. 안쓰럽다?’ 아니다. 이런 느낌이 아니다. 처량한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다. 내게서 일어나는 이 느낌을 어떤 서술어로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뮐러의 언어가 붙든 것은 텅 빈 허기 안에 내재된 고통이었다. 3도 화상을 입은 듯 고통에 담담해 보이는 작가의 문장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소리 없는 짐을 들고 다닌다는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었을 때, 울컥해지는 마음이 뒤늦게 느린 속도로 다가왔다. 실체가 없는 짐은 크고 묵직했다. 모순투성이인 세상에서는 이토록 모순적인 표현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건지도 모른다.

인간 존재를 생각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낱낱이 해부하며 가장 원초적인 세포 단계를 보여주었다. 분리된 세포 하나가 이물질처럼 심장에 깊이 박혀 마음을 깜빡일 때마다 욱신거렸다. 내면에 자리한 본성.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생명으로서의 본능은 깊었다. 넓고 짙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나의 시선에 세상은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p22, 밑에서 5째줄: 파스트라마 파스트라미

p182, 7째줄: 의심의 담긴 병 의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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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5-24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이게 머선 일입니까. 월초에 리뷰를 쓰시다니요... 저는 이번에 너무 늦게 올렸어요. 이번달은 바쁘기도 바빴지만 손가락 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타자 치는게 힘들더라고요. 관절 관리 잘하시길 바랄게요^^;; 그보다 리뷰의 깊이가 엄청나시네요. 이 책은 역시 나비종님한테 찰떡이었군요 ㅎㅎ 반대로 저는 맞지 않아서 고생 꽤나 했더라는ㅠㅠ

시종일관 배고파하는 인물들을 보며 저또한 미안함이 생기더라고요. 어쩌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배고픈천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삽질 한번에 빵 1그램 공식만 봐도 모든 생각과 행위를 식욕하고 연결짓는다는 걸 잘 알수 있으니까요.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도, 그 상처가 낫는 것도 의미의 농도라는 말이 확 와닿았어요. 아무일도 아닌 단순한 기억도 평생 기억에 남는 경우를 보면 그 농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거든요. 이 책은 그런 진한 농도로 가득해서 나비종님에게는 유독 더 압도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와는 다른 입장으로 느리게 읽혀진 작품이었군요. 저의 부족한 독서력을 실감했던 시간이었어요^^;

정신없이 5월도 이렇게 지나가네요. 날이 맑으면 황사가, 그렇지 않으면 비가 와서 5월 같지 않은 5월이었어요. 이럴땐 집에 콕 박혀서 독서하는 게 제일이죠.ㅎㅎ 이번 모임은 제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습니다. 다음달에는 저도 힘내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비종 2021-05-27 20:47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ㅋㅋ 이번에는 기필코 마지막 날에 모가지를 걸지 않을 테다! 두 주먹 불끈 쥐고 4월 마지막 주부터 달렸죠~ㅎ 읽는데 11일 정도 걸렸구요, 리뷰 쓰는 데 3일 걸렸습니다.^^;;
손가락 관절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제 직업은 정신노동이다보니 애새끼들로부터 열받지 않도록 화만 잘 다스리면 되는지라 건강은 아직까지 무난합니다. 노화에 따른 저질 체력은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구요~ㅎ
천천히 읽다보니 책 내용이 서서히 스며들어서 초고속카메라를 느리게 재생하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가볍지 않은 내용이 주는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해진 것이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허기졌습니다. 먹는 행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어요.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더군요.

음..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은 의.도.의 농도라 생각하며 쓴 문장이구요, 물건의 가치가 의.미.의 농도라 생각하며 쓴 문장입니다. 공감하셨나요?^^
물감님 독서력의 부족이라기보다 관점이나 취향의 차이가 아닐까요?ㅎㅎ

정신없이 지나간 5월이었어요. 물감님의 댓글을 보고 무지 반가웠는데 대댓글을 이제야 달만큼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오늘이 또 다른 독서모임일이라 엄청 달렸어요. 7시 줌 시작인데 6시 50분에 겨우 리뷰 마무리를 했다는ㅋㅋ
24일을 아슬아슬 세이프라 하셔서 엘리베이터 문닫히기 직전에 발가락 들이밀어왔던 인간은 심히 부끄러웠습니다.ㅋㅋㅋ 다음 달도 힘내볼게요~^^*

