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문학 - 공부하는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
김경집 지음 / 꿈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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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마징가제트에는아수라 백작이 등장한다. 좌우가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괴상한 악당이다. 책의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하자면 망설이는 마음, 보여지는 세상과 감추어진 세상. 쓰고 있는 글과 써야 할 글과의 경계에 있는 나를 느끼면서 책을 읽는 내내 이 캐릭터와 함께모순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몇 주 전,‘416, 세월호, 아이들, 416, 세월호, 아이들...’며칠 동안 한참을 고민한 적이 있다. 지난 3월 독서 모임, 같이 참여하시는 분이 416일에세월호 추모 행사를 주관하는데, 추모시가 필요하다 했다. ’혁명, 노동, 민주이런 말에 여전히 낯선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제 시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이예요. 저는 그런 글 못 써요.” “그냥 써주세요. 할 수 있을 거예요, 충분히.”몇 분간 뜸을 들인 끝에 그럼 한 번 써볼께요.”라 했지만, 여전히 자신감은 없었다. 도대체 그런 어마어마한 소재를, 더군다나 그토록 먹먹한 소재에 어떻게 접근을 한단 말인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416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 감성대로 한 번 써보자!’ 결국 <416>이란 제목의 시가 만들어졌지만, 시를 쓰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이제껏 나는 ‘416의 변두리에 있던 방관자였다는 것이었다. 마음 한 켠 부족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416

 

1997/ 벚꽃 한 가득 펼쳐지던 날/ 눈부신 세상을 만났습니다/ 하늘과 만나 짙푸른 바다는/ 구름 같은 꿈들을 한껏 담았습니다/ 점점 더 번져가는 따스한 봄날에

2014/ 하늘 향해 벚꽃 흩날리던 날/ 새하얀 꿈들이 가라앉았습니다/ 검게 변한 바다는 침묵 속에서/ 그들의 미래를 조용히 삼켰습니다/ 마음을 도려내 듯 차가운 봄날에

2015/ 흐드러진 벚꽃만큼 먹먹해지는 날/ 하늘하늘 꽃잎들도/ 그 많던 꿈들도/ 봄처럼 화사했을 언젠가의 사랑도/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스러지는 영혼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어루만지지 못한 바다를 생각합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봄날이/ 묵직하게 심장을 잡아당깁니다/ 매달린 리본이 바늘처럼 시큰거립니다

 

<엄마 인문학>역사, 예술, 철학, 정치, 경제, 문학분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엄마들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책이다. 각 분야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그리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독서 모임에서 3예술분야의 발표를 맡았다. 이 장의 주제는 한 마디로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당시 시대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고, 어떻게 시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적혀있다. 베토벤, 백남준, 피카소 등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친숙하게 접했던 예술가부터 생전 처음 들어본 현대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예술가는장샤오강이었다. 그림에 빛을 나타낸다는 중국의 화가. 대표작은 <대가족>이란 작품인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표현된 인물들에게는 아메리카 선주민의 얼굴에 그려진 문양처럼 독특한 빛의 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그의 작품과 이력을 찾아보면서 그가 중국 현대 미술의 사대천왕으로 불린다는 것도 알았다. 어느 매체와 인터뷰를 한 기사를 보았다. “빛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나타내고, <대가족>에 표현되어 있는 얼룩 같은 빛은 시간의 흔적을 의미한다.”고 했다. 인물들에게 드리워진 빛들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내 글에도 빛을 담고 싶었다. 내면에 채색되고 싶은 사랑을 향하여. 오랜 고민의 흔적, 감정의 울림,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감성과 아픔, 그 먹먹한 그리움들이 빛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짓기 위해 고민했던 몇 주 전이 떠올랐다. 예술이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라면 문학도 마찬가지겠지. 남녀 간의 사랑만을 표현한 시가 과연 빛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의 영역을 좀 더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에 대한 시도 결국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니. 사회와 시대를 외면한 글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제껏 나는낯섬을 가장하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니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던 것을.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세상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보면아수라 백작과 다르지 않다.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며칠 동안 한 끼조차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연탄 한 장이 아쉬워 추위를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에도 집안에서 반팔만 입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깊어지면 행복한 만큼 아픔이 되기도 하니까. 늘 양면적인 세상. 그래서 제대로 표현하려 한다면, 그 빛과 어둠을 다 드러내야 할 것이다. 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정작 어둠은 바라보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불완전한 글이 될 것이다. 어둠과 함께 드러나는 빛이 가장 선명한 것처럼.

우선은 내 자신부터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밝은 이면에 감추어 놓은 모순적인 어둠을. 다음에는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어둠은 온전한 어둠은 아니다. 빛을 바라보는 어둠이라 할까.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나의 글을 통해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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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4-3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유족들, 을 방송을 통해 보면서 열 번 넘게 눈물 흘렸던 것 같아요.

나비종 2015-04-30 19:16   좋아요 0 | URL
정말 마음아픈 일입니다. . 지금까지도. .

2015-04-30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5-04-30 19: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쩔 수 없는 일은 비난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쩌지 못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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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이라는 노래(윤종신 작사)가 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종종 이 노래의 앞부분 가사가 생각났다. 노래 후반부에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이 나오지만, 소설 속 현실에서의 정상은 어디쯤일까 가늠되지 않는다.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글에 묘사된 상황을 금방 끄집어내 다큐라 칭한다 해도 전혀 과장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짓누른다.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16명의 사람들이지만,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장 많이 나오는 지환엄마 수정이라 생각한다. 그녀에게서는 경계가 연상된다. 잠실동에 살지만 대치동을 바라보고, 잠실동과 빌라 촌 사이에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안정된 소속을 갖지 못한 인간처럼 불안정한 모습은 그녀의 이름처럼 금방이라도 깨질 듯 수정을 닮아있다. 지환의 담임교사 미화를 겨냥한 집단 시위에 완전히 동조하지도 못하고, 강하게 거부하지도 못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 흔한 엄마들의 모습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기만 하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는 보다 많은 엄마들은 이렇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주류에 휩쓸려 간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스프링 벅의 질주처럼 씁쓸한 현실이다.

