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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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글자는 무엇이었나요?’ 띠지에 나와 있는 글귀를 보고, 겉표지를 넘겨보기도 전에 한참을 생각했다. 중요한 일들이 나를 통과해 흘러갔고, 그만큼 중요한 시간들이 흘러갔지만, ‘한 글자라니! 한 글자로 된 낱말들이 뭐가 있었더라? 본문을 읽기도 전에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니.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 진리와 지혜를 전해주는 책 등 다양한 기준들이 있으리라. 나의 기준은 얼마나 많이 생각하게 하느냐이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이 없더라도 구석진 한 문장에 꽂혀 한참을 생각했다면, 초등학생을 위한 동화라도 내 마음을 움직여 발걸음까지 변화시켰다면, 적어도 내게는 좋은 책이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 참 좋은 책이다.

 

읽는 데 느려 터져 달라는 저자의 부탁을 뒤로 하고 몇 시간 만에 냉큼 읽어버렸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에서야 달팽이의 걸음처럼 마음을 느리게 옮겨야함을 깨달았지만. 다시 읽었을 때에는 며칠이 걸렸다. 세 번째는 마음에 와 닿은 한 글자를 아직도 읽는 중이다.

, , , , , , 는 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싶을 정도로 기발하다.

, , , , , , , , 은 맞아!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공감이 간다.

, , , , 은 일본 시 하이쿠가 연상된다. 발음이 비슷하거나 라임을 맞춘 우리말이 아주 적절한 문장으로 배열되어 있다.

, , , , , , 은 내용은 좋지만 한 글자라는 제목에 맞추려 살짝 억지스러워 보인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글자는 이다.

‘ “불이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불이 나를 삼키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장 무섭지 않은 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듣는 사람은 하품만 나오는 말은 무엇일까. “불이었다.” 이미 재가 되어 들꽃 하나, 풀잎 하나도 삼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늘 과거를 사는 바보들은 나도 한때 불이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그것으로 사람들을 위협한다.’ (p284~285)

며칠 동안 생각을 하고, 카톡 프로필에도 적어놓았다. “ㅂㅇㅇㄷ라고. 간혹 예전에 이런 적도 있었다며 자랑하듯 얘기하곤 했는데, 이 글귀를 보는 순간 흠칫했다. 항상 겸손해야함을 아주 적절한 비유로 정곡을 찌르며 알려주고 있다. 요즘은 불이었다가 와 닿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마음에 와 닿는 글자도 그 때 그 때마다 달라지리라.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보아야겠다.

 

두 번째 책을 읽고, ‘나도 한 글자에 대한 멋진 말을 해봐야겠어!’라 야심찬 생각을 한다. 차례를 꼼꼼히 살펴본다. 후아~! 도대체 얼마만큼 사유를 해야 저 방대한 양의 한 글자와 그에 따라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나온단 말인가! ! 이게 있지! 하며 겹치나 찾아보면 여지없이 어딘가에 떠억 하니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 글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나와 다른 부분도 있지만.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소중한 한 글자는 없을까? 구름처럼 떠있는 생각을 머리 위에 이고 다니며 며칠을 보냈다.

2월 말 즈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별의 짧은 말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까지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한 글자생각으로 가득했다. 이 책에 대한 얘기를 어떤 식으로든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불이었다!’가 제일 좋았다며 책에 있는 내용에 대한 단순한 감상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서운한 마음과 무슨 말이든 의미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뒤엉켰다. 갑자기 머릿속에 사람 인()이란 한자가 떠올랐다.

얼마 전에 제가 <한 글자>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한 글자로 된 여러 낱말들에 대하여 기발하고도 마음을 울리는 글귀가 적혀있는 책입니다. ‘, , , , 이런 거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한 글자는 무엇일까 오랜 시간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사람 인()’이란 한자(漢字)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서 서로 지탱하며 기대어있는 모습이죠. 두 사람 중 어느 누가 힘을 빼버리면 다른 사람은 쓰러지게 되요. 사람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서로 의지하고, 받쳐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이라는 한 글자가 주는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이 사람 인()’이라는 한 글자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입니다.”

 

 

유난히 사람들과 많이 대화했던 한 해였다. 같은 말을 해도 표현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나의 의도를 기분 좋게 전달할 수 있음을 알았고, 공적인 일을 한다 해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란 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부탁을 하고, 도움을 주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차례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굵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명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무엇이든 동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보다 행동이 중요하며 사랑이나 그 어떤 일들도 명사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것은 결국 동사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이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어야만 하리라.

‘2014년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한 글자는 무엇이었나요?’ 그래! 사람, ‘()’이었다. 내게 가장 중요했던 한 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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