초딩 2021-06-0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나비종 2021-06-05 09:0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 -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김제동과 전문가 7인이 전하는 다정한 안부와 제안
김제동 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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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살짝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코로나 사피엔스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들 있는 대로 끌어다놓고 허우대만 멀쩡한 책이면 어쩌지. 가장 큰 기여도가 베개로서의 역할이면 어쩌나. 이것도 그런 거 아냐? 이 책의 제목처럼 나의 질문이 답이 될까봐, 이것도 그런 거가 될까봐 불안했다.

책날개를 펼치니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가 있다.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할 ___에게 이 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할이라니. 천천히 음미하니 불현 듯 찡하다. 그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어떻게 변화하든. 그래, 우리는 살아야 하는 존재니까, 살아내야 하는 존재이니까. 이 책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방송인 김제동을 사회자로 각 분야의 전문가 일곱 명과 20208월에 이루어졌던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일곱 명 중 과학자가 네 명이지만 전문 분야의 콘셉트가 겹치지는 않는다. 물리학자가 두 명인데 김상욱 교수는 주로 양자 세계를, 정재승 교수는 인간의 뇌를 다룬다.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생화학이 전공이니 생물과 화학을 아우른다. 심채경 박사가 연구하는 천문학은 지구과학의 한 분야이므로 결국 기초과학인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 고루 섞여있는 셈이다.

인간 삶의 기본은 식의주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경제 분야의 전문가 이원재 대표와 주거 공간과 관련된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있다. 기본적인 삶이 해결되면 문화생활 쪽으로 관심이 옮겨지니 대중문화전문가 김창남 교수가 우리를 기다린다.

사회자 개인의 친분이든 의도된 선정이든 골고루 분포된 대담자의 구성이 생각의 폭을 확장시켜줄 것 같았다. 앞서 말한 불안감과 함께 기대감도 덩달아 품게 되었다.

 

속지 한 장을 넘기니 사회자를 비롯하여 대담자가 적은 간단한 문장과 친필사인이 담겨있다.

답은 종종 질문에 매달려 있다는 정재승의 문장이 와 닿는다. =f(질문)이라는 김상욱의 간결한 문장은 수학을 언어로 사용하는 물리학자답다. 진정한 이과스러움이 묻어있다. 군더더기가 없다.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자하는 김제동의 문장에는 평소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정모의 사인은 선입견을 지니고 봐서 그런지 귀여운 공룡을 닮았다. 유현준의 글씨체는 나를 설레게 한다. 그의 사인은 깔끔하고 유려한 다리 건축물 느낌이 난다. 거침없는 가로선과 세로선을 기준으로 나머지 알파벳들이 물결친다.

나머지 세 명의 대담자는 그들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인지 낯선 느낌에 별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원재의 문장을 보며 경제 관련 표어를 연상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라는 극단적인 어휘를 선호하지 않아서일까 심채경의 문장에서는 살짝 작위적인 느낌이 난다 싶었다. 김창남의 문장과 글씨체에서는 평범한 연륜만 보였다.

 

물리학자 김상욱 편에서는 자기만의 기준을 가져야 함을 말한다. 솔직히 눈에 보이지 않는 양자의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로 바라보는 대상이 달라서일까.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그에게는 독특한 기준이 존재하는 듯하다.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의 가장 큰 차이는 시선이다. 잘 몰랐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기회 같다는 김제동의 멘트가 마음에 남는다.