 

3월 들어 미니의 두통이 벌써 두 번째다. 오후 355분에 7교시 수업이 종료되면 청소, 종례를 마치고 4시 반 정도에 집에 도착한다. 저녁인지 간식인지 애매한 식사를 하고 5시 반에 학원가는 버스를 탄다. 저녁 840분에 집으로 와서 출출해진 배를 다시 채우고 만만치 않은 학원 숙제를 마치면 밤 11시가 넘는 건 다반사다. EBS로만 집에서 공부하다 올 초부터 달라진 일과이다. 병원에서는 감기라고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다분히 섞인 듯하다. “학원가기 힘들어서 아픈 거 아냐? 힘들면 그만 다녀도 돼.”“정말 아픈 거야. 힘들지만 다니긴 다녀야지…….”무조건 학원을 강요하진 않지만, 말끝을 흐리며 힘없는 답하는 아이의 말 속에 소설 속 아이들의 모습이 느껴진다. 마음이 무겁다.

 

어디서부터 잘못 꿰어진 걸까?

지난 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318만원이라 한다. 대학 5학년생들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학생 서영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교육 현장은 교육 시장이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팔 듯 최상의 가치를 얻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몰아치는 분위기에 아이들의 영혼이 휩쓸리듯 쓰러진다.

지환아빠 인규를 통해 묘사되는 조직 사회의 먹이사슬, 어학원 상담원 윤서와 과외교사 승필, 원어민 강사 지미, 학습지 교사 현진이 보여주는 사교육의 현장은 구석구석이 적나라하다.

어디부터 되돌려져야 할까?

허구라 밝힌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초등교사 미화를 둘러싼 사건들은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알고 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있지만, 때로는 목적을 상실한 채 무모한 방향으로 거침없이 진행되어가는 일들에게서는 두려움조차 느껴진다. 소설보다 더한 현실은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갑갑한 마음이 들던 책. 결코 유쾌하지 않음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대로 살게 할 수는, 이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끝도 모를 오르막길을 강요당하는 어린 영혼들이 하루 빨리 평평한 곳에 앉아 바람 부는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expensive’의 비교급은 몰라도 다친 비둘기를 안아 따뜻한 체온을 느낄 줄 아는 초등학생 지환의 모습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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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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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글자는 무엇이었나요?’ 띠지에 나와 있는 글귀를 보고, 겉표지를 넘겨보기도 전에 한참을 생각했다. 중요한 일들이 나를 통과해 흘러갔고, 그만큼 중요한 시간들이 흘러갔지만, ‘한 글자라니! 한 글자로 된 낱말들이 뭐가 있었더라? 본문을 읽기도 전에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니.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 진리와 지혜를 전해주는 책 등 다양한 기준들이 있으리라. 나의 기준은 얼마나 많이 생각하게 하느냐이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이 없더라도 구석진 한 문장에 꽂혀 한참을 생각했다면, 초등학생을 위한 동화라도 내 마음을 움직여 발걸음까지 변화시켰다면, 적어도 내게는 좋은 책이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 참 좋은 책이다.

 

읽는 데 느려 터져 달라는 저자의 부탁을 뒤로 하고 몇 시간 만에 냉큼 읽어버렸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에서야 달팽이의 걸음처럼 마음을 느리게 옮겨야함을 깨달았지만. 다시 읽었을 때에는 며칠이 걸렸다. 세 번째는 마음에 와 닿은 한 글자를 아직도 읽는 중이다.

, , , , , , 는 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싶을 정도로 기발하다.

, , , , , , , , 은 맞아!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공감이 간다.

, , , , 은 일본 시 하이쿠가 연상된다. 발음이 비슷하거나 라임을 맞춘 우리말이 아주 적절한 문장으로 배열되어 있다.

, , , , , , 은 내용은 좋지만 한 글자라는 제목에 맞추려 살짝 억지스러워 보인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글자는 이다.

‘ “불이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불이 나를 삼키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장 무섭지 않은 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듣는 사람은 하품만 나오는 말은 무엇일까. “불이었다.” 이미 재가 되어 들꽃 하나, 풀잎 하나도 삼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늘 과거를 사는 바보들은 나도 한때 불이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그것으로 사람들을 위협한다.’ (p284~285)

며칠 동안 생각을 하고, 카톡 프로필에도 적어놓았다. “ㅂㅇㅇㄷ라고. 간혹 예전에 이런 적도 있었다며 자랑하듯 얘기하곤 했는데, 이 글귀를 보는 순간 흠칫했다. 항상 겸손해야함을 아주 적절한 비유로 정곡을 찌르며 알려주고 있다. 요즘은 불이었다가 와 닿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마음에 와 닿는 글자도 그 때 그 때마다 달라지리라.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보아야겠다.

