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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포레 : 레퀴엠 / 프랑크 : 교향곡 D단조
Ceasr Franck 외 작곡, Philippe Herreweghe 지휘 / Harmonia Mundi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필립 헤레베헤가 13년 만에 다시 선보인 포레의 ‘레퀴엠’에는 과장됨이 없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꾸며 달콤하게 채색하지 않았고, ‘레퀴엠’이라는 곡명을 의식해 극적으로 음악을 이끌지도 않았다. 대신 헤레베헤는 민첩하고 풍부한 음을 통해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신선한 해석을 들려준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포레 당시의 음악양식을 꼼꼼하게 연구해 재현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전형으로 인식돼왔던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해석방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며, 그가 줄곧 추구해왔던 음악양식의 원형 회복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가 13년 전에 발매했던 포레의 ‘레퀴엠’은 1893년 실내악 판본을 사용한 것이다. 이 판본은 말 그대로 소규모 악기만이 등장하는 실내악을 위한 작품이다. 포레는 당초 이 판본을 애지중지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 의해 1901년 풀 오케스트라 버전을 발표하게 된다. 이 판본이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포레의 ‘레퀴엠’이다. 교회가 아닌 대형 콘서트홀용 음악이기 때문에 초기 판본에 비해 현악 파트가 한층 역동적으로 바뀌었고, 호른과 클라리넷, 바순 등 여러 악기 부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헤레베헤는 풀 오케스트라 버전을 당시의 풍토대로 연주하길 원했다. 그래서 원전악기를 택했고, 당시 콘서트홀에 오르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사실을 고려해 오르간 대신 하모니움을 배치했으며(이는 포레가 용인한 사실이다), 또 가수와 합창단에게 프랑스식 라틴 발음(Gallic)으로 가사를 부르도록 요구했다. 이중 갈릭식 라틴 발음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것인데, 헤레베헤는 포레 시대의 프랑스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갈릭식 발음이 쓰였다며 이를 연주에 과감히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투스’를 ‘상튀’로 ‘피에 예수’를 ‘피에 셰수’로 발음하는 등 좀더 원전에 가까운 형식으로 곡을 해석하고 있다.
“포레는 동양사상에 상당한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는 죽음이 우주의 조화 속에 있다고 믿었지요. 포레는 레퀴엠이 종교보다는 인본주의에 더 가까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그의 레퀴엠은 가톨릭의 전통적인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한마디로 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요.”
헤레베헤는 클래식 사이트 안단테 닷컴(andante.com)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레의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가 아니며 오히려 ‘죽음을 위한 자장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헤레베헤가 말한 이 내용적인 면은 해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를테면 ‘죽음’에 대한 극적 긴장을 유도했던 여타의 음반과는 다르게 그는 간결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더 강조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소프라노 요하네트 촘머와 독일 출신의 바리톤 슈테판 겐츠는 헤레베헤의 의도를 충실히 이행하며 내용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촘머는 바흐 칸타타 녹음을 비롯해 많은 작품을 함께했습니다. 그녀는 소년들의 순수한 목소리에 걸맞은 깨끗한 음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프라노는 쉽게 정할 수 있었던 반면 남성 성악가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결국 우리는 포레 시대의 성가대 목소리와 비슷하며 오페라풍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는 슈테판 겐츠를 찾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 음반은 형식과 내용을 포레의 시대와 사고에 맞춘다는 헤레베헤의 의도가 돋보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함께 커플링되어 있는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뛰어난 연주이지만, ‘레퀴엠’에 밀려 당분간 빛을 보기는 힘들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