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끼사스 > [펌] 오에 겐자부로가 발신하는 것
출처: 신교수 칼럼 2004년4월18일자 (http://www.e-nihongo.com/bbs/gnuboard.php?bo_table=sincolumn&page=1&wr_id=22)
‘노벨상 작가’ 오에겐자부로가 발신하는 것/독자가 발신하는 것
-‘대일본제국’ vs ‘마을=국가=소우주’를 시야에 넣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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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에 문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관심있는 독자로서 그의 소설을 접해왔다. 몇 년 전 금융통화위기가 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출판사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전집’을 발간하던 중 부도를 낸 ‘사건’이 있었다. 가까스로 회생한 뒤 출간한 첫 책이 필자(펌자 註: 신인섭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가 번역한 오에의 ꡔ동시대 게임ꡕ이었다. 한국의 독서계와 오에 문학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오에의 노벨상 수상(1994)이 결정되었을 때, 한국의 신문들이 내놓은 오에 문학에 대한 알쏭달쏭한 논평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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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속의 오에, 그리고 ‘일본인’
일본근대문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오에 겐자부로는 어떠한 인물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의 독서인들이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인가 하는 점을 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벨상 작가’,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오에에 관한 정보가 의외로 적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손에 의해 쓰여진 오에에 관한 연구서가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일본문학연구자로서 마음이 어두워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에 문학의 독자가 형성되지 못한 것은 오에 문학의 성격상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독서 대중 역시 오에 겐자부로가 고명한 작가라는 것은 알면서도 그가 어떤 작품을 썼고, 어떤 작가인지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부터 서점에는 오에와 관련된 서적들이 진열되었고, 신문, 잡지에서 특집호가 기획되었다. 많은 비평가들의 찬사가 쏟아져 ‘서양’ 문학에 뒤지지 않는 ‘일본’ 작가 ‘Oe-Kenzaburo’가 탄생하였다. 초판 발행 이후 팔리지 않았던 그의 소설들이 ‘세계’ 수준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 노벨상 작가의 책을 샀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읽으려고 샀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앞부분을 읽다가 그만두었다, 등등의 담론이 일본인 독서층에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일본의 매스컴은 타고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아시아에서 3번째로 수상하는 오에의 노벨 문학상을 ‘서양’, ‘아시아’,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 관계로서 그 윤곽을 잡고 있었다. 노벨상 작가로서의 오에는 “일본인으로서 일본을 뛰어넘는 세계 수준의 작가”라는 사고틀에 의해 단단히 중심화되고, 오에의 텍스트가 제기하는 담론 자체의 갈등은 노벨상 담론 속에 함몰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에는 ‘대일본제국’과, 그에 저항하는 일본 내에 속해 있지만 정신적인 차원에서 ‘마을=국가=소우주’를 구성하는 공동체간의 갈등이라는 독특한 발상을 소설화하고 있다(ꡔ동시대 게임ꡕ). 또 다른 소설에서 성적 에너지의 범람(치한 행위)에 의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일본 청년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일본은 어두운 공간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ꡔ성적 인간ꡕ). 또 다른 소설에서는 전쟁 때 피난 온 감화원의 소년들을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 속에 방치한 끝에 반항하는 소년을 죽이려고 달려든다는 폐쇄적 공간을 그렸다(ꡔ나쁜 싹은 어릴 때 제거하라ꡕ). 즉 오에가 발신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의 불안정성이었지만, 일본의 평균적 독자들은 일본이라는 것을 안정성(seamless)으로 수용(혹은 발신)해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독서 대중이 환호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속의 오에’와 ‘일본인’을 부자연스럽게 결합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와 같은 텍스트의 발신과 독자의 발신 사이에 놓인 해석 공간의 매력(혹은 마력)에 대해 <노벨상/오에/일본>의 균열을 시야에 넣으면서 접근하기로 한다.