 

두 번째 책을 읽고, ‘나도 한 글자에 대한 멋진 말을 해봐야겠어!’라 야심찬 생각을 한다. 차례를 꼼꼼히 살펴본다. 후아~! 도대체 얼마만큼 사유를 해야 저 방대한 양의 한 글자와 그에 따라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나온단 말인가! ! 이게 있지! 하며 겹치나 찾아보면 여지없이 어딘가에 떠억 하니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 글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나와 다른 부분도 있지만.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소중한 한 글자는 없을까? 구름처럼 떠있는 생각을 머리 위에 이고 다니며 며칠을 보냈다.

2월 말 즈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별의 짧은 말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한 글자생각으로 가득했다. 이 책에 대한 얘기를 어떤 식으로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불이었다!’가 제일 좋았다며 책에 있는 내용에 대한 단순한 감상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서운한 마음과 무슨 말이든 의미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뒤엉켰다. 갑자기 머릿속에 사람 인()이란 한자가 떠올랐다.

얼마 전에 제가 <한 글자>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한 글자로 된 여러 낱말들에 대하여 기발하고도 마음을 울리는 글귀가 적혀있는 책입니다. ‘, , , , 이런 거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글자는 무엇일까 오랜 시간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사람 인()’이란 한자(漢字)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서 서로 지탱하며 기대어있는 모습이죠. 두 사람 중 어느 누가 힘을 빼버리면 다른 사람은 쓰러지게 되요. 사람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서로 의지하고, 받쳐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이라는 한 글자가 주는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사람 인()’이라는 한 글자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입니다.”

 

 

유난히 사람들과 많이 대화했던 한 해였다. 같은 말을 해도 표현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나의 의도를 기분 좋게 전달할 수 있음을 알았고, 공적인 일을 한다 해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란 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부탁을 하고, 도움을 주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차례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굵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명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무엇이든 동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보다 행동이 중요하며 사랑이나 그 어떤 일들도 명사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것은 결국 동사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이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어야만 하리라.

‘2014년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글자는 무엇이었나요?’ 그래! 사람, ‘()’이었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한 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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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비늘
이강산 지음 / 책만드는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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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타주라는 미술표현기법이 있다. 긁어내기 기법으로 스크래치로도 불리는. 도화지에 여러 색깔의 크레파스를 칠하고 진한 색으로 전체를 덧칠한 다음 칼이나 나무젓가락 같은 도구로 표면을 긁어내면 처음에 칠한 바탕의 여러 빛깔이 다시 드러나게 된다.

소설집황금 비늘에서 나는 그라타주를 떠올렸다. 아홉 편의 단편 소설 속에 펼쳐진 다양한 삶들은 여러 빛깔이지만 환하게 드러나지 않고 어둠 속에 숨은 채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소설 엄마의 탄생에 나오는 말처럼보이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p9) 삶이다. 너무도 선명하게 존재하지만 거대한 장막과도 같은 사회 시스템에 가려져 자세히 둘러보지 않으면 자칫 보이지도 않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진실을 저자는 부드러운 펜으로 조용하고도 조심스럽게 긁어낸다.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 가슴 속에 아린 기억 한 두 가지 쯤은 있으리라. 그런데, 뭐랄까. 소설 속의 삶들은 가슴 속에 새겨진 아픔이라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품고 있는 것도 모자라 삶 자체가 아픔이 되는 깊이가 있다 할까. 감히 어쭙잖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묵직함이 담겨져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저자의 흑백사진들과 시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날 것 그대로 담겨있는 소설들. 너무나 느리게 펼쳐지기에 삶을 관통하며 갈라진 손톱 끝까지 보일 정도로 적나라하다.

저자는세상을 흑과 백으로 단순하게’(p7) 바라본다고 하지만 소설 속에서 흑백 사진처럼 서술된 삶들은 수많은 채도로 존재하므로 섬세할 수밖에 없는 복잡함이 있다. ‘언어의 절제여백의 미를 깨우치고 문학의 수묵화를 꿈꾸고 있다는 저자가 느림비우기를 거듭하며 도달한 곳은 낮은 지붕, 낮은 사람이다. 가장 하찮게 보이지만 바다처럼 많은 것을 품고 있으며, 나무의 뿌리처럼 생명의 근원이 되는.

 

 

<금반지>는 장돌뱅이 아버지의 그림자가 담긴 장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칠순 기념으로 칠십 년 만에 처음으로 받았던 금반지를 잃어버린 아버지. 손녀딸의 금반지를 녹여서 만든 것이기에 더더욱 조바심 내며 찾으려는 과정은 옻칠한 밥상처럼 번들번들하게 얼어붙은 빙판길이 시내버스의 발목을 옭아매고 놓아주지 않는’(p17~18)것처럼 위태위태하다. 결국 밝혀진 사실을 목도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금반지 하나 때문에 마치 내다 버린 사과 궤짝처럼 처량’(p19)하다.

동네에 있는 L슈퍼의 인터넷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VVIP고객님이 되어버린 나. 덕분에 퇴근길 들르곤 했던 전통 시장과의 거래가 거의 끊어졌다. 연말정산이나 전통시장 상품권으로 시장 이용을 권장한다고는 하지만, 장꾼들이 장돌뱅이 숫자보다 적은 풍경은 특히 날이 궂은 겨울이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수요일마다 아파트 정문 근처에 열리는 장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장을 보며 핫도그 등 주전부리를 사먹던 소소한 재미를 언제부터 잊어버리고 살았던가.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 시장을 찾던 일상은 동네 슈퍼를 가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편안함에 떠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들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알인 듯 허전하다.

속옷 장수 에어 메리가 내뱉는 말투에서는 걸러내지 않는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나온다. 그녀의 욕설에서 상스러움보다 후련함이 느껴지는 것은 웃음 띤 위선으로 가려진 세상을 향한 솔직한 외침 때문일까.