나는 가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에서 좌표 평면을 연상한다. 두 사람이 그리는 관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장면이 흔히 과학에서 그리는 그래프와 닮아보여서이다. 과학에서는 독립 변인과 종속 변인과의 관계를 그래프로 그려서 설명한다. 결국 대상이 자연 현상이냐 사람이냐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공통점이 보인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세상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크고 작은 관계를 맺는다. 관계로 인해 세상의 그래프가 바뀌는 현상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관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과학자의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건축가 유현준 편은 공간에 의한, 공간을 위한, 공간의 이야기이다. 공간이 거울과 비슷해서 나를 반영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기분 좋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가꿔야한다는 말을 들으며 나를 담고 있는 공간을 둘러본다. 주방 창가, 옷장, 책장 등 집안 곳곳이 새로운 시각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 역시 건축이 관계를 조율한다며 관계를 언급한다. 전문적이면서 코로나 시대와도 연결되는 내용이 있어 알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면적은 내가 가진 물건의 양과 연결된다는 말에 움찔한다. 종종 했던 생각을 들킨 기분이랄까. 무소유를 추구한다며 말은 습관처럼 내뱉는 나. 너무 많은 물건이 내 공간에 있다. 버려야하는데, 정리해야하는데.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밀려있던 생각이 다시 앞으로 다가온다. 실질적으로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는 대담이었다. 내가 사는 이 공간은 지금 당장이라도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대상이니까. 이론만이 아닌 실전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만 같아 참 좋았다.

 

천문학자 심채경 편에서는 신선한 정보를 얻었다. 나사(NASA)의 화성 유인 프로젝트만 얘기하던 내게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수업 시간에 도입할 수 있는 따끈따끈한 이슈였다. 화성을 향하는 길목으로 달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 3학년 과학의 우주 탐사 분야에서 최근 동향으로 언급할 수 있겠다. 달의 중요성이 새삼스럽다. 무지한 교사가 중요한 포인트를 놓쳤구나 싶어서 작년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실패 박람회와 실패 이력서에 대한 내용에 공감했다. 과거의 실패담은 종종 유쾌한 대화의 소재가 되어 친밀감을 높여준다.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유전자 친자 확인결과처럼 99.999%에 육박하는 성공률을 보이는 팁이다.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냐는 아이의 질문에 별 가루에서 왔다고 대답했다는 천문학자의 이야기도 뭉클했다. 자연이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리 모두 같은 재료에서 출발한 다른 존재라는 점도.

다른 행성에서의 일출과 일몰을 상상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나도 하며 손을 들고 싶었다. 수성에서의 태양을 상상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별이든, 시든, 음악이든 쓸데없는 것들이 우리를 살리는 것 같다는 김제동의 멘트에도 공감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삶에 가장 근접한 주제이다. 경제전문가 이원재 편은 현실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해주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변수로 인구, 기술, 기후를 말한다. 노령층이 많아지는 인구 구성의 변화는 새로운 사회를 살아가야함을 시사한다. 드론이 나온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는 드론 택시가 언급될 정도로 기술은 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지구 온난화를 가르치면서 작년과 올해의 인터넷 뉴스들을 보여주었다. 교과서를 빠져나온 현실은 빠른 속도로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 역시 시험을 벗어나 진지하게 현실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언급했다던 노동, 작업,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노동하지 않고도 기본 생활이 보장되더라도 사람들은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것. 인간 존재의 본성에 대한 믿음이 실린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가난도 자격이라는 말이 마음 아팠다. 기초생활수급자임을 증명하려고 각종 서류를 발급받아 주민자치센터에 제출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부모님이 생각나서였다.

막연하게만 보였던 기본 소득의 개념과 취지를 확실하게 알았다.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을 가치로 추구하는 제도이며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인 금액과 재원을 계산한 전문가다운 데이터를 보며 감탄했다. 그런 세상이 올까.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왠지 뭉클했다.

 

뇌과학자 정재승 편은 샤프하면서도 유쾌했다. 벌써 다섯 번째 전문가와의 대담이며 앞으로 두 번의 대담만이 남았다는 생각을 하자 끝나가는 게 아쉬웠다. 그의 멘트는 과학자의 그것을 넘어 심리학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리했다.

초기 경험이 이후의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에 몇몇 경험을 돌아보았다. 인식체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깨달음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깊이 마음에 새겼다.

거대한 뇌를 가진 동물들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뇌전문가의 말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지금 품고 있는 질문들과 앞으로 품게 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언젠가는 찾게 될 것 같아서이다.

