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달린 셜록홈즈에 존 르 카레가 추천사를 썼고 셜록홈즈와 왓슨 콤비가 없었다면 조지 스마일리와 피터 길럼도 없었을 거라는 헌사를 쓸 정도로 셜록홈즈를 애독한 독자였다는 걸 알게 된 후 급작스럽게 존 르 카레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재독하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다.

고작 [팅테솔스]와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다시 읽었을 뿐이다. 

카를라를 찾아서 3부작 중 번역된 두 편만 읽은 셈인데  두번째 읽은 이번에 느낀 건, 처음 읽었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놓쳤었나, 이다.

카를라는 조지 스마일리의 또다른 자아라서 스마일리를 알면 카를라도 아는 거라고 치고, 스마일리라는 인물에 대해 페이퍼를 써볼만하겠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서문을 잠깐 들여다보는데, 코난 도일이 나폴레옹을 두고 했던 말이 카이사르에게 "다소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저자는 인용하고 있다. 


"그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나를 경악시킨 것은 그의 성격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를 극악한 인간이라고 단정 지은 순간 고결한 성품이 보이고, 다시 그에게 감탄한 순간 곧바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비열함에 압도되게 된다."


군인이자 정치가인 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성격일 수도 있겠다. 

르 카레는 조지 스마일리를 편력기사 knight-errant로 여겼다. 냉전과 냉전 이후 데탕트에 걸쳐 전성기를 누렸다가 은퇴당하고 자꾸 과거의 사건과 사람들 때문에 다시 무대에 올라야 하는 스파이. 


카를라 3부작의 마지막 [스마일리의 사람들]에서 르 카레는 조지 스마일리에게 파국을 선언한다. 

조지 스마일리는 "인간성을 잃었다."

작가가 자신의 주요 인물을 욕보이는 설정을 할때는 어떤 심정일지...흥미로운 창작의 과정이다.  

 

코난 도일도 자신의 셜록 홈즈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지 않았는가. 도일 보다는 르 카레는 더 씁쓸한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스마일리의 사람들]의 마지막 공작, 카를라를 잡기 위해 세팅하는 배경은 스위스 베른이라는점이 눈에 띄었다. 셜록홈즈와 모리아티 교수의 최후의 대결이 이뤄진 장소가 바로 스위스 베른에 있는 라이헨바흐 폭포이다. 르 카레가 조지 스마일리와 카를라의 최후의 대결 장소로 스위스 베른을 택한 건 아마도 스위스가 비자금을 운용하는 데 유용한 지역이라는 현실적 설정도 있었겠지만 셜록홈즈에 대한 오마주도 있지 않았을까.

조지 스마일리 또한 셜록홈즈처럼 무대에 올라 단서 하나하나를 추적하며 사건의 진실,핵심에 다가선다.

사건이 끝나면 셜록홈즈처럼 자신이 어떻게 추리해갔는지를 설명할 관객이 그에게는 있지 않다.

비극, 비극만이 있을 뿐.

  .........

 















[스마일리의 사람들] 표지의 그림 또한 다시 보니 의미심장했다.
르 카레가 설정하고 묘사하는 마지막은 모두 굉장했던 듯하다. 대개가 비극을 완성한다.
[스마일리의 사람들]의 스마일리와 카를라의 대면 장면은 참 많은 걸 읽게 한다.
여기서도 여자가 교환거리라고 읽을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서로의 "약점"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건 비참한 일이다. 

누군가는 조지 스마일리를 '햄릿'에 비유하기도 한다. [팅테솔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특히 그러한데, 이미 누가 '두더쥐(이중스파이)'인지 마음속에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더우기 모욕당한 남편으로서 그의 '복수'는 스마일리 자신이 아니라 다른이에 의해 이뤄진다. 비껴서있는 스마일리.


실비아 플라스(1932~1963)

테드 휴즈(1930~1998)


 

 

이번달 알라딘 탁상달력의 모델은 실비아 플라스이다.

이 여인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가스오븐자살, 시인, 정신질환... 정도였던 것 같다. 

왕은철의 [애도예찬]을 읽다가, 실비아 플라스와 그녀의 남편 테드 휴즈의 이야기를 읽고 놀랐다. 

실비아 플라스의 남다른 예술적 민감함과 예민함이 우울증에 사로잡히게 했으려니, 그러다 삶을 놓아버렸으려니, 대충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알게 된 건 실비아 플라스에게 '심리적 과부하'로 작용한 트라우마 아버지의 죽음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비아의 나이 여덟살 때의 일.