 

<황금 비늘>은 굴다리 옆에 간판조차 없이 생선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옻칠한 밥상처럼 번들거리는 것이 <금반지>에서는 빙판길이더니, 생선 가게에서는 석양을 가리기 위해 지붕 끝에 매달아 둔, 때가 절은 국방색 천막’(p40)이다. 그것은썩은 생선 내장이 말라붙은 것처럼 물곰팡이가 피어난 슬레이트 지붕’(p40)과 더불어 그들의 삶이 담겨진 풍경과 어딘지 닮아있다.

어쨌거나 가오리를 홍어라고 한 것이 가짜를 속여서 판 죄가 된다면, 그렇게 따지고 들자면, 도대체 이 장터에서 가짜 아닌 것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중략) 가짜는 장터에서 사라져야 하는 거야. ? 알겠냐구. 가짜를 파는 사람도 사라져야 한다구. 씨팔. (중략) 설사 장터에 깔린 수많은 장물들이 가짜라 해도 사람은 가짜가 아니다.’(p62) 그래, 사람은 가짜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사람과 그들의 삶이 어찌 가짜일 수 있단 말인가.

생선 비늘처럼 장터에서 떨어져나가는 나리 엄마지만,‘생선 비늘 같은 굳은살이 박이도록 빠짐없이 바다 생선들을 만져보았던’(p48) 그녀는다만 늙었기에 장터를 떠날 뿐이지 가짜라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p62) 소설 은교에 나오는 말,‘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p250~251)처럼.

제목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리꽂힌 황혼 줄기에 빛나던 조기 비늘처럼, 사회의 어두운 장막이 걷힌다면 그들의 진짜인 삶도 황금빛으로 빛나지 않을까.

 

<진주조개잡이>는 바뀐 세상에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나전칠기 기술자의 이야기이다. ‘손바닥 전체에 누룽지 같은 굳은살이 박이도록자개장을 만들었던 영복은 솥단지에 들러붙었던 누룽지가 떨어져나가듯 직장으로부터 분리된다.

세상이 바뀌어야지. 이게 어디 우리 같은 놈 살라는 세상이냐?’(p80)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 세상, 그나마 불안정한 직장이라도 다니고 있는 게 어디냐며 부러움을 사는 세상이다. ‘버스 안에서 아내와 주고받은 세상은 무서웠다. 여차하면 발목이 날아가는 지뢰밭 같았다.’(p91) ‘그것은 낡은 아파트의 외벽처럼 죽죽 갈라 터진 삶의 균열이었다.’(p92)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삶들이 무겁고 또 무섭다.

 

<그물>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식구 중에 나만 병신인 줄 알아? 나만 절름발인 줄 아느냐고! (중략) 남의 식당에서 끙끙대다가 명절에나 집에 오는 큰언니는 뭐, 병신 아니야? 친정도 모르고 사는 엄마는, 엄마는 나하고 다를 줄 알아? 외가도 없는 우리는 또 어떻고. 도대체 우리 집안에 정상인 사람이 누가 있어!’(p119)라 절규하는 막내의 말에부서지고 무너진 폐허 속의 풍경처럼’(p120) 가족들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흡사 갇혀 있던 견고한 그물로부터 탈출한 물고기 떼같이 모두들 긴장의 눈빛을 휘둥휘둥 밝혀두고만 있었다. 그것은 캄캄한 심연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그 무엇의 완전한 탈출을 기다리는 눈빛 같기도 했다. ’(p121) 소설 속 가족의 균열은 장손 집안에 아들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을 캄캄한 심연 속에 가둔 것은 무엇일까. 세상으로부터 뿌리 깊게 박혀진 인식과 내일을 걱정해야하는 불안정한 삶이 가족이라는 따뜻한 말을 그물과 같은 올가미로 둔갑시킨 것일까.

 

<칼자국>은 역 주변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는 게, 걸어서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 같아. 어둡고 답답하고 두렵고.’(p143) 낮에는 기차역 매표소에서, 밤에는 술마당에서 일하는 수빈은 이 지긋지긋한 T골목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다.

여긴 세상의 끄트머리야. 바닥이라고.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어. 끄트머리? , 강수빈. , 꼭 딴 동네 사람같이 말한다. 여기가 세상인 줄 몰라? 세상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라고.’(p151)‘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외치셨다는 부처님의 말처럼 누구든 그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인데 그곳을 끄트머리로 인식하는 삶이 바늘 끝에 찔린 듯 아리다.

뜨더라도 골목 사람들 무시하지 마라. 나처럼 물장사를 하든, 돼지 뼈를 삶든, 가랑이를 벌리든 코피 터지게 열심히 산다. 이 바닥에 살다 보면 누가 누구를 무시하는 게 얼마나 같잖은 일인 줄 아니? 여기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남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아. 남을 등쳐 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든, 돈푼이나 있다고 꼴값하는 눈먼 놈들이든 서로서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p151)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삶이거늘. 나를 돌아보고 은연중에 그런 풍경들을 무시했을 지도 모를 내 마음을 뒤적여본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 칼자국이 오늘, 여기까지 나를 끌고 왔는지 모른다. 골목을 드나들며 흔들릴 때마다 허벅지 근처에서 시큰거리던 그 통증이.’(p153) 그래도 나는 감히 그 통증이 그들의 삶을 빛나게 하고 일으켜 세워 줄 또 다른 의지의 근원이 되리라 믿는다.