좋은 의사결정의 첫 단계는 스스로 결정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며 가장 높은 수준의 의식 활동은 자기 객관화라는 말은 두고두고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할 내용으로 마음에 담았다.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편에서는 과학의 의미와 과학적인 태도를 심도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공룡처럼 과거에 멸종한 다른 종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유추한다는 시각이 새로웠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분자의 잘못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첫 수업을 시작할 때 매번 강조하는 말이 있다. ? 라는 질문을 항상 품어야하며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교과서에 실릴 때까지의 진리이므로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 진리가 아니며 일시적으로 인정해준 답이라는 그의 말이 반가웠다. 평소 아이들에게 했던 말과 비슷해서였다.

과학 논문에는 (I)’로 쓰는 게 없으며 우리(We)’로 쓴다고 한다. 여럿이 관계를 형성하고 의지하며 세상을 탐구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사람 '인'이라는 한자가 떠올랐다.

어른들을 위한 과학관을 만들어낸 넓은 사유의 폭과 추진력이 존경스러웠다. 과학의 수준을 내릴 게 아니라 대중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며 과학관은 새로운 질문을 얻어가는 곳이라는 말에 과학자로서의 자부심과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창남 편에서는 두 명의 대담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신영복 선생님에 대하여 나눈 대화들이 좋았다. 살아계셨더라면 분명 여덟 편의 대담이 이 책에 실렸으리라. 내 카카오톡의 배경 화면과 상태 메시지에는 그분의 글씨 처음처럼이 있다. 볼 때마다 마음이 데워지는 글씨체이다. 세수할 때마다 보려고 세면대 옆에도 알라딘 사은품으로 받은 작은 나무 액자가 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로 시작되는 캘리그라피 문장들이다. 당신의 글씨체는 나의 원픽이다. 캘리그라피도 멋지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편지지의 글씨체는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내용은 또 어떠한가.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며 관계를 말했던, 거목과도 같았던 당신.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에 대한 문장과 그림 앞에서 삶을 돌아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대중문화로 주제가 옮겨지면서 긴장감이 살짝 떨어진다 싶었는데 자유가 언급되면서 다시 텐션이 올라갔다. 대중문화전문가인 그는 뭐가 됐든 자기가 좋아하는 이유를 스스로 생각하라며 문화적 주체를 언급한다. 자유로운 삶이란 자기의 이유로 사는 거라는 말과 나의 문화라는 말이 가장 좋았다. 남들 좋아하는 대로 덩달아 휩쓸려가기 십상인 요즘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이 마음 깊이 남았다.

 

읽는 내내 따뜻한 차를 머금은 듯했다. 문장에서 흘러나오는 온기에 지친 마음을 기대었다.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나름의 목적과 고유한 온도를 지니고 있을 터이다. 지식을 주는 책, 지혜를 주는 책, 웃음을 주는 책, 감동을 주는 책, 생각거리를 주는 책. 뜨거운 책, 차가운 책, 미지근한 책. 이 책은 앞에서 생각한 모든 범주를 조금씩 아우른다. 온도는 36.5도보다 살짝 높다. 온실 효과를 나타내 듯 적절히 따스하다.

그걸 가능케 하는 건 뭘까. 생각 끝에 김제동이 떠오른다. 음성 지원이 되는 듯 자연스러운 진행, 어떤 주제로 대화해도 상대방의 능력을 끌어내어 핵심으로 유도하는 부드러운 리더십, 감성이 담긴 해석, 맛깔 나는 대화가 될 수 있도록 중간 중간에 뿌려지는 유머. 650쪽의 두께를 가벼운 산책길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자. 그의 당당한 매력이 나는 참 좋았다.

 

책은 논리를 뛰어넘는 대상이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책 안의 사람을 향해 일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생물인 종이에 글씨 몇 자 적혀있을 뿐인데. 종이 한 장 한 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책은 살아있는 대상이 된다. 책 속의 인물을 만나고 온 듯 잔잔했던 마음에 파도가 출렁인다.

