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뒤흔든 금융 이야기
왕웨이 지음, 정영선 옮김 / 평단(평단문화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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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금융박물관 이사장이자 경영대학원 개원교수 왕웨이가 지은 책으로, 제목도 <금융이야기>이다 보니 [화폐전쟁]을 떠올리고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분위기가 다른 책이었다.

<금융이야기>는 중국 역사를 포함한 세계사를 어느 정도 꿰고 있어야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는 어릴 때 부터 재미있게 읽은 영역인데... 한동안 등한시 한 탓에 가물가물한 부분도 많았고 특히 중국사에 대해서는 그 깊이가 얄팍하다 보니 <금융이야기>를 읽을 때 나 자신에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저자는 인류의 큰 역사적 흐름 (중국인이다 보니 중국 역사와 결부해서)에 따라 금융, 엄밀히 말하면 문자그대로 '돈'의 역사를 함께 해석해 주고 있는데 내가 그 내용을 충분히 못 쫓아간 것이다.

거기다 업무적으로 머리를 과도하게 써야 하는 기간에 하필 이 책을 고른 탓에 따로 책읽을 시간이 없어 10분, 20분 정도 짬나는 짜투리 시간에 읽다 보니 책 전체적인 맥이 자꾸 끊어졌다. 이럴 땐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역시 했다.

또 하나 아쉬운 부분은 저자는 금융박물관 이사장이면서 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보니, 서론과 부록에서 금융사에 대한 본인의 포부나 중국에서 금융박물관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는데 본문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본문과 상관없는 갑작스런 전환이 책의 서두와 말미에 있어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좋아하다 보니 재미있게 읽은 건 사실이다. 책 전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도입부에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나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는 신화나 민족 이데올로기의 색체가 자주 가미된다. 그러나 배후에서 조종하고 지원해 주는 <돈>이라는 하나의 중요한 요서는 최대한 감추려 한다. 돈은 교환의 도구로서 모든 물품으로 바꿀 수 있었고, 심지어 명예까지도 얻을 수 있는 도구였다. 만약 돈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면 이야기나 위인은 천우신조나 능력은 사라져 버리고 그저 보통 사람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서 돈과 밀접했던 인물이나 이야기일수록 역사에서 돈과 거리를 두려고 유달리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문장 하나로 금융이야기를 저술한 저자의 의도를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역사를 논할때 '특정 테마'를 주인공으로 하여 색다른 시각으로 푼 이야기들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시도한 테마의 대부분은 역사의 흐름에서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아 바뀔 수 밖에 없는 '결과론적인 해석'을 주로 하고 있는 반면, 금융이야기에서는 '돈'역사의 주체로 두고 썰을 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제1부 세계 금융의 역사와 제2부 중국 금융의 역사에서 이렇게 '돈'을 중심에 놓고 이를 누가, 왜 컨트럴 하느냐를 설명해 주는 데 그 시각이 재미있었다.

나의 본업인 IT컨설팅의 세월도 벌써 26해 정도 된거 같다. 시작은 IBM 컨설턴트 였지만 지금은 내가 주도한 계약을 해서 프로젝트의 한 영역을 맡고 있다. 일의 성격은 바뀐게 없지만 일종의 '신분'이 바뀐 셈이다. 나와 입사를 비슷하게 시작한 동료 중 일부는 현재 IBM에서 상무/전무가 되어 있기도 하고, 임원은 골치아프고 성미에 맞지 않는다며 적정 수준에서 진급을 stop 한 경우도 있고,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퇴직한 경우도 많다.

나도 한때는 '회사를 나오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 성향상 여전히 조직 내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지금 내 모습은 어느 정도 그려졌기 때문이다. 과거 나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절친 동료와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이 동료가 "대기업 임원은 명예직이야, 골치 아픈 명예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서 적당한 돈을 버는게 더 낫지 않아?"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아주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들었던 '명예'가 무엇일까를 곰씹어 봤던 거 같다.

이 무렵 조직에서 호령을 했던 분들이 은퇴를 시작했고 은퇴 후 모습은 말 그대로 자연인으로 돌아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발길도 뜨음 해 지는 모습을 보며 씁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이나 명예의 유한성'에 대해 자연스래 접하게 된 셈이다.

<금융이야기>를 읽으며 엉뚱하게도 이렇게 잊었던 직장인의 권력, 명예, 돈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 본거 같다. 역사에 등장하는 대단한 영웅이나 위인은 아니지만 일반 소시민에게도 나름의 같은 세계가 있기 때문에.