 

<거인의 방>은 아홉 평짜리 원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502호미 할머니의 등은 주워 든 비닐 조각이나 시금치 이파리같이 폭삭 젖어 있었다. 우산살처럼 접힌 등 때문이었다. (중략) 그 굽은 허리춤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곶감처럼 호미 할머니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p159~160) 사람의 몸은 그들의 삶과 점점 닮아져만 가는 걸까. 할머니를 묘사한 모습에 궁핍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돈 이만 원이면 우리 철민이 지금 먹이는 우유, 두 배는 고급으로 먹일 수 있다고요. 거인도 될 수 있는 돈이란 말입니다. (중략) 그럼 우리 원룸이 거인의 집이라는 말이야? (중략) 집은 무슨 집? 방이지. 원룸 뜻도 몰라? (중략) 그렇다면, 거인의 방?’

몇 만 원에 동요하는 이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고급 우유와 유기농을 찾으며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들은 아직도 연탄을 떼며 겨울을 넘기고, 그 연탄 몇 장조차 아쉬워 추운 몸을 부비며 살아간다.

이런 부실 공사를 한 놈들이나 그것을 눈감아 주고 준공 승인을 해준 놈이나 다 마찬가지로 썩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쭈그려 앉아 모기에 뜯기는 것 아닙니까? (중략) 더 이상 이것저것 말씀드리지 않아도 우리가 힘을 합쳐 무엇을 해야 되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p195)

구름 입자 백만 개가 모여 하나의 빗방울을 만들어내듯이 같은 마음으로 뭉치면 거인의 방거인의 집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집이 바뀌지는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마주 잡은 손의 온기라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새는 어디로 갔을까>는 저자가 지은 동명의 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이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낚싯줄 같은 바람끝에 매달린 듯하다. ‘욕망이란 게 인간의 본능적인 것일진대 무엇이 불온한 욕망이라는 것인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불온하다는 것인지.’(p205) ‘여자를 택하고 커밍을 피한 삶이 과연 정당할까요.’(p220) 아직도 동성애자를 보는 시각이 그리 달갑지 않다.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닐 텐데. 다수에 속하지 않는다 해서 소수의 삶이 외면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 새는/ 국립대전현충원 제15묘역 육군 하사 서격춘의 묘와/ 육군 상병 서한원의 묘 사이로 내려앉았다/ 폭설에 간신히 발목만 파묻힌 채// 어디로 갈 것인가/ 두어 번 방향을 바꾸며 두리번거리던 그 새는/ 해군 상병 연준모의 묘를 향해 뒤뚱뒤뚱 걷다가/ 푸드덕 눈을 털고 날아올랐다// 얼어붙은 주검과 주검 사이 내려앉은/ 그 새는/ 이만 개의 화강암 비석을 숲으로 여겼을까/ 폭설 속 저 붉고 푸른 이만 개 원색의 조화(造花)가 꽃인 줄 알았을까// 새의 무게만으로도 저렇듯 선명한 발자국을 본다// 십 년 전의 추억과 일 년 전의 추억 사이에/ 떠난 사람과 돌아온 사람 사이에 내려앉아 뒤뚱거리는/ 나는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어디쯤에서 날아올라야 하는 걸까// 어디선가 이명처럼 새가 울고/ 새 울음 내려앉는 비석들 사이/ 얼어붙은 발자국/ 그 새는/ 어디로 갔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시가 나는 참 좋았다. 물론 저자의 심오한 마음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뭐랄까, 토막토막 나온 시를 연결하여 읽어 내렸을 때, 멀리서 날아온 피구 공을 한순간에 덥석 안아 받은 듯 뭉클한 느낌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시는 소재를 넘어 내 삶의 모습과 방향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어디쯤에서 날아올라야 하는 걸까하는 질문이 한동안 마음속을 돌아다녔다.

 

<즐거운 초상>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을 찾아나서는 판화가의 이야기이다.

유족들의 모습에서 웃는 바위를 본 근상은 아픔과 소외를 표현하되 직설 대신 은유와 역설로 담아내자’(p234)고 결심한다.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상이 즐거웠으면 싶다. (중략) 장례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지금보다 좀 더 가볍고 즐거웠으면 한다. 아버지,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죠. 이제 편히 떠나세요. (중략) 즐거운 초상, 웃는 상주. 그게 꼭 고인에 대한 불손이고 경박한 풍습이랄 수만은 없지 않은가.’(p238) ‘어머니, 하고 부른 다음, 임종의 순간처럼 깊고 고요한 묵언의 대화를 나누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을 반추하는 동안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그 눈물 끝에, 살그머니 웃으면 안 될까. 평생을 모셨고, 평화롭게 떠나셨으니, 이제 좀 웃어도 되지 않을까.’(p249)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몇 번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죽음의 절차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 살짝 충격적이었달까. 팔십을 바라보시는 부모님, 상상하기 싫지만 언젠가는 내게도 당신들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오리라.‘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머릿속에 심어두고 부모님께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아직은 울음 끝이라도 웃을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은데.

저 일몰의 깊이는, 환상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중략)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비현실인지. 자동문 밖인지 안인지. 빈소인지 접견실인지. 침묵인지 소음인지.’(p239)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일몰을 뒤로 하고 내게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오는 늑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낮과 밤의 경계가 애매한 시간을 뜻하는 말이다. 삶의 끝이 죽음이라면, 죽음의 순간은 삶인가 죽음인가. 24시이면서 0시가 되는 밤 12시처럼, 삶과 죽음이란 언제 생각해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혼란을 가져다준다.