책 안에 담긴 신영복 선생님의 깊은 문장과 글씨를 보며 내내 찡했다. 반갑고 그리웠다. ,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삶의 무대가 달라 아마도 평생 만나지도 못할 사람들에게는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들과의 대담 장면도 좋았지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인 듯 김제동의 독백으로 서술된 짤막한 문장들도 좋았다. 주제의 포문을 자연스럽게 열어 그들만의 대화에 나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였으며, 그만의 생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문장은 나에게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했던 질문은 이 책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을까.’였다. 책에 적힌 수많은 글자의 강을 건너보니 알겠다. 이 책에 내가 찾는 정확한 답은 없다는 것을. 다만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역할을 했던 거다. 나의 답은 내 스스로 찾아야 하리라. 선택은 나의 몫이고 걸어가는 것도 나의 몫임을 새삼 깨닫는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자들의 사인을 다시 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오른쪽 아래의 문장이 들어온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문장을 내려올 때 보게 되었구나.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김창남 교수의 문장이다. 살아있는 대상을 담고 있는 책 역시 살아있는 대상과 동급 레벨이다. 비대면 일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담긴 저자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들의 말에 나의 마음이 움직였으니 그들과의 만남으로 나의 변화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그게 무엇이든 나만의 이유로 만들어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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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나무의마음 2021-05-13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멋진 서평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질문이 답이 순간> 책을 출간한 출판사 나무의마음 편집자 이선희입니다. 혹시 위에 써주신 내용을 출처를 밝히고 저희 sns에 소개해도 될지 조심스럽게 문의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하며... 바쁘시더라도 회신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비종 2021-05-1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글을 멋지다 해주시니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얼마든지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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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끌어 모아 글자로 된 실로 꿰어내기만 하면 될 때가 있다. 미리 생각해두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인다. 할 말이 흘러넘쳐 일단 글로 옮긴 다음 알밤을 깎듯 쓸데없는 잡티들을 돌려가며 깎아주면 된다.

그런가 하면 지금처럼 도무지 무슨 말을 써야할지 막연한 경우도 있다. 멍하니 한 시간째다. 매직아이를 하는 인간인양 한글 창의 공백만 노려보는 중이다. 복제된 빈 문서 1이 마음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작품이면 차라리 낫다. 오히려 그 때에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이란 단서 조항만 병풍처럼 둘러치고 대놓고 까버리면 그만이다.

난감한 고민은 순교자와 같은 작품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참 좋았습니다, . 이럴 순 없으니까. 어떤 점이 좋았는지 근거를 대야 설득력이 생기는데 딱히 근거를 대기가 애매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니 줄줄줄 끊기지 않을 것 같다. 출판사 책 소개나 인터넷 검색창을 치면 콸콸콸 흘러넘치는 바닷물에 굳이 별반 다를 바 없는 물 한 방울 보탤 일은 아니니. 말 한 마디로 신뢰감이 확 가는 하이 레벨의 리뷰어라면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부르짖는 장금이로 빙의하면 그만이다. 현실은 쩜쩜쩜. 나처럼 평범한 독후감러는 인과 관계가 확실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거늘. .

 

순교자는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목사들과 살아남은 목사 사이에서 순교의 타이틀을 둘러싼 진실 게임을 그린 소설이다.

제목부터 손에 턱 걸리는 게 표지를 넘길 때는 영 탐탁지 않았다. 개인적인 호감도순으로 나열하면 가장 마지막에 가져다놓을 종교이기 때문이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양가 어머니들의 종교가 불교인 영향력도 조금은 미쳤으리라. 기독교에 대한 편견은 책을 읽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모임 도서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종교 관련 도서는 늘 나의 독서 목록에서 아웃사이더였다.

이 책이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음의 호감도에서 출발한 책이 이토록 깊은 울림을 가져오리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좋았던 점 몇 가지만 소박하게 나열하려 한다. ‘소박하게라 쓴 말이비루하게라 읽힌다. 배경지식의 얄팍함으로 절로 소박해질 수밖에 없다. 근거 있는 자신 없음이다.

 

첫째, 가독성이 좋다. 구구절절 부연 설명 없이 담백하고 깔끔한 문체이다. 단락의 구분이 잘 되어있다. 소제목이 숫자로 된 소설은 간혹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이 책은 휘리릭 읽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면 장면이 전환된다. 그게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지루해할 틈도 없이 이틀 만에 완독했다.

