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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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녀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그 분위기만을 기억할 뿐 이야기의 정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작품에 애착은 있었지만, 그렇게 정겨워하며 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산문집에는 그녀가 작가가 되기 위해, 또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살아왔는지가 그려져 있다.그녀는 '생활인'과 '작가'의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며, 또 균형을 맞춰가며 이제껏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껏 내 삶의 두 축은 생활인으로서의 '살기'와 소설가로서의 '쓰기'였고 그 둘의 균형 잡기에 적지 않은 안간힘을 써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바로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글쓰기가 곧 삶 쓰기라는, 즉 사유와 쓰기의 진정성이 바로 아름다운 삶의 실천이 되리라는 소박한 믿음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일상의 요구와 창작에의 욕망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공간에서 생겨난 것이 내 소설이었던 셈이다."

어머니와 아내로서 살아가면서도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녀의 노력은 정말 감동스러웠다. 다음의 구절을 보자. "... 따로 내 방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이어서 궁여지책으로 나는 좁은 부엌의 귀퉁이, 조리대 옆에 작은 책상을 들여놓고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의 흉내를 내어 '존재의 테이블'이라 명명하여 그곳에서 가계부도 쓰고 소설도 쓰고 책도 읽었다. 십 년 가까이 부엌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었고 부엌의 창을 통해 비와 바람과 눈, 계절의 흐름을 보았다."

그녀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끝끝내 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녀 자신이 체험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왜 소설을 써야만 했는지, 나에게 소설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내뱉고 있다. 그것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녀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는 게 좋을 듯싶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정말 좋은 산문집이다.

"모든 행위와 열정이 그러하듯 글쓰기 역시 내 안과 밖의 낯섦에서부터 시작된다. 낯섦에의 감수성은 세계와 나 사이에 프리즘을 장치하고 때로 가벼운 가위눌림으로, 신선한 발견으로, 상상력으로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다.

그 어느 곳에도 마음과 정신의 둥지를 틀어 안주하지 못하고 다만 의심쩍은 시선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환상과 현실, 안과 밖의 경계에서 어정대는 것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삶이 지속되는 한 이야기는 끝이 없고 내가 사는 일, 글 쓰는 일 모두 신명이 가 닿는 곳, 바람 따라 흐르는, 내 안에 깃든 넋의 노래들이 아니겠습니까. ... 작가란 어떤 이야기를 쓴다 해도 자신이 형상화시킨 인물들에게 더없는 애정과 생명을 나누어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기에 모든 작품은 자전적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창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찾아오는 감각이나 각성, 죽음으로 가는 고통의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표현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 필생의 작품에 대한 꿈, 백조가 마지막에 토해낸다는 아름다운 울음을 기다리며 종언의 순간까지 머리맡에는 펜과 종이를 놓는 것이 작가의 속성이고 예술가의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내게 소설이란 정말 무엇일까. 간혹 그런 물음을 받을 때면 내게 소설이란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짝사랑, 지독한 연애'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소설쓰기란 되풀이 겪어도 면역과 내성이 생기지 않는 점, 그리고 그 가숨 뜀과 온갖 갈망과 공상, 기진맥진과 지리멸렬, 이윽고 쓰디쓴 환멸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구조와 신통히도 닮아 있다. 똑같이 눈먼 열정의 소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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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Farandouri - Tribute To The Greek Songs Heritage
마리아 파란두리 (Maria Farandouri) 노래 / 아울로스(Aulos Media)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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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파란두리. 그녀는 여느 월드 뮤직 연주가처럼 국내에 별다른 지명도가 없다. 그러나 세계적인 명성은 대단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유명 잡지와 유명인의 입을 잠시 빌려보자. 영국의 ‘가디언’ 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두고 “올림피아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며 음악성을 추켜세웠다.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의 말도 극찬 일색이다. “내게 마리아는 그리스 그 자체이다. 그녀의 강렬하고 순수하며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는 마치 해라 여신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녀처럼 신의 감각을 들려준 이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인용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파란두리는 그리스 출신의 여성 가수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일군이 물러갈 무렵에 태어나 스물두 살에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 데뷔했다. 그런데 한참 명성을 쌓아가다 1967년 프랑스로 쫓기듯 이주해야 했다. 조국 그리스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곧 테오도라키스처럼 반정부 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노래를 무기 삼아 해외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었다. 또 타국의 연주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많은 공연을 펼친 점도 그녀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다. 모두 현재는 각 나라를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뮤지션이 된 미리암 마케바, 줄피 리바넬리, 마리아 델 마르 보네트, 메르데세스 소사, 인티 일리아니 등이 바로 파란두리와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사람들이다.

