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콕 탐정 세계추리베스트 20
에밀 가보리오 지음, 한진영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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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콕 탐정이 등장하는 에밀 가보리오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르콕 탐정의 초년병 경찰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느끼면 뭐하나. 이 작품이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탐정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인데. 참 독자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실수 연발하던 르콕이 이렇게 훌륭한 탐정이 되었다는 것을 알릴려면 다음 작품의 출판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 작품은 한 술집에서 일어난 세 명의 살인 용의자에 대한 정체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르콕이 어떻게든 자신의 재능을 입증해 보이려고 안간힘 쓰다가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실패가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겠지만. 비교해서 보게 다른 작품도 조속한 시일에 출판해 주시리라 믿어 본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르콕 탐정의 모습이라면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는가. 

에밀 가보리오도 모리스 르블랑처럼 르콕 탐정을 창조하면서 연대기적 차례를 무시하고 썼던 모양이다. 이 작품이 르콕 탐정이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이라는데 마치 르콕 탐정의 첫 등장 작품인 양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르콕은 초심자로서 일으킬 만한 실수는 모조리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조르즈 심농의 <사나이의 목>에서 메그레 경감이 그랬던 것처럼 죄수를 일부러 놓아주고 미행을 하지만 그것마저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스승이 되는 타바레 선생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게 된다.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려면, 탁월한 능력을 알려면 다음 권이 있어야 하는데 딱 한 작품만 읽었으니 뭐라 말할 수도 없다.

코넌 도일은 <주홍색 연구>에서 홈즈의 말을 빌어 르콕의 실수를 비웃고 반대로 크리스토퍼 부슈는 <완전 범죄>에서 르콕 탐정이 있었다면을 연신 푸념한다. 그것을 이 에밀 가보리오가 창조한 탐정 르콕이 추리 소설사에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번역되지 않았다니. 아니 예전에 우리 나라에서 번역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고 번역된 지 얼추 50년은 된 것 같은데 말해 뭐하랴 싶다. 달랑 한 권만 출판할 계획이었다면 이 작품이 아닌 세계 최초의 장편 추리 소설이라는 <르즈르 사건>을 출판해 주시지 참. 맛보기도 아니고 독자 약 올리기도 아니고 뭔지 참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 작품은 번역은 조금 이해가 안 되기는 하지만 - 프랑스 작품인데 영문학자가 번역했다는 점에서 - 정태원님의 해설이 있어 그나마 상쇄되는 감을 느낀다. 8편밖에 안되고 저작권 시한도 지난 지 오래된 작품들이니 제발 출판사에서 전집으로 출판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탐정이 가지는 의의는 추리 소설사에서는 대단한 것이다. 이 작품은 해이크래프트가 뽑은 리스트에서 탐정 소설의 아버지뻘로 꼽히고 있다. 그러므로 탐정 소설의 원조라 할 작품인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이런 원조만 모아 따로 시리즈로 엮어 출판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꼭 한 작가의 작품만 시리즈나 전집으로 묶을 필요도 없겠지만 어떤 의의를 가지고 출판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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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의 비밀 - 미스터리 베스트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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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3편의 조젭 르보르뉴의 활약을 다룬 단편과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제 1호 수문>이라는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조젭 르보르뉴의 단편을 보자면 이름에서 연상시키는 것처럼 가스통 르루의 조셉 를루타뷰가 자랐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인물이다. 조셉 를루타뷰와 이름도 비슷하고 조셉 를루타뷰가 신문 기자였던 것과 조젭 르보르뉴가 신문에서 사건만을 보며 스크랩한다는 사실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조젭 르보르뉴가 등장하는 단편들은 홈즈의 방식을 체택하고 있다. 르보르뉴와 그의 친구인 '나'가 등장하고 또 구석의 노인처럼 말만으로, 가끔 행동도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35세 심약하고 신경질적인 한 남자가 신문 스크랩으로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그의 취미는 범죄 기사 모아 미해결 사건 해결하기. 그의 이름은 조젭 르보르뉴. 그리고 그에게는 홈즈의 친구인 왓슨같은 존재이지만 자칭 라이벌인 '나'가 있다. 이 조젭 르보르뉴가 신문만 보고 해결한 사건이 13개의 단편으로 수록되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빈번하게 여러 책에 소개되고 드라마에서도 나왔던 <크로와 루스의 외딴집>과 <3장의 렘브란트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스토리아 호텔의 폭탄>과 조젭 르보르뉴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황금 담뱃값>을 꼽고 싶다. 전작은 트릭면에서 후작은 호기심면에서. 