 

둘째,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는 점이다. 종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종교는 한낱 도구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종교 너머에 존재하는 요소로 시선이 간다. 책을 읽는 내내 진실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진실은 그저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져야 한다는 주인공 이 대위, 사람들이 진실을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며 주인공에게 혼란을 불어넣는 사건의 중심인물 신 목사, 진실을 알면서도 이를 덮으려는 장 대령,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박 대위,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이 믿는 진실을 향해 되돌아간 민 소령, 이들의 모든 진실을 지켜보는 고 목사. 진실에 얽힌 이들의 방황과 고뇌와 시선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진실이라는 두 글자가 내포하는 의미를 톺아보게 한다.

 

셋째, 흡인력 있는 스토리 전개이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까지 전개되는 과정이 추리소설을 보는 듯했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그 진실의 향방이 궁금해져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졸라의 인간 짐승을 읽는 것만큼의 긴박함이 느껴졌다. 다만 인간 짐승이 메이저라면 이 작품에는 마이너의 스릴감이 있다. 은밀하게 다가오는 심해파에 가깝다. 그저 손바닥만 폈을 뿐인데 주변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내공이 쌓인 고수의 문장이다.

 

넷째, 깊다.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종교는 이어져 있다던데 그 신앙의 본질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전 지구 바닷물의 가장 낮은 곳에서 느리게 흐르는 심해저를 떠올린다.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두부 같기도 하다. 묵직하게 천천히 다가오는 사골 국물스러운 감동이 크다.

 

다섯째, 질문을 남긴다. 거짓된 진실이라도 희망이 동반된다면 그 길을 가야할까. 소설 속을 빠져나와 실제로도 신앙의 길을 신념으로 걸어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끝까지 한 점의 후회도 없는 마음이 될까. 사람들이 믿는 진실과 믿고 싶어 하는 진실 사이의 간극에 선다면 나는 어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까.

 

평소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내 안에 불신이 그득하다는 의미와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주관도 없이 상당히 의존적이었던 어린 시절도 있었는데. 스스로 해결하는 삶에 익숙해져버린 게 언제부터였더라. 자신을 의지하는 데에 거부감 비슷한 마음이 생겨버린 듯하다. 이런 성향이 종교에도 그대로 투영된 걸까. 종교를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도무지 가져지지 않는다. 신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든지 신에게 기도한다는 상상만 해도 반감이 일어난다.순교자를 읽으며 좋았던 점을 몇 가지 나열했지만, 소설에 등장한 목사님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감정이입을 하기가 어려워서 깊이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와는 다른 존재도 있을 거라는, 인간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도로 이해했다.

한 줄이면 되는 리뷰를 늘여 써도 도무지 다시 읽어보아도 설명이 부족하다. 탄탄한 근거가 깔려있는 피라미드형 독후감이 아니라 모래시계 윗대가리처럼 불안한 구조라서 심히 부끄럽고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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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3-31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틀만에 완독이라뇨... 대체 어떡하면 그런 경지에 다다를수 있죠? 역시 세월의 내공이 해결해주려나요 ㅎㅎㅎ 저는 급하게 읽으면 긴 글의 리뷰는 절대 못쓰겠어요... 근데 나비종님은 읽고 바로 이렇게 후루룩 쓰시다니, 매번 감탄하고 있습니다요 ^^

고전문학, 특히 서양쪽은 종교의 내용이 많든적든 들어가 있어서, 좋든싫든 종교의 세계를 접하게 되네요. 종교관련 서적은 저도 질색하는데 이런 고전속에 들어간 정도는 크게 거슬림없이 읽어요. 다행이 이 책은 종교 색채가 짙지 않아서 나름 무난하지 않으셨나요? ㅎㅎ

확실히 읽는 사람마다 포커싱이 다르다는 걸 느껴요. 저는 ‘양심‘이었고, 나비종님은 ‘진실‘이군요. 예쩐에 개그콘서트 코너중 ‘불편한 진실‘이 기억나네요~ 다루었던 모든 진실이 하나도 도움 안되지만 진실은 진실이니까요. 때로는 덮어둘줄도 알고 드러낼줄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ㅎㅎㅎ

날이 점점 풀려서 독서가 게을러지고 있어요. 나비종님은 어떤가요? 바쁘셔서 게을러질 틈도 없으신 건 아닌지요^^ 독서모임이 점점 무리한 요구가 되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들어요. 꽤 오랫동안 월말 벼락치기 중이신데 정말 괜찮으신가요 ㅠㅠ 힘드시면 꼭 말해주세요! 3월도 수고하셨습니다!

