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 인형 대산세계문학총서 1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안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작가에 대해 지나치게 찬사를 표하는 책을 접할 때는 늘 주의해야 한다. 정말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책 뒤에 실려 있는 해설을 읽어보면 정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찬양해놓았다. 물론 카사레스의 작품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는 데에는 나도 안타깝지만, 너무 과대포장해 소개할 정도는 아니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들이 카사레스의 정수를 모아놓았다면 정말 그가 위대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해설을 할 때는 조금 조심해서 그 작가의 작품을 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이 작품집 속에 담긴 카사레스의 소설이 그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못할 텐데, 마치 카사레스의 '최고'만을 모아놓았다는 듯이 해설을 한다면 오히려 카사레스의 작품세계를 폄하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환상문학의 대가'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그의 환상문학의 수준은 대개 상상 가능한 것이고 그렇게 기발하지도 않다. 단편의 완결성 또한 세계문학의 거장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고 있는 작품세계도 보편적인 울림을 안겨주지 못한다. 이보다는 그의 장편과 탐정소설이 더 읽고 싶어진다. 카사레스의 환상적인 문학이 담긴 진정한 작품이 더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키냐르의 소설은 '머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마치 이론서를 읽는 것처럼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 줄 알면서도 키냐르의 소설을 왜 또다시 집어들었을까.

이번 소설은 조금 얇은 편이다. 또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키냐르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키냐르의 약력과 비교해 읽어보면 이것이 키냐르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조금 만만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하지만 키냐르의 이전 소설처럼 결코 만만한 소설은 아니었다. 언어와 삶의 기원, 그리고 사랑에 관한 철학이 담겨 있는 소설을 이론서 읽듯이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소설이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하는가, 하는.

이 글을 읽고 난 무엇을 느꼈을까. 계속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 정확히 모르겠다. 프랑스의 누군가가 그랬다지. "키냐르의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다른 책 1000권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 벌써 머리가 지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드 하룻밤의 지식여행 27
스튜어트 후드 지음, 그레이엄 크로울리 그림, 정해영 옮김 / 김영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사드가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서 읽었다. '하룻밤이면 충분하다'는 이 시리즈의 모토가 무색하리 만큼 하룻밤 만에 다 읽지 못했다. 사드는 내게 낯설었고, 이 책은 그 정도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더불어 중요 저작들이 잘 요약되어 있는 '쏠쏠한' 책이었다.

사드의 삶은 방탕했다. 당시에는 금기되었던 항문성교, 난교 파티를 일삼았고 이 때문에 죽을 때까지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가 감옥에서 지은 책들에는 상당한 철학적 깊이가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는 귀족이고 남성이었다. 여성에 대한 시각과 자신이 귀족이라는 계급 의식이 성행위의 '사디즘'을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는 자유주의자이면서도 파시스트이고, 진보적이면서도 마초였다. 여러 모로 복잡한 인간.

"죄는 인간 본성의 자연적 상태이며 성은 가학적인 것"이라는 사드의 견해에 공감한 보들레르, 들라크루아, 플로베르, 뒤마, 위고 등 프랑스의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예술가들,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등의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사드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이 책은 적고 있다. 사드의 원작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 영화로 만든 부뉴엘과 파졸리니 감독도 함께.

언젠가 시간이 되면 그의 <규방 철학>을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ves Montand - Les Feuilles Mortes [2CD]
이브 몽땅 (Yves Montand) 노래 / 굿인터내셔널 / 200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 생각을 더듬어 보렴/우리 두 사람이 서로 행복했던 날들을/인생은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태양도 뜨겁게 우리를 감싸주었지.”

‘고엽’은 이브 몽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내 가슴에 와닿지 않는 노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의 노래들은 인생에서 실제 느끼는 기쁨과 슬픔, 유머, 비극과 고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가 말했듯이 샹송 모음집 ‘고엽’(2CD)에는 그의 삶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다. 2001년이 영화배우와 가수로서 화려한 생을 살았던 그의 사망 10주기가 되는 해이기에 이 음반의 발매는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음반은 이브 몽탕이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에 녹음한 것을 담고 있다. 때문에 20대의 청년 이브 몽탕이 꾸밈없이 묘사되어 있다. 이 시기는 그가 아직 영화배우로서 성공하기 전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 ‘루나 파크’ ‘싸우는 조’ 등을 부르며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삶의 애수와 회한이 잔뜩 깃들여 있는 그의 목소리에는 시적인 묘미와 인간적인 감성이 살아 있다. 또 수줍은 듯 부드럽고, 품격이 있으면서도 서민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축제는 계속되고’ ‘숲의 불’ 등 40여 곡이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