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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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키냐르의 소설은 '머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마치 이론서를 읽는 것처럼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 줄 알면서도 키냐르의 소설을 왜 또다시 집어들었을까.

이번 소설은 조금 얇은 편이다. 또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키냐르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키냐르의 약력과 비교해 읽어보면 이것이 키냐르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조금 만만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하지만 키냐르의 이전 소설처럼 결코 만만한 소설은 아니었다. 언어와 삶의 기원, 그리고 사랑에 관한 철학이 담겨 있는 소설을 이론서 읽듯이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소설이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하는가, 하는.

이 글을 읽고 난 무엇을 느꼈을까. 계속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 정확히 모르겠다. 프랑스의 누군가가 그랬다지. "키냐르의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다른 책 1000권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 벌써 머리가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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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ㅣ 하룻밤의 지식여행 27
스튜어트 후드 지음, 그레이엄 크로울리 그림, 정해영 옮김 / 김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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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드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서 읽었다. '하룻밤이면 충분하다'는 이 시리즈의 모토가 무색하리 만큼 하룻밤 만에 다 읽지 못했다. 사드는 내게 낯설었고, 이 책은 그 정도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더불어 중요 저작들이 잘 요약되어 있는 '쏠쏠한' 책이었다.

사드의 삶은 방탕했다. 당시에는 금기되었던 항문성교, 난교 파티를 일삼았고 이 때문에 죽을 때까지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가 감옥에서 지은 책들에는 상당한 철학적 깊이가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는 귀족이고 남성이었다. 여성에 대한 시각과 자신이 귀족이라는 계급 의식이 성행위의 '사디즘'을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는 자유주의자이면서도 파시스트이고, 진보적이면서도 마초였다. 여러 모로 복잡한 인간.

"죄는 인간 본성의 자연적 상태이며 성은 가학적인 것"이라는 사드의 견해에 공감한 보들레르, 들라크루아, 플로베르, 뒤마, 위고 등 프랑스의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예술가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등의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사드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사드의 원작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영화로 만든 부뉴엘과 파졸리니 감독도 함께.

언젠가 시간이 되면 그의 <규방 철학>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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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Montand - Les Feuilles Mortes [2CD]
이브 몽땅 (Yves Montand) 노래 / 굿인터내셔널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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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을 더듬어 보렴/우리 두 사람이 서로 행복했던 날들을/인생은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태양도 뜨겁게 우리를 감싸주었지.”

