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잠에서 깨어났다. 오후 217. ‘좋은 서평이 좋은 책 살린다.’던데, 수많은 리뷰와 100자평으로 좋은 책임이 증명되었고 더군다나 2014년의 책으로 불리는 책을, 이미 쌩쌩하게 살아 팔딱거리는 이 책을 내가 어찌 더 살릴까나.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받은 느낌이 너무 크단 말이다! 이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리뷰를 쓰고 싶은데.

주제는 한 마디로 써라!”, 느낌은 좋았다!. 그 이상을 어떻게 나타낼까?

쭉 써라, 계속 써라, 쓰고 또 써라? 이런. 너무 평범하다. 저자는 소설의 문장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라 했는데, 그렇다면 떡집에서 가래떡이 꾸역꾸역 나오듯이 써라? . 이것 역시 초라하다.

그러면 느낌에 대해서 써 볼까? 참 좋았다, 아주 좋았다? 호박잎에 된장 쌈을 먹은 듯한 느낌이다? 호박잎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TOP 2 중 하나이므로 내게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건만, 호박잎을 안 먹거나 싫어하는 인간들이 보면 밥맛인 책으로 둔갑할 수도 있지 않은가.

으아, 고민스럽다. 내가 리뷰를 두고 이렇게 고민하는 인간이 아닌데. 앉아서 생각하다 책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워 다시 책을 떠들어보다 잠이 들어버렸다.

 

 

264쪽의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와 두께는 하루면 읽겠지.’라는 첫인상을 안겨주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책이다. 14일부터 시작해서 어제까지 읽었으니 4일이나 걸린 셈이다. 톡톡 튀는 신선한 유머가 스며있는 문장은 양념처럼 독특한 향을 내고, 가벼운 듯 손쉬운 문장은 일상의 이야기나 소설가가 되기 위해(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말해준다.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종종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게 한다.

산문을 통해 처음 접한 이 소설가가 궁금해진다. 네이버 서재에서 인터뷰한 동영상을 보고, 그의 소설에 대한 평도 읽어보고, 평소 좋아하는 편이 아니던 소설이란 장르에도 관심이 생긴다. 소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학 장르나 심지어 살아가는 데에도 지침으로 삼을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리뷰를 어떻게 쓸까? 단순하게 내용을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마음에 남는 좋은 내용들이 많기에 그것에 대하여 기술하자면 책을 통째로 필사하는 꼴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몇 달째 필이 꽂혀서 쓰고 있는 시들이 생각났다. 그래, 이거다! 좋은 서평이 좋은 책을 살리듯이, 이 좋은 책이 나를 살린 이야기를 쓰면 되겠구나! 첫 장을 펼치고 책을 읽는 동안 두 편의 시와 한 편의 페이퍼를 썼다. 페이퍼는 수필 형식이었으니, 내 경험을 마음 가는 대로 썼지만, 시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이 고쳐졌다. 끄적거렸던 시가 적혀있는 이면지를 찾아냈다.

 

저자는 토하기 직전까지 참고 쓰는 원고를 토고라 했으니, 내 경우에는 토시라고 하자. 이 토시를 읽기 전에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토하기 직전까지 참고 쓴 시적 화자에 감정 이입되어 저도 모르게 속이 거북해질 지도 모르니까.

 

(토시 1)의 처음 제목은 <마음과 마음 사이>.

 

몸과 몸 사이의 거리는/ 자로 재면 되지만//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는/ 무엇으로 재나//마음은 늘 움직이는 것이니/ 늘 변하기 마련인데// 느낌으로 재는 건가/ 마음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자는/ 느낌이다

 

, 아주 많이 부끄럽지는 않다. 어차피 나는 시인도 아니고, 그냥 시를 쓰고 싶어서 쓰는 거니까 괜찮다, 괜찮다, 이런 비루한 문장들도. 라며 주문을 건다.

일단 반복되는 말들을 잘라낸다. ‘몸과 몸으로, ‘마음과 마음마음으로, ‘은 두 번이나 들어갔네? ‘잰다는 왜 이리 많이 썼지? 5번이나 들어갔다.‘잰다를 빼니 서술어가 없어진다.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 일단 보류하자.

한참을 들여다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몸 사이의 거리는 공간이지. ‘몸 사이의 거리는 공간으로, ‘마음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바꾸자. 공간과 시간. ~ 나름 대칭적인 개념이로군.

다시 한참을 들여다본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추상적이야. 좀 더 실질적이어야 해. 거리를 구체적으로 넣어야겠어. 이백킬로미터. 그렇다면 시간은? 하루, 이틀, 사흘. 아니지, 무슨 숫자 놀이도 아니고. ‘하루 또 하루로 하자.