나비종 2021-03-31 20:10   좋아요 1 | URL
발등에 불 떨어지면 절로 스피디해진답니다~ㅋㅋ 저는 급하게 읽어도 써야 하는 글은 써지기는 해요. 다만 퀄리티가 현격하게 떨어져 나중에 다시 리뷰를 읽어보면 집어던지고 싶어져서 탈이죠^^; 집중력이 좋은 편이기는 합니다ㅎㅎ

그러게요. 종교 서적은 질색인데 <데미안>이나 이 책은 큰 거부감이 없더라구요.^^

양심과 진실도 파고 들어가면 거의 비슷한 맥락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진실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이 양심이라 한다면요.
저는 ‘불편한 진실‘하면 환경 다큐가 떠오릅니다만.^^
모든 진실이 다 드러나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걸 가려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물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불편하지 않은 진실은 뭐가 있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작년에는 코로나의 첫 혼란이라 학기초에 처리되어야 할 업무들이 길게 늘여져서 그런대로 견딜만 했나 봅니다. 올해는 정상적인 시기에 개학이 이루어지다보니 몇 달에 걸쳐 했던 일이 3월 한 달에 몰리더군요. 엄~~~~청 바빴습니다. 잠도 몇 시간 제대로 못 잤구요, 지난 주에는 오른쪽 눈 흰자위의 가장자리에 실핏줄이 터져서 며칠동안 완전 토끼 모드였습니다. 흐윽!ㅜㅜ
올해도 3학년 담임을 맡았는데요, 새로운 걸 시도해본다고 카톡으로 상담을 했거든요. 아이들이 학원 다녀오고 나서도 대화할 수 있게요. 그게 23시, 24시까지 연일 이어지다보니 더 피곤했나봐요. 업무도 부장을 맡아 계획 세우느라 바빴고 다음 달은 과.학.의.달.이라 그거 준비하느라 또 바빴어요. 책을 거의 못 읽다 며칠 전부터 그나마 짬이 나서 초스피드로 읽어냈답니다.^^

독서모임은 오히려 힐링의 아이콘입니다. 이것마저 없었으면 허탈할 뻔 했거든요.
꽤 오랫동안 월말 벼락치기ㅋㅋㅋ 찔림^^;;
정말 괜찮습니다. 이것만 다 하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그나마 미친듯이 일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일하기 싫은데 일이 자꾸 엉겨붙는 된장같은 상황을요ㅡㅡ;;
4월에는 부지런히 달려서 5월부터 퇴근 후에는 제발 제 시간을 갖고 우아하게 독서하고 싶습니다! 잘 지내세요~~^^*
 
식물처럼 살기 - 우리가 동물처럼 살지 말아야 할 11가지 이유
최문형 지음 / 사람의무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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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었다. 머그잔만한 화분에 담겨있던 초록은 하나도 남김없이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한동안 물주는 것을 잊어버렸던 탓이다. 바싹 마른 잎들은 뜨거운 햇살에 타들어간 종이인 양 손끝을 대자마자 재처럼 부스러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파트 화단에라도 옮겨 심을 걸. 굳이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저 지경을 만들다니. 이름도 모르는 식물에게 미안했다.

갈색의 부스러기들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고동색 철사 같은 가지가 삐죽삐죽 앙상하게 드러났다. 한참 늦은 뒷북이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물을 흠뻑 주었다. 혹시 기다리면 잎 하나라도 돋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대로 베란다에 며칠을 두었다.

무심코 화분을 들여다본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연둣빛 자그마한 잎들이 눈곱만하게 돋아있었다. 살아있었구나! 말없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더 이상 집으로 들어온 화분들이 죽어나가지 않았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마법의 손이 드디어 봉인해제된 거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내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식물처럼 살기는 말없는 식물의 삶에서 드러나는 속성을 다각도에서 세밀하게 조명하며 우리 삶의 자세와 연결 지어 서술한 책이다. 생태계 먹이피라미드의 아랫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중심을 잡고 있는 존재. 우리는 이 거대한 존재를 종종 잊어버린다. 저자는 식물의 지혜에 시선을 돌리자는 주장을 시작으로 식물처럼 살기 11계명을 제시한다.