그림 )2000/8/23에 발매된 오에 겐자부로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초상을 새긴 기념 우표. (전통 의상을 입은 가와바타와 연미복의 오에가 노벨상을 통해 통합되는 점이 흥미롭다.)
2. 오에 겐자부로의 정치적 입장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일본의 시코쿠(四國) 지방에 속하는 에히메현(愛媛縣)의 산촌에서 출생하였다. 열 살 되던 해에 일본의 패전을 맞이한 그는 당시 자신이 체험했던 가치관의 혼란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즉 군국주의적 신념으로부터 전후 민주주의의 가치관으로의 변환에 따른 정신적 공황이 어린 시절 자신을 강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작가 스스로 규정한 ‘오에 문학의 에너지’는 문학적 담론의 ‘정설’로 자리잡게 된다. 조금 전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0살 무렵의 가치관의 혼란에 대하여 나중에 성인이 된 오에가 서술하는 것은 10세 무렵의 ‘자신’이라는 텍스트를 ‘분석’하는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10살의 오에 소년의 감정과 동일시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무튼 오에는 도쿄(東京)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여 ꡔ죽은 자의 사치ꡕ(1957)로 학생 작가로서 문단에서 인정을 받고 그 다음 해 ꡔ사육(飼育)ꡕ으로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하였다. 초기의 오에는 인간 정신의 폐쇄된 상태를 목가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는다. 소외당한 일본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적인 초조감을 그린 ꡔ우리들의 시대ꡕ(1959), ꡔ늦게 온 청년ꡕ(1962), ꡔ우짖는 소리(叫び聲)ꡕ(1962), ꡔ성적 인간(性的人間)ꡕ(1963),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여 그는 순수문학 영역에서 작가적 위치를 확고히 했다.
한편 오에가 사르트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은 오에 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두를 장식하는 강력한 담론 중의 하나이다. 그의 졸업 논문의 테마가 사르트르였다는 점 역시 영향론적 측면에서 회자되지만, 무엇보다도 ꡔ죽은 자의 사치ꡕ 등에서 보이는 존재의 감각적 표현은 사르트르의 초기 작품과 매우 흡사하다.
오에가 대학생이었던 50년대의 일본은 맑스주의와 프랑스 실존주의의 양대 조류가 유행했던 시기였다. 그들은 정치운동에 참여하던가 혹은 허무주의적 분위기 속에 몰입하던가 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오에의 작가로서의 정치적 선택에서 사르트르와의 유사성이 눈에 띤다. 사르트르는 시대의 상황에서 정치․사회적인 사건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것을 천명하고, 지속적이고 정력적으로 발언을 했다. 프랑스 식민지에 대한 사르트르의 윤리의식과 같은 것을 오에에게서 읽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와 같은 오에 겐자부로의 정치적 태도가 한국인에게 공감을 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예를 들면, 오에는 바로 얼마 전인 2001년 3월16일, 우리가 일본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항을 이루는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하여 ‘일본’의 태도를 비판하고, 검정에서 통과시키지 말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솔제니친 석방탄원서에서 서명하고(1974년), 김지하 시인 탄압에 항의하여 단식투쟁을 보이며(1975), 피차별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오키나와 문제와 베트남 전쟁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또 원폭 문제에 대한 르포르타쥬, 천황제에 대한 비판적 자세,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발한 ‘애매한 일본’ 비판 등등, 오에의 정치적 입장은 일본에 대해서 감정적인 응어리가 있는 한국인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오에에 대한 평가 중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일본의 양심’이라는 말은 평균적인 일본의 지식인들과 구별되는 ‘특수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에 겐자부로의 정치적 입장은 큰 틀에서 보면 일본에 대한 안티테제를 축으로 형성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노벨상 작가에게 수여해 온 일본 정부의 훈장을 거부한 예는 유명하다. 오에는 “예술원의 존재는 우리나라 문화에 바람직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폐지해야만 한다. 문학자가 국가에 포섭되는 형태가 아니라, 그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형태에서 (작품을=인용자) 써야만 한다”면서 “나는 전후민주주의의 세대. 문화훈장 따위의 국가 관련의 상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근대 작가들 중에서 신화화된 인물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일본정부가 주는 박사학위 수여를 거부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신화의 확대재생산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오에의 경우 나쓰메 소세키처럼 신화화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신화화된다면 오에 문학의 의의 자체가 진부해지겠지만) 그가 거부한 훈장은 거부의 변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로서의 오에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일본’이라는 국가와 거리를 두겠다는 발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미디어는 오에를 ‘일본’을 뛰어넘은 세계적인 작가이면서 동시에 일본인 작가라는 관점에서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앞의 기념 우표를 예를 들어도, 노벨상 수상작가로서 오에는 ‘애매한 일본’을 비판해도 결국 ‘일본인’ 노벨상 수상 작가로서 통합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주장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매개로 끌어내는 ‘아름다움’은 ‘애매한 일본’에 대한 비판 정신, 윤리성과 결합하여 훌륭한 ‘일본인’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연장 선상에서 ‘노벨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탄생한다.