저자는 고대로마를 거쳐 유럽의 근/현대 역사를 훑으며 인류의 금융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다음이 진짜 금융이야기의 시작이지 않을까. 그 시작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며 내가 살아갈 '나의 남은 날들'이 될 것이다. 계급이 사라진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돈'이야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계급 사회를 구분하는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끔 농담삼아 '생계형이 되어 버려서 은퇴하고픈 시기가 점점 늦춰져요'라고 말하곤 했는데 또 한번 내 남은 IT생활에서 내가 뭘 추구하는 가도 생각해 보기도 했고, 은퇴 후 나의 생활도 생각해 본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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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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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인데

책 전반 분위기는 인류의 역사의 흐름도시와 건축의 시각으로 재 해석한 이야기로 보인다.

인류 생활의 '의식주' 중 <주> 모습이 인류 생활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에는 분명하다. 물론 인간의 의식변화가 변저 와서 <주>의 생활이 바뀐 건지, <주>의 변화로 인해 인간의 의식변화가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직업 상 짧게는 1년 길게는 3~5년 정도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보니 프로젝트 단위로 일터가 바뀐다. 아무래도 대규모 SI프로젝트가 통신, 금융 등 에서 10년에서 15년 주기로 생기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 프로젝트는 서울이다. 긴 세월 동안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세 번 정도 서울 아닌 곳에서 프로젝트를 해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장기적으로 다른 도심에 있어 본 경험도 나름 신선했다.

이 세 번 중 K프로젝트는 장소가 분당이라 말이 서울이 아닌거지, 서울과 바로 인접한 곳으로 거리상은 크게 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K프로젝트 참여 후 6~7개월 지났을 무렵, 어느날, '어?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투적으로 일을 할 프로젝트 단계로 많이 예민해져 있을 기간인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조바심이 느껴지지 않고 fact중심으로 나름 차분하게 (그리고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나의 변화'가 느껴져서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떠오른 것은, 언제부터인가 출근할 때 서울을 벗어나서 분당으로 들어서면서 넓어진 길, 노란 은행나무, 나즈막한 건물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 오면서 마음이 안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았고, 반면 퇴근할 때 서울로 진입하면서 빽빽한 고층 빌딩, 많은 차로 인해 가슴이 좀 답답하다 느꼈던 순간순간 기분이었다.

아마도 출퇴근 길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에 의해 나의 심리적 변화까지 서서히 연결되어 기본적인 마음의 안정감을 가지게 되어 그러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사는 공간, 내가 걷는 공간이 알게모르게 내 심리적 안정감에 크게 영향을 끼쳤구나를 알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나즈막한 건물이 있는 도시를 좋아하는지, 자연이 가득한 공간을 좋아하는지도 설명이 가능해졌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꿈꾸는 도시에 대해 저자가 하나씩 언급해 주고 있음도 알았다. 건축물에 대해,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에 대해, 도시에 대해 그 역사와 현재, 미래를 언급하며 '거기서 사는 사람' 중심으로 나아가야 할 개선점을 알려준다. 안타까운건, 실행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규제나 정책으로 인해 어렵다는 점.

나이가 들면서 나도 어쩔수 없이 과거를 그리워 하게 된다. 그중에서 해외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문화, 역사가 가득한 관광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서울의 깨끗한 거리와 높은 건물들을 보게 되는데.. 이 또한 한국의 모습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일상에서 보기가 참 힘들구나 싶었다. 그 이유를 6.25 탓이라고도 생각해보고, 새마을 운동의 여파라고도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너무도 흔하게 돌아다녔던 좁은 골목, 돌이나 시맨트 담, 좁은 길과 작은 집이 소중한지 모르고, 새로 건물을 올리고 길을 만드는 수많은 세월동안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있던 과거의 흔적들 역시 우리의 역사인데 알게 모르게 사라져간 것을 알았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과거의 향수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 당시의 옷, 음악, 각종 소품도 있지만.. 고무줄 뛰기, 말뚝밖기를 하고 놀았던 골목여름밤 수박을 먹고 더위를 식혔던 옥상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보톡스 도시>가 많이 와 닿았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먹어도 얼굴에 주름이라는 것을 남겨둬야 자연스럽듯이, 눈앞의 개발이익으로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남기자는 저자의 말이 완전히 공감이 된다. 그리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서민이 살았던 곳'이 아닐까. 내가 어릴 적 뛰어 다니던 좁은 골목과 낮은 집들이 있던 바로 그 건축물들..

만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경주를 방문하고, 경복궁을 가야만 그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하지말고,

내 발길이 닿는 곳에 10년전 과거의 모습, 또 얼마간 갔을 때 50년전 과거의 모습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도심의 모습이 더 친근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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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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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나름 책벌래 과에 속했는데 무작정 마구잡이로 읽다 보니 부작용이 있을 때가 가끔 있었다.