 

여행지에서 오래된 나무를 보면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힌다. 죽지 않고 몇 천 년을 살아가는 존재, 젊은 부분과 늙은 부분이 공존하는 존재, 죽어가는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를 상상한다. ‘영원의 의미가 새삼 와 닿는다. , 2천년이 넘는 씨앗이 싹을 틔웠다는 뉴스를 접하면 생명의 잠재력을 절감한다.

소설과 영화를 비롯하여 여러 기록에서의 나무는 신성함을 뿜어낸다.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상상해온 우주목으로부터 불교의 보리수, 성경과 신화 속에는 각종 나무들이 등장한다. 동양의 오행 목화토금수에서도 유일하게 포함된 생명체가 나무이다. 이처럼 나무는 인간 가까이에서 친숙하게 존재한 생명체였다.

짧으면서도 인상 깊은 감동을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무의 속성을 매우 적절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은 뿌리에서 줄기, , 열매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유용하다.

 

나이든 현자와 같은 나무가 있는가하면 인간에게 큰 행복을 주는 꽃들도 많다. 꽃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신중한 생존 전략의 소산이다. 다양한 향기와 색깔로 동물의 욕망을 활용하여 번식하는 생식기관으로서의 면모는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하다.

신중하고 지혜롭게 스스로를 방어하는 숲 속의 식물들은 동물 못지않은 무기를 지닌다. 특수한 화학물질을 분비하거나 열매의 맛으로 무장함으로써, 필요에 따라 모습을 바꾸거나 전기신호를 전달하거나 특정 곤충들과의 공생 관계를 이용한다.식물병법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전략적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이용하고 땅에서 끌어올리는 물을 이용하고 공간에 흩어져있는 기체를 이용하는 식물은 이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이다.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단지 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말이다. 양분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산소는 생명 활동의 원천이지 않은가. 광합성은 한 줄의 화학 반응으로 나타내기에 너무도 묵직한 존재감과 의의를 지닌다.

식물의 삶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점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지녔다는 점이다. 제 삶에 치열하되 저 혼자만 살아가지 않는다. 다른 종류의 동물이나 균류와도 멋지게 상생한다. 여분의 수분과 양분도 붙들어두지 않는다. 증산 작용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열매로 저장하여 동물에게 제공한다. 생태계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며 주변의 생물을 아우른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용을 배열하는 방식이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잡다한 자료들을 널어놓은 느낌이랄까. 체계 없이 짜깁기한 논문을 보는 듯 산만했다. 내용이 뚝뚝 끊어지는 듯했다. 재료만 많이 들어간 어설픈 김치찌개가 연상되었다. 둘째, 미주 부분이다. 뒷면의 미주를 계속 왔다갔다 읽다보니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로 불편했다. 차라리 내용의 일부는 본문에 삽입을 하거나 해당 페이지의 아래 부분에 적었으면 나았겠다 싶다. 참고 도서는 책의 뒷부분에 놓더라도 말이다.

위의 두 가지를 제외하면 저자가 제시한 자료들은 식물의 삶이 생각보다 더욱 놀랍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식물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많아 상식이 풍부해진 느낌이다. 어디에 있는 어떤 식물은 이러이러 하다더라는 식으로 흥미 있는 대화의 소재로 말하기에 좋은 내용들이 많다.

 

멀리서 바라보는 식물은 그저 고요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껏 바라보았던 모습은 태풍의 눈에 불과했나 싶다. 식물의 삶은 치열한 태풍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움직이는 동물을 뛰어넘는 삶의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삶으로 살아가다보니 어느 식물학자가 했다던 말처럼 나중에는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삶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리라.

식물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삶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보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시간을 건너야 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묵직하고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포용력이 필요한 삶이었다. 주방 창가의 화분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초록의 잎 사이로 점점 박힌 연보랏빛 꽃잎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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