오에가 연설, 강연,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재료가 되고, 노벨상이라는 이미지 속에 포용된다. 그 결과로 오에의 정치적 입장은 ‘안전한’ 영역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오에가 일본을 비판하는 행위는 일본의 양심을 더욱 부각시키고, 비판받는 부분의 비양심을 은폐하는 아이러니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노벨상 작가를 포섭하는 국가적 동인은 강력한 것이다. 오에가 훈장 서훈이나 에히메현에서 주는 상을 거절했지만, 정작 노벨상의 유혹에는 이길 수 없었던 것 같다.
노벨상 작가로서 중심화되는 오에.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정치적 입장이 일면 날카로운 반면에 ‘지나치게 담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지식인이지만, 그 양심에 따라 행동을 다함으로써 책임도 완결된다는 식으로 ‘사건’과 자신과의 일정한 거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동파의 이미지로 각인된 진보적인 작가 가이코 다케시(開高健, 1930-89)와 비교할 때, 오에가 추구한 사회적 실천은 ‘비판했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식의 ‘탈속’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노벨상의 이미지는 이렇게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의 발신과 동시대의 독자가 발하는 메시지 사이에서 충돌하고 서로 흡수하면서 아주 강력한 노벨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3. ‘흑인’ 병사이어야만 하는가?
산촌 마을에 어느 날 흑인 병사가 비행기 추락과 함께 떨어져 포로가 된다.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산촌 마을이 갑자기 흑인 포로를 두고 술렁거리고,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포로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된 소년과 그의 아버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오에가 전후작가로서 혜성같이 등장하는 ꡔ사육(飼育)ꡕ(1958)이라는 중편 소설의 내용이다. 오에는 ꡔ사육ꡕ으로 문단 작가의 등용문인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하였다. 일반적으로 아쿠다가와 상 수상 작가는 순수 문학 진영에서 작가 활동이 보장되는 프리미엄(지명도)을 획득하게 된다. 이야기가 약간 탈선하지만, 재일 교포 작가 유미리와 근래에 들어서 오키나와 출신 작가들에게 아쿠타가와 상이 수여되는 것은 일본의 문단사의 대단한 변모라고 할 만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ꡔ사육ꡕ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국가와 개인과의 격리된 감정이다. 이와 같은 감정은 ꡔ동시대 게임ꡕ의 ‘대일본제국’ 대 ‘마을=국가=소우주’의 도식으로 크게 선회하게 되지만, 오에가 그린 텍스트 공간은 불안정성 그 자체인 것이다.
