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문학 - 공부하는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
김경집 지음 / 꿈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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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마징가제트에는아수라 백작이 등장한다. 좌우가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괴상한 악당이다. 책의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하자면 망설이는 마음, 보여지는 세상과 감추어진 세상. 쓰고 있는 글과 써야 할 글과의 경계에 있는 나를 느끼면서 책을 읽는 내내 이 캐릭터와 함께모순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몇 주 전,‘416, 세월호, 아이들, 416, 세월호, 아이들...’며칠 동안 한참을 고민한 적이 있다. 지난 3월 독서 모임, 같이 참여하시는 분이 416일에세월호 추모 행사를 주관하는데, 추모시가 필요하다 했다. ’혁명, 노동, 민주이런 말에 여전히 낯선 나는 손사래를 쳤다.

제 시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이예요. 저는 그런 글 못 써요.” “그냥 써주세요. 할 수 있을 거예요, 충분히.”몇 분간 뜸을 들인 끝에 그럼 한 번 써볼께요.”라 했지만, 여전히 자신감은 없었다. 도대체 그런 어마어마한 소재를, 더군다나 그토록 먹먹한 소재에 어떻게 접근을 한단 말인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416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 감성대로 한 번 써보자!’ 결국 <416>이란 제목의 시가 만들어졌지만, 시를 쓰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이제껏 나는 ‘416의 변두리에 있던 방관자였다는 것이었다. 마음 한 켠 부족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416

 

1997/ 벚꽃 한 가득 펼쳐지던 날/ 눈부신 세상을 만났습니다/ 하늘과 만나 짙푸른 바다는/ 구름 같은 꿈들을 한껏 담았습니다/ 점점 더 번져가는 따스한 봄날에

2014/ 하늘 향해 벚꽃 흩날리던 날/ 새하얀 꿈들이 가라앉았습니다/ 검게 변한 바다는 침묵 속에서/ 그들의 미래를 조용히 삼켰습니다/ 마음을 도려내 듯 차가운 봄날에

2015/ 흐드러진 벚꽃만큼 먹먹해지는 날/ 하늘하늘 꽃잎들도/ 그 많던 꿈들도/ 봄처럼 화사했을 언젠가의 사랑도/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스러지는 영혼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어루만지지 못한 바다를 생각합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봄날이/ 묵직하게 심장을 잡아당깁니다/ 매달린 리본이 바늘처럼 시큰거립니다

 

<엄마 인문학>역사, 예술, 철학, 정치, 경제, 문학분야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엄마들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책이다. 각 분야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그리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독서 모임에서 3예술분야의 발표를 맡았다. 이 장의 주제는 한 마디로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당시 시대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고, 어떻게 시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적혀있다. 베토벤, 백남준, 피카소 등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친숙하게 접했던 예술가부터 생전 처음 들어본 현대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예술가는장샤오강이었다. 그림에 빛을 나타낸다는 중국의 화가. 대표작은 <대가족>이란 작품인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표현된 인물들에게는 아메리카 선주민의 얼굴에 그려진 문양처럼 독특한 빛의 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그의 작품과 이력을 찾아보면서 그가 중국 현대 미술의 사대천왕으로 불린다는 것도 알았다. 어느 매체와 인터뷰를 한 기사를 보았다. “빛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나타내고, <대가족>에 표현되어 있는 얼룩 같은 빛은 시간의 흔적을 의미한다.”고 했다. 인물들에게 드리워진 빛들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내 글에도 빛을 담고 싶었다. 내면에 채색되고 싶은 사랑을 향하여. 오랜 고민의 흔적, 감정의 울림,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감성과 아픔, 그 먹먹한 그리움들이 빛으로 드러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짓기 위해 고민했던 몇 주 전이 떠올랐다. 예술이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라면 문학도 마찬가지겠지. 남녀 간의 사랑만을 표현한 시가 과연 빛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의 영역을 좀 더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에 대한 시도 결국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니. 사회와 시대를 외면한 글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제껏 나는낯섬을 가장하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니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던 것을.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세상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보면아수라 백작과 다르지 않다.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며칠 동안 한 끼조차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연탄 한 장이 아쉬워 추위를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에도 집안에서 반팔만 입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깊어지면 행복한 만큼 아픔이 되기도 하니까. 늘 양면적인 세상. 그래서 제대로 표현하려 한다면, 그 빛과 어둠을 다 드러내야 할 것이다. 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정작 어둠은 바라보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불완전한 글이 될 것이다. 어둠과 함께 드러나는 빛이 가장 선명한 것처럼.

우선은 내 자신부터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밝은 이면에 감추어 놓은 모순적인 어둠을. 다음에는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내가 표현하고 싶은 어둠은 온전한 어둠은 아니다. 빛을 바라보는 어둠이라 할까.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나의 글을 통해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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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4-3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유족들, 을 방송을 통해 보면서 열 번 넘게 눈물 흘렸던 것 같아요.

나비종 2015-04-30 19:16   좋아요 0 | URL
정말 마음아픈 일입니다. . 지금까지도. .

2015-04-30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5-04-30 19: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쩔 수 없는 일은 비난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쩌지 못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