음반에는 ‘그리스 음악 유산에 헌정함’(A tribute to The Greek Song Heritage)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지난 2001년 아테네에서 가진 실황이며 밀토스 로지아데스가 이끄는 칼라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았다. 수록곡은 타이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모두 그리스의 노래로만 구성되어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그리스의 전통이 담긴 과거의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이 섞여 있는 최근 노래도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그녀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음의 풍성한 음역은 처음 듣기만 해도 마음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실함이 느껴진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 이별, 고통, 기다림, 절망, 희망은 실체가 없는 형이상학적인 단어가 아니다. 거기에는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절망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이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실제 세계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노래 속의 세계가 진실인 듯 들린다.

음울하고 어두운 색채가 주를 이루지만 때로는 밝고 흥겹다. 장중하게 읊은 노래 구절이 때로는 재즈(나이 지긋한 흑인 짐)와 탱고(고깃배의 탱고)를 만나기도 하고 카페 송(달로 산책을 가요)의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또 간간이 울리는 부주키 선율도 인상적이다. 맑고 영롱한 부주키 음에 청중의 박수 소리가 더해져 있는 ‘구름 낀 일요일’이 특히 귀에 들어온다. 이 외에도 ‘죽음만큼 강한 사랑’ ‘으슥한 해변에서’ ‘즐겁게 밤은 가는데’ 등에서도 그리스의 서정과 파란두리의 카리스마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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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o Sasaki - Eyes For You [재발매]
이사오 사사키 (Isao Sasaki) 노래 / 스톰프뮤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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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사랑했다. 두 사람은 기뻤으나, 갈등하다가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사랑은 그저 추억으로만 두 사람 곁에 남아 있을 뿐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줄거리는 이처럼 평범한 사랑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아프고, 아련하다. 상투적이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 이 영화의 아련함이 숨쉬고 있기에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폐부를 찌른다. 아름다운 영상과 절제된 음악도 이 영화의 완성도를 한몫 거들었다.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영상의 분위기를 잔잔하게 돕고 있는 메인 테마와 사랑의 테마. 바로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와 바이올리니스트 마사츠구 시노자키가 연주한 ‘사랑의 인사’와 ‘어느 멋진 봄날’이다. 이 두 곡은 짧은 사랑이 지나간 뒤 찾아오는 아픔과 쓸쓸함을 표현하고 있다.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과 잔잔한 피아노가 부딪치며 내는 음은 영화 속의 상우와 은수의 고독을 연상케 하며 쓸쓸함을 자아낸다.

이사오 사사키의 ‘Eyes For You’에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사운드트랙처럼 그리움과 매혹의 눈길이 가득 담겨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곡은 타이틀곡인 ‘Eyes For You’. 이 곡은 일본 지하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다가 숨진 고 이수현씨를 추모하는 작품이다. 올해 3월 그의 첫 내한공연 때 초연된 것으로 피아노 솔로만으로 구성된 곡. 동일한 리듬의 반복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 음들 속에는 진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을 구한 고인의 넋을 잔잔한 멜로디 속에 담아놓은 듯 깊은 여운을 남기는 곡이다.

