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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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면서 보지 못한 꽃을 내려오면서 보게 해준 책.
교과서 밖에서 흘러가는 역사,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무게가 먹먹하다.
유신, 광주. 그 땐 뭐했니? 난 너무 어렸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어.
그럼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역사란 나와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 .답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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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뚜기 창비아동문고 274
진형민 지음, 조미자 그림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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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등장하는 상황은 쫄깃한 웃음을 불러왔고,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상큼했으며, 재미 속에 들어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매콤할 정도로 여운을 남겼다.

‘쫄깃한 웃음, 상큼한 재미, 매콤한 여운

씹을수록 고소하고 맛있는 이야기’

뒤표지에 나온 문장. 참으로 적절한 소개 문구였다.

 

 

첫 번째 동화 <꼴뚜기>는 학급 내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오징어 꼴뚜기 대구 홍합 따개비

오징어 꼴뚜기, 꼴뚜기, 꼴뚜기! 꼴뚜기의 기습 공격이었다. 간주가 끝나면 곧바로 3절을 불러야 하는데, 오징어 뒤에 매복하고 있는 저 꼴뚜기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p17)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길이찬은 자신이 덥석 주운 그 행운이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목구멍 어디쯤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자꾸 속이 뜨끔거렸고,...(중략)...어떻게든 꼴뚜기만 떠넘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이찬은 다음엔 또 누가 꼴뚜기가 될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일도, 새 꼴뚜기를 은근슬쩍 골탕 먹이는 일도 더는 재밌지 않았다. 재밌기는커녕 이제 꼴뚜기라면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우린 대체 언제까지 꼴뚜기한테 질질 끌려다녀야 하나?’

길이찬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p25)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면서 전개되는 상황에 끅끅 대며 웃다가도, 아이들의 시선에서 다룬‘왕따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난 아침부터 밤까지 쭉 용감하지는 않아. 그냥 어쩌다 한 번씩 용감해질 뿐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나, 꼴뚜기? 하필이면 지금이 바로 그때거든. 내가 어쩌다 한 번씩 용감해지는 그때! 나는 너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아. 알고 보면 꼴뚜기 같은 거,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냥 먹어 치우면 그만이니까. 꼴뚜기 국물까지 다 나눠 먹었으니 애들도 이젠 날 어쩌지 못할 거야. 더는 겁날 거 하나도 없다고!’(p29)

나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종일 용감하지는 않다. 길이찬의 행동을 보면서 ‘나는 과연 용감해져야할 상황에 용기를 발휘하고 있는가!’ 스스로 반성을 해본다.

길이찬의 포크가 꼴뚜기 배에 박히는 순간,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두 번째 동화 <인생 최대의 위기>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생각나게 한다.

민들레, 장미, 국화, 목련 등 세상에 존재하는 꽃 들 중에 어느 하나가 제일 예쁘다고 말할 수 없듯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의 구절처럼 세상의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스타강사 김미경 씨의 강연 중에 ‘피아노를 잘 연주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소질이라고 하듯이 공부를 잘하는 것도 소질’이라고 한 내용이 생각난다.

 

‘구주호 엄마는 『너는 공부해라, 나는 글쓰기로 대학 간다』라는 책을 사서 또 하룻밤 새 읽어 치웠고, 구주호는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말부터 “너는 놀아라, 나는 글쓰기 학원에 간다.”라고 징징대며 일주일에 세 번씩 글쓰기 학원 차를 타고 사라졌다.

작년 겨울 방학은 예외였다.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코가 빨개지도록 싸돌아다녀도 엄마가 공부해랏 소리를 안 한다면서 구주호가 고개를 갸웃갸웃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잘 노는 아이가 결국 성공한다』라는 책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책의 지은이가 명문대 출신의 공붓벌레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구주호 엄마는 평생 공부하느라 놀아 보지도 않은 놈이 누구한테 놀아라 마라 훈수를 두느냐며 책을 집어 던져 버렸다.’(p33~34)

초등학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읽으면 한번쯤 자녀 교육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나오는 구주호 엄마가 결코 특별나지는 않다. 남들이 하는 대로 몇 개의 학원을 돌리면서도 불안해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엄마들의 모습이다.