고쳐놓고 보니 공간시간이란 말이 너무 어색하다. 나름 대칭적이라 했지만, 구체적인 숫자가 들어간 이 마당에 중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눈물을 머금지는 않았지만 어울리지 않으므로 과감하게 버리도록 한다.

수정본을 읽어본다. ~ 개연성은 있지만 핍..성이 없어.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개념어 사전으로 등극하게 되는 단어. 무슨 뜻인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상황 설정을 해야겠어.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끊긴 상황인 거야. 마지막 연을 추가한다. ‘그대와 나 사이/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멀다

이번에는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그래, 어차피 잰다는 개념이니 거리로 하자.

정리해서 읽어본다. 뭔가 부족하다. 제목을 다시 바꿔보기로 한다. 어차피 주제가 연락 좀 해, 이 인간아.’(^^;)이니, ‘연락 없는 인간’? ‘연락 없는 시간’? .‘무소식으로 하자.

다시 읽어본다. 아까 추가한 마지막 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대가 들어간 것이 식상하다.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좀 더 애절하게 표현할 문장은 없을까? 그래, 핍진성을 더하기 위해 그대는 3일째 소식 없는 인간이 되는 거다.‘사흘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 너무 아득하다로 교체한다.

시간이란 말이 앞의 연과 중복된다. ‘시간을 빼고 마음을 넣어본다. 이번에는너무가 눈에 거슬린다. ‘너무숨막히게로 바꿔본다.

후아~ 이제 나는 저녁을 하러 가야하므로 일단 서재에 올린다.

 

제목 : 무소식

 

몸 사이의 거리

이백킬로미터

마음 사이의 거리

하루 또 하루

 

공간을 자로 재면

시간은 느낌으로 재나

 

사흘 향해

흘러가는 마음이

숨막히게 아득하다

 

그렇게 토시를 탈출하기 위한 하루가 지나갔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음의 토시보다는 낫다며 스스로 위안한다.

다음 날도 이어서 책을 읽는다. 어라? 이번에는 문장을 감각적으로 써야 한단다. 도전!

 

(토시 2). 제목은 없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대를 만날 때면/ 내 마음이 여기저기 자꾸/ 돌아다닙니다// 심장으로 가서 심장을 뛰게 하고/ 얼굴로 가서 얼굴을 붉어지게 하고/ 머릿속으로 가서 온종일 내 머릿속을 돌아다닙니다/ 손끝으로 가서 손끝을 떨리게 하고/ 발바닥으로 가서 그대를 향해 걸어가게 합니다/ 눈으로 가서 그대의 모습만 쫓아다닙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자꾸 자꾸 돌아다니는 마음은/ 온몸으로 드러나니/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몸 구석구석에/ 그대의 향기가 머무는 것만 같아/ 행복합니다// 마음은 벌써/ 그대에게 다가가/ 그대의 마음을 톡톡 건드립니다

 

진심 산문은 아니다. 가끔 시를 쓰던 초기, 산문처럼 길게 썼던 시기에 끄적이던 거라서. 다시 읽어보니 잡스런 산문이 따로 없다. 마음이 온몸을 돌아다닌다는 걸 나름 표현하고 싶었지만. 다시 보니 심장, 얼굴, 머릿속, 손끝, 발바닥, 이라니. 이건 뭐 머리, 어깨, 무릎, , 무릎, 도 아니고, 인간 한 번 해부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 심지어 뒷부분까지 가면 주제가 뭔지조차 애매하다. 국수가락을 넣었을 때 다시 끓어 넘치는 물처럼 마음만 우루루 넘치는 꼴이다.

마음만 돌아다니자. 뒷부분을 잘라내기로 한다.

돌아다니는 것을 극대화하려면 온몸 구석구석을 넣기는 해야겠는데, ‘심장, 심장’, ‘얼굴, 얼굴’, 반복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일어를 지운다. 심장을 뛰게 하고, 얼굴을 붉어지게 하고...

다시 읽어본다. 뜻은 통하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너무 일반적이다. 감각적인 문장이 들어가야 할 타이밍이다.

심장이 뛰는 것은 어떻게 표현할까? 과자봉지를 묶었던 노란 고무줄이 눈에 띈다. 그래! 심장은 고무줄처럼 튕겨보자. 그냥 고무줄은 좀 약한데, 좀 더 강력한 탄성을 자랑하는 건 없을까? 그래! 새총이다!