제목을 보지도 않고, 내용을 곱씹어 보지도 않고 마구 읽어 대다 보니, 어떤 책은 '어, 이 내용 왜 아는 거지?' 싶어 보면 이전에 읽은 책인 것이다.

데미안은 바로 그 학창시절 중 한참 명작에 빠져있건 기간에 읽은 책이었는데 지금 보니 어쩌면 이리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던지. 하지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이 문구만은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데미안은 십대에 읽을 때와 성인이 되고 읽었을 때 그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이전에 읽었을 때 기억이 그리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30년이 지난 후 다시 읽었는데, "아, 이래서 한번 더 읽어보라고 하는 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다.

책의 전체 내용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어린시절 부터 성인이 되서까지 이야기다, 이 기간동안 소년의 성장통을 넘어서서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로 거듭나기위한 과정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으로 묘사가 된 탓에,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사실 '생각할 거리'보다 '해석할 거리'가 맞는 말이겠다.

싱클레어의 <두 세계>, <카인>,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베아트리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야곱의 싸움>, <에바부인>, <종말의 시작>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뇌를 따라 가다 보니 어린시절의 나와도 가끔 만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악인으로 언급되는 <카인>에 대해 데미안은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하는데, 이를 통해 싱클레어는 기존 규범에 대해 달리 볼수도 있는 '눈'을 뜰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 나도 살며시 아주 오래된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초5학년 때 즈음 당시 '반공교육'은 여전히 일상에 녹아들어 있던 시절이었는데, 친구 중 한명이 '혹시,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 만큼 비참하지 않은데 우리나라 정부가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는 거 아닐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말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단 한번도 의심한 적 없던 '사실'에 대해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 나이될 때까지 기억을 하겠는가)

그리고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을 보며 마지막 순간 회개한 도둑보다 그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간 도둑 쪽이 <강한 개성을 가진>도둑이고 뛰어난 카인의 후예일 수 있다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초6의 나와 만났다.

그때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탈무드> 중, 금욕된 삶을 살며 오랜기간 수련을 한 제자가 아니라,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마지막 깨달음을 얻고 회개한 제자를 후임자로 받아들인 '어떤 선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당'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는 노력과 성실이 미덕이라고 배웠는데, 왜 할거 다 하고 '마지막'에 깨달음 얻은 이가 선택받아야 하는지 어린 나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이 의문은 내 마음속에 물음표로 꽤 남아 있었던지, 중학생이 되어 모태신앙 친구와 종교 설전을 할때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나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다) 그때 나의 질문은 '회개만하면, 그리고 믿기만 하면 천당에 가는 건 부당하다. 살면서 배푼 선행의 무게로 천당에 가야 하지 않냐, 특히 믿음만으로 천당을 간다면, 우리나라 처럼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우리 조상은 어찌되나, 하나님의 존재자체를 모르고 선하게 산 사람은 도대체 천당과 지옥 어디를 가게 되냐' 였다.

처음엔 종교 관련 작은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가 막편에 나의 저런 공격적 발언으로 인해 제대로 된 토론은 하지 못하고 친구의 입을 막는 걸로 끝이 났는데, 돌이켜 보면 이건 더 이상 연결시킬 수 없는 끝말잊기의 마지막 단어를 댄 격으로 모태신앙의 친구를 논리로 꺾었다는 건방진 승리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아마 비겁하게 이겼다는 부끄러움이 지금도 남아 있어서 저리 오래된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는 거겠다.

이렇게 데미안을 읽으면서 몇가지 간간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이떻게 떠오르는 과거의 나는, 새가 알에서 나오듯 나만의 작은 세계를 깨기도 했었고, 겹겹히 쌓인 알 속에 남는 걸 선택했던 하기도 했다.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가 새로 깨뜨린 세계'는 어떤 것이며 '내가 그 속에 남기를 원했던 세계'는 어떤 것일까 궁금 하다.

이렇듯 데이만은 책속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에 집중하기 보다 '나'를 반추해 보는 기회를 주는 책이었다.

책 전반에 걸쳐 싱클레어가 그리러하고 영향을 받았던, 어쩌면 싱클레어 고뇌의 근원이면서 해결사였던 데미안, 에바부인은

어쩌면 싱클레어가 원하는 싱클레어의 또 다른 모습, 싱클레어가 닿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이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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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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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왜 이리 책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열심히 책만 파고 있는 건 아니다.