 

<붉은 섬>은 사람들 사이에 섬처럼 떠있는 또 다른 사람이 중년의 시간을 지나가는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아는 덴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p285) 누구? . 아는 사람. 흔히 지나치듯 하는 이 말을 곱씹어본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 말한 그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진짜 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 하고.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이, 직업, 학력 같은 형식 말고,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무슨 생각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반대로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내면을 관통하는 무엇을 보게 된다면 몇 시간을 본 사이라도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떠나온 길을 보면 아득하고 돌아갈 곳을 생각하면 까마득한 바다 한복판의 섬’(p286) 때때로 느껴지는 공허한 느낌이 나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아서 소설 속 인물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나무들도 인간처럼 중년이 있다. 나무들도 갈등을 겪는다……. 인간이든 나무든 그들의 중년은 다 같이 미와 추의 양면성을 지녔는데…….’(p274)

생각해보면 사람들마다 섬 하나씩 품고 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복잡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공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그래서 나 혼자 소유하기를 절실히 원했던 그 공간들이 실은 외딴섬 같다는 생각입니다.’(p281)

그래, 섬이었던 거다. 중년의 후반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시간 속으로 간혹 날아드는 외로움은 섬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자유를 안게 되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내게 있어 섬과 같은 공간은 글을 쓰는 이 곳, 이 순간. 글을 쓰는 동안 나의 사유는 어디로든, 누구에게든 날아갈 수 있으므로. 비록 발은 땅을 디디고 있지만, 고개를 들면 언제든 끝없이 열려있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책장을 덮고 멍하니 겉표지를 바라본다. 처음 펼칠 때만해도 보이지 않던 배 한 척이 눈에 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는 바다를 향하고 있는 등대 같기도 한 것이 있다. 배와 등대 사이 오른쪽 중간 즈음에 떠있는 구조물도 보인다. 빛과 어둠, 그리고 그 경계. 나는 어디에 설 것인가. 나의 글은 어디를 향해 날아가 앉을 것인가.

바다와 하늘이 합쳐진 공간이 황금 비늘처럼 빛난다. 그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어둠이 묵직하다. 저자가 소설을 통해 그려낸 사람의 흑백 풍경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다. ‘소설로서는 욕을 먹어도 사람의 기록으론 욕먹지 않기를 바란다.’(p8)는 저자의 말이 마음으로 깊이 파고든다.

그라타주는 프랑스어로 긁어 지우기마찰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어둠 속에 희끗희끗 보이는 삶을 긁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찰은 오롯이 긁어내는 자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그라타주처럼 긁어내어 환하게 만들고 싶다. 아니, ‘만든다는 표현은 어쩐지 적절치 않다.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을 도구로 드러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어둠 속에 있는, 어둠에 가리워진 삶들이 처음부터 어둠은 아니었으므로.

 

 

*사족

1. 인원 수의 합이?

p257, 가이드는 패키지 여행객이 모두 열일곱 명이라 했는데,

서울 가족 3명, 광주 가족 4명, 수원 직장 동료 8명, 대학생과 충주 아주머니와 아저씨 3명.

모두 합치면 18명이다.

2. 문장이?

p281 9번째 줄, ~젖어 있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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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잠에서 깨어났다. 오후 217. ‘좋은 서평이 좋은 책 살린다.’던데, 수많은 리뷰와 100자평으로 좋은 책임이 증명되었고 더군다나 2014년의 책으로 불리는 책을, 이미 쌩쌩하게 살아 팔딱거리는 이 책을 내가 어찌 더 살릴까나.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받은 느낌이 너무 크단 말이다! 이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리뷰를 쓰고 싶은데.

주제는 한 마디로 써라!”, 느낌은 좋았다!. 그 이상을 어떻게 나타낼까?

쭉 써라, 계속 써라, 쓰고 또 써라? 이런. 너무 평범하다. 저자는 소설의 문장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라 했는데, 그렇다면 떡집에서 가래떡이 꾸역꾸역 나오듯이 써라? . 이것 역시 초라하다.

그러면 느낌에 대해서 써 볼까? 참 좋았다, 아주 좋았다? 호박잎에 된장 쌈을 먹은 듯한 느낌이다? 호박잎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TOP 2 중 하나이므로 내게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건만, 호박잎을 안 먹거나 싫어하는 인간들이 보면 밥맛인 책으로 둔갑할 수도 있지 않은가.

으아, 고민스럽다. 내가 리뷰를 두고 이렇게 고민하는 인간이 아닌데. 앉아서 생각하다 책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워 다시 책을 떠들어보다 잠이 들어버렸다.

 

 

264쪽의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와 두께는 하루면 읽겠지.’라는 첫인상을 안겨주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책이다. 14일부터 시작해서 어제까지 읽었으니 4일이나 걸린 셈이다. 톡톡 튀는 신선한 유머가 스며있는 문장은 양념처럼 독특한 향을 내고, 가벼운 듯 손쉬운 문장은 일상의 이야기나 소설가가 되기 위해(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말해준다.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종종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게 한다.

산문을 통해 처음 접한 이 소설가가 궁금해진다. 네이버 서재에서 인터뷰한 동영상을 보고, 그의 소설에 대한 평도 읽어보고, 평소 좋아하는 편이 아니던 소설이란 장르에도 관심이 생긴다. 소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학 장르나 심지어 살아가는 데에도 지침으로 삼을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리뷰를 어떻게 쓸까? 단순하게 내용을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마음에 남는 좋은 내용들이 많기에 그것에 대하여 기술하자면 책을 통째로 필사하는 꼴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몇 달째 필이 꽂혀서 쓰고 있는 시들이 생각났다. 그래, 이거다! 좋은 서평이 좋은 책을 살리듯이, 이 좋은 책이 나를 살린 이야기를 쓰면 되겠구나! 첫 장을 펼치고 책을 읽는 동안 두 편의 시와 한 편의 페이퍼를 썼다. 페이퍼는 수필 형식이었으니, 내 경험을 마음 가는 대로 썼지만, 시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이 고쳐졌다. 끄적거렸던 시가 적혀있는 이면지를 찾아냈다.