실질적인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제 1호 수문>은 메그레 경감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둣가 마을에서 한 남자가 등에 칼을 맞고 물에 빠졌다 구사 일생으로 살아났는데 이 남자를 찌른 범인을 잡기 위해 메그레 경감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자신이 한 짓이라는 유서를 쓰고 자살을 하고 뒤 이어 수문지기도 자살을 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건이 주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의 젊은 날 한때의 과오가 어떤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표한 수작이다.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작품들 <사나이의 목>, <황색의 개>를 보면서 한번도 메그레 경감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도, 어떤 자신만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고 나니 그게 그 메그레 경감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마치 산책하는 듯 어슬렁거리는 메그레 경감. 사건이 중심이 아닌 마을의 풍경이나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돌아가는 카메라 앵글처럼 범인 잡기와 사건은 비켜 있고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만 마지막까지 비춰 주다가 마지막에 메그레 경감은 범인을 잡는다. 독자가 읽거나 말거나 단서를 흘리는 건지 감추는 건지 알 수도 없게 프랑스의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 대해서만,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살이만 줄 창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게 메그레 경감의 매력이고 조르주 심농이라는 작가의 매력이다. 인간에 대해 느끼게 해 주는, 인생살이를 보여주는 것이. 메그레 경감과 그가 다니는 곳의 생생한 묘사가 조르주 심농이 왜 단순한 추리 소설가가 아닌 문학 작가로 추앙받고 있는 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조르주 심농의 작품은 너무 많은 까닭에 전집은 읽기 어려울 듯 하다. 누가 메그레 경감이 등장하는 선집이나 아니면 역자가 언급한 다른 작품이라도 좀 더 출판해 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는 제발 프랑스 원서로 번역해 주시길. 딱 보면 일본에서 출판한 작품 번역한 티가 줄줄 난다. 뭐 동판 출판이라 어쩔 수 없기는 하겠지만. 이거라도 어디냐고 감지덕지 하며 보는 실정이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써 출판해 주시길 출판사에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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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0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김순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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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도로시 세이어즈의 명 단편이자 1950년 EQMM에서 뽑은 단편 12편 가운데 한편이므로 추리 소설의 단편 가운데에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참고로 그 열 두 편을 보면 토마스 버크의 <오터모올씨의 손>,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 맞은 편지>, 코넌 도일의 <붉은 머리 클럽>,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The Avenging Chance>, 로버트 바의 <건망증 있는 사람들>, 잭 푸트랠의 <13호 독방의 문제>, 체스터튼의 <보이지 않는 남자>, 맬빌 포스트의 <나보테의 포도원>, 앨도우스 헉슬리의 <The Gioconda Smile>, H. C. 베일리의 <The Yellow Slugs>, E. C. 벤틀리의 <The Genuine Tabard>, 그리고 이 작품이다. 영어로 쓴 작품은 아직 번역 작품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출판되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표제가 된 작가의 가장 유명한 단편인 <의혹>은 이미 읽은 작품이어서 사실 실망했지만 이 작품을 빼놓고 작가의 단편집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우니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약간 설명하자면 원제목이 인데 아마도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제목이 바뀐 듯 하다. 하지만 이 제목만 잘 생각해도 작품을 알 수 있다. 사람을 혼동하게 하는 다섯 가지라는 뜻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가정부를 의혹의 눈으로 감시하게 된다 하지만 결말은 참으로 놀랍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꾀꼬리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도로시 세이어즈가 창조한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지만 그가 등장하지 않음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는 대작이다. 그 다음 작가가 창조한 자칭 셜록 홈즈 이후 가장 뛰어난 탐정인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이 활약하는 단편 7편으로 위로 받기로 했다. 작품의 질보다 피터 윔지의 작품을 단편이나마 <나인 테일러스> 이후에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이 등장하는 작품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불화의 씨, 작은 마을의 멜로드라마>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의 작품이다. 소도시의 특징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단편 가운데는 <거울의 영상>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구리 손가락 사나이의 비참한 이야기>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읽고 난 뒤 공포를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유령에 홀린 경찰관>은 사건보다 트릭의 유머러스한 면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하지만 <완전한 알리바이>가 트릭면에서는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도로시 세이어즈의 단편집 하나의 완전한 번역을 바란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첫 번째 단편집인 <Lord Peter Views the Body (1928)>와 두 번째 단편집인 <Hangman's Holiday (1933)>, 세 번째 단편집인 <In the Teeth of the Evidence and Other Stories (1939)>, 그리고 <유령에 홀린 경찰관>은 미국의 <하퍼즈 배더>지 1938년 2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여사의 사후 발표된 <Lord Peter (1972)>와 <Striding Folly (1972)>에 수록된 작품을 몇 편씩 짜깁기한 형식의 단편집이다. 참, 동판의 재판이라 뭐라 말할 수도 없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출판할 계획이라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전집처럼 출판해도 좋을 듯 싶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가사 크리스티 이외의 비슷한 작가들이 너무 냉대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빨리 도로시 세이어즈의 전집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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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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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사서 읽기 아까워 아끼고 아끼다 읽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괜히 샀다 싶어 미루고 미뤘다가 읽게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후자의 경우였다.