어머니의 사랑 또한 온전하게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가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던 듯. 부모란 참 어렵다.

어머니의 냉정함. 이것이 실비아로 하여금 아버지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수 없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


남편 테드와의 결혼 후 원만치 못한 생활. 남편 테드의 바람. 별거. 그리고 자살.

테드의 새로운 연인 또한 자살.

이후 벌어진 일들. 테드는 뭇 사람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게 된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은 맹렬했던 모양. 당시는 1960년대였다.

왕은철은 지나쳤다고 비판한다.

이후 남편 테드 휴즈의 실비아 플라스 애도와 관련된 글, <생일에 부치는 편지>는 테드 휴즈를 이해하고자 한 글이다.

테드 휴즈는 실비아와 만난지 4개월만에 결혼하고 시인이자 교수로서 명성을 쌓아간다.

실비아와의 결혼 파탄과 그녀의 자살, 새로 만난 여인과의 불행한 결말.

그리고 30년 뒤 1998년 그는 [생일편지]라는 시집을 발간한다. 실비아와 함께 했던 삶을 회고하며 쓴 글들로 출간 후 얼마지나지 않아 암으로 사망한다.

실비아가 시인으로서 알려지게 된 데는 남편 테드의 노력 때문이라고도 하는 사람이 있고(왕은철은 이 편이다), 실비아의 저작권 등 모든 권리를 지니고 있는 건 남편 테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특히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테드가 실비아의 시들 중 중요한 것들을 누각시키거나 폐기처분 해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게 진실인가.

테드의 [생일편지]는 자신에게 가해진 비난을 무마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정리해둘 필요를 느껴서 기획된 출간이었는지... 실비아와의 관계정리를 - 왕은철식으로 말하면 애도- 해왔던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조지 스마일리도 그렇고 실제 인물들인 실비아와 테드의 삶도 그렇고 나는 그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나.

가끔 사람을 깊이 안다는 거.. 그 사람에 대해 아주 오래 생각한다는 거.. 에 대해 생각해본다.

뇌과학이나 심리학이 고도로 발전하면 트라우마나 정신적 '과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인간. 심리와 정신작용에서 발생하는 난감한 어려움이 한 인간을 그리고 곁에서 지켜봐야 할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건 참 쓸쓸한 일이다. 어느 사이에 자라나서 내곁에 있게 될 수도 있다. 불행은 오래전에 뇌에 전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집에 길고양이네가 들어와 살림을 차린듯. 새끼들과 함께 나타난 그 녀석의 울음에 어찌할바 몰라 우선 가까운 마트에서 사료를 사다 부려줬다. 물과 함께.

이것들이 꼬박꼬박 먹는다. 고양이 사료도 꽤나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잘 몰랐다. 다 똑같은 건줄만 알았다.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라는 거. 어렸을 때 우리가 먹던 밥에 멸치류 등을 얹어 주며 함께 살았던 때와 너무나 달라서 어리둥절하다. 

처음에 발자국 소리에도 부리나케 도망치던 어미는 이젠 하악 거리면서도 나를 빤히 보고 있곤 하다.

그래도 아직 녀석과 나는 데면데면하다. 어서 새끼들 키우라. 너는 길고양이로 나는 니가 오면 밥 챙겨주는 그런 관계로 족하다.


(윈도10 엣지브라우저에서는 책 이미지 정렬이 잘 안되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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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2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레와 홈즈와 실비아 플라스라.... 저에게는 기가 막힌 앙상블이네요.
매우 흥미진진하게 이 글을 읽었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포스트잇 2017-06-27 16:40   좋아요 0 | URL
아이고,,;;; 변변찮게 급히, 늘 그렇지만.. 쓴 페이펀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비아와 테드,이 두사람 심상치 않아요.
이들의 글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보려고 합니다.
근데... 먼저 구입한 게 테드의 [생일편지]네요. ......

cyrus 2017-06-27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의 첫 문장에 ‘홈즈‘가 보여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존 르 카레가 왜 추천사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포스트잇 2017-06-28 09:47   좋아요 0 | URL
cyrus님의 홈즈 번역본 비교 페이퍼를 보고서 주석달린 홈즈를 돌아봤답니다.
덕분에 르 카레의 추천사를 알게 됐구요. 이게 다 cyrus님 덕분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