전후의 시공간, 그것은 국가와 개인의 격리된 감정을 맛보고, 그 위에 일본인들이 새롭게 일본인으로서 자기 규정을 해나가던 시기였다. 일본은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통해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으로서 새롭게 명명할 수 있었다. 대동아의 맹주로부터 아시아 경제의 맹주로.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미국이 되기 위해 백인 콤플렉스를 매개로 한 ‘일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ꡔ사육ꡕ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국가가 개인을 얼마나 소외시키는지, 그리고 개인은 타자를 얼마나 소외시키는지 적절하게 제시한 작품으로, 국가와 개인과의 격리된 감정을 공통 함수로 지니고 있던 당시 지식인 사회에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왜 산간 마을에 추락한 미국 병사가 백인이 아닌 흑인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오랫동안 지녀왔다.
“우리는 깜둥이를 둘도 없는 훌륭한 가축, 천재적인 동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었다.”(ꡔ사육ꡕ)라는 서술이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처럼, 이 소설은 ‘깜둥이’라는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흑인병사로 인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 빠지게 되지만, 흑인병사를 적군으로서의 미국인이 아닌, 단순한 동물로 간주함으로써 주인공인 나의 ‘아이덴티티’의 규정도 따라서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는 ‘일본’에 속해 있는 산촌에 사는 소년이다. 하지만 읍내 사람들에게 차별을 받는 사람으로 ‘국가’에 소속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에게 흑인은 적군이 아니라 색깔이 다른 인종적인 차이 이외에는 아무런 변별성도 자져다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흑인병사와 인간적인 감정을 교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서 이 작품을 읽어도 여전히 남는 의문은, 그런데, 백인 병사가 포로로 잡혔어도 동물처럼 ‘사육’하였을까? 그리고 ‘사육’당하는 백인 병사의 이미지가 당시 일본 사회에 용납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작품 분석의 차원에서는 백인이 아닌 흑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일본의) 굴절된 욕망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면 미국을 거울로 자기규정하는 방식에 대해 야유하고 있다고 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위기에 직면한 흑인 병사의 폭력적 에너지--흑인 병사는 자신에게 솔직한 감정을 보여준 소년을 붙잡아 인질로 잡고 결국 마을 사람들의 공격에 의해 머리가 박살난다. 그때 소년의 손도 잘려 나가게 된다-- 에 담긴 야만성으로부터 개운하지 못한 느낌을 오늘날 오에를 다시 읽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울 수 없는 것이다.
4. ‘대일본제국’ vs ‘마을=국가=소우주’
ꡔ동시대 게임ꡕ(1979)에서 ‘대일본제국’과 50일 전쟁을 벌이는 ‘마을=국가=소우주’의 이야기는 오에의 사상의 한 핵을 보여주고 있다. ‘대일본제국’이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국주의를 야유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반면에 ‘마을=국가=소우주’라고 불리는 시코쿠의 작은 산간 마을은 천황제 혹은 대일본제국에 부정하기 위한 에너지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 마을에서 내려오는 신화와 전승은 ‘마을=국가=소우주’가 얼마만큼이나 ‘일본국’이라는 개념 정의를 거부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서술자가 천황에 대한 경외심을 거부하고 ‘마을=국가=소우주’의 창건신인 ‘파괴자’를 숭배하는 에피소드는 제국주의 파쇼화에 대한 결별의 메시지인 셈이다.
ꡔ동시대 게임ꡕ은 서술자, 즉 ‘마을=국가=소우주’의 신화와 역사를 쓰는 ‘나’는 여러 갈래의 신화 전승을 쌍둥이 누이동생에게 6통의 편지 형식으로 서술하는데, 그 4번째 편지가 대일본제국이라는 군국주의 일본과 일본 안에 있으면서도 일본의 지배로부터 멀어져 있는 산간 벽지의 마을이 자존심을 걸고 격돌한다는 ‘무훈 혁혁한 오십일 전쟁’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한다.