 

‘아니, 애들 100점 못 맞게 하려고 일부러 안 배운 걸 냈단 말이야? 그래서 6학년 수학을 미리 공부한 애들만 다 맞게 해놓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중략)...

어떤 애들은 장백희한테 “너도 억울하면 학원 다녀.”그러기도 했지만 사실 장백희는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p38)

'길이찬은 장백희의 뒷모습을 보면서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구주호같이 공부가 싫다는 애는 죽자 사자 붙들고 공부를 시키면서, 저렇게 공부가 하고 싶다는 애한테는 왜 아무도 공부하란 소리를 안 할까?’(p52)

공부가 아마도 적성일 것 같은 장백희의 상황이 마음 아프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아니지! 교육이 무료면 해결이 되는 문제잖아!’교육, 의료, 주거가 무료인 나라가 엄연히 지구 위에 존재하는 것을 보면, 모든 세상이 다 불공평한 것은 아닌 셈이 되나?

 

‘“너, 도서관에서 애들한테도 책 빌려 주는 거 알아? 나 완전 감동했잖아. 너 같으면 네 책을 모르는 애한테 막 빌려 주겠냐? 근데 웃으면서 빌려 주더라니까! 이런 거 보면 우리나라 진짜 좋은 나라 아니냐?”’(p43)

‘“너 알고 있었어? 에이 씨, 왜 나한테 말 안 해 줬냐? 난 엄마가 맨날 빌려다 줘서 어른들한테만 빌려 주는 줄 알았잖아. 근데 우리 엄만 왜 재밌는 책 다 놔두고 꼬부랑꼬부랑 이상한 영어책들만 빌려 왔나 몰라.”’(p43~44)

‘도서관에서 컴퓨터도 쓰고 영화도 볼 수 있다는 거 안 다음부터는 어디다 보물 상자를 숨겨 둔 사람처럼 더 든든한 얼굴을 했다. 사실 구주호에게 도서관은 너무 거대하여 미처 못 알아본 진짜 보물 상자였다.’(p44)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은 구주호는 인생 최대의 기회를 얻은 것이 틀림없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았고, 더군다나 책을 계속 읽다보면 무한히 넓은 세계를 맞이하게 될 테니까.

 

 

세 번째 동화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는 사랑에 빠진 초딩 5학년의 귀엽고도 현실적인 고민을 다루고 있다.

 

‘길이찬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그냥 싼 걸 보기로 했다. ’영화관은 언제 들어가도 깜깜한데 시간이 무슨 상관이야?...(중략)...그런데 영화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새로운 고민이 콧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아, 고소한 팝콘 냄새! 영화를 보여 준다는 말은 영화 볼 때 먹을 팝콘까지 사 준다는 뜻일까? 아니면 표는 내가 샀으니까 팝콘은 네가 사 먹으라고 해도 괜찮은 걸까?’(p61)

‘엄마가 빨리 오랬다고 둘러대며 주채린과 서둘러 헤어졌다. 왠지 배고프기 전에 헤어져야 할 것 같았다. 이제 길이찬 주머니에는 백 원짜리 동전 하나 남아 있질 않았다.’(p69)

‘길이찬은 가게 앞에 뚝뚝 떨어진 아이스크림 자국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더 서 있었다. 그게 아이스크림이 흘린 눈물 같아서 괜히 마음이 울적했다.’(p75)

첫 데이트, 10일 기념, 투투데이를 맞아 갈등하는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다.

길이찬이 갈등하는 모습은 반드시 어린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날 법한 일은 아닌 듯하다. 어른들이 100일 기념, 1000일 기념 등 각종 기념일을 챙기면서 발생하는 금전적인 갈등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남자에게만 매번 기대하는 주채린의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문자를 보낸 지 두 시간이나 지났어도 여전히 답장이 없는 결말이 예상은 되었지만 다소 우울하다. 본질은 사라지고 물질적인 바람이 앞서는 일부 연인들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아서.