첫곡 ‘Loving You’에는 그야말로 낭만성이 가득 묻어 있다. 뉴에이지 특유의 감수성이 진하게 배인 시노자키의 바이올린이 곡을 주도한다. 하지만 지나친 감정이입은 오히려 귀에 거슬리는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이보다는 감정이입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사사키의 피아노 연주가 더 매력적이다. ‘Sky Walker’는 이사오 사사키의 다이내믹한 피아노 타건이 돋보이는 곡이다. 그의 내한공연 때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선보였던 이 곡은 당시 팬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사사키의 자연스러운 변주와 에드립은 곡의 흥을 돋우기에 충분하고, 시노자키는 중간중간에 가담하며 곡을 감미롭게 이끈다. 라이브의 생동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연주는 이 곡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오필리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 나오는 비극적인 여인의 이름을 빌린 곡이다. 아버지와 연인을 함께 잃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오필리어의 절망을 그린 곡으로 이 앨범에서는 유일하게 바이올린 대신 얼후가 등장한다. 흐느끼는 듯한 얼후의 음색이 인상적인 곡이다.

이밖에 비장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All I Know’, 사사키가 스페인 마요르카를 여행한 뒤 만든 ‘Valldemosa’ ‘Cosmic World’ ‘노래하는 새’, 정겨운 멜로디로 가득한 ‘빗속의 나비’ ‘Tear Drop’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사오 사사키는 1999년 ‘미싱 유’가 발매되면서 새로운 뉴에이지 스타로 발돋움했다. 재즈 연주가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는 뉴에이지에 재즈적인 감성을 녹여낸 연주자이다. 이런 감성을 대표하는 곡이 바로 이번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 ‘Sky Walker’. 이 곡은 그의 첫 앨범 ‘미싱 유’에 담겨 있던 것으로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금세 인기곡으로 부상했다. 이후 그는 ‘Moon & Wave’ ‘Star & Wave’를 차례로 발매했고, 이 음반들로 그는 국내에 상당한 팬을 거느리고 있다. 한편 바이올리니스트 마사추구 시노자키는 영화 ‘러브레터’ ‘마지막 황제’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바 있는 역량 있는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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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ia O`Callaghan / Real Emotional Girl
워너뮤직(WEA)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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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면 누구나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이런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 대개 음악인들은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로 눈을 돌린다. 자신의 음악적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또는 확장하기 위해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는 때로 예술가들의 자유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곤 한다. 물론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음악가들도 많고, 각 장르마다 있을 법한 진정한 정신과 정신의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교류에 그치고 만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여러 장르간에 존재하고 있는 불화를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시도될 것이란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캐나다 출신의 소프라노 패트리샤 오캘런. '리얼 이모우셔널 걸'(Real Emotional Girl)이라는 앨범을 국내에 정식으로 선보인 그녀는 콘서트 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바나 나이트 클럽 같은 곳을 더 선호하는 신세대 가수이다. '카바레 뮤직'이라고 불리는 노래들을 담고 있는 이 음반은 오캘런이라는 또 한 명의 유능한 크로스오버 가수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오캘런은 이 음반에서 고급스런 예술적 향취를 담은 '진지한' 레퍼토리와 20세기의 다양한 대중 음악의 흐름을 녹록치 않은 깊이와 해석으로 들려주고 있다. 단순히 흉내내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다져진 음악성을 바탕으로 오캘런식의 해석을 담고 있다.


