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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학창시절 나름 책벌래 과에 속했는데 무작정 마구잡이로 읽다 보니 부작용이 있을 때가 가끔 있었다.
제목을 보지도 않고, 내용을 곱씹어 보지도 않고 마구 읽어 대다 보니, 어떤 책은 '어, 이 내용 왜 아는 거지?' 싶어 보면 이전에 읽은 책인 것이다.
데미안은 바로 그 학창시절 중 한참 명작에 빠져있건 기간에 읽은 책이었는데 지금 보니 어쩌면 이리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던지. 하지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이 문구만은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데미안은 십대에 읽을 때와 성인이 되고 읽었을 때 그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이전에 읽었을 때 기억이 그리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30년이 지난 후 다시 읽었는데, "아, 이래서 한번 더 읽어보라고 하는 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다.
책의 전체 내용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어린시절 부터 성인이 되서까지 이야기다, 이 기간동안 소년의 성장통을 넘어서서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로 거듭나기위한 과정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으로 묘사가 된 탓에,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사실 '생각할 거리'보다 '해석할 거리'가 맞는 말이겠다.
싱클레어의 <두 세계>, <카인>,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베아트리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야곱의 싸움>, <에바부인>, <종말의 시작>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뇌를 따라 가다 보니 어린시절의 나와도 가끔 만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악인으로 언급되는 <카인>에 대해 데미안은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하는데, 이를 통해 싱클레어는 기존 규범에 대해 달리 볼수도 있는 '눈'을 뜰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 나도 살며시 아주 오래된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초5학년 때 즈음 당시 '반공교육'은 여전히 일상에 녹아들어 있던 시절이었는데, 친구 중 한명이 '혹시,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 만큼 비참하지 않은데 우리나라 정부가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는 거 아닐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말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단 한번도 의심한 적 없던 '사실'에 대해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 나이될 때까지 기억을 하겠는가)
그리고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을 보며 마지막 순간 회개한 도둑보다 그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간 도둑 쪽이 <강한 개성을 가진>도둑이고 뛰어난 카인의 후예일 수 있다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초6의 나와 만났다.
그때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탈무드> 중, 금욕된 삶을 살며 오랜기간 수련을 한 제자가 아니라,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마지막 깨달음을 얻고 회개한 제자를 후임자로 받아들인 '어떤 선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당'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는 노력과 성실이 미덕이라고 배웠는데, 왜 할거 다 하고 '마지막'에 깨달음 얻은 이가 선택받아야 하는지 어린 나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이 의문은 내 마음속에 물음표로 꽤 남아 있었던지, 중학생이 되어 모태신앙 친구와 종교 설전을 할때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나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다) 그때 나의 질문은 '회개만하면, 그리고 믿기만 하면 천당에 가는 건 부당하다. 살면서 배푼 선행의 무게로 천당에 가야 하지 않냐, 특히 믿음만으로 천당을 간다면, 우리나라 처럼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우리 조상은 어찌되나, 하나님의 존재자체를 모르고 선하게 산 사람은 도대체 천당과 지옥 어디를 가게 되냐' 였다.
처음엔 종교 관련 작은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가 막편에 나의 저런 공격적 발언으로 인해 제대로 된 토론은 하지 못하고 친구의 입을 막는 걸로 끝이 났는데, 돌이켜 보면 이건 더 이상 연결시킬 수 없는 끝말잊기의 마지막 단어를 댄 격으로 모태신앙의 친구를 논리로 꺾었다는 건방진 승리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아마 비겁하게 이겼다는 부끄러움이 지금도 남아 있어서 저리 오래된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는 거겠다.
이렇게 데미안을 읽으면서 몇가지 간간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이떻게 떠오르는 과거의 나는, 새가 알에서 나오듯 나만의 작은 세계를 깨기도 했었고, 겹겹히 쌓인 알 속에 남는 걸 선택했던 하기도 했다.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가 새로 깨뜨린 세계'는 어떤 것이며 '내가 그 속에 남기를 원했던 세계'는 어떤 것일까 궁금 하다.
이렇듯 데이만은 책속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에 집중하기 보다 '나'를 반추해 보는 기회를 주는 책이었다.
책 전반에 걸쳐 싱클레어가 그리러하고 영향을 받았던, 어쩌면 싱클레어 고뇌의 근원이면서 해결사였던 데미안, 에바부인은
어쩌면 싱클레어가 원하는 싱클레어의 또 다른 모습, 싱클레어가 닿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이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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