 

‘있잖아, 너 나 좋아해? 놀이공원 못 가도, 그래도 내가 좋아? 난 네가 좋아. 너랑 있으면 뭐든지 다 괜찮아.’(p80)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길이찬의 모습은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네 번째 동화 <축구공을 지켜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놀려 먹을 때는 장난이었는데 거꾸로 당하고 보니 그게 범죄처럼 느껴졌단 얘기를 차마 자기 입으로 할 수는 없었다.’(p93)

“장난이었어요!”학교 폭력이 일어난 상황에서 가해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몇 달 혹은 몇 년 뒤에 상황이 뒤바뀌게 되면 그제서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 문제는 선생님 없는 데서 시작되어 선생님 모르게 눈덩이처럼 커지며 꾹꾹 숨통을 조여 온다. 가끔 눈치 빠른 어른들이 아는 척 나설 때도 있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모든 게 더욱 은밀해질 뿐이다.’(p94~95)

작가는 교실에서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내 자신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늘 안고 가야 하는 숙제이다.

 

‘사실 지금 길이찬에게도 실학과 같은 공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아이들의 실생활과 너무 거리가 멀어 아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콩알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수업 말고, 당장 코 앞에 닥친 이 엄청난 문제를 헤쳐 나가는 데 진짜 힘이 되는 공부! 그러나 길이찬은 아무리 시간표를 훑어봐도 어떤 게 그런 공부인지 알 수가 없었다.’(p97~98)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배웠던 교과목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숙명처럼 오래 전부터 배워야한다는 당위성을 가진 채 내려오던, 일종의 진리와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린 채 공부를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바로 ‘왜?’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다. ‘왜?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지?’하는.

 

 

다섯 번째 동화 <뛰어봤자 벼룩>은 소비생활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놈 자식이 듣다 듣자 하니깐, 뭐가 어쩌고 어째? 저 실컷 쓰고 난 물건, 가져다 더 쓰겠단 사람 있으면 얼른 주고 말아야지, 그걸 또 돈을 받고 팔아? 쥐방울만한 것이 어디서 돈 귀신이 씌어설랑!”’(p113)

손자를 향해 야단치는 할머니의 호통이 후련하다. 벼룩시장은 좋은 취지의 행사이기는 하지만,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호기심이 있어서 남들이 와글와글 몰려있는 좌판 옆을 무심히 지나치질 못했다. 그래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든 없든 일단 몸을 들이밀어 만지작만지작 관심을 보이고, 그러다 보면 별것도 아닌 게 갑자기 요긴하고 쓸모 있는 물건으로 둔갑하여 어느 틈에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p117)

언젠가 백화점에 갔다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시선이 가서 절실하게 필요하지도 않은 데 물건을 샀던 기억이 난다.

홈쇼핑에서 ‘마감임박!’이라는 문구를 보면 더 눈길이 쏠린다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잘 꿰뚫어보고 있다.

 

 

여섯 번째 동화 <오! 특별 수업>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고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특별수업과 관련된 글이다.

 

‘담임 선생님은 고추랑 상추가 다 자라면 삼겹살을 구워 잔치를 하자고 했다...(중략)...“그럼 1반은 병아리 키워서 프라이드치킨 해 먹고, 2반은 잉어로 생선가스 해 먹는 거냐?”길이찬은 구주호가 보기보다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p133)

‘급식으로 프라이드치킨이 나온 날에는 닭장 앞으로 몰려가 닭들이 보는 앞에서 튀긴 날개와 다리를 북북 뜯어먹기도 했다.’(p144)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우유갑 속에는 오동통한 지렁이들이 마구 엉켜 몸을 꼬아 대고 있었다. 곧 사라질 목숨인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트위스트를 추는 것 같았다. 길이찬은 지렁이 신세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이맘때는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 분해하는 걸 관찰한다고 반마다 지렁이를 여왕마마처럼 모셔다가 집도 만들어 주고, 오이며 사과 껍질 같은 걸 매일 갖다 바쳤다. 그런데 고작 일 년 만에 여왕마마의 처지가 저 밑바닥을 굴러떨어져 새로 등극한 물고기 왕족을 위한 한 점 고깃덩어리가 되고 만 것이다.‘(p144~145)

가지 모종에 ‘가지 양, 가지 군, 가지 씨, 가지마라용’, 고추 모종에 ‘고돌이, 고철이, 고삐리, 고장냉’, 토마토 모종에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이름을 붙이는기발한 상상력, 익살스런 표현이 인상적이다.

