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오랫만에 책을 펼쳤다. 학생들 처럼 하루를 시간단위로 나눠 1교시는 독서, 2교시는 운동, 3교시는 집안일, 4교시는 일 방과후는 친구만나기 등으로 스케줄을 짜지 않는 이상, 일하고 살림하면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건 한가지 하기도 벅차다.
이전 젊을 때는,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마음을 안먹어서 그렇지' 라고 호기롭게 살았지만 중년을 넘어서고 정신력이 체력을 이기지 못하게 될 즈음.. '나라고 별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도 남들보다 비교적, 아니 엄청 뒤늦게 깨달은 건데, 이를 인정하고 나니 삶이,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가짐이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졌다.
물론 과거의 나였다면, 나태함에 안주하고 핑게거리를 찾는다고 했을텐데 지금은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는 멘트에 나도 슬쩍 숟가락 얹고 싶어진다.
최근 1~2년 책을 안 읽었다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워낙 책을 좋아하다보니 활자가 찍힌 종이 책을 안봤다 뿐이고 읽던 영역이 인문학, 역사, 문화에서 카카오페이지에 있는 로판물들로 옮겨갔을 뿐이다. 프로젝트 강도나 스트레스가 좀 쌓일 때 머리를 가볍게 비우고 싶어 로판물들을 읽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것도 시큰둥 해지자 다시 책장을 서성이게 되었고 이전에 읽으려고 사둔 '개인주의자 선언'이 낙찰되었다.
본 내용은 전체 3개 챔터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저자가 판사를 하면서 접한 각종 사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주된 내용이라 에세이에 가까웠고,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건 싫다고 말하라>와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가 상당히 흥미로왔다.
하지만 이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는 '프롤로그인 인간혐오'에 다 적혀있다.
표지에는 손석희 앵커가 자신의 성향이 저자와 상당히 일치한다고 되어 있는데, 어떤 부분인지 알겠다.
내가 바라보는 이 책은 '개인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라, 손석희 앵커처럼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에 대한 공감대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성향과도 상당수 일치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꽤나 기뻤던 거 같다.
일터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사회적'이다. 격의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사교적이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나의 모습을 사람들은 친숙하게 봐왔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상당히 다르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남들이 보는 내 모습과 같다. 다른 이와 어울리는 시간 (그게 업무로 인해서건 개인적인 친분이건)을 나도 즐긴다. 가기 귀찮은 회식, 모임이라 하더라도 막상 가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간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뭔가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길면 심심하고 외로울 수 있을 텐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억지로라도 이런 '나홀로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 시간에 책도 읽고, 동영상도 보고, 미뤄뒀던 입시정보도 찾아보고, 인터넷 쇼핑을 하기도 하고 핸드폰 메모판에 글을 적어두기도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아, 그 짧지만 매혹적인 시간을 잠시라도 가지볼 심산으로 아침 이른 시간 또는 가끔 점심시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도시락을 사달라고 부탁하면서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이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SNS' 에서 언급한 저자의 생각이 정확히 나의 생각과 일치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내가 블러그에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재미있어서 인데, 저자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 올리는 거 자체가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하면서 누군가와 대화가 아니라 글로 표현하는 이 시간을 즐긴다는 이야기)
사실은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대화가 즐겁겠지만, 그런 사람은 실상 많지 않다. 상당히 유쾌하고 밝은 성격이고 그 어떤 사람과 있어도 이야기를 잘 풀어가는 성격이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는 '상당히 재미없을 법한 진지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과 하진않는다. 어느정도 지식이나 정보가 있어야 통하는 주제도 많다 보니, 잘못 이야기 꺼냈다가는 일방적인 대화로 흘러갈 수도 있고,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예술, 교육 등 이야기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쓰건 못쓰건 글쓰는 게 좋다.
일종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셈인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귀 기울이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해야 할까? 그 엄마에 그 아들이라고 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일부러 하지 않는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같은 관심 가진 사람이 의외로 없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 만나면 엄청 기뻐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서, 조언을 해 준건 '글을 써라'는 것과 결국은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있는 그룹을 알게된다고도 알려줬다. 션은 아직은 내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분명 이해할 것이다.
오랫만에 책을 잡으니 여러모로 기분전환이 된다. 다시 책 즐거이 읽던 내 모습 돌아가야지.
https://blog.naver.com/jykang73/221978128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