개인적으로는 유태인이 싫을 이유도 없고 반유태주의자도 아니지만 유태인이 등장하고 아우슈비츠 이야기가 등장하는 작품을 대하게 되면 가슴속으로 무언가 치밀어 오름을 가눌 수 없게 된다. 아픔은 겪어 본 자만이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유태인은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팔레스타인 땅을 점거하고 자신들의 이스라엘 깃발을 꽂고 그들을 마치 자신들이 그 옛날 누군가에게 당했던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잔인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라 브루더... 안네 프랑크와 같은 소녀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역사 속에 묻힌 가여운 소녀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그녀의 자취를 찾아 헤맨다. 왜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유태인이 당한 일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어떤 이가 또 다른 도라 브루더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그녀는 팔레스타인 소녀이며, 도라 브루더 만한 나이에 이스라엘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영문도 모른 채 도라 브루더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사라졌듯이 어딘 가에서 사라져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찾는 광고를 신문에 낼 것이고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한 팔레스타인 작가가 그녀를 찾아 세상 어딘가 이스라엘 땅을 헤매고 다닐 것이라고...

왜 당신은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행하는 작태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인가 작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1943년 실종된 유태인 소녀는 찾아 헤매면서 그 소녀와 같이 죽어 가는 다른 소녀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냐고...

이것이 당신이 헤매는 이유인가... 역사란 어차피 승자의 편에서 쓰여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너무 많은 눈들이 있는 시점에서 승자의 편에서 쓰여질 역사란 존재를 잃었다. 패자도 역사를 쓴다. 이 사실도 잊지 말기를...

또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당시 유태인보다 더 많이 인종 청소를 당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집시다. 당시 유럽의 집시들 중 80%가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이란 제 상처만 아파하고 핥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존재인 것을 무엇을 찾아 헤맨들 그것이 자신이 찾는 것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온 생애를 헤매어 자신이 찾는 것은 찾았다 한들 무엇할 것인가...

