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화자인 '나' 레누(엘레나 그레코)는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에 해당한다.
면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 감정의 확전을 피하고 싶은 여자이다. 감당하기엔 기가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겉으로 표현하는 말과 속마음이 다른 여자다.
글을 달래서 가져가 놓고는 정작 글이 제대로 실렸는지 여부도 물어보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지면이 부족해 실리지 않았다는 말을 겨우 듣고는 '다행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니노가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은 걸까? 내가 직접 나섰어야 했는데'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계속 미소지었다.'
흔히 나대지 않은 여자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고 모두에게 좋은 여자라고 여겨지길 기대한다.
이후 레누는 달라질지 모른다. 성장하고 더 현실적으로 날카로워질지도 모른다. 고작 1권을 읽었을 뿐이니까.
나폴리 4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나의 눈부신 친구](2011)를 읽었다.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나폴리 태생에 고전문학을 전공했으며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 외엔 알려진 게 없다고 한다. 엘레나 페란테도 필명이라고 한다. 타임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명으로 뽑았다고 하니 나폴리 4부작이 내뿜은 열기가 세계적으로 대단한 모양이다.
로쟈님이 간단히 소개한 뒤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시이소오님이 폭풍독서를 했다는 글을 읽고 이게 뭐길래 그럴까라는 궁금증이 일어 일단 1권을 구입해 읽었다(1부 한권잡고 일주일을 읽었네, 하;;). 읽고난 지금, 앞으로도 1,980페이지를 읽어야 하는데 계속 읽어야 할지 고민중이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릴라와 레누의 평생에 걸친 관계를 그려나가는 소설인데 1부만 놓고 보자면 화자인 레누가 욕망하는 릴라의 강렬한 성격과 삶을 그려나간다고 하겠다.
마치 토마스만의 [파우스트 박사]에서 화자인 차이트블롬이 천재 음악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를 집필하는 형식으로 삼은 것처럼. (아, 이 소설도 읽다 중단한 상태네.. 쩝;;)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의 눈부신 친구'는 레누가 릴라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릴라가 레누에게 한 말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레누의 눈부신 성장을 그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릴라는 16세의 나이에 결혼하면서 레누와 그녀를 아꼈던 사람들의 기대를 접고 어쩌면 비극이 될 결혼을 선택하는 걸로 1부가 끝난다.
1권만 보자면 레누에게 릴라는 '눈부신 친구'였다. 그 눈부신 친구는 '대놓고 못된 여자아이'이기도 했다.
무기를 숨겨가지고 다니는 아이이기도 했다. 릴라만이 아니라 1950년대 레누와 릴라의 동네 남자들은 대체로 폭력을 장착하고 있기도 하고 따라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기도 했다.
릴라는 아버지와 오빠와도 맞서야 한다. 아버지와 오빠의 갈등 사이에 놓이기도 한다. 여자를 지키는 게 곧 자신의 재산 및 소유권을 지키는 명예로 여기는 잔재가 남아 남자들끼리의 싸움이 흔하게 일어나는 시대이고 동네이기도 하다.
릴라의 오빠 리노처럼 불안정한 정신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오는 폭력성향에 여자들은 특히 더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밀레니엄]의 리스베트만큼 영리하고 정의로우며 면전에서 싸다구를 날릴 줄 아는 '못된 여자'를 영웅처럼 바라는 건 아닌가.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우니까.
현실에서 대부분은 레누니까.
못된 여자, 나쁜 여자 캐릭터들. 그 '못되고 나쁜'이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들 한데 모으는 작업을 좀 해볼까.
어쨌든 릴라는 어떤 운명을 선택하고 맞이하게 될 것인가.
또 나, 레누는 이불킥만 하지 않고 제대로 된 말을 하게 될 것인지, 아마도 1권 처음에 나오듯이 단호한 거절, '안돼.'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를 잘 살펴볼 수 있을까.
프롤로그에서 나왔듯이 릴라의 '증발'. 못된 여자아이에서 스스로를 증발시키는 여자.
존재 자체를 증발시키고자 하는 욕망. 스스로 사라지는 여자들. 애거서 크리스티의 예. 또...
앞으로 1,980페이지... 읽어야 하는가보다,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