‘고엽’은 이브 몽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내 가슴에 와닿지 않는 노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의 노래들은 인생에서 실제 느끼는 기쁨과 슬픔, 유머, 비극과 고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가 말했듯이 샹송 모음집 ‘고엽’(2CD)에는 그의 삶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다. 2001년이 영화배우와 가수로서 화려한 생을 살았던 그의 사망 10주기가 되는 해이기에 이 음반의 발매는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음반은 이브 몽탕이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에 녹음한 것을 담고 있다. 때문에 20대의 청년 이브 몽탕이 꾸밈없이 묘사되어 있다. 이 시기는 그가 아직 영화배우로서 성공하기 전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 ‘루나 파크’ ‘싸우는 조’ 등을 부르며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삶의 애수와 회한이 잔뜩 깃들여 있는 그의 목소리에는 시적인 묘미와 인간적인 감성이 살아 있다. 또 수줍은 듯 부드럽고, 품격이 있으면서도 서민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축제는 계속되고’ ‘숲의 불’ 등 40여 곡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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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zzolla Forever
아스트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노래 / 이엠아이(EMI)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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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I에서 선보인 ‘피아졸라 포에버’는 피아졸라의 대표곡을 여러 가지 편곡 버전으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만 해도 안 트리오가 연주한 ‘봄’으로 시작해서 정통 탱고 연주 단체인 라울 가렐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여름’을 지나 에로이카 트리오의 ‘가을’과 마요르 6중주단이 연주한 ‘겨울’을 담고 있다. 때문에 각 연주의 특징이 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탱고라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음의 넓이 때문에 이런 연주가 가능하지 않나 싶다. 어느 악기를 통해서 연주되는가에 따라 분위기나 맛이 다르긴 하지만, 거기에는 변함없이 탱고 나름의 개성이 살아 있게 마련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12 첼리스트가 연주한 오페레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 중 ‘푸가와 미스터리’ ‘바친 궁전의 아이’에서도 마찬가지다. 12대의 첼로에서 뿜어나오는 음은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닮긴 했지만, 탱고 고유의 서정이 맘껏 표출되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탱고 전문 아티스트와 단체가 연주하는 게 제일 맛깔스럽다. 피아졸라와 함께 활동했던 반도네오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레오폴도 페데리코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며 연주한 ‘리베르 탱고’ ‘천사의 탱고’, 피아졸라와 뉴 탱고 6중주단이 연주한 ‘천사의 밀롱가’, 마요르 6중주단의 ‘안녕 노니노’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은 그 자체로 탱고의 진수이다. 또한 탱고를 아르헨티나의 대중음악에서 세계의 음악으로 확대시킨 피아졸라 작품의 진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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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포레 : 레퀴엠 / 프랑크 : 교향곡 D단조
Ceasr Franck 외 작곡, Philippe Herreweghe 지휘 / Harmonia Mundi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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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헤레베헤가 13년 만에 다시 선보인 포레의 ‘레퀴엠’에는 과장됨이 없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꾸며 달콤하게 채색하지 않았고, ‘레퀴엠’이라는 곡명을 의식해 극적으로 음악을 이끌지도 않았다. 대신 헤레베헤는 민첩하고 풍부한 음을 통해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신선한 해석을 들려준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포레 당시의 음악양식을 꼼꼼하게 연구해 재현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전형으로 인식돼왔던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해석방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며, 그가 줄곧 추구해왔던 음악양식의 원형 회복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가 13년 전에 발매했던 포레의 ‘레퀴엠’은 1893년 실내악 판본을 사용한 것이다. 이 판본은 말 그대로 소규모 악기만이 등장하는 실내악을 위한 작품이다. 포레는 당초 이 판본을 애지중지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 의해 1901년 풀 오케스트라 버전을 발표하게 된다. 이 판본이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포레의 ‘레퀴엠’이다. 교회가 아닌 대형 콘서트홀용 음악이기 때문에 초기 판본에 비해 현악 파트가 한층 역동적으로 바뀌었고, 호른과 클라리넷, 바순 등 여러 악기 부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헤레베헤는 풀 오케스트라 버전을 당시의 풍토대로 연주하길 원했다. 그래서 원전악기를 택했고, 당시 콘서트홀에 오르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사실을 고려해 오르간 대신 하모니움을 배치했으며(이는 포레가 용인한 사실이다), 또 가수와 합창단에게 프랑스식 라틴 발음(Gallic)으로 가사를 부르도록 요구했다. 이중 갈릭식 라틴 발음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것인데, 헤레베헤는 포레 시대의 프랑스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갈릭식 발음이 쓰였다며 이를 연주에 과감히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투스’를 ‘상튀’로 ‘피에 예수’를 ‘피에 셰수’로 발음하는 등 좀더 원전에 가까운 형식으로 곡을 해석하고 있다.


“포레는 동양사상에 상당한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는 죽음이 우주의 조화 속에 있다고 믿었지요. 포레는 레퀴엠이 종교보다는 인본주의에 더 가까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그의 레퀴엠은 가톨릭의 전통적인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한마디로 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헤레베헤는 클래식 사이트 안단테 닷컴(andante.com)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레의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가 아니며 오히려 ‘죽음을 위한 자장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헤레베헤가 말한 이 내용적인 면은 해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를테면 ‘죽음’에 대한 극적 긴장을 유도했던 여타의 음반과는 다르게 그는 간결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더 강조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소프라노 요하네트 촘머와 독일 출신의 바리톤 슈테판 겐츠는 헤레베헤의 의도를 충실히 이행하며 내용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촘머는 바흐 칸타타 녹음을 비롯해 많은 작품을 함께했습니다. 그녀는 소년들의 순수한 목소리에 걸맞은 깨끗한 음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프라노는 쉽게 정할 수 있었던 반면 남성 성악가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결국 우리는 포레 시대의 성가대 목소리와 비슷하며 오페라풍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는 슈테판 겐츠를 찾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 음반은 형식과 내용을 포레의 시대와 사고에 맞춘다는 헤레베헤의 의도가 돋보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함께 커플링되어 있는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뛰어난 연주이지만, ‘레퀴엠’에 밀려 당분간 빛을 보기는 힘들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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