 

‘마이크 앞에 선 교장 선생님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겠다며 야단스레 굴더니, 우리 학교 5학년 특별 수업이 무슨 모범 교육으로 뽑혀서 다음 주에 장학사들이 학교를 방문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얼굴은 교장 선생님만큼 기뻐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 손님들이 오는 게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손님들을 맞이하려면 학교를 유별나게 쓸고 닦아야 했고, 인사 잘 하라는 잔소리를 두 배쯤 더 들어야 했으며, 운이 나쁘면 수업 시간에 손들고 발표하는 연습까지 해야 했다. 톡 까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이들에겐 이 모든 것이 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거리였다.’(p148~149)

이토록 학교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문장이 있을까?

 

‘“근데 방학 때는 텃밭 어떡하지?”

...(중략)...“걱정 마. 교장 선생님이 하자고 했으니까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뭐.”’(p150~151)

푸하하! 무심한 길이찬의 대답에 뭔가 속이 후련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소중한 생명들끼리 싸움이 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자기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우기고 큰소리칠 게 뻔한데, 그러다 점점 더 싸울 수도 있는데…….

아! 그냥 혼자 살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p152)

아이들이 애써 키운 모종을 먹은 닭. 모종의 생명도 소중하지만, 닭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 자연 안에서 그들과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대개의 연작 동화들을 보면 표제작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재미가 덜 하기 마련인데, 여섯 편의 동화들은 톡톡 튀는 뽁뽁이처럼 모두 재미있었다.

글만큼이나 생동감이 넘치는 만화적인 그림도 작품을 더 맛깔스럽게 했고, 환하고 진한 노란 색 겉표지에서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아이들이 연상되었다.

<기호 3번 안석뽕>도 매우 유쾌하게 읽었는데, 이 책 역시 전작 못지않게 말끔한 웃음을 주었다.

 

아주 싱싱하고 맛있는 꼴뚜기를 배부르게 한 가득 먹으면서 김홍도의 풍속도를 본 듯했다. 「씨름」이나 「서당」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표정이 제각각이듯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각각 개성이 흘러넘쳤다.

‘어쩜 이런 상황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지?’ 아이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풍자와 해학은 평범한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설렁설렁 여백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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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 작가의 글쓰기와 성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하성란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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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르다. 어떤 이는 저자를 보고, 또 다른 이는 출판사를, 책의 제목을, 책 표지의 디자인을, 추천사를 본다. 
나는 주로 제목이나 책 표지의 디자인에 끌리는 편이다. 일단 시선이 가면, 목차를 보고 추천사나 리뷰를 읽고 대략적인 탐색에 들어간다.

이 책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라니! 이 얼마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인가! 책 속에는 뭔가 꿈과 희망을 주는 '설레는'일이 많을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책표지 뒤에 있는 한 문학평론가의 글,
'하성란의 글에는 손이 하나 있다. . (중략). . 운이 좋은 사람만 그 손을 볼 수 있다.'
그 '손'을 볼 수 있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대감을 가득 안고 책장을 펼쳤다.

. . .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제대로 된 손은 보지 못하였다.
처음 몇 편의 글이 뭔가 내 코드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매의 눈이 되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 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많다는 설레는 일은 도대체 언제쯤 등장하는 거야?'
'중간 중간 소제목은 내용과 잘 맞지 않아.'
'마지막 문장은 가끔 가식적이야.'
'웃기려고 한 얘기인 것은 같은데. . . . . .'
'내용이 지루해.'
'헐! 뜬금없이 반발 계수는 뭐임?'(대학 때 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전공자라 말하기 심히 부끄럽지만, 나는 물리전공자다ㅡㅡ;)
'페이지 옆에 제목을 달아주면 좋을텐데.'