 

저자는 토하기 직전까지 참고 쓰는 원고를 토고라 했으니, 내 경우에는 토시라고 하자. 이 토시를 읽기 전에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토하기 직전까지 참고 쓴 시적 화자에 감정 이입되어 저도 모르게 속이 거북해질 지도 모르니까.

 

(토시 1)의 처음 제목은 <마음과 마음 사이>.

 

몸과 몸 사이의 거리는/ 자로 재면 되지만//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는/ 무엇으로 재나//마음은 늘 움직이는 것이니/ 늘 변하기 마련인데// 느낌으로 재는 건가/ 마음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자는/ 느낌이다

 

, 아주 많이 부끄럽지는 않다. 어차피 나는 시인도 아니고, 그냥 시를 쓰고 싶어서 쓰는 거니까 괜찮다, 괜찮다, 이런 비루한 문장들도. 라며 주문을 건다.

일단 반복되는 말들을 잘라낸다. ‘몸과 몸으로, ‘마음과 마음마음으로, ‘은 두 번이나 들어갔네? ‘잰다는 왜 이리 많이 썼지? 5번이나 들어갔다.‘잰다를 빼니 서술어가 없어진다.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 일단 보류하자.

한참을 들여다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몸 사이의 거리는 공간이지. ‘몸 사이의 거리는 공간으로, ‘마음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바꾸자. 공간과 시간. ~ 나름 대칭적인 개념이로군.

다시 한참을 들여다본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추상적이야. 좀 더 실질적이어야 해. 거리를 구체적으로 넣어야겠어. 이백킬로미터. 그렇다면 시간은? 하루, 이틀, 사흘. 아니지, 무슨 숫자 놀이도 아니고. ‘하루 또 하루로 하자.

고쳐놓고 보니 공간시간이란 말이 너무 어색하다. 나름 대칭적이라 했지만, 구체적인 숫자가 들어간 이 마당에 중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눈물을 머금지는 않았지만 어울리지 않으므로 과감하게 버리도록 한다.

수정본을 읽어본다. ~ 개연성은 있지만 핍..성이 없어.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개념어 사전으로 등극하게 되는 단어. 무슨 뜻인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상황 설정을 해야겠어.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끊긴 상황인 거야. 마지막 연을 추가한다. ‘그대와 나 사이/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멀다

이번에는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그래, 어차피 잰다는 개념이니 거리로 하자.

정리해서 읽어본다. 뭔가 부족하다. 제목을 다시 바꿔보기로 한다. 어차피 주제가 연락 좀 해, 이 인간아.’(^^;)이니, ‘연락 없는 인간’? ‘연락 없는 시간’? .‘무소식으로 하자.

다시 읽어본다. 아까 추가한 마지막 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대가 들어간 것이 식상하다.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좀 더 애절하게 표현할 문장은 없을까? 그래, 핍진성을 더하기 위해 그대는 3일째 소식 없는 인간이 되는 거다.‘사흘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 너무 아득하다로 교체한다.

시간이란 말이 앞의 연과 중복된다. ‘시간을 빼고 마음을 넣어본다. 이번에는너무가 눈에 거슬린다. ‘너무숨막히게로 바꿔본다.

후아~ 이제 나는 저녁을 하러 가야하므로 일단 서재에 올린다.

 

제목 : 무소식

 

몸 사이의 거리

이백킬로미터

마음 사이의 거리

하루 또 하루

 

공간을 자로 재면

시간은 느낌으로 재나

 

사흘 향해

흘러가는 마음이

숨막히게 아득하다

 

그렇게 토시를 탈출하기 위한 하루가 지나갔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음의 토시보다는 낫다며 스스로 위안한다.

다음 날도 이어서 책을 읽는다. 어라? 이번에는 문장을 감각적으로 써야 한단다. 도전!

 

(토시 2). 제목은 없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대를 만날 때면/ 내 마음이 여기저기 자꾸/ 돌아다닙니다// 심장으로 가서 심장을 뛰게 하고/ 얼굴로 가서 얼굴을 붉어지게 하고/ 머릿속으로 가서 온종일 내 머릿속을 돌아다닙니다/ 손끝으로 가서 손끝을 떨리게 하고/ 발바닥으로 가서 그대를 향해 걸어가게 합니다/ 눈으로 가서 그대의 모습만 쫓아다닙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자꾸 자꾸 돌아다니는 마음은/ 온몸으로 드러나니/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몸 구석구석에/ 그대의 향기가 머무는 것만 같아/ 행복합니다// 마음은 벌써/ 그대에게 다가가/ 그대의 마음을 톡톡 건드립니다

 

진심 산문은 아니다. 가끔 시를 쓰던 초기, 산문처럼 길게 썼던 시기에 끄적이던 거라서. 다시 읽어보니 잡스런 산문이 따로 없다. 마음이 온몸을 돌아다닌다는 걸 나름 표현하고 싶었지만. 다시 보니 심장, 얼굴, 머릿속, 손끝, 발바닥, 이라니. 이건 뭐 머리, 어깨, 무릎, , 무릎, 도 아니고, 인간 한 번 해부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 심지어 뒷부분까지 가면 주제가 뭔지조차 애매하다. 국수가락을 넣었을 때 다시 끓어 넘치는 물처럼 마음만 우루루 넘치는 꼴이다.