파트릭 모디아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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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300
김성종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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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추리적 형식도 그렇고 그 안의 역사 녹임은 <여명의 눈동자>에서 익히 알던 그것이었다. 이 작품은 600페이지나 되는 작품이지만 정말 단숨에 읽게 되는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는 마력이 있다. 이런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됨을 작가에게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울러 그 동안 작가에게 안 좋은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점도 함께 사과 드리고 싶다. 우리 나라 추리 소설가를 떠올릴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가의 작품을 이 작품을 포함해서 달랑 세 작품 읽었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기로 했다. 이 작품을 처음 샀을 때 두께가 너무 두꺼워 문고판으로는 좀 모양새가 그랬지만 DMB에서 많은 다른 나라 작가의 작품들을 내놓으면서 정작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한 권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나라 추리 소설의 현실을 말하는 듯 해서 착잡했는데 김성종의 작품을 계기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도 더 많이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살인 사건으로 인해 드러나는 우리의 슬픈 역사 6.25.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처절함.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누가 이들을 단죄할 것인가. 나쁜 사람도, 이용당한 순한 사람도 따지고 보면 시대가 낳은 사람들일 뿐. 사람이 나쁘다지만 사람을 만드는 상황이 그들을 눈멀게 만드는 것이리라. 각기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두 사건. 한 형사의 집념.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 역사의 일그러진 자화상. 이 작품을 보면서 언젠가 봤던 윤정희 주연의 영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낮에는 태극기를 달고 밤에는 인공기를 달다가 급기야 두 국기를 손에 쥐고 흔들던 모습. 그 아이러니와 슬픈 우리의 역사. 우린 여전히 최후의 증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절되지 않은 역사. 어떤 바람직한 해결도 없이 흐지부지된 많은 역사, 현대사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모두 최후의 증인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모습은 결국 오병호, 황태영, 양루시아로 이어지는 끊어지지 않은 이어짐 속의 인연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를 되풀이하는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번 잘못된 역사를 살았다면 다시는 그런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상황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당하지 말아야 한다. 사상이나 이념, 종교가 인간의 존엄성, 인간 그 자체보다 위에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잃고 우리는 이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깨달음을 우리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왜곡된 점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으로 무엇이 이루어지느냐는 것은 미래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못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지 않고 알고도 모른 척 지나친다는 것, 그것은 이 안의 인물들, 나쁜 인간들과 다르지 않음이다. 역사란 순간의 기록이 아니다. 인간의 먼지가 쌓여 남는 찌꺼기다. 그 찌꺼기가 부처님의 사리가 되느냐, 쓰레기가 되느냐는 그 역사를 어떻게 바로 쓰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 사실적 역사를 만드느냐, 왜곡된 역사를 만드느냐를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황바우의 일처럼 사실은 언젠가 찬란한 진실로 밝혀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비뚤어진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왜곡된 것의 뿌리내림을 말한다. 왜곡된 것은 뿌리를 캐내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고 없애지 않으려면 끌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 변형된 역사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 우리의 후손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아무리 바르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실대로 밝혀져야 한다. 사실이 진실이냐를 떠나서 사실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일 뿐이고. 우리는 어떤 것을 택하고 있는 지. 사실적 역사, 부끄럽고 감추고 싶지만 왜곡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가. 그것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내딛는 한 발자국의 사실이 모여 진정한 역사가 되고 그것이 언젠가 비틀린 역사를 어느 시점에서 바로 펼 날을 만들 것이다. 그때 또 다시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이 작품을 보며 최후의 증인이 아닌 최초의 증인이 되는 삶을 모두가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미래의 후손들에게 떳떳한 조상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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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11-23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의 서평을 읽고 이 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요상한 데자뷰 현상... 알고보니 근래 보기드문 최악의 한국영화 '흑수선'의 원작이었다는... 이런 실망감이... 거지같은 영화로 먼저 줄거리를 알아버리다니... 차라리 원작을 먼저 읽을 것을... 그래도 끝까지 읽어볼 것이냐?! 말것이냐!? 고것이 문제 아니겄소!?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라는 것을 알고 봐도 재미있드요!?

만두님! 결말을 알아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까!? 이제 1/10 읽었습니다. 조언 좀 부탁합니다.

물만두 2004-11-23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흑수선을 못봤지만 그 악명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과 내용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색이 너무 심했다고나 할까요. 읽으세요. 중요한 장면 나오지도 않았네요. 저라면 눈 딱감고 읽겠습니다. 읽은 다음 제가 만두를 던지시길^^

sayonara 2004-11-2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시간만에 후딱 읽어치웠습니다. 다행히 영화와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한국에도 이런 대하추리소설이 있구나..(감동 *^^*)