오캘런은 캐나다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누가 음악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어 스스로 피아노를 치고, 스스로 노래를 배웠다. 음악은 그녀의 성장기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또한 음악은 그녀의 꿈이기도 했다. 이런 꿈을 향한 여정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지방 록 밴드에 참여하게 했다. 록 음악은 그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때문에 그 당시 그녀의 꿈은 록커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은 심지어 기도를 할 때도 오지 오스본과 롤링 스톤스의 톤으로 내뱉게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그녀가 성악을 시작한 건 16세 때. 클래식 레퍼토리가 잠재돼 있던 예술혼을 건드렸던 것이다. 꿈은 금세 록 가수에서 오페라 가수로 바뀌었다. 그녀는 이 꿈을 키우기 위해 토론토 대학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시골에서 대도시로의 이동은 그녀를 또 다른 욕망에 사로잡히게 했다. 돈도 필요했다. 란제리 모델도 했고, 다시 록 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솔리스트로서 카바레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오늘날 그녀의 음악에 록과 카바레 송, 뮤지컬, 클래식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바로크 음악에서부터 현대 오페라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또 아방가르드 앙상블인 재브라 슈벙크(Zebra Schvungk)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고,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카바레 송이다. 특히 오캘런에게 중요한 레퍼토리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 쿠르트 바일이 만든 노래이다. 바일의 곡은 그녀가 이제껏 발표했던 3장의 앨범에 여러 곡을 수록했을 정도로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밥 딜런, 펄 잼, 오지 오스본 등 1970∼80년대의 저항적 록 가수들의 곡 또한 그녀가 즐겨 부르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1997년 그녀는 쿠르트 바일, 에릭 사티, 프랑시스 풀랑크 등의 노래를 담은 'Youkail'이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곤궁했던 그녀의 삶에 도움이 됐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혼합하여 소화해내는 그녀만의 독특한 능력을 인정받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녀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떠올린다.

"그제서야 노래를 내 품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중들이 항상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관객들이 내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고, 동요하고, 기뻐한다는 것이 그렇게 놀라울 수가 없었어요."
이어서 발매된 두번째 앨범 '슬로우 폭스'는 그녀의 이름을 캐나다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레오나르드 코헨, 쿠르트 바일, 쇤베르크의 노래를 담은 이 앨범은 각 음악가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음악성을 그녀 특유의 퓨전 정신으로 폭넓게 소화해내 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다. 또 1999년 CBC 드라마 '바보같은 마음'은 오캘런이라는 이름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시리즈에서 그녀는 쿠르트 바일의 노래를 불렀고, 드라마의 성공과 더불어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수로서의 인지도를 확실히 심어주었다.

이 '리얼 이모우셔널 걸'은 오캘런 나름대로의 관점이 확실히 투영된 앨범이다. 그녀가 3집에 걸쳐 이뤄낸 성과는 예술 가곡과 프랑스의 샹송, 아메리칸 팝 등 꾸준히 레퍼토리를 확대해가면서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다는 데 있다. 이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은 오캘런의 음반에서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한다. 곧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창조적인 편곡과 해석력이 있다는 얘기다. 이 앨범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편곡의 미학에 있다. 오캘런이 빛나는 가수로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도 이런 색다른 해석과 매혹적인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여러 록 밴드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밥 딜런의 불후의 걸작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은 의외로 잔잔한 첼로 반주로 시작된다. 원곡에서 느낄 수 있는 저항적이면서도 활달한 뉘앙스와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소화하고 있다. 철학적인 노랫말로 밥 딜런 등에게 영향을 끼친 레오나르드 코헨의 '아임 유어 맨' 또한 마찬가지다. 읊조리면서 저음으로 내뱉는 코헨과는 달리 오캘런은 흥겨운 비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매력적인 고음 처리는 원곡과는 다른 또 다른 깊이를 담고 있다. 역시 코헨의 '잔다르크'는 부드러운 예술적 향취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석했다. 이밖에 그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바일의 '나나의 노래' 등 두 곡과 펄 잼의 '배터 맨'(Better Man), 랜디 뉴먼의 '리얼 이모우셔널 걸', 번스타인의 '럭
키 투 비 미'(Lucky to Be Me)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에는 20세기의 다양한 음악 형태와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오캘런은 이런 음악들이 지니고 있는 다양성과 창조성을 그녀 자신의 강렬한 개성으로 조화시켜 예술적인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이는 곧 오캘런이 단순간에 빛을 발하고 사라져버릴 가수가 아님을 말해준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비트와 함께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 같아요. 팝, 재즈, 전위적인 현대 음악의 영향을 내 것으로 소화시켜 앞으로 더 많은 실험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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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아라이 만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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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자꾸 빼 나가는 겁니다. 군더더기 음표, 쓸데없는 음표, 장식에 불과한 음표, 요컨대 군살 같은 음표는 가차없이 잘라냅니다. 그러다 보면 맨 마지막에는 도저히 잘라낼 수 없는, 그러니까 없어서는 안될 음표만 살아남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음표지요. 그래서 내가 만드는 작품들은 모두 악보가 얄팍합니다."