다음은, 붉어지는 얼굴. 지난 달 동네 커피숖에 갔을 때, 난생 처음 맛보았던 불그스름한 애플티가 생각났다. 투명하게 붉은 빛과 향이 참 인상적이었더랬다. 얼굴은 애플티로 정해졌어!

다음은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것.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감각적인 대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와~ 복잡하다. 머리를 움켜쥐며 아이디어를 짠다. 아하! 바로 이거다! 돌아다니지 말고 헝클어뜨리자, 풀어지는 털실처럼.

그렇다면 떨리는 손끝은? 디카를 처음 득템했던 몇 년 전, 4cm 접사 기능에 마음을 빼앗겨 퇴근 후 사진기를 들고 미친 듯이 동네를 싸돌아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꼬박 1년쯤을 야생화 접사에 빠졌었다. 무조건 찍고 인터넷으로 무턱대고 노란 봄꽃찾아보고. 덕분에 동네 야생화는 거의 섭렵했었지. 비오는 날에도 꽃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좋아서 찍고 또 찍었다. 연두 잎이 파릇파릇 올라오던 여름날. 내리다 그친 비로 빗방울이 뚜욱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때 바람이 불어 살짝 떨리듯 흔들리던 연두 잎들이 어찌나 이뻐 보이던지.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늘 그를 좇기 때문에 발걸음은 무의식적인 힘에 의해 끌려간다. 떨어져있어도 작용하는 힘이라. 중력과 전기력, 자기력인데, 중력은 아래로만 향하고, 전기력은 왠지 감전이 연상되니 철가루를 끌어당기는 자석으로 하자. 감각적인 문장으로 치환하기, 클리어!

이제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이 시의 주제는 난 네게 반했어.’흐흣~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부끄러우니 살짝 숨기자. 첫 문장을 제목으로 한다. ‘마음은 어디에.

다시 읽어본다. 처음부터 주제가 나와 버리니 김이 새버린다. 첫 문장을 마지막으로 옮긴다.

고쳐 쓴 것을 읽어본다. . 어딘가 임팩트가 없다. 저자는 소설가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문장으로 계속 고쳐 쓰라 했건만.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더 추가하고 싶다. 마음이 돌아다니는 것을 좀 더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없을까?

여기서부터 막힌다. 에라, 잠시 머리를 식히자. 동물 몬스터를 잡으러 갔다 온다. 오호~ 미션을 수행한 보상으로 뽑기를 하는데,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 뽑기 기계 옆에 있던 두더지 놀이가 생각난다. 그래! 감 잡았어!

당도 떨어져 이제 배가 고프므로 서재에 올린다.(으잉? 밥 앞에서 무너지는 고치기의 길?)

 

제목 : 마음은 어디에

 

그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온몸을 자꾸만 돌아다닙니다

 

새총 안 고무줄처럼

심장을 튕겨내다가

막 끓여낸 애플티처럼

얼굴을 물들이더니

풀어지는 실타래처럼

머릿속을 헝클어놓네요

 

바람 스친 연두잎마냥

떨리는 손끝을 지나

끌려가는 철가루인 듯

그대 향한 발끝으로 갑니다

 

불쑥불쑥 두더지 놀이처럼

도무지 잡을 수가 없네요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직도 살짝 토시 느낌이 전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보기를 다짐한다.

11, 새해 기념으로 힐끗힐끗 탐색만 하던 북플을 깔았다. 덕분에 비슷한 감성을 가진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심지어 서재 시작 초기에 지인 1, 2와 큰 딸만 선인장에 물 주듯 달아주던 댓글도 달렸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로 몇 년 만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일이다. 시는 비루한데, 고수들의 댓글에서 더 많은 사유의 깊이를 배운다. 퐁당퐁당 호수를 향해 던진 돌이 어느 만큼 들어가는지 모르다가, 물수제비를 뜨는 비법을 터득하여 몇 번이나 튕겨지는지 셀 수 있어졌달까?

 

 

소설가의 일은 내게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불탄 다리가 되었다.‘매일 글을 쓴다는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을 얻었다. 이 문장을 마음에 심고 나는 토시를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할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267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전체가 264쪽인데 뭔 소리냐고?) 나는 이 페이지가 제일 좋았다. 비어있는 원고지와 단 세 글자김연수’.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한 장의 여백에 들어있었고, 그 느낌은 마지막에 순간적인 뭉클함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사소한 오타

1. 211, 4번 제목의 본문 2번째 줄

기타큐슈 시를 방문한 있었다.~ 방문한 적이 ~

2. 236, 밑에서 3째줄

사실에 알게 됐다.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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