사람의 선입견이란 참 무서운 것이, 일단 문장의 서술 방식에서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중간중간에 나왔던 괜찮은 내용도 무성의하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책에 밑줄을 그은 부분을 정리해보았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은 얼마나 될까?'(p73)
'연애란 그 사람의 우주를 덤으로 얻는 것이다.'(p117)
'결국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닐 지도 모른다. 한순간이다. 그날의 바람, 햇빛, 소음과 냄새 같은 환경이 절묘하게 만난 그 한순간이다.'(p230)

써놓고 나니 속으로 꿍얼거렸던 것처럼 최악은 아니다. 
죽음, 사랑, 아버지, 어머니, 아이, 사회, 관계 등에 대한 작가의 표현에는 꾸밈이 없다. 137쪽의 '공들인 음식'편에서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공감을 많이 했더랬다.
단지 내가 '설레는 일'에 너무 방점을 많이 찍었던 것이다.

사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책에 실린 모든 글 속에 담긴 마음들이, 군데군데 실렸던 자신,아이,추억의 사람들과 함께 한 사진들과 함께 '설렘' 한 가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손가락 하나 정도는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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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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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다. 이런 시각에서 책을 읽는 이도 있구나.
궁금했다. '이 사람 뭐지?'
신기했다. 어느 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편안했다. 대부분의 책들은 책과 책 사이에 다른 일이 끼이면 흐름이 끊겨서 다시 앞 장을 들춰보기 마련인데, 어떤 부분에서 맥이 끊어져도 부담이 없었다.
위안이 되었다. 마치 오랜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에 찡하게 마음이 데워졌다.

어렵고 과시하는 듯한 책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책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는 류의 책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대부분은 '난 이렇게 유식한 사람이야!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던지!' 식의 느낌으로 찜찜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알라디너의 한 사람으로서 '다락방'이라는 닉네임은 '이 달의 당선작'에서 간혹 본 적이 있다.
어느 달에는 두 편인가가 당선작에 올라와 있길래 '이 사람은 참 다작을 하는구나.'했다. 하지만, 달변과 다변은 다르듯이, 걸작과 다작은 다르다는 생각에 그리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당연히 리뷰를 읽어보지는 않았더랬다.

문학에서는 작품에 따라 글의 장르를 구분한다. 이건 시, 이건 소설, 설명문, 수필, 논설문, 기행문, 독서감상문 등.
이 책은 어떤 장르일까? 분명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쓴 글이니 독서감상문이 맞을 텐데, 나는 한 권의 재미있는 수필을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작가의.
'다락방'이라는 사람의 일상을 유쾌하게 읽은 듯한 기분.

소개된 소설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없다.
그 책을 읽은 작가의 경험담이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한 권의 소설처럼.
얼마 전에 읽은 <강신주의 감정수업>에 나왔던 '역린'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사람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뜻하는 말.
부정적인 의미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건드리면 확 끌어당겨지는 부분도 있지 않겠는가!
내게 있어 급격하게 호감을 느낀 부분은 이 책의 중간 부분에 있었다.

'미래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말해주지 않았는가.(p195)

푸핫! 빵 터졌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 명.작.이 생각났을까?
이 작가, 갈수록 알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한다는 것에 대하여,
책에 밑줄을 긋는다는 것의 의미,
좋은 책을 판단하는 기준,
모든 일에 숨어있는 다른 이야기,
내가 만든 삶에 대한 견해,
포기에 대한,
쓰레기의 대부분이 포장이라는 것,
상대의 공간과 거리 두기에 대한 존중,
보여주지 않은 앞과 뒤에 대한 생각,
밤늦게 전화할 수 있는 완벽한 관계,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에 특히 공감했다.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는 그렇게 큰 게 아닌 것이라는(p364) 작가의 말처럼,
한 권의 책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감동과 위로는 엄청나게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잔잔하게 스며드는 따스함에 있는 것이리라.