마음만 돌아다니자. 뒷부분을 잘라내기로 한다.

돌아다니는 것을 극대화하려면 온몸 구석구석을 넣기는 해야겠는데, ‘심장, 심장’, ‘얼굴, 얼굴’, 반복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일어를 지운다. 심장을 뛰게 하고, 얼굴을 붉어지게 하고...

다시 읽어본다. 뜻은 통하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너무 일반적이다. 감각적인 문장이 들어가야 할 타이밍이다.

심장이 뛰는 것은 어떻게 표현할까? 과자봉지를 묶었던 노란 고무줄이 눈에 띈다. 그래! 심장은 고무줄처럼 튕겨보자. 그냥 고무줄은 좀 약한데, 좀 더 강력한 탄성을 자랑하는 건 없을까? 그래! 새총이다!

다음은, 붉어지는 얼굴. 지난 달 동네 커피숖에 갔을 때, 난생 처음 맛보았던 불그스름한 애플티가 생각났다. 투명하게 붉은 빛과 향이 참 인상적이었더랬다. 얼굴은 애플티로 정해졌어!

다음은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것.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감각적인 대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와~ 복잡하다. 머리를 움켜쥐며 아이디어를 짠다. 아하! 바로 이거다! 돌아다니지 말고 헝클어뜨리자, 풀어지는 털실처럼.

그렇다면 떨리는 손끝은? 디카를 처음 득템했던 몇 년 전, 4cm 접사 기능에 마음을 빼앗겨 퇴근 후 사진기를 들고 미친 듯이 동네를 싸돌아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꼬박 1년쯤을 야생화 접사에 빠졌었다. 무조건 찍고 인터넷으로 무턱대고 노란 봄꽃찾아보고. 덕분에 동네 야생화는 거의 섭렵했었지. 비오는 날에도 꽃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좋아서 찍고 또 찍었다. 연두 잎이 파릇파릇 올라오던 여름날. 내리다 그친 비로 빗방울이 뚜욱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때 바람이 불어 살짝 떨리듯 흔들리던 연두 잎들이 어찌나 이뻐 보이던지.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늘 그를 좇기 때문에 발걸음은 무의식적인 힘에 의해 끌려간다. 떨어져있어도 작용하는 힘이라. 중력과 전기력, 자기력인데, 중력은 아래로만 향하고, 전기력은 왠지 감전이 연상되니 철가루를 끌어당기는 자석으로 하자. 감각적인 문장으로 치환하기, 클리어!

이제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이 시의 주제는 난 네게 반했어.’흐흣~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부끄러우니 살짝 숨기자. 첫 문장을 제목으로 한다. ‘마음은 어디에.

다시 읽어본다. 처음부터 주제가 나와 버리니 김이 새버린다. 첫 문장을 마지막으로 옮긴다.

고쳐 쓴 것을 읽어본다. . 어딘가 임팩트가 없다. 저자는 소설가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문장으로 계속 고쳐 쓰라 했건만.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더 추가하고 싶다. 마음이 돌아다니는 것을 좀 더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없을까?

여기서부터 막힌다. 에라, 잠시 머리를 식히자. 동물 몬스터를 잡으러 갔다 온다. 오호~ 미션을 수행한 보상으로 뽑기를 하는데,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 뽑기 기계 옆에 있던 두더지 놀이가 생각난다. 그래! 감 잡았어!

당도 떨어져 이제 배가 고프므로 서재에 올린다.(으잉? 밥 앞에서 무너지는 고치기의 길?)

 

제목 : 마음은 어디에

 

그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온몸을 자꾸만 돌아다닙니다

 

새총 안 고무줄처럼

심장을 튕겨내다가

막 끓여낸 애플티처럼

얼굴을 물들이더니

풀어지는 실타래처럼

머릿속을 헝클어놓네요

 

바람 스친 연두잎마냥

떨리는 손끝을 지나

끌려가는 철가루인 듯

그대 향한 발끝으로 갑니다

 

불쑥불쑥 두더지 놀이처럼

도무지 잡을 수가 없네요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직도 살짝 토시 느낌이 전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보기를 다짐한다.

11, 새해 기념으로 힐끗힐끗 탐색만 하던 북플을 깔았다. 덕분에 비슷한 감성을 가진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심지어 서재 시작 초기에 지인 1, 2와 큰 딸만 선인장에 물 주듯 달아주던 댓글도 달렸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로 몇 년 만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일이다. 시는 비루한데, 고수들의 댓글에서 더 많은 사유의 깊이를 배운다. 퐁당퐁당 호수를 향해 던진 돌이 어느 만큼 들어가는지 모르다가, 물수제비를 뜨는 비법을 터득하여 몇 번이나 튕겨지는지 셀 수 있어졌달까?

 

 

소설가의 일은 내게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불탄 다리가 되었다.‘매일 글을 쓴다는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을 얻었다. 이 문장을 마음에 심고 나는 토시를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할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267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전체가 264쪽인데 뭔 소리냐고?) 나는 이 페이지가 제일 좋았다. 비어있는 원고지와 단 세 글자김연수’.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한 장의 여백에 들어있었고, 그 느낌은 마지막에 순간적인 뭉클함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사소한 오타

1. 211, 4번 제목의 본문 2번째 줄

기타큐슈 시를 방문한 있었다.~ 방문한 적이 ~

2. 236, 밑에서 3째줄

사실에 알게 됐다.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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