늘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검은 고양이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박쥐 우산을 들고 파리를 배회했던 에릭 사티(1866∼1925). 그는 동시대의 작곡가 라벨과 드뷔시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그들과는 달리 프랑스 음악의 중심인물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19세기 말 유럽 음악계의 표상과 같았던 바그너의 '과장된 표현'에 반기를 들며 아주 단순한 작품들을 생산했다. 그의 작품들은 '배 모양의 세 작품'과 같은 이상한 제목을 갖고 있거나 악보에 이상한 지시어를 붙이고 조롱하는 듯한 인물을 등장시키곤 했다.


사티의 음악이 없었다면 자신도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가 아라이 만이 에릭 사티 서거 75주년을 맞아 펴낸 이 소설은 사티의 예술적 개성이 강하게 풍겼던 20대 후반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다. 특히 19세기 말 몽마르트에 모여든 쉬잔, 위트릴로, 르누아르, 로트레크, 모리스 등 사티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다양한 예술인의 풍부한 일상을 엿볼 수 있어 20세기 초 이들에 의해 펼쳐질 다양한 예술운동을 선 체험할 수 있다.


젊은 시절 '무슈 르 포브르'(가난뱅이 씨)로 불렸던 사티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해운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어머니를 일찍 여윈 그는 반항적인 소년으로 자란다. 피아노 선생이었던 계모의 강요에 의해 국립 파리음악원에 진학했지만, 학교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고 군에 입대함으로써 학교를 자퇴한다. 그러나 군대는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의 사티와 애초부터 맞지 않았다.
사티는 의도적으로 폐병을 일으켜 1년도 안 돼 제대하고, 몽마르트에 있는 카페에서 '시인의 자작시 낭송이나 샹송 가수의 노래를 반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일한다. 그곳에서 사티는 모델이자 화가였던 쉬잔 발라동과 평생의 단 한번뿐이었던 연애를 하게 된다. 그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던 쉬잔은 당대의 유명 화가 르누아르, 샤반, 로트레크 등의 모델이자 애인이었고, 20세기 초를 장식하는 풍경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사티는 그런 그녀와 반년 동안의 동거를 했지만 자유분방한 쉬잔은 그를 떠나고 만다. 사티는 이 충격에 "여자란 기어오르는 독사입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으며 평생을 고양이, 새와 함께 독신으로 지냈다.

소설은 지극히 간단한 선율을 '840번 반복해서 연주하시오'라는 지시문이 붙어있는 '벡사시옹'(Vexations)을 작곡함으로써 연애의 실패와 자살충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덧셈의 시대에 철저히 뺄셈의 논리로 장식음들을 제거했던 사티는 프랑스 현대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6인조(오릭, 뒤레, 오네게르, 미요, 프랑크, 타이유페르)는 사티의 이런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정신적인 아버지라고까지 했다.
이 소설은 사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사티의 젊은 시절을 재미있게 재구성했다. 자주 튀어나오는 감상적 문체가 흠이기는 하지만 사티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또 사티와 다양한 관계를 맺었던 화가들이 그에게 그려준 초상, 사티가 쉬잔에게 보낸 편지, 쉬잔을 모델로 한 르누아르, 사반 등의 그림도 실려 있어 당대의 예술정신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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