눈이 아플때, 그리고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아주 잠깐씩 책 펼쳐서 몇 페이지 읽는 수준이다.

이 열두 발자국은 정재승 교수가 쓴 책으로 <강연>스크립트 모음집이라고 해야 겠다. 언제부터인가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눈높이로 한 많은 강연이 생겼었다.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인데 그 덕분에 막연히 어려운 줄 알았던 특정 분야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 느낌도 들고, 관심 없었던 분야에 대한 흥미도 생기게 했던 것 같다.

과거에는 이런 기회가 별로 없어서 따로 북클럽이나 특정 모임을 찾아갔어야 했다. 물론 남들보다는 두둑한 배짱이 있어야 했고.

나도 몇가지 추억 아닌 추억이 있는데, 아주 오래 전 프로젝트를 하던 건물 옆 건물에서, 교보문고로 기억하는데 매월 책을 선정해서 저자와 함께 토론하는 그런 모임을 진행했다. 고맙게도 참가자는 그 누구라도 상관이 없어서 나도 신청을 하고 꼬박꼬박 참석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했었는데 월 1회 정도라 부담없었고 샌드위치를 포함한 다과도 제공해줬고, 책도 나눠줬다. 참석하면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헤어졌는데 생각보다 활발한 토론을 하기에는 서로 쑥쓰러움도 있었던 거 같다. 아마도 사회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무료 행사였을 텐데 돌이켜 보면 나름 좋은 기억이었다.

그후 각종 강연이나 토론장을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런 기회 갖기가 여의치 않다가 TV에서 경쟁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이 생겨 TV는 잘 보지 않으면서도 요런 프로그램은 한동안 챙겨보곤 했던 거 같다. 새로운 이야기를 해 주면 호기심이 생겨 좋았고, 아는 이야기를 하면 반가워서 좋았다.

이 책은 강연을 귀가 아닌 눈으로 듣게 구성이 되어있다. 과학자는 왠지 딱딱하고 고지식하다는 선입견을 깨준 동글동하고 푸근한 인상을 가지면서 귀여운 말투로 재치까지 겸비한 정재승 교수가 했던 강의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열두발자국은 12개 강의로 구성 되어 있다. 전체 이야기가 다 재미있고 때로는 폭소도 나왔다. 알쓸신잡으로 이미 정재승 교수의 재치 넘치는 입담은 알고 있어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반면 솔직히 말해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해 봐라 하면 못하겠다. 매 에피소드 마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과 활용하면 좋겠다 싶은 문구가 가득하지만, 전반적인 책 내용 자체가 기승전결이 있거나 뚜렷한 메시지가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강연의 모음집이다 보니, 책의 내용을 한꺼번에 엮어 생각하기 보다 12개 하나하나 강연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이 책의 활용법'이지 않을까 한다.


* 프롤로그, 메인의 12가지 이야기, 그리고 부록까지 하나하나 모두 알찬 이야기가 가득해서 가끔 다시 읽어봐야 할 듯..

< 프롤로그 - 인간이라는 숲으로 난 열두 발자국 >

1부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 -뇌과학에서 삶의 성찰을 얻다

첫 번째 발자국-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두 번째 발자국-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세 번째 발자국-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가

네 번째 발자국-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다섯 번째 발자국-우리 뇌도 ‘새로고침’ 할 수 있을까

여섯 번째 발자국-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

2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일-뇌과학에서 미래의 기회를 발견하다

일곱 번째 발자국-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여덟 번째 발자국-인공지능 시대, 인간 지성의 미래는?

아홉 번째 발자국-제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열 번째 발자국-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열한 번째 발자국-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 도전하는가

열두 번째 발자국-뇌라는 우주를 탐험하며, 칼 세이건을 추억하다

부록

인터뷰 특강1 - 뇌과학자, ‘리더십’을 말하다

인터뷰 특강2 - 뇌과학자, ‘창의성’을 말하다


* 작년 초 였나, 블럭체인과 비트코인을 주제로 JTBC에서 정재승교수님과 유시민작가님 등 모시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너무 재미있어서 두번을 봤다. 정말 단순무식하게 말해서 이과의 최고봉 문과의 최고봉현재 핫 기술에 대해 토론을 하다니 이건 누가봐도 이과 승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봤던 토론이었다.

지식이나 논리력, 언변도 필요한 주제였지만, 아무래도 순발력까지 요구되다 보니 평소 정교수님의 언변이 아쉬운 순간이 보였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느낀 건 '사고의 흐름'특정 지식에 특화된 것이 아니구나였다. 인문학적/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IT 가 어떤 모습인지 처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는 유작가님의 '말'을 통해 얻은 경험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누구 말이 맞다 틀렸다 이전에, 통찰력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비록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라고 해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신기한 간접경험을 한 셈이라 '재미'를 느꼈던 거다.