알라딘에 접속을 하고, '다락방'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담겨있는 방대한 성실함을 접하였다. '오늘의 요리3: 참치김치볶음'편에서는 끅끅 대면서 오랫만에 맘껏 웃어보기도 했다.

성실함을 자신의 장점으로 겸손하게 말하는 작가 이유경.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일생을 함께 해도 알지 못한다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찌 한 권의 책과 단 몇 편의 글로 알 수 있겠냐마는,
그 좁은 면을 보고 내가 읽어낸 '다락방'의 또 다른 매력은 '솔직함'을 표현하는 '섬세한 묘사'와 '읽는 이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필력'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속으로 생각했을 법한, 조금은 감추고 싶을만큼 살짝 부끄러운 생각을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서 '맞아!'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작가가 쓴 글이라면 언젠가 그만의 생각으로 가득한 책이 나왔을 때,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문하기'를 누를 것 같다.
우선 알라딘 서재로 가서 '즐겨찾기'로 '다락방'을 등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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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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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오케스트라의 협연과도 같다. 저자, 편집자, 표지 디자이너 등 어느 한 사람도 소홀히 하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특히, 이 책은 편집자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
라틴어순으로 배열된 감정의 순서, 철학적인 해석이 들어가 다소 어려워질 때 '이게 무슨 감정에 대한 내용이었더라?' 할 때마다 페이지 옆에 쓰여었던 감정의 이름, 감정과 관련된 그림, 감정의 깊이를 더하기위한 소설과의 연관성, 소설을 지은 작가나 책 탄생의 소개, 쉬운 이해를 돕기위한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연도별 나라별로 배열된 소설리스트와 그림리스트 등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땅, 물, 불, 바람' 에 배치된 감정들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분노나 질투는 '불꽃처럼'에 어울리지만 감사는 좀 그렇다. 또, 라틴어의 순서대로 배열된 감정의 성격이 4개의 부와 12개씩 딱 맞추어 일치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읽는 이를 배려하는 세심함이 책을 읽은 느낌 못지 않게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48개의 감정들 중에서는 '끌림'에 대한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랑으로 꽃필 수 없어 아련하기만 한 두근거림'이라나.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나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음식이 배가 고파서 맛있는 것과 입맛이 맞아서 맛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이 사랑에 허기질 정도로 불행한 상태는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한다.(p406)"

살면서 만나왔던 수많은 친구들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과거의 어느 시점의 나는 허기졌던 걸까? 그래서 때마침 나타났던 사람들에게 끌림이 느껴졌던 걸까?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었을. .
한 사람의 연애 패턴이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는 경우도 이런 '끌림'으로 이해가 되었다.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말만 한 줄 알았던 스피노자.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흥미있게 이끌고 가더니, 책 속에 등장할 때마다 점점 더 매력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이대로 몇 번 더 등장했다가는 <에티카>를 사서 읽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기쁨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슬픔을 주는 대상이라면 단연코 그것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여기서 '변덕'이나 '변심'을 이야기하는 사회적 평판에 대해서는 '쿨'해질 필요가 있다.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없으니까.
그냥 지금 내 앞에 있는 타자가 기쁨을 주는지, 그렇지 않은지에만 집중하자.(p488)"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변화시켜가야 하는지에 대해 살짝 고민하던 나에게 이 문장은 좋은 지침서가 되어주었다.

"현재에 살지만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동 준칙은 '선과 악'이다.
반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 준칙은 '좋음과 나쁨'이다.(p513)
내 삶에 경쾌함을 준다면, 그것은 '좋은'것이다. 반대로 삶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켜 내 삶을 우울하고 무겁게 만든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p514)"

이 책을 통해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들, 기쁨과 슬픔으로 양분되는 관계들, 사랑, 책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철학의 깊이가 다소 얕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런 점도 장점으로 다가왔다.

좋음과 나쁨은 사람에만 적용되는 기준은 아니리라. 한 권의 책에는 인간들처럼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좋은 책을 판단하는 기준은 '나를 얼마나 생각하게 하고, 내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참 좋은' 책이었다.

좋은 책은 주관적이다,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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