시코쿠의 산간 마을인 ‘마을=국가=소우주’는 역사적으로 국가 권력에 대항적인 의식을 지닌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예전에 마을=국가=소우주에는 한 명의 새로운 아이가 탄생하면, 또 한 명의 영아 출산을 기다렸다가 한 쌍을 만들어 둘을 하나의 호적에 등록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두 명 중의 한 명은 국가 권력과 무관하게 ‘마을=국가=소우주’의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하게 하는 이중제 호적의 술책이 국가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왜냐 하면, 두 명 중의 한 명은 납세, 병역 등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부과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남은 한편은 반대로 국민으로서 자기 규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안에 국가에 포함되지 않은 영역을 매개로 마을=국가=소우주라는 명명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어 ‘대일본제국’의 군대가 치안출동을 한다. 이때 ‘마을=국가=소우주’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일본제국’을 맞아 싸워 승전을 거두지만, 그들의 삶과 정신적 배경인 산림을 불태우려는 적 지휘관(무명 대위)의 계책에 항복을 하고 만다. 그리고 무명 대위가 연 군사재판에서 호적 등본에 기재된 두 명 중 한 명은 모두 학살당하고, 그로 인해 ‘마을=국가=소우주’의 저항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양민 학살에 가담한 군인들이 모두 다른 지역에 전속되어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려는 ‘대일본제국’의 전략에 의해, 군사작전에 참가한 군인들은 모두 아시아의 전쟁 지역에 보내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소멸된다. 제국주의 정부가 대규모 양민의 반란을 표면화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명 대위는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명 대위라 명명되는데, 그 역시 양민을 학살한 뒤 자살해 버린다.
‘마을=국가=소우주’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서술되는 시코쿠(四國)의 산간 마을이 파쇼화로 치닫던 대일본제국과 50일간 전쟁을 하면서 저항하다가 결국 패하고 만다는 이야기는 매우 함축적으로 제국주의 일본의 조직화된 전쟁범죄, 베트남전, 나아가서 텍스트가 발표된 이후의 사건들인 걸프전 등에 대한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무명 대위로 상징되는 호명되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이야말로, 전쟁과 개인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6. 결-가족 이야기 혹은 공생의 테마로
오에 문학이 발신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나 전쟁과 개인의 문제, 허무적인 주체의 갈등적 공간으로서의 일본에 관한 문제화는 일본의 독서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와 같은 테마를 다룬 소설들이 어렵기도 했지만 독자가 수신하고 싶어하는(즉 독자가 발신하는) 것은 ‘구원’ 혹은 공생의 테마였기 때문이다. 노벨상의 수상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 자신, ‘글을 쓰는 것은 악마를 물리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 속에 개인적인 것을 파헤침으로써 인간에게 공통되는 것을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뇌에 장애가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된 후의 작품에 특히 농후하다. 동 씨의 ꡔ만연원년(万延元年)의 풋볼ꡕ(1964)은 대표적 작품으로, 지식, 열정, 꿈, 야심, 갖가지 인간의 태도 등이 서로가 융합하는 혼란한 세계에서의 인간관계를 그렸다. (왕립 아카데미 발표의 수상 이유 중에서)
오에가 뇌에 장애가 있는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은 ꡔ개인적 체험ꡕ(1964) 이후 그의 소설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오에의 가족을 소재로 하는 소설들은 장애아인 아들 히카리(光)와의 공생을 모티브로 한 인간애를 그리고 있어, 독자들에게 훈훈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가족소설을 사소설로 읽어내는 일본적 독서 방식으로는 오에의 문제의식을 개인의 영역으로 환원하는 작용을 할 것이고, 그것은 오에와 오에의 가정을 신화화하는데 이용될 우려가 크다.
오에 히카리의 인간 승리를 작가 오에의 승리이자, 일본인의 승리를 만드는 장면을 우리는 노벨상 수상 직후 히카리의 부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작곡가 히카리에 대한 관심과 조명은 오에 없이는, 나아가서 노벨상 없이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오에의 강연회와 그에 대한 뉴스에는 늘 ‘노벨상’의 관사가 따른다. 오에의 발신과 독자의 발신이 만나는 지점, 그곳이야말로 ‘노벨상’이라는 ‘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