* 열두 발주국에는 정교수님이 블럭체인 토론 당시 미처 전달 못한 교수님의 의중들이 언급되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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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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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책을 펼쳤다. 학생들 처럼 하루를 시간단위로 나눠 1교시는 독서, 2교시는 운동, 3교시는 집안일, 4교시는 일 방과후는 친구만나기 등으로 스케줄을 짜지 않는 이상, 일하고 살림하면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건 한가지 하기도 벅차다.

이전 젊을 때는,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마음을 안먹어서 그렇지' 라고 호기롭게 살았지만 중년을 넘어서고 정신력이 체력을 이기지 못하게 될 즈음.. '나라고 별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도 남들보다 비교적, 아니 엄청 뒤늦게 깨달은 건데, 이를 인정하고 나니 삶이,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가짐이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졌다.

물론 과거의 나였다면, 나태함에 안주하고 핑게거리를 찾는다고 했을텐데 지금은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는 멘트에 나도 슬쩍 숟가락 얹고 싶어진다.

최근 1~2년 책을 안 읽었다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워낙 책을 좋아하다보니 활자가 찍힌 종이 책을 안봤다 뿐이고 읽던 영역이 인문학, 역사, 문화에서 카카오페이지에 있는 로판물들로 옮겨갔을 뿐이다. 프로젝트 강도나 스트레스가 좀 쌓일 때 머리를 가볍게 비우고 싶어 로판물들을 읽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것도 시큰둥 해지자 다시 책장을 서성이게 되었고 이전에 읽으려고 사둔 '개인주의자 선언'이 낙찰되었다.

본 내용은 전체 3개 챔터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저자가 판사를 하면서 접한 각종 사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주된 내용이라 에세이에 가까웠고,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건 싫다고 말하라>와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가 상당히 흥미로왔다.

하지만 이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는 '프롤로그인 인간혐오'에 다 적혀있다.

표지에는 손석희 앵커가 자신의 성향이 저자와 상당히 일치한다고 되어 있는데, 어떤 부분인지 알겠다.

내가 바라보는 이 책은 '개인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라, 손석희 앵커처럼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공감대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성향과도 상당수 일치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꽤나 기뻤던 거 같다.

일터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사회적'이다. 격의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사교적이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나의 모습을 사람들은 친숙하게 봐왔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상당히 다르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남들이 보는 내 모습과 같다. 다른 이와 어울리는 시간 (그게 업무로 인해서건 개인적인 친분이건)을 나도 즐긴다. 가기 귀찮은 회식, 모임이라 하더라도 막상 가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간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뭔가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길면 심심하고 외로울 수 있을 텐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억지로라도 이런 '나홀로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 시간에 책도 읽고, 동영상도 보고, 미뤄뒀던 입시정보도 찾아보고, 인터넷 쇼핑을 하기도 하고 핸드폰 메모판에 글을 적어두기도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아, 그 짧지만 매혹적인 시간을 잠시라도 가지볼 심산으로 아침 이른 시간 또는 가끔 점심시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도시락을 사달라고 부탁하면서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이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SNS' 에서 언급한 저자의 생각이 정확히 나의 생각과 일치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가 블러그에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재미있어서 인데, 저자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 올리는 거 자체가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하면서 누군가와 대화가 아니라 글로 표현하는 이 시간을 즐긴다는 이야기)

사실은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대화가 즐겁겠지만, 그런 사람은 실상 많지 않다. 상당히 유쾌하고 밝은 성격이고 그 어떤 사람과 있어도 이야기를 잘 풀어가는 성격이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는 '상당히 재미없을 법한 진지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과 하진않는다. 어느정도 지식이나 정보가 있어야 통하는 주제도 많다 보니, 잘못 이야기 꺼냈다가는 일방적인 대화로 흘러갈 수도 있고,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예술, 교육 등 이야기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쓰건 못쓰건 글쓰는 게 좋다.

일종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셈인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귀 기울이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해야 할까?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고 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일부러 하지 않는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같은 관심 가진 사람이 의외로 없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 만나면 엄청 기뻐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서, 조언을 해 준건 '글을 써라'는 것과 결국은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있는 그룹을 알게된다고도 알려줬다. 션은 아직은 내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분명 이해할 것이다.

오랫만에 책을 잡으니 여러모로 기분전환이 된다. 다시 책 즐거이 읽던 내 모습 돌아가야지.


https://blog.naver.com/jykang73/22197812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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