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언어
박선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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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작물에는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 작가의 의도와 감상자의 울림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을 보는 이는 필요한 메시지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감상자의 마음에서 예술은 다시 창조된다.

이미지를 매개로 하는 예술은 울림의 차이가 특히 큰 분야이다. 보는 순간 빠른 속도로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작품과 감상하는 이의 심장이 공명하는 순간이다. 경험치가 각기 다르니 심장은 다른 진폭으로 뛴다. 찬찬히 살펴보면 처음과는 느낌이 달라지더라도 첫인상의 강렬함은 내내 여운으로 남는다.

2차원으로 압축된 이미지에 촘촘히 담긴 이야기를 상상한다. 입체 조각보다 평면으로 된 사진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농축된 서사 때문이리라. 거기에 나의 서사가 더해지면 또 다른 파동이 만들어진다.

우아한 언어는 사진을 매개로 한 아트디렉터 박선아의 에세이이다. 저자에게 우아한 언어는 사진이다. 카메라를 처음 잡던 순간부터 렌즈 안에 세상을 담는 과정에서 사진이 그녀에게 들려주던 말을 조근조근 옮겨적은 글이다.

 

말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닌데도 말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란한 세상이라는 프롤로그의 문장에 공감한다. 문유석이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언급한 데이 셔퍼트의 세 황금문을 떠올린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말하기 전에 스스로 묻는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닌데도 말을 하고자 함을 깨닫는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꿀꺽 삼킨다.

글을 향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닿는 순간 스르르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 봉처럼 Del 키를 누른다. 불필요한 부사어와 문장들을 모니터가 삼킨다.

언어 이전에도 소통은 있었을 터이다. 몸짓과 눈빛으로 마음을 표현하던 시절에 사람들은 침묵의 언어들을 세심한 눈길로 살피고 해석했을까.

작가가 사진을 찍었던 순간은 분명 크고 작은 소리로 북적이는 풍경이었으리라. 사람들이 담긴 거리, 집중하여 일하는 사람들, 하다못해 커다란 나무로 다가가는 바람이라도 살며시 고요를 깨뜨렸으리라.

사진에서는 냄새나 촉감, 맛도 제거된다. 빛과 색으로만 이루어진 사진을 보며 MR을 제거한 음원을 떠올린다. 한 가지 감각에 집중할 때 마음의 초점은 선명해진다. 진공을 거니는 물체를 보는 듯 고요로 둘러싸인 여백에서 피사체는 도드라진다. 시각적인 요소로만 표현된 시공간의 파편이 된다.

 

까마득한 우주의 탄생 이래로 시간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사진에는 본질적으로 찰나의 간절함이 담긴다. 잠시나마 빛과 함께 시간을 붙잡았다는 증거이다. 그 순간 마음을 투영하기로 판단한 작가는 신속하게 셔터를 눌러 공간을 자른다. 섬세한 감정은 오롯이 찍는 이의 것이다. 숨은그림처럼 마음이 담긴다.

사진에는 찍는 이의 마음이 반영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하다면 나를 찍어준 사진을 보면 된다던가. 환하게 웃는 나의 표정을 잘 찍어주던 사람이 떠오른다. 나의 웃음을 마음에 담고 싶었던 걸까.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이 보는 순간 감탄하게 되는 작품은 아니다. 카페에 혼자 앉은 노신사의 뒷모습, 선상 유리에 비친 표정, 건물 벽에 매달려 작업하는 뒷모습, 전동차에 오르는 사람들 사이로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중년의 부인, 거리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노년의 사람들. 주로 뒷모습과 일상의 물건이 담긴 16장의 사진이다. 저자는 피사체의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은 두 가지이다. 사진 관련 신변잡기를 기록한 글과 사진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점, 내용에 비해 가성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저자를 따라 사진의 본질을 고찰하며 느린 시간을 보낸 점은 의미 있었다.

 

고단한 삶의 한가운데 잠시 멈추어 느슨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면 사진을 찾는다. 빽빽한 삶이 사진을 볼 여유조차 허하지 않을지라도 그루터기의 위안이나 햇살의 따스함이 간절할 때 행복했던 순간을 박제한 사진을 잠시 소환한다. 내가 담겼거나 내가 담았거나 손끝으로 그리운 대상을 가만히 보듬는다. 부드러운 걸음으로 다가온 사진이 마주한 심장에 닿는다.

잠시 과거로 타임슬립하면 2차원 평면으로 누워있던 사진이 3차원 입체로 되살아난다. 숨결에 섞여 들어오던 향기, 귓가를 보듬던 소리, 부드러운 촉감, 달콤한 맛. 모든 감각이 어우러질 때 감정은 따뜻한 물 위에 떠 있는 꽃차인 듯 피어난다.

감각은 심장에 기억을 새기는 조각칼인가. 몇 년이 흘러도 감각 세포를 자극하면 예전의 감정이 되살아나니 말이다. 엄마와 함께 먹던 빵의 맛이 여전히 뭉클한 것처럼, 누군가와 함께 듣던 음악에 커다란 숨을 쉬게 되는 것처럼.

예술적인 사진도 많지만, 깊은 의미를 주는 건 스스로 찍은 사진인 듯하다. 과거에 느꼈던 감각이 감정을 품고 고스란히 되살아나 현재의 나를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괜찮다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라고 차가워진 손끝에 온기를 건네준다.

 

인간의 시각 세포는 두 종류이다. 명암을 감지하는 간상 세포와 색깔을 구별하는 원추 세포이다. 어둠의 공간에서는 간상 세포만 조용히 활성화된다. 채색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독립적인 흑백사진에 나는 강한 매력을 느낀다. 오롯이 명암으로만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MSG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재료 자체의 맛이 우러나는 담백한 요리를 맛보는 기분이다.

사진가 필립 퍼키스가 했다는 말에 공감한다. “흑백사진에는 톤이 있습니다. 흑과 백 사이 무수히 드러나는 회색의 톤이 있죠. 어둠에서 밝음으로 펼쳐집니다.” 수묵화를 보는 듯 정적인 고요함과 그러데이션으로 펼쳐지는 무채색의 변화에서 잠재적인 역동성을 느낀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 저자는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한 답변으로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의 대사를 인용한다. 삶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문장이다. 사진을 보듯 삶의 장면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싶어진다.

손바닥에 책을 얹는다. 128g의 가뿐한 무게이다. 삶이 부력을 받아 덩달아 가벼워지는 듯하다. 흑백의 표지에 마음이 정갈해진다. 책날개 안에 적힌 문장을 다시 펼쳐본다. ‘언젠가는 작은 집에서, 넓은 사람과, 깊은 마음으로 살기를 꿈꾼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환해져 천천히 글자를 더듬는다.


p164, 7째줄: 프랑스고